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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능으로 무림최강-155화 (155/185)

서란과 독고화. 그리고 독고삭(2)

내가 그들에게 전한 이야기는 길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길 필요조차 없었다는 게 사실이겠지.

그와 만난 시간도 겨우 일각 남짓할 뿐이고, 전해 들은 이야기도 그리 많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물론.

“그, 개새끼가···!”

“·········.”

이야기를 전해 들은 시간과 두 사람이 받은 충격은 전혀 상관이 없었지만.

쿵!

“죽여버리겠어!”

자신의 분노를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독고화와 달리, 서란은 어두운 표정으로 침묵한 채 한참을 가만히 있더니.

“옥천이 결국···그런 일을 벌였군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마치 옥천을 예전부터 알고 있는 듯한 그 말투에 그녀에게 질문을 던졌다.

“서란 님도 옥천을 아셨습니까? 제가 알기론 그가 천마의 제자가 된 건 서란 님이 목숨을 잃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라고 알고 있는데···.”

“확실히 그가 제자가 된 건 긴 시간이 흐른 후의 일이지만, 저는 이미 그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물론 그이도 알고 있었고요.”

“대체 어찌?”

“이미 천마의 권능을 물려받은 당신도 알고 있겠지요? 천마의 권능은 오직 천마의 핏줄 아래에서만 발휘된다는 걸요.”

“아, 네···독고삭 대협께서도 그걸 알아보시고 제게 물려주시기로 마음먹으셨죠.”

“본디 마교에선 천마의 핏줄이라면 그 방계까지 모두 파악하고 있습니다. 유 소협의 핏줄은 아마···제 예상일 뿐이지만, 아마 마교가 혼란스러웠던 시기에 갈라져 나와 파악하지 못한 듯하지만요.”

확실히 마교가 처음 생겨난 초창기라면 혼란스럽긴 하겠지.

이미 모계 혈족이 초대 천마의 혈족이라는 걸 선정에게 들어 알고 있었기에 서란의 말에도 그리 놀랍진 않았다.

“그걸 통해 후대 천마의 제자가 될 사람을 미리 찾아두는 것이죠. 물론 최선은 천마의 자식이 후대 천마가 되는 것이지만, 항상 만일이라는 건 생각해둬야 하는 법이니까요.”

“그래서 서란 님도 옥천의 존재를 알고 계셨던 거군요?”

“당대 방계의 핏줄 중 그의 제자로 삼을 나이의 아이는 그 아이 하나밖에 없었으니까요. 재능은 그리 뛰어나지 않았지만, 권능만 있다면 노력만으로도 어느 정도 경지에는 오를 수 있으니까요.”

멀리 갈 필요도 없이, 당장 나도 그렇다.

삼류 중의 삼류라는 소리를 듣던 나도, 지금 이렇게 화경의 경지에 오를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권능 덕분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내가 자의, 혹은 타의로 목숨이 위험한 곳에 끌려간 것도 한몫하긴 했지만.

“그래서 그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설마 그런 짓까지 벌일 줄은 몰랐군요.”

“그 새끼, 지금은 무슨 짓을 벌였는진 몰라도 갑자기 무공 실력이 일취월장하더니, 지금은 많은 교도에게 사실상 천마로 인정받고 있어요. 그 무공도 유 소협이 말씀하신 그놈들에게서 받은 거겠죠?”

독고화의 분노 섞인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평범한 무공으로는 이미 천마의 무공을 알고 있는 이들에겐 먹히지 않을 가능성이 크니, 아마 그렇겠죠.”

“천마의 이름을 더럽힌 것도 모자라, 마교의 무공이 아니라 다른 무공을 익히다니! 그 개새끼, 이게 밝혀지면 그놈을 천마로 인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예요!”

독고화의 말대로였다.

마교에 소속된 것도 아닌 내가 혼자 가서 얘기하면 아무런 의미도 없을 말이고, 증거도 없는 독고화가 홀로 가서 말하면 말도 안 되는 헛소리로 치부하겠지만, 우리 둘이 가서 얘기하면 사실로 받아들여질 가능성도 있었다.

천마의 권능이라는 확실한 증거에 천마의 딸이라는 발언자까지.

원래부터 옥천에게 불만을 느끼고 있던 마교도들까지 합세한다면, 그를 완전히 실각시키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겠지.

하지만 그렇게 되면 딱 하나, 문제가 생긴다.

“그렇게 되면 공석이 된 천마의 자리는 누구의 것입니까?”

“네? 그야 당연히···아.”

내 질문에 대답을 꺼내려던 독고화는 탄식을 내뱉었다.

“어떤 식으로든 그이의 인정을 받아 천마의 권능을 물려받았고, 그를 배반하여 죽인 죄까지 밝혀냈으며, 무공의 경지 또한 전대 천마와 견줄 수 있는 사람···만약 천마의 자리에 순서를 둬야 한다면, 유 소협이 가장 앞에 가는 건 당연한 사실.”

이미 미리 그 사실을 파악하고 있었던 듯, 서란은 침묵한 독고화 대신 입을 열었다.

“하지만 유 소협은 그걸 원치 않겠죠?”

“마교에 있는 두 분에게 이런 말을 드리는 건 조금 그렇지만···네, 그렇습니다. 전 천마의 자리에는 전혀 욕심 없습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런 생각은 해본 적 없다, 라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그건 내 것을 가진 적 없을 때의 이야기다.

내 가족, 내 사업. 그리고 내 사람.

지금 내겐 천마의 자리보다 이들이 훨씬 더 중요했다.

“그이도 당신에게 천마의 자리를 이어 받아달라···이런 부탁을 하진 않았겠지요?”

“네, 대신 다른 부탁을 하시긴 하셨지만, 천마의 자리에 대해선 아무런 말씀 없으셨습니다.”

“다른 부탁이라면···?”

“독고 소저.”

“아, 네.”

한창 서란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갑자기 자신을 부르는 내 목소리에 그녀가 놀라 대답했다.

“독고 대협, 전대 천마께선 독고 소저께 서란 님의 일에 대해 미안하다 전해달라 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요?”

“네. 세 분에게 엮인 관계는 제가 감히 짐작할 수 없고, 과연 제가 그 이야기를 꺼내도 될까 싶어서 말씀은 미처 말씀은 못 드렸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두렵기도 했다.

만약 내가 독고삭의 최후를 지켰다는 이유로, 그리고 천마의 권능을 훔쳤다는 이유로 마교에 쫓길지도 모른다는 그런 두려움.

내가 어느 정도 강해지고 나선 그런 공포에는 벗어나긴 했지만, 그래도 말을 꺼내는 걸 주저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제삼자인 제가 왈가왈부하는 것보단 직접 만나러 가서 얘기하는 게 좋겠지···독고 소저를 돕고자 했던 데에는 그런 이유도 있었습니다.”

어차피 독고화가 대화를 원할 만한 죽은 사람은 둘 중 하나.

자신의 어머니인 서란, 아니면 아버지인 독고삭일 것이란 건 딱히 어려운 추리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내가 직접 만나게 도와주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이런 생각도 있었고.

내 이야기를 들은 독고화는 충격을 받은 듯 잠깐 입을 다물지 못하더니, 곧 슬픈 얼굴로 입을 열었다.

“···예전에, 제가 어릴 땐 아버지에게 떼를 많이 썼어요. 아버지는 논리적으로 저를 설득하려 하셨지만, 저는 항상 억지스러운 떼만 썼죠. 그러다가 마지막엔 어머니가 계셨다면 날 이해해줬을 텐데! 하고 화를 냈죠. 그러면 아버지께선 입을 다물고, 제가 원하는 걸 해주셨거든요. 그것이 아버지에게 큰 상처가 된 걸 깨달은 건, 제가 열여섯 살은 되고 나서였어요.”

뚝, 뚝뚝.

미처 하던 말을 다 끝내지 못하고, 조용히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는 그녀.

깊은 죄책감이 담긴 눈물을 눈에서 끊임없이 흘려내며, 그녀는 겨우겨우 자신의 말을 끝마쳤다.

“아마 아버지는···그때 기억 때문에···그리 전해달라 하신 걸 거예요. 마지막까지···그런···.”

“괜찮다, 하아야. 그것 때문에 너무 슬퍼하지도, 아파하지도 말려무나.”

“하지만···.”

“유 소협에게 그 말을 전해달라고 부탁한 것만으로도 그이는 마음의 평안을 얻었을 거다. 현세에 마지막으로 남은 마음의 짐을 그걸로 덜었을 테지.”

“정말···그럴까요?”

“물론이지. 이것 봐라. 그이의 기대대로 그는 훌륭하게 그 말을 전해줬잖니? 그러니 너무 힘들어하지 말거라.”

“어머니···.”

그 말과 함께 서란의 품에 안기는 독고화. 그녀의 위로의 말 때문인지, 아니면 따뜻한 어머니의 품 때문인진 몰라도 독고화는 금방 안정을 되찾았다.

“그리고 유 소협, 다시 한번 고맙습니다. 그런 힘든 부탁을 이렇게나마 이뤄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뇨, 저에게도 언제나 그분의 유언은 마음 한켠에 있었으니까요. 언제든 때가 되면 반드시 해내려 했고, 오히려 이렇게라도 독고 소저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내게도 이득이 되는 방향이라서, 라는 말은 꺼내지 않는다.

반드시 좋은 인상을 줄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그 생각을 일부러 정정해줄 필요도 없는 건 사실이니까.

“그런데.”

어느 정도 그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마무리되자, 지금껏 사후 세계를 오고다니며 떠오른 의문에 대해 입을 열었다.

“그런데···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독고 대협의 행방을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그 말씀은 아마, 사후 세계에서의 행방을 여쭙는 것이겠지요?”

“네, 그렇습니다.”

화경이란 경지는 지금 몇 백년 이상 수련한 사후 세계에서도 쉬이 볼 수 있는 경지가 아니었다.

재능과 노력. 이 두 가지 모두가 보통 인간은 가늠할 수 없는 초월적인 영역에 들어서야만 가능한 일이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나야 천마의 권능과 화순의 도움이란, 하나 얻기도 힘든 기연을 두 개나 얻었기에 가능했지만, 다른 이들은 그리 쉽게 오를 수 있는 경지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당연히 독고삭의 이름 또한 사후 세계 널리 알려져 있을 것이다, 그렇게 지레짐작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러지 못했다.

서란의 이름은 사후 세계 널리 알려져 있었지만, 독고삭의 이름은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았다.

혹시 서란의 뒤에서 그녀를 몰래 수호하고 있나? 같은 짐작도 해봤지만, 서란이 일어날 때 이어나간 탐문 수사에 따르면 그것조차 아니었다.

그녀의 최측근조차 그녀의 비밀호위는커녕, 독고삭의 이름도 알지 못했으니까.

내가 아는 독고삭의 성격, 인성, 강함. 그 무엇과도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었다.

그렇다면 결론은 딱 하나.

“혹시 그분이 사후 세계에 넘어왔던 적조차 없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 상황도 이해가 가긴 합니다만, 서란 님이 생각하시기엔 어떻습니까?”

“아마 유 소협의 생각이 맞을지도 모릅니다.”

“혹시 서란 님도 알아보신 겁니까?”

“물론 그이의 죽음을 알고 찾은 건 아닙니다. 다만, 혹시나 하는 생각에 사후 세계로 넘어온 역대 천마들의 정보들을 찾아본 건 사실입니다. 그런데···.”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잠깐 말을 멈췄던 서란은,아미를 찌푸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는.

“···지금껏 사후 세계로 천마가 찾아왔다는 이야기는,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사후 세계에는 수천 년 전의 이야기도 직접 겪은 사람들이 넘쳐나죠. 물론 그런 이들 중엔 수백 년 전 벌어졌다는 마정대전에서 죽은 마인들도 있고요. 하지만 마정대전의 최후, 동귀어진했다던 정파 제일 고수와 천마 중 사후 세계에 나타난 건 정파 제일 고수 한 사람뿐이었다 합니다.”

“그런···혹시 다시 살아난 건 아닙니까?”

“아뇨, 그 이후에 사후 세계로 나타난 마인들에게도 정보를 얻어봤지만, 그들 모두 천마의 죽음을 지켜봤다 합니다. 후대 천마에게 천마의 권능이 전해진 것도 확인했고요.”

“그렇다면 그 말씀은 설마···천마는 사후 세계로 넘어올 수 없다, 라는 이야기입니까?”

“아마 그렇겠지요.”

서란의 이야기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이건 그저 한 사람의 혼백이 행방불명되었다, 그 이상의 의미가 있는 말이었으니 말이다.

마교가 존재할 수 있는 그 근본인 천마와 그 교리.

그 둘이 서로 맞물리지 않는다는 이야기였으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을까.

마교의 교리대로 존재하는 사후 세계.

허나 거기에는 존재하지 않는 천마의 혼백.

···대체 이 괴리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대체 독고 대협의 영혼은, 역대 천마의 영혼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요?”

“글쎄요···천마만이 갈 수 있는 또 다른 사후 세계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저도 그 답을 어떻게든 찾아보려 했지만, 여기선 정보가 너무 부족하더군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서란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지금까지 역대 천마 모두가 사후 세계로 넘어갈 수 없었다면, 이유는 딱 하나.

[천마의 권능에 사용자를 사후 세계로 넘어갈 수 없게 만드는 뭔가가 존재한다?]

아마 그런 이야기가 되겠지. 그리고 그런 짓을 벌였을 사람은 딱 한 사람.

[초대 천마.]

화순의 대답에 느릿하게 속으로 동의를 표했다.

물론 확신할 순 없는 이야기지만, 만약 가능성이 있다면 그것 뿐이다.

최소한 천마의 권능과 관련된 이들 중, 사후 세계에 관해 자세히 아는 사람은 그 혼자뿐이었으니까.

그렇게 모녀 두 사람이 오랜만에 만난 회포를 한창 풀고 있을 때도, 나는 조용히 그 의문을 풀 방법을 고민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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