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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능으로 무림최강-152화 (152/185)

바람의 왕(1)

마치 지금 우리가 있는 궁전을 반으로 가른 듯, 내 머릿속에는 그것의 단면도가 선명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정삼각형의 모양의 궁전과, 그것을 그대로 위라래만 뒤집은 듯한 지하실의 풍경까지.

그리고 그 지하실의 맨 아래에 그녀가 있었다.

내가 숨기기 전, 독고화와 똑같은 기운을 몸에 두른 채 서 있는 그녀가.

‘···음?’

잠깐만. 몸에 두른 채, 서 있다고?

우웅!

“유···소협?”

내 찾았다는 말에 기뻐하던 독고화가 나를 향해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갑작스레 요동치기 시작한 기를 그녀 또한 느낀 것일까.

그에 대한 대답을 들을 새는 없었다.

한시라도 빨리 내 머릿속을 스친 불길한 예감이 현실인지 직접 확인해야만 했으니까.

궁전 지하 곳곳에 퍼져있던 기운이 가장 아래쪽으로 물처럼 흘러내려 간다.

그만큼 내 머릿속에 떠올라있던 궁전의 단면도는 점점 그 빛이 바래가지만, 그와 반비례하여 그녀가 있는 심층의 광경은 선명해졌다.

그리고 그제야 알아차렸다.

지금 서 있는 인간은 절대로 독고화가 그토록 바라던 서란이 아니라는 사실을.

마치 태양 빛이 뿜어져 내리는 낮에는 반딧불의 미약한 빛을 느끼지 못하듯, 어마어마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는 ‘무언가’ 때문에 일찍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것의 옆에 주저앉은 채 미약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는 또 다른 사람.

그 사람의 ‘내부’에는 독고화가 가지고 있던 그것과 똑같은 기운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녀가 바로 우리가 찾는 서란이라면, 그 기운을 옆에 두르고 있는 또 다른 누군가는 정체는 무엇인가?

심층에 모이는 기운이 점점 늘어남에 따라 그것의 윤곽이 점점 드러난다.

허리까지 닿을 정도로 길게 기른 머리와 옆에 주저앉은 서란과 비슷할 정도의 키. 그리고 숨길 생각조차 없이 전신에서 넘실거리는 기운까지.

···이건 두 번 고민할 필요도 없겠네.

사후 세계에 최후까지 남은 왕이자, 이 사후 세계를 정복하겠다는 야욕을 전혀 숨기지 않는 그녀.

그리고 서란을 납치한 장본인.

바람의 왕.

그녀가 서란의 바로 옆에서 선 채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거 위험한데···.

[뭐야, 뭔데?]

바람의 왕 이 여자, 생각보다 강해.

[그야 강하긴 하겠지, 아무리 그래도 자칭, 타칭 사후 세계의 왕이잖아···잠깐. 너, 그런 의미로 말한 거 아니지?]

뭘 당연한 걸 말하냐는 듯 입꼬리를 삐죽 내밀던 화순은 심각해진 내 표정을 보고 인상을 쓰며 되물었다.

내부에 자리하고 있는 강대한 기운과 주변에 두르고 있는 엄청난 기운까지 합치면, 내 착각이 아니라면, 그녀는 분명 사후 세계 최강의 왕이라는 번개의 왕보다 훨씬 강했다.

물론 내공만 강하다고 무조건 이긴다고 말하긴 힘들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그녀의 기운은 어마어마했다.

독고화의, 그리고 서란의 기운을 몸에 감싸고 있는 걸 봐선···그녀의 기운을 흡수한 것일까?

그렇다면 왜 서란 같은 위험한 적을 지금껏 살려뒀는지도 이해가 되었다.

지하에 퍼뜨린 기운을 모두 회수한 뒤, 짧은 한숨을 내쉬며 긴장한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던 두 사람에게 입을 열었다.

“사태가 생각보다 심각하군요.”

“무슨 문제 있습니까?”

“그게···.”

지금껏 모아놨던 정보들을 토대로 나온 결론을 두 사람에게 얘기했다.

“설마 바람의 왕이 그런 속셈을···! 그렇게 되면 사후 세계는 정말로 그 여자의 손에 들어가게 됩니다!”

내 이야기에 경악하며 두려움에 떠는 명도와.

“그 여자가 제 어머니를!”

서란의 참상에 분노로 몸을 떠는 독고화.

두 사람 다 전혀 다른 반응이었지만, 결국 품고 있는 생각은 다를 게 없었다.

“그녀를 막아야 합니다!”

“어머니를 도와야 해요!”

“두 사람의 생각에는 동감이지만···문제는 그러기가 쉽지 않아.”

설사 바람의 왕이 번개의 왕보다 강하다 하더라도 내가 패할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물론 그녀가 번개의 왕보다 강하다는 건 알고 있지만, 나도 그때보다 훨씬 강해졌다.

자연의 정수를 모두 모음으로써 내공도 강해진 건 물론, 사후 세계의 기운과는 상극이라는 선정의 기운 역시 몸 한쪽에 고이 자리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싸우는 장소.

번개의 왕과 싸울 적에도 그 넓은 영산의 정상이 완전 폐허가 될 정도로 싸움의 여파는 엄청났다.

그런데 저 깊은 지하에서 그런 싸움을 벌였다간 어떻게 될까.

거기 있는 서란은 물론, 지금 지하에 있는 다른 사자들이나 명도와 독고화까지 모두 휘말리게 될지도 모른다.

최소한 바람의 왕이 지상으로 빠져나온 뒤에 싸움을 벌여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 텐데, 지금 같은 상황에선···.

“응?”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바로 그때, 기감에 잡히는 수상한 움직임.

“무, 무슨 문제라도 생겼습니까?”

“아니···.”

이미 기를 모두 회수하긴 했지만, 이미 한번 파악한 기운이 어디로 움직이는지는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방금, 내 기감에 잡힌 그 움직임대로라면···.

“바람의 왕과 서란님이 움직인다.”

“네?”

“그게 사실입니까?”

스윽.

두 사람의 경악 어린 목소리를 잠깐 미뤄두고 천장을. 정확히 말하자면 지상을 살폈다.

기감을 늘릴 필요도 없이 확연히 느껴지는 사람들의 움직임.

신병이고, 지휘관이고 가릴 것 없이 사람들을 모두 모으는 동시에, 자신은 지금껏 숨기고 있던 서란을 데리고 나가고 있다?

이 여자, 설마.

“명도야.”

“네, 부르셨습니까.”

내가 심각한 표정으로 뭔가를 파악하고 있자, 더 말도 꺼내지 못하고 가만히 침묵하고 있던 명도가 내 부름에 바로 대답했다.

“저 여자. 과시욕이 어마어마하다고 했지?”

“네? 아, 네, 뭐···사후 세계 모두가 알 정도로 유명하긴 하죠.”

“그렇다면 자기가 사후 세계의 진정한 왕이 될 수 있는 순간을 남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을까?”

“그럴···가능성이···아예 없는 건···아니지만···. 아니, 아무리 그래도···.”

설마 정말로 그렇게까지 할까? 긴가민가한 표정의 명도를 바라보며,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그 여자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과시욕을 가지고 있다면···.”

씩.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르겠어.”

*****

다시 땅을 거슬러 올라가 지하 일 층의 숙소로 올라오자, 잠시 뒤 우리를 이곳까지 이끌어왔던 지휘관이 문을 열고 소리쳤다.

“모두 모여라! 집합 명령이다!”

“무슨 일입니까?”

내 질문에 그는 잠깐 인상을 썼지만, 아까의 대화에 호감을 좀 얻었던 덕분일까. 다른 말 없이 내 질문에 순순히 대답해주었다.

“우리의 주인의 명령이다. 이번에 우리 모두에게 알려줄 것이 있다며 모이라 하셨다.”

“아, 알겠습니다. 바로 가도록 하겠습니다.”

아직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진 않았지만, 그 균형추가 살짝 기운 건 사실이다.

그와 대화하면서도 바람의 왕과 서란의 움직임은 절대 놓치지 않는다. 한 층씩, 한 층씩 빠르게 위로 올라가는 두 사람.

그녀의 성격상 부하들과 같은 위치에서 뭔가를 얘기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렇다면 최소한 지휘관의 숙소가 있는 오 층 이상. 어쩌면 그보다 더 높은 위치에서 뭔가를 알릴 터.

실제로 우리가 밖으로 나가는 그 순간까지도, 그녀는 궁전 밖을 나오지 않고 끊임없이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만약 내 생각만치 충분히 위로 올라가기만 한다면, 서란을 탈출시킬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궁전 밖에는 이미 수많은 사자가 모여 있었다.

어째서, 왜 모였는지 전혀 모르는 이들은 지금은 보이지 않는 바람의 왕에 대해 분노 섞인 욕설을 내뱉고 있었다.

“그년은 왜 우리를 이렇게 모아놓은 거야?”

“그 여자가 그랬던 게 어디 하루 이틀 일이야? 젠장, 차라리 빨리나 끝내줬으면 좋겠네.”

“여기까지 부하들을 데려온다고 며칠을 고생했는데, 쉬기는커녕 바로 모이게 하다니···젠장. 나도 차라리 왕이나 될 걸 그랬어.”

우리야 최대한 일찍 와서 그나마 휴식을 취할 수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아니었다.

갑자기 침략을 멈추고 궁전으로 오라는 것도 모자라, 휴식도 없이 바로 모이라고 하는 바람의 왕을 좋게 평가할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하지만 그나마 남은 부하들에게도 이렇게 충성심이 떨어지다니.

만약 바람의 왕도 이 상황을 알고 있다면, 어떻게든 그들의 적개심을 반전시킬 상황을 원할 터.

···그리고 그걸 실행할 가능성이 제일 큰 날은 역시, 지금 이만한 사람이 모인 오늘뿐이리라.

“어머니는 괜찮으시겠죠?”

“서란 님이 힘을 많이 뺏기긴 하셨지만, 아직 그 근원이라 할 수 있는 기운은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만약 바람의 왕이 서란 님의 모든 것을 갈취할 생각이라면 끝까지 살려두겠죠.”

그나마 내가 서란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그 덕분이었다.

만약 그것까지 빼앗겼다면 내가 찾지도 못했을 것이고, 바람의 왕도 그녀를 살려둘 필요가 없었을 테니까.

아마 서란도 누군가 자신을 구하러 올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그것만큼은 어떻게든 뺏기지 않고 모아둔 거겠지.

그리고 그 덕분에 이제는 기회가 생겼다.

“나의 아이들이여!”

한창 뭔가를 숙덕이고 있던 사자들이 위에서 들려오는 호령에 모두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최소 십층 이상의 높은 곳에서 사자들을 내려보고 있는 여인과 그 옆에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누군가.

“어머니···!”

내 이야기를 들어서일까, 아니면 본능적으로 알아차린 걸까.

그 옆에 주저앉은 누군가가 자신의 어머니임을 알아챈 독고화가 아랫입술을 꽉 깨물며 서란의 옆에 선 그녀. 바람의 왕을 노려보았다.

혹시나 들킬 가능성을 생각하면 좋은 행동이라 할 수 없지만, 그래도 그녀의 성격상 당장 몸을 날리지 않는 것도 다행이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꾹.

그녀의 어깨를 잡고, 남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히 속삭인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서란 님을 구해드릴 테니까요.”

“유 소협···.”

꾹.

내 손을 감싸며 조용히 내 이름을 중얼거리는 독고화.

“부탁드릴게요.”

“너희 모두가 아주 오랫동안 꿈꿔왔던 그 일이 바로 목전까지 다가왔다!”

가녀린 독고화의 목소리와는 대조적으로 힘차고 거센 바람의 왕의 목소리가 주변을 가득 메워나갔다.

이번에 새로 그녀를 보는 신병들은 물론, 지금껏 그녀를 오랜 시간 모셔왔던 다른 부하들까지 놀란 표정을 숨기지 않는다.

“저분이 어느새 이런 힘을···?”

“설마 소문이 사실이었나?!”

경악에 빠진 부하들의 웅성거림을 마치 음악소리마냥 즐기던 그녀는 다시 입을 열어 소리쳤다.

“지금까지 가장 약한 왕이라고, 그리고 그녀의 부하라고 괄시받던 시간은 이제 끝이다! 사후 세계의 유일한 왕으로서, 그리고 진정한 주인으로서 영원토록 군림하게 될 터이니! 그 모든 것은···!”

잠시 연설을 멈춘 바람의 왕은 자신의 옆에 있던 서란의 머리를 잡아 들어 올린다.

힘없이 몸이 들어 올려지는 서란.

“서란?”

“왕의 유일한 대적자를 바람의 왕이 잡았다고?”

이미 그녀의 얼굴을 알고 있던 몇몇이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경악의 목소리를 내질렀다.

“이 여자의 죽음으로서 시작하게 될 터이니!”

스윽.

그녀의 목에 자신의 손을 가져다 댄 자람의 왕이 큰소리로 외쳤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유일무이한 사후 세계의 주인이 될 것이다!”

“개소리 집어치워!”

연설이 끝나는 그 순간.

주변의 다른 사자들이 억지로나마 함성을 내뱉으려 하던 그때 하늘을 가로지르는 누군가의 목소리.

“너, 너 무슨···!”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하랴.

“이것저것 정보를 준 건 고맙지만, 지휘관 씨.”

경악한 표정으로 나를 손가락질하는 그에게 씩 웃으며, 하늘로 몸을 날렸다.

“이젠 내가 할 일을 해야 할 때라서 말이지.”

주변에서 뭐라뭐라 떠드는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그것 모두 무시한 채 공중에 떠올라, 바람의 왕과 정면으로 마주한다.

“네놈···네놈이 무슨 짓을 한 건지 아느냐···!”

“그러길래 헛소리를 좀 적당히 해야지. 나도 모르게 욕을 내뱉었잖아.”

“감히, 감히 사후 세계의 유일한 왕이자, 진정한 왕이 될 나에게!”

“아, 그 잘난 사후 세계의 왕인가 뭔가 있잖아? 그거 이미 한 번 죽여봤거든?”

“···뭐?”

챙!

“이미 한 번 죽인 거, 두 번 죽여도 딱히 문제 될 건 없겠지?”

“무슨 망발을···아니, 차라리 잘됐다.”

고오오오!

“감히 나를 욕보인 반란분자가 어떻게 될지, 부하들의 앞에서 똑똑히 보여주마.”

허리까지 기른 머리카락이 그녀의 분노에 호응하듯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사후 세계의 운명을 가르게 될 싸움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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