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 세계의 왕(2)
“바로 출발할 건가?”
“딱히 시간을 끌 이유는 없으니까.”
서란이 마지막으로 나타난 위치에 대한 정보를 들은 직후, 나와 독고화는 바로 뒷골목에서 벗어났다.
다른 괴짜들은 우리가 뒷골목을 벗어난다는 의사를 표명한 순간부터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순식간에 사라졌지만, 딱 한 사람. 성중만은 우리를 끝까지 배웅했다.
“식사라도 하고 가지 그래? 사자가 된 이후 처음으로 한 식사는 기억에 꽤 오래 남는다고?”
“그렇게 말하는 그쪽의 첫 식사는 뭐였는데?”
“말했잖아. 꽤, 라고. 내가 여기서 버틴 삶은 ‘꽤’라는 한 마디로 축약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 말이야.”
[이 꼬맹이는 대체 언제 죽은 거야?]
농담조로 튀어나온 화순의 말에 피식, 한 번 웃은 뒤 성중에게 대답했다.
“정말로 그렇다면 좀 더 좋은 곳에서 먹어야 할 것 같은데. 이런 뒷골목 말고.”
“야. 뒷골목 특제 고기 주먹밥이라면 한 번 먹어본 사람은 또 못 먹어서 안달인 음식이라고. 우습게 보지 마.”
그렇게 한참을 나와 독고화에게 번갈아 가며 말을 걸던 그녀는 뒷골목과 마을의 경계선에 다다랐을 때 발걸음을 멈췄다.
마치 뭔가를 대고 마을과 뒷골목의 영역을 갈라놓은 듯, 뒷골목과 마을의 경계는 명백했다.
성중은 그런 그림자의 가장 끝에 발끝을 맞춘 채 우리를 바라보았다.
“너희의 앞길에 부디 신의 축복이 있기를 빌지.”
“신···그러고 보니 여기엔 신도 있나?”
“글쎄다. 다른 놈들은 몰라도,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 없어.”
···그러면 없다는 뜻이네.
사후 세계에서 가장 오래, 가장 많이 떠돌아다녔을 그녀가 보지 못한 것이 남아있을리는 없으니 말이다.
[최소한 마교의 교리 중 하나는 틀렸다는 거네.]
뭐···그나마 다행이지.
강해지고, 강해지고, 또 강해지면 결국 신과도 같은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그 전설.
기본적으로 누군가를 죽여야만 강해지는 사후 세계에서 그 말이 사실이었다면, 사후 세계는 정말 끔찍한 곳이 되어 있었으리라.
“그리고.”
뒷골목에서 조금 더 멀어지려는 그 순간, 성중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 녀석. 잘 좀 대해줘라.”
“···누구?”
“명도 말이다, 명도.”
전혀 예상외의 인물이 튀어나와서 그럴까. 순간 누구를 묻는지 알아차리지 못했던 나는 곧 그녀가 누굴 말하는지 알고 입을 열었다.
“그놈 너희한테 배신자 아니었어? 왜 잘 대해주라는 거야?”
“···우리 단의 규칙은 곧 단의 근간. 어기는 자는 그 누가 되더라도 반드시 벌을 내려야 한다. 더군다나 놈의 죄는 그 어떤 죄와도 비교할 수 없는 배신의 죄. 사형시키는 건 당연한 일이지.”
“그럼···.”
“하지만 나 개인으로 봤을 땐, 그놈도 불쌍한 놈이긴 하니까. 현생에서도, 사후 세계에도 어디서도 자리를 못 잡던 놈이야.”
“···의외로 정이 많은 성격이었네. 전혀 몰랐어.”
“겨우 몇 시간 얘기해놓고 나에 대해 다 안 줄 알았냐? 이 정도 포용력도 없으면 단장 소리도 못 듣지.”
마치 호탕한 산적처럼 껄껄 웃던 성중은 곧 웃음을 멈추고 진지한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뭣보다 녀석에겐 빚이 있어.”
“그···신용장인가 뭔가 하던 그거 말하는 건가?”
“나도 설마 이 나이까지 돼서 다른 인간한테 구함을 받을 줄은 몰랐지만···.”
“네가 도움을 받았다고?”
사자의 기는 느낄 수 없었지만, 그래도 그녀가 방금까지 뒷골목에 있던 사자 중 가장 강하다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힘을 중시하는 사후 세계에서 이만한 사람을 이끄는 것도 그렇고, 말투나 행동에서 느껴지는 연배도 그렇고, 만약 만인록에 이름이 올려져 있었다면, 아마 첫 번째 권에 올려져 있지 않았을까.
그런 그녀를 도울 정도라니, 그 녀석이 그렇게 강했나?
“나도 적이 전혀 없는 건 아니고, 함정에 전혀 빠지지 않는 건 아니니까. ···그리고 녀석은 네 생각보다 강한 녀석이야. 그 힘을 제대로 쓸 줄 몰라서 문제지만.”
“그 정도인가?”
“최소한 사람 구실은 할 정도지.”
그 녀석이···?
처음 사후 세계로 넘어와 무법자 놈들에게 습격당했을 때도, 놈은 그냥 뒤에서 칼만 들고 벌벌 떨고 있었던지라 강한지 약한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 뒤에도 딱히 자신의 힘을 주장하는 모습은 보여준 적 없었기에, 딱히 강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는데···.
“뭐, 어디까지나 네 생각이니까. 그렇게 사람 구실 못하다가 누군가한테 잡혀서 벌레로 환생하면, 자기도 느끼는 게 있겠지.”
난 할 얘기 다 했다는 듯, 손을 휘적휘적 흔들고선 몸을 돌려 다시 뒷골목의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독고화가 고개를 숙이며 외쳤다.
“감사합니다!”
움찔. 그 말에 잠깐 발을 멈춰선 성중.
“성중님이 아니었다면, 어머니를 찾을 수 없었을지 몰라요. 정말로, 정말로···.”
“난 받은 만큼 일을 했을 뿐이야.”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대답을 날린 성중은 잠깐 말을 멈춘 후 다시 입을 열었다.
“네 어머니, 꼭 찾을 수 있길 바라마.”
“···네!”
그 말을 끝으로 성중은 어둠과 하나가 되었다.
아까 들어왔을 때처럼 다시끔 사람의 흔적이 남지 않은 뒷골목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던 우리 두 사람은 몸을 돌려 조용히 그곳에서 사라졌다.
뒷골목이 다시 그들만의 땅이 될 수 있도록.
*****
“아이고, 다녀오셨습니까!”
마을 바깥.
명도를 내버려 둔 그곳에 돌아오자, 저 멀리서부터 그가 달려와 우리를 웃으며 맞이했다.
“헤헤, 어떻게 일은 잘 끝내셨습니까?”
“그렇게 알랑방귀 하지 마라. 어차피 말 안 했으니까.”
“저, 정말입니까?”
말하자마자 숙였던 허리를 다시 원래대로 되돌리는 명도.
“···그리고 그런 태도 보고 마음이 변해서 널 살려줄 일도 없으니까, 그런 쓸데없는 짓도 하지 말고.”
“그래도 밑져봐야 본전 아니겠습니까. 헤헤헤.”
자신이 안전하다는 확신이 든 건지 바로 실없는 웃음을 날리는 녀석을 보며 짧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사실 내가 너 속이고 여기서 묶어둘 속셈이었다면 어떻게 하게?”
“네?! 저, 정말입니까?”
“아니, 그러니까 사람 말 막 믿지 말라는 거다, 이 자식아.”
···어떻게 이렇게 어수룩한 놈이 군인이 된 거지? 아니, 이렇게 어수룩하니까 밥이랑 돈 준다는 말에 속아 군인이 된 건가.
“아이, 절대 그러실 분이 아니라고 믿고 있었던 거죠. 헤헤헤.”
“최소한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부터 어떻게 하고 나서 말해라, 이 자식아.”
“아이고, 이게 왜 나왔지?! 죽고 난 이후부터 몸이 이상해졌는지, 이렇게 제 의사란 반하는 일이 종종 있어서 말입니다.”
바로 소매로 땀을 훔치는 녀석을 짜게 식은 눈으로 바라본다.
그건 그렇고 사자도 땀은 흘리는구나. 몸을 찔러도 피 같은 건 나오지 않길래 몸에 액체 따위가 전혀 없는 줄 알았는데···.
[땀이라기보단, 그냥 본인 심정이 이렇다, 이런 걸 보여주는 것 아냐?]
뭐, 그런 걸 수도 있겠네.
“그럼 저는 이제 안심해도 되는 겁니까?”
“어느 마을이건 뒷골목에 다시 찾아오지만 않으면 신경 안 쓴다고 하더라. 이제부턴 그런 데 관여하지 말고 조용히 살어.”
“아이고! 그런 거야 제 주특기죠! 이젠 그쪽으로는 오줌···은 이제 못 누고, 밥도 안 먹는다고 전해주십시오!”
“내가 왜 전해줘. 이젠 나도 거기랑 연관될 일 없는데.”
어차피 서란만 만나고 나면 이제 사후 세계에는 다시 올 일도 없다.
이놈과 그들이 다시 어떻게 엮이게 되건, 거기에 내 손이 더해질 이유 따윈 전혀 없었다는 소리였다.
“저···그럼 이제 다시 떠나시는 겁니까?”
“그렇지. 이제 우리가 가야 할 곳을 알았으니, 다시 움직여야지.”
“다 당신 도움이 있었던 덕분이에요.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텐데, 감사합니다.”
“아이고, 뭘요. 제가 두 분에게 저지를 뻔한 일이 있는 데요.”
독고화의 감사 인사에도 명도는 오히려 뒤통수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그런데 넌 이제 어떻게 할꺼냐?”
“네?”
“무법자 놈들도 내가 다 털어먹어서 이젠 없고, 그렇다고 다시 뒷골목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혹시 어디 마을 한곳에서 정착한 채 살 생각이냐?”
“아···음···글쎄요. 그건···.”
명도는 내 질문에 곧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말을 질질 끌었다.
사실 내가 질문을 던지긴 했지만, 녀석 성격상 그런 게 불가능하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만약 그랬다면 이미 뒷골목의 괴짜들에게 쫓겨났을 때부터 무법자가 될 생각 없이 바로 마을에 정착해서 살았겠지.
원래부터 떠돌이로 살던 놈이라 어느 마을이 살기 좋고, 또 편한지 잘 알고 있었을 테니까.
더군다나 지금 마을에서 살기 나쁜 상황도 아니다.
폭정을 일삼던 사후 세계의 왕이 모조리 현세로 넘어간 이 시기라면 어느 마을을 가던 예전보단 훨씬 편안한 삶을 살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녀석은 그러지 않았다.
본인도 아는 것이다.
그런 평범한 삶 따위, 자신은 살 수 없다는 것을.
“또 어디 다른 무법자들이랑 엮여 보기라도 할 셈이냐?”
“···아뇨, 그럴 생각은 없습니다.”
“하긴, 다시 사람 죽일 생각이 없다면 그런 짓은 못하겠지.”
병사 시절에는 어떻게 적을 죽여본 적 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의 이 녀석은 아니다.
처음 만났을 때도 그렇다.
만약 녀석이 나를 죽이는 걸 주저했을 뿐이었다면, 나도 놈을 죽이는 걸 망설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놈은 애초부터 나와 독고화를 해할 생각이 없었다.
그저 칼을 들고 있을 뿐인 망부석. 한낱 허수아비와 다를 게 전혀 없는 놈이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여러모로 불쌍한 놈이긴 하다.
몸은 평온한 삶을 갈구하지만, 정신은 그걸 받아들이지 못한다.
하지만 이미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알아버린 마음은 누군가를 죽이는 것도, 본인이 죽음을 맞이하는 것도 거부한다.
존재 자체가 이미 완전히 망가져 버린 것이다.
어차피 사후 세계의 존재. 성중의 말마따나 한 번 죽어 벌레로 환생하는 편이 지금 이 녀석에겐 더 나을지도 모르지만···.
“야.”
“네, 넵?”
“너 우리랑 여행 한 번 다녀볼래?”
“여행···무슨 여행 말씀입니까?”
“독고 소저의 어머니를 찾는 여행 말이야. 어차피 지금 당장 할 일도 없지?”
“그, 그건 그렇습니다만···.”
아직도 왜 자신이 이런 제안을 받았는지 모르겠다는 듯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는 놈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면 그냥 우리랑 다니기나 하자고. 우리랑 다니면 최소한 뒷골목의 괴짜들이랑 싸워도 죽을 일은 없고, 거기에 떠돌아다니다 보면 뭔가 하고 싶은 일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어, 음···틀린 말씀은···아닙니다만···.”
아직도 내 제안의 진짜 목적이 뭔지 모르겠다는 듯, 말을 길게 늘이는 녀석의 어깨에 툭, 손을 올리고 정면으로 응시한다.
긴장과 우려로 크게 흔들리는 녀석의 눈. 처음 전장에 들어가는 신병같이 바짝 긴장한 놈에게 한 마디 날렸다.
“과연 자신의 선택이 옳은가.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결국에 벌레나 미물로 환생하는 게 내 운명인가. ···그런 의문을 단 한 번이라도 품은 적 있다면, 따라와라.”
“전···.”
“지금이 바로 사후 세계에서의 네 두 번째 삶을 바꿀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르니까.”
지금 다시 또 다른 무법자 집단에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저번과 같은 일을 반복하기만 하면 이번에는 그 무법자 집단에 의해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삶을 살 수도 없는 이놈에게, 지금 내 제안은 한 마디의 농담도 없이, 진짜 마지막 기회였다는 말이었다.
내 말에 몇 번이나 입을 여닫기를 반복하던 명도는 입술을 꽉 깨물고.
쿵!
“부탁드립니다!”
무릎과 고개를 땅에 박은 채 큰 소리로 외쳤다.
오체투지. 자신의 전심, 전력을 다해 부탁하는 모양새.
“부디, 부디 저를 당신의 여정에 함께 하게 해주십시오!”
“···내가 먼저 제안했는데, 네가 이렇게 반응하면 어쩌란 거냐.”
그런 녀석의 팔을 잡고 들어 올린 뒤, 옷에 묻는 검은 흙을 털어주며 대답했다.
“그럼 이번 여정 동안 잘 부탁한다.”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네!”
명도를 만난 이후로 처음으로 듣는 힘찬 대답.
부디 이 녀석이 그녀의 말만큼, 그리고 내 기대만큼의 능력을 보여주길 바라며.
우리는 새롭게 들인 일행을 열렬히 환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