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란 구출 작전(2)
두 사람에게 의견을 제안한 다음 날, 나는 바로 어제 우리를 데려왔던 사내에게 찾아가 그 제안을 그대로 말했다.
“세 분이서 무얼 하시겠다고요?!”
우리의 계획을 들은 서란의 부하. 전석(轉石)의 태도를 요약하자면 대충 이런 느낌이었다.
물론 좀 더 길게 풀어쓰자면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 라거나 ‘그런 미친 짓은 대체 누가 구상한 거냐.’ 라는 식의 분노한 반응도 있었지만, 결국 대체로 결론은 이러했다.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래도 다른 방법이 있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어차피 가만히 있는다고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그냥 우리 쪽에서 먼저 나가는 것도···.”
“틀린 말씀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상황을 더 안 좋게 만들 순 없습니다.”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딱 잘라 거절하는 전석.
하긴, 그 심정을 전혀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여기서 아가씨까지 저들의 손아귀에 들어서게 되면 저희는 이제 회생조차 불가능합니다. 지금도 상황이 이러한데, 어찌 아가씨를 그렇게 막 보낼 수 있단 말입니까?”
이미 서란까지 저쪽에 잡혀있는 상황에서, 드디어 이들의 사기를 끌어 올릴 기회가 찾아왔는데, 거기서 어머니를 구하려다 또 잡혀들어간다고 생각하면···.
웬만하면 내 이야기는 다 들어주는 대장군도 결사반대하실만한 작전이긴 하지.
하지만 나도 할 말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서란 님을 구출할 제대로 된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건···아직 계획을 수립하는 단계에 있어서 그런 겁니다. 조금만 더 시간을 준다면···..”
“지금 저들의 계획도 모르는데 부질없이 시간만 보내는 게 과연 좋은 선택일까요? 최소한 바람의 왕이 서란 님을 죽인 게 아니라 납치한 이유라도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으음···.”
내 설득에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는 전석.
그의 생각만큼이나 내 제안도 일리가 있다는 걸 그 또한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오는 행동이었다.
“그녀가 예전부터 이미 서란 님을 눈독 들이고 있다는 사실은 사후 세계 전역에 퍼져 있을 정도로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그분의 탈출은 몰라도, 최소한 그들의 목적이나 위치 정도는 어떻게든 파악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건 맞는 말씀이지만···어째서 세 분입니까? 저희 측 사람에게도 세 분에게 견줄만한 고수는 있습니다. 차라리 그들을 보내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일단 나에 견줄 고수가 과연 있을지에 대한 의문은 들지만, 그래도 그걸 제외하더라도 독고화나 명도 수준의 고수는 있을 수 있을 가능성이 큰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 제안에도 문제는 있었다.
“물론 그만한 고수야 이곳에도 많겠지요. 하지만 그중에 저들이 파악하지 못한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만약 정체를 들킨다고 하더라도 도망칠만한 고수 중 저들이 정체를 파악하지 못한 사람이 몇이나 있습니까?”
“그건···.”
내 질문에 쉬이 대답을 꺼내지 못하는 그에게 대한 대답을 날렸다.
“아마 거의 없겠죠. 당연한 일입니다. 근 이십 년 넘게 이어진 싸움 속에서 서로가 보유한 고수의 숫자를 파악하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요.”
내가 국경 부대에서 전전하고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북해에서 규모가 큰 부족의 부족장이나, 빙궁에서 나온 고수들의 명단은 모두 파악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북해에서도 나를 포함한 단장급 지휘관을 모두 파악하고 있었고 말이다.
“그러므로 저희처럼 저들이 모르는 사람들이 들어가야 한다는 겁니다. 전에 있던 소동도 전석님 덕분에 저희의 얼굴이 알려지기 전에 벗어날 수 있었으니, 저들 중 저희를 아는 이들은 없지 않습니까?”
내 제안에 그의 이마에 주름의 숫자가 점점 늘어난다. 점점 내 제안에 대해 깊게 고민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 정도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진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전 여전히 그 제안에는 반대입니다. ···그 이유는 잘 아시겠죠?”
“독고 소저 때문이죠?”
사실상 내 제안에서 제일 큰 문제가 바로 그 부분이었다.
“···일선의 병사까지 잡아낼 수 있을 정도로 그분의 기운이 깊게 서려 있는 아가씨가 바람의 왕의 궁전에 감히 가까이 다가갈 수나 있겠습니까?”
“그 부분은 저도 고민하고 있던 부분입니다.”
그냥 고민한 수준이 아니다.
사실상 그것 때문에 내 제안을 처음부터 반대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 말이다.
“이번 제안은 물론, 그 부분을 해결하지 못하면 그저 밖을 돌아다니는 것도 위험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세 분을 이곳에 모신 겁니다. 이곳은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거점이라 그들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그 점에 대해선 감사드리지만···만약 제가 그에 대한 대책을 찾았다면 어떻습니까?”
“대책이요? 어떤 대책을 말입니까?”
“독고 소저의 기운을 숨길 방법을 찾았다는 말입니다.”
내 대답에 그는 반신반의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 기운을 숨길 방법을 찾으셨다고요? 그것도 단 하루 만에?”
“네, 그렇습니다.”
“자, 잠시, 잠시만요.”
내 대답을 되새기기라도 하듯, 몇 번이나 심호흡하며 마음을 가라앉힌 그는 다시 내게 입을 열었다.
“그 말씀을 못 믿는 건 아니지만···너무 갑작스러운 말이라 뭐라고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최소한 제 상식에는 확실히 반하는 이야기라···.”
“상식에 대해 따지려면 이 괴상한 사후 세계부터 먼저 이야기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것도 틀린 말씀은 아니군요.”
내 농담에 대해 조금은 마음이 풀렸는지 미소를 짓는 전석.
하지만 그 미소도 오래가진 못했다.
“그 방법이라는 게 대체 뭡니까? 저는 전혀 짐작도 가지 않는데 말입니다.”
다시 진지한 기색을 되찾은 그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말로 여러 번 하는 것보단, 직접 보여드리는 게 편하겠죠. 독고 소저. 이제 들어오셔도 됩니다.”
내가 밖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자, 문이 열리며 독고화와 명도가 함께 안으로 들어왔다.
“너는 왜 들어오냐?”
“어차피 저도 끌려가는데, 미리 이야기라도 들을까 해서요.”
내 질문에 명도는 오히려 능청맞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게 녀석의 본래 성격인진 몰라도, 최근 들어 이런 식의 대답이 많아졌다.
뭐···틀린 말은 아니니까 상관없나.
“일단 이 녀석은 무시하고···아까 말씀드렸던 부분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긴장한 기색으로 내 앞에 서 있는 독고화를 향해 다가가, 단전의 기운을 천천히 끌어모은다.
내가 본디 가지고 있던 기운과도 다르고, 북해에서 얻었던 빙정의 기운과도 다르며, 남만에서 얻었던 독정과도 다른, 네 번째 기운.
“흡!”
“이건···!”
내 전신에서 흘러넘치는 그 기운을 느꼈는지, 방 안에 있던 두 명의 사자, 명도와 전석의 입에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그럴 수밖에 없으리라.
지금 내가 끌어올린 기운은 사자들에게는 상극에 가까운 기운.
바로 내 단전에 새롭게 자리 잡은 선정의 파편이 뿜어내는 기운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사자에게는 상극인 기운도, 본대 살아있는 인간인 우리 두 사람에게는 오히려 활력을 더해주는 기운이었다.
인상을 쓰는 두 사람과는 대조적으로, 그 기운 끌어올린 나나 받아들이는 나의 안색은 점점 밝은 빛을 띠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정도에 끝날 거면 애초부터 보여주지도 않았지.
“헉!”
선정의 기운이 독고화의 전신을 완전히 감싸자, 전석이 경악에 가득 찬 단말마를 내뱉었다.
그녀의 전신에 어려있던 서란의 기운이 점점 옅어져가고 있는 걸 그도 느낀 것이다.
아까까지만 전혀 숨길 수 없던 서란의 기운은 그 자취를 잃어가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조금도 느낄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그 자리를 대신 한 건, 마치 살아있는 사람으로 착각할 만한(실제로 그렇긴 하지만) 선정의 기운이었다.
“후우···자, 이젠 어떻습니까? ···전석님?”
“·········아! 네, 그···.”
눈앞에서 벌어진 믿을 수 없는 일에 입을 쩍 벌린 채 경악하던 전석은 내가 그의 이름을 부르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고 입을 열었다.
“이···능력, 아니, 기운은 얼마나 지속하는 겁니까?”
“제가 근처에 있다면 영구적으로 지속할 수 있고, 그게 아니더라도 칠 주야는 지속할 겁니다.”
독고화가 원래의 무공을 버리고 새롭게 익힌 무공은 그 근본부터가 선정과 이어져 있었기에 한 번 기운을 덧씌워주기만 하면 그녀의 단전에 있는 내공과 공명하여 이토록 길게 지속할 수 있었다.
설사 그녀와 내가 들어가는 곳이 다르더라도 별로 문제 될 부분은 없다는 소리였다.
“어떻습니까?”
“허어···.”
눈앞에서 벌어진 일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계속해서 독고화의 주변을 맴돌며 그녀의 기운을 살피던 그는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까지 대책을 구상해 오셨다니···제가 더 반대할 부분은 없는 것 같군요.”
“그렇다면···.”
“···허나 서란 님이 계시지 않는 지금, 저 홀로 이만한 대업을 결정하기엔 문제가 있습니다.”
“하긴, 이해합니다. ···그럼 모두의 의견이 모일 때까지 얼마쯤 걸릴까요?”
“사흘···아니, 이틀만 기다려주십시오. 그때 바로 답을 드릴 테니까요.”
그 말을 끝으로, 전석은 바로 위원회를 소집했다.
그 자리에 남아 있어 봐야 별 도움은 안 될 것이라는 생각에 다시 숙소로 돌아가는 길.
“저희 제안···과연 받아들여질까요?”
“글쎄요. 아까 그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사실 확률은 반반일 겁니다.”
그들이 거절할만한 이유를 모두 반박하긴 했지만, 여전히 그들이 내 제안을 받아들일 확률은 그리 높지 않았다.
그들의 말마따나, 이미 서란까지 잃은 상황에 그들의 또 다른 희망이라 할 수 있는 독고화까지 잃게 되었다간 정말 서란의 세력은 회생조차 불가능하게 될지 몰랐으니 말이다.
그만큼 독고화의 존재는 소중했다.
그런데 그런 그녀를 적진의 중심으로 보내야 한다니.
그들에게 있어선 자신의 모자람 때문에 자신들의 새로운 희망을 적진으로 보내야 한다는 이야기나 다름 없었으리라.
그걸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을지 없을지에 따라, 이번 작전의 시행이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유 대인.”
“응?”
“만약 그들이 반대하신다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그들이 허락할지 말지 걱정하는 독고화와 달리, 명도는 한 걸음 앞서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뭐, 일단은 직접 만나서 설득해야겠지.”
“그래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요?”
“그땐 어쩔 수 없지.”
명도의 거듭된 질문에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답했다.
“우리의 본래 목적을 이뤄야지.”
우리가 여기 찾아온 이유는 이들에게 합류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서란을 만나, 독고화가 원하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지.
그때의 위험에 우리를 구해준 건 물론 고맙게 생각하고 있지만, 의견이 다르다면 계속 같이 있을 이유가 없었다.
물론 독고화가 그들에게 새로운 희망이니 뭐니 불리고 있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런 감정적인 호칭 때문에 가만히 그들의 이야기만 듣고 있을 순 없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무엇보다?”
“···아니, 아니다. 그냥 그렇게 생각만 하고 있어.”
순간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던 가장 큰 이유를 다시 삼킨다.
우리가 사후 세계의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구태여 명도에게 말해 줄 필요는 없었다.
그렇게 명도와의 이야기를 끝내고, 나는 다시 옆에서 걷고 있는 독고화를 바라보았다.
우리의 이야기에 별다른 말을 꺼내지 않던 그녀는 어두운 표정으로 바닥만 보고 걷고 있었다.
“독고 소저.”
“알고 있어요.”
그녀를 부르자마자 빠르게 입에서 나오는 대답.
“저도···그들이 어떤 심정으로 저를 대하고 있는진 알고 있지만, 만약의 사태에는 유 소협의 의견을 따를 거예요.”
“감사합니다.”
독고화의 진짜 심정이 어떤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렇게 대답이 나온 이상 그녀도 내 의견은 확실히 따를 것이다.
어머니와 함께했던 그들보단, 동행이라는 이유로 여기까지 함께 와준 나에 대한 고마움이 더 컸다는 얘기겠지.
이제 우리 일행과의 이야기는 모두 끝났다.
부디 그들이 우리가 원하는 대답을 꺼내길 빌어야겠지.
*****
똑똑똑.
“네.”
“된답니다.”
*****
그리고 다음 날.
우리는 바람의 왕의 궁전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