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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능으로 무림최강-153화 (153/185)

바람의 왕(2)

“도, 도망쳐라! 도망쳐!”

누군가가 외치는 소리에 독고화와 명도는 기세를 끌어 올리고 있는 두 사람의 반대편으로 뛰어갔다.

갑작스러운 사태에 모두가 혼란에 빠진 채 우왕좌왕 도망치는 것과 달리, 이런 사태를 예상했던 두 사람은 다른 이들보다 일찍 움직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표정이 밝다는 건 아니었다.

“유 대인은 괜찮으시겠죠?”

유현이 강하다는 건 알고 있지만, 명도는 걱정을 지울 수 없었다.

사후 세계에서 제일 약하다던 그 이야기도 이제는 옛말. 서란의 힘을 흡수하면서 이미 예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다는 이야기를 들은 직후였으니 더더욱 그러했다.

아니, 설사 그 이야기를 듣지 않았더라도 상관없다.

계속해서 멀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느껴지는 압도적인 기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엄청난 힘이 바람의 왕에게서 흘러나오고 있었으니 말이다.

저런 괴물을 대체 누가 쓰러뜨릴 수 있다는 말인가.

명도는 도저히 그런 광경을 상상할 수 없었다.

설사 이미 그 강함을 알고 있는 유현이라도 마찬가지.

아무리 생각해도 유현이 저 괴물에게서 승리할 방법은 도저히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근심 가득한 명도와 달리, 독고화는 달려가는 와중에도 미소를 짓고 있었다.

“유 소협은···유 소협이라면 반드시 승리할 테니까요.”

그것은 예상이 아니었다. 확신이었다.

절대로 유현이 패배할 리 없다는 그런 굳건한 믿음.

그 모습을 놀란 듯 잠깐 멍한 표정으로 독고화를 바라보던 명도는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그런 독고화의 믿음에 감화된 것일까.

“유 대인이라면···어쩌면···가능할지도 모르겠네요.”

절망이 어려있던 명도의 눈빛에도 조금은 희망의 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바람의 왕 앞에서 있는 유현은.

‘진짜 괴물이구만.’

자신의 앞에 선 바람의 왕의 강함에 감탄하고 있었다.

아까 기감으로 살폈을 때부터 이미 강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직접 눈앞에 마주하고 나니 정말 차원이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순수한 힘으로 따지자면, 독정에게 잠식된 전대 남만 황제와 비슷할 것 같은데?]

오랜 세월, 역대 천마들과 유현의 옆에서 수많은 강자를 봐왔던 화순조차 감탄할만한 강함.

[아니, 그게 독정 그 자체의 의지였던 걸 생각하면, 사실상 살아있는 자연의 정수와 다를 바 없겠는데?]

‘···사후 세계의 왕에게 ‘살아있는’ 이라는 말은 좀 이상하지 않냐?’

[응? 그런가?]

어차피 의미는 알아듣잖아?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하는 화순의 모습에 유현은 입가에 웃음을 그렸다.

독정.

지금까지 온갖 죽을 위기를 넘어왔던 유현이 딱 한 번, 진짜로 삶을 포기했던 최초이자, 최후의 위기.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몸서리칠 정도로 정말 무시무시한 경험이었다.

하지만 유현은 그것과 비등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바람의 왕 앞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승리를 확신한다···고는 말할 수 없다.

지지 않을 거라곤 생각하지만, 무조건 이긴다! 정도로 확신이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현은 입가에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드디어.’

아니, 오히려 기뻐하고 있었다.

‘드디어 자연의 정수와 한 번 제대로 붙어볼 수 있겠네.’

최초로 조우했던 자연의 정수, 빙정.

그것과는 애초부터 싸운다는 생각조차 떠올리지 못했다.

달래기.

조련사가 갑자기 날뛰기 시작한 맹수를 진정시키는 것과 다를 바 없이, 그저 날뛰려는 빙정을 어떻게든 원래대로 되돌린 것 말곤 없다.

두 번째로 마주했던 독정은 조금 이야기가 다르다.

전대 남만 황제의 육신을 장악하고, 겨우 그를 제압했더니 이번에는 폭주한 본체가 나타나 유현을 죽이려 들었다.

기적과도 같은 극의의 획득으로 어떻게든 승리를 쟁취하긴 했지만, 유현의 마음 한켠엔 언제나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만약 그때, 독정이 폭주하지 않았더라면 과연 내가 승리할 수 있었을까.’

폭주한 독정은 정말로 강했다.

수천, 수만개의 손을 다루는 괴물처럼 마구 뿜어져 나오는 무시무시한 공격.

만약 폭우가 아니었다면,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었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숫자의 공격이었다.

···하지만 그 공격이 체계적이었다면 어땠을까.

앞뒤 가리지 않고 그저 유현을 노리고 날아왔던 공격이 아니라, 그 공격을 피하며, 폭우로 도저히 막을 수 없는 사각을 노려왔다면 어땠을까?

유현은 그 부분이 언제나 마음에 걸렸다.

심상 수련을 통해 비슷한 싸움을 여러 번 시도해보긴 했지만, 화순의 도움을 더해도 겨우 수십 개가 한계.

그때처럼 수천 개의 공격을 자유자재로 부리는 건 불가능했다.

마지막으로 만난 선정도···이것저것 도움 되는 이야기를 잔뜩 듣긴 했지만, 싸움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기는 도저히 무리였다.

그리고 그걸로 자연의 정수 간의 만남은 이제 끝. 다시는 그들과 싸울 기회 따윈 없으리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눈앞의 이 괴물은.

강함에 대해선 누구보다도 까다로운 화순조차 정수에 맞먹을만한 강함이라 인정하고 있었다.

물론 이것과 싸워 이긴다고 해도 정수와 맞상대하는 것에 비하면 한참 부족하다는 건 당연히 알고 있다.

자연의 정수가 강한 이유는 그 힘의 크기뿐만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만들어진 초월적인 인지력도 있었으니 말이다.

아무리 바람의 왕도 사후 세계에서 오랜 세월을 살아왔다지만, 그들과 비교하기엔 한참 부족함이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힘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본신 내력과 서란에게서 갈취한 기운.

두 왕의 기운을 합치자, 사후 세계 최강의 왕이라던 번개의 왕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강함을 손에 넣었으니 말이다.

꾹.

유현은 창을 쥐고 있던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바람의 왕이라는 이명 그대로 그녀의 주위엔 계속해서 바람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으아악!”

“도, 도와줘! 살려줘!”

“날 버리지 마!”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그 기세를 더하고 있던 바람은 도망치는 게 늦었던 바람의 왕의 부하들까지 함께 휩쓸어버리고 있었지만, 분노가 머리끝까지 차오른 바람의 왕은 그것조차 무시한 채 유현을 노려보고 있었다.

“네놈이, 네놈이 감히···!”

“축제를 망친 건 미안하지만, 뭐, 어차피 좋아하던 사람도 얼마 없었으니 오히려 잘된 거 아니야?”

“축제? 이게 겨우 축제로 보이더냐? 이것은 내가 사후 세계의 진정한 왕이 되었음을 모두에게 선포하기 위한 첫 발걸음이었거늘, 벌레 같은 놈이···!”

“벌레는 너지.”

분노에 찬 채 유현을 향해 고함을 내지르던 바람의 왕의 말을 중간에 끊은 그는 조금 전 미소가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정색하며 그녀를 노려보았다.

“남의 기운이나 빨아먹는 기생충. 남들 다 떠난 사후 세계에 혼자 남아 왕 노릇이나 하려는 바퀴벌레 같은 인간. 그게 너 아닌가? 아니.”

씨익.

“넌 이제 인간도 아니지?”

“네, 이놈!”

콰과과과과!!!

분노에 가득 찬 고함과 함께 그 기세를 더욱 높이는 바람.

지금 당장이라도 유현의 전신을 찢어버릴 듯 거세게 휘몰아치는 바람의 중심에서 유현은.

스윽.

자신의 오른손에 있는 창을 들어 가볍게 사선으로 그었다.

너무나 가벼운 손짓.

하지만 그 결과물은 전혀 가볍지 않았으니.

쿠오오오오오!

창 끝에 서린 와류는 바람의 왕이 전개한 바람의 벽을 갈기갈기 찢어나갔다.

“허억!”

“저게 무슨 일이야!”

바람과 바람이 만나 갈라지는 그 광경에 바람의 왕의 분노에서 도망치고 있던 사람들도 시선을 빼앗길 수밖에 없었다.

마치 구름을 뚫고 지나가는 용처럼, 거대한 바람의 벽을 가르는 한 줄기의 폭풍.

현세에선 불가능한 일이 일상처럼 벌어지는 사후 세계라 하더라도, 이런 광경을 봤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리라.

하지만.

쿠과과과과!

자신에게 구멍이 뚫렸다는 걸 용납할 수 없다는 듯, 기세를 높인 바람은 곧 폭풍조차 삼켜버렸고, 다시 한번 두 사람을 감싼 바람의 벽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침묵을 되찾았다.

하지만 그건 외부에서 다른 사람들이 볼 때의 이야기일뿐.

내부에선 완전히 상반된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쾅!

바람만으로는 유현을 상대할 수 없다는 걸 안 것일까.

바람의 왕은 벽 내부에서 유현과 육탄전을 벌이고 있었다.

쾅!

바람이 감싼 주먹은 이미 그 자체만으로도 웬만한 병기와는 비교할 수 없는 강력한 무기.

마치 날이 선 칼처럼 자신의 허리를 노리던 발을 피한 유현은 곧 다리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입술을 꽉 깨물었다.

“젠장!”

욕설을 내뱉으며 다리를 감싸고 있는 기다란 검은색 실, 바람의 왕의 머리를 신경질적으로 떼어내는 유현.

바람의 기운이 깃든 머리카락은 이미 그 자체만으로도 매서운 채찍과 다를 게 없었다.

사실상 다섯 개의 손발. 아니, 수십 개의 손발과 싸워야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하지만 유현은 그런 상황에서도 웃었다.

끊임없이 휘몰아치는 공격.

하나의 공격을 피하면 세 개가 날아오고, 세 개를 막아서면 다섯 개가 더해진다.

아무리 막아도 몸의 상처는 늘어나고, 회복할 틈도 없이 계속해서 상처가 늘어난다.

딱 그때와 다를 바 없는 싸움.

마치 그때, 그 당시로 돌아온 것처럼.

후웅!

유현은 다시 한번 창을 휘둘렀다.

‘또 그 공격이냐!’

유현이 창을 휘두르는 걸 보며, 바람의 왕은 바로 자신의 앞에 커다란 바람의 벽을 세웠다.

조금 전 그의 창끝에서 발해진 회오리바람. 와류는 바람의 왕이 지금껏 단 한 번도 본 적 없던 공격이었다.

온갖 기상천외한 힘을 다 사용하는 사자들 틈에서, 유일하게 바람을 다룰 수 있다는 그녀의 자부심에 금이 가긴 했지만, 그래도 그와 동시에 안도했다.

만약 그녀가 바람이 아니라 다른 기운을 다루었다면, 방금 그 유현의 공격을 막을 수 없었을 테니 말이다.

그 때문에 유현이 다시 창을 휘둘렀을 때도, 그녀는 두려움 없이 바람의 벽을 세웠다.

하지만 딱 하나, 그녀가 예상하지 못한 것이 있었으니.

푸슉.

“···아?”

조금 전 유현의 일격이,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천마창법 오의.

진(眞) 와류(渦流).

그저 와류를 뿜어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와류가 깃든 창을 그대로 투척한다.

한 번 휘몰아치고 끝났던 전의 와류와 달리, 그것은 유현이 멈추기 전에는 절대 멈추지 않는 무한한 폭풍우였으니.

그것은 그녀가 두껍게 세워 놓은 바람의 벽은 물론, 그녀의 허리도 반 이상 뜯어갔다.

“아아아아!!!”

고통은 없었다.

애초에 이미 혼만 남은 사자에게 고통을 느낄 통각은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육체적인 고통이 아닌 정신적인 고통은 얘기가 다르다.

사후 세계의 유일한, 그리고 진정한 왕인 자신이 왜 이런 덜떨어진 놈에게 목숨을 잃어야 하는가!

마치 개미 새끼에게 목이 물어뜯겨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의 기분이 이러할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부의 감정을 다 합치더라도 표현할 수 없는 그런 감정에 바람의 왕은 진심으로 분노했다.

콰앙!

콰앙!

콰과과광!!!

하지만 그런 주인의 분노와는 반대로, 되살아난 그녀의 공격은 놀라우리만치 체계적으로 변했다.

매섭긴 하지만 사실상 마구잡이와 다를 바 없던 전의 공격과는 달리, 이제는 연계하고, 사각을 노리며 날아왔다.

보통 사람이라면 괜히 화를 돋웠다고 생각할 만큼 무시무시한 공격이었지만, 유현은 달랐다.

이제야 그가 그토록 원하던 싸움이, 지금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정면에서 주먹을 뻗는 동시에 사방에서 급소를 노려오는 머리카락.

기문(氣門).

제문(臍門).

백회(百匯).

하음(下陰).

어디라고 할 것 없이 집히기만 하면 목숨을 잃는 사혈을 노려오는 머리카락과 머리를 깨부술 기세로 뻗어오는 주먹.

마치 다섯 명의 절대 고수의 협공과 다를 바 없는 무시무시한 공격.

아니, 차라리 협공이 더 나았으리라.

다섯 명의 협공은 그 빈틈이라도 노릴 수 있지, 지금 공격은 단 한 사람이 날려 보낸 공격이었다.

피할 틈 따윈 없다. 파훼할 방법은 딱 두 가지.

그 모든 공격을 받고 목숨을 잃던가, 아니면.

흡!

그 모든 공격을 막아내거나.

다섯 개의 공격이 지척에 다다른 순간, 유현은 숨을 들이켜는 동시에 크게 발을 굴렀다.

천마보법 오의.

군림(君臨)

군림의 강대한 위력은 그것이 땅이건, 하늘이건 아무런 상관 없이 뿜어져 나왔다.

쩌적!

마치 하늘이 갈라진 게 아닌가, 하는 착각까지 일게 만드는 진동.

그리고 그것은 바람을 감싸고 있는 바람의 왕의 주먹과 머리카락에도 똑같이 적용되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한순간의 틈.

그 틈을, 유현은 정확하게 노렸다.

푸왁!

마치 번개처럼 유현의 손에서 뻗어지는 두 자루의 창.

그것은 정확히 유현의 사혈을 노려오던 두 줄의 머리카락을 그대로 관통했다.

와류까지 깃든 창을 한낱 머리카락이 어찌 막을까.

그 매서운 공격과는 반대로 제대로 방어조차 하지 못한 머리카락.

하지만 여전히 남은 두 개의 머리카락과 주먹.

그거면 충분하다-라는 생각이 바람의 왕의 머릿속을 스치던 그때.

파앙!

바람조차 빨리 그것은 찾아왔다.

천마금나수 오의.

불파(不破)

가장 완벽한 방패 앞에선 아무리 강대한 공격이라도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머리카락으로 만들어진 창은 그렇게 손으로 만든 방패를 뚫지 못하고 사라졌다.

이제 남은 건 주먹 하나.

유현의 지척에 이른 주먹은 이제 피할 방법도, 막을 방법도 없어 보였다.

하지만 유현의 힘은, 능력은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쩡!

“?!”

유현의 이마와 맞닿은 무언가.

하지만 그것은 바람의 왕의 주먹이 아니었다.

얇게, 아주 얇게 깔린 얼음 파편.

그리고 그것이 감싸고 있는 바람의 왕의 주먹은 본래의 색을 잃고 보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빙정과 독정.

유현의 단전에 자리한 두 개의 기운이 그녀의 주먹을 완벽하게 막아낸 것이다.

하지만 바람의 왕은 자신의 공격이 막혔다는 사실 때문에는 놀라지 않았다.

지금 그런 것에 놀랄 겨를이 없었다, 라는 게 좀 더 옳은 말이리라.

“꺄아아아악!!!”

유현의 머리를 향해 뻗었던 주먹.

그 겉에서 느껴지는 싸늘한 통증과, 내부에서 느껴지는 찌릿한 통증.

이미 수만 년 전 잊고 있었던 그 두 가지 감각에 바람의 왕은 체면도, 자존심도 잊고 비명을 내질렀다.

“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

본디 고통 따윈 느낄 수 없어야 할 사자지만, 지금 유현이 그녀의 주먹을 막아낸 데 사용한 건 자연의 정수.

혼과 백에도 고통을 줄 수 있는 유일한 공격 수단이었다.

파앗!

그녀가 비명을 내지르는 그 순간, 두 사람을 감싸고 있던 바람의 벽이 자취를 감추었다.

지금 그녀의 정신 상태로 그것을 유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어찌할 거냐?”

그녀가 자랑하던 공격 수단도, 방어 수단도 이젠 모조리 막혔다.

더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녀를 향해 유현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다가갔다.

“아, 안돼, 안돼, 안돼!”

고통으로 벌벌 떨리는 몸을 감싼 채, 유현에게서 어떻게든 멀어지려고 발버둥 치는 그녀.

어떻게, 어떻게 해야 하지?!

두려움에 빠진 채 사방을 둘러보던 그녀의 눈에 들어온 건.

“아아아아!”

두 사람의 싸움에서 도망치지도 못한 채, 그저 가만히 숨어만 있던 한 사람.

“다가오지마!”

우뚝.

그 한 사람. 서란의 목을 낚아챈 바람의 왕이 유현을 향해 소리쳤다.

“더, 더 다가왔다간 이 여자의 목숨은 이제 없어. 너, 너, 이 여자를 알고 있지? 응? 그렇지?”

확신은 없었다.

그저 아까 벌레 이야기에서 서란을 언급한 것 때문에 그리 말했을 뿐.

어차피 이것이 실패하면 이젠 그녀가 살 방법도 없다.

그리고 그런 최후의 도박은.

“·········.”

“그, 그래, 그대로 가만히, 가만히 있어.”

의외로 먹혀들었다.

인상을 쓰고 있긴 하지만, 거기서 더 움직이지 않는 유현.

그런 유현의 모습에 바람의 왕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 여자의 목숨, 너한테 줄게. 그러니까, 나를 그냥, 그냥 가만히 보내줘. 어때? 응? 네가 원하던 건 그걸로 끝이잖아? 이제 그냥···.”

“실망이다.”

“···뭐?”

푸욱.

“아?”

“차라리 끝까지 당당했더라면, 최후까지 왕의 품격을 잃지 않았더라면.”

푹푹푹.

“아아아아!”

“목숨 하나 정도는 남겨줬을 텐데.”

바람의 왕의 비명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유현이 날리는 창의 개수도 많아졌다.

천마창법 극의.

폭우(暴雨).

서란을 잡고 있던 손은 이미 잘려나간 지 오래. 끝없이 생성되는 창은 바람의 왕의 전신을 마구 관통하고 있었다.

자신을 유일한 사후 세계의 왕이라 칭하던 그 당당한 모습은 이제 거기에 없었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남을 해하며 쌓은 목숨을 사그라뜨리다가.

“·········.”

단말마도 남기지 못한 채, 그렇게 사라질 뿐.

그렇게 사후 세계 최후의 왕이자, 유일하게 사후 세계에 남아 있던 마지막 왕은 그렇게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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