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 세계로(3)
파앙!
공기를 가르는 파공음과 함께 뺨 옆을 스쳐 지나가는 뾰족한 무언가.
화살인가, 아니면 바늘인가.
아니, 지금 그걸 신경 쓰고 있을 때가 아니지.
“젠장!”
지금은 어떻게든 저 또라이 괴짜들에게서 도망칠 방법을 생각해야 할 때였다.
처음에는 사형이니 뭐니 지껄이는 놈들에게 시원하게 와류 맛을 보여주려고 했지만, 창을 들자마자 바로 옆에 있던 녀석에게 막히고 말았다.
“저, 저들을 죽이면 안 됩니다!”
“아니, 그러면 그냥 네가 죽으려고?”
“저들은 되살아날 수 없단 말입니다! 거기에 동료의 목숨은 끔찍하게 여기기 때문에 한 명의 동료라도 목숨을 거둬가면 그때부터 그들과는 철천지원수가 되는 겁니다!”
“···젠장.”
철천지원수가 되는 것 따위야 두렵지 않지만, 그로 인해 정보를 얻지 못하는 건 확실히 귀찮다.
결국 녀석의 말에 우리는 무기를 거둔 채 일단은 자리를 피하기로 했다.
당장 다른 방도가 없는 이상, 싸움은 좋지 않다.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누군가 다치는 사람이 나오고, 더 안 좋으면 죽는 사람도 나온다.
하지만 놈들은 우리를 순순히 보내줄 생각이 없는 듯했다.
우리가 자리를 뜨려는 기색을 보이자마자 그 괴기한 합창을 멈추고선 우리를 쫓기 시작한 것이다.
놈들이 사용하는 무기는 겉으로 봤을 땐 크게 티가 나지 않는 투척 무기나 단도 같은 소형 무기가 주를 이루었다.
그만큼 한 방, 한 방의 위력은 약하지만, 그것도 이만한 숫자라면 위험하다.
더군다나 지금 우리 쪽은 비행에 익숙하지 않은 독고화와 여기 온 지 몇 년은 되었음에도 나는 속도가 느릿느릿한 녀석 때문에 놈들을 쉬이 따돌리기도 힘들었다.
몇 번이고 이어진 공격을 어떻게든 피하거나 튕겨내긴 했지만, 이젠 그것도 한계.
우리의 움직임에 익숙해지기라도 한 듯 점점 날카로운 공격을 날려오는 놈들을 어떻게든 피하려면···.
“소저! 그리고 너도!”
아무리 생각해도 이 방법 말곤 없다.
내가 손을 뻗자, 곧 내 생각을 알아챈 독고화와 녀석이 내 쪽으로 손을 뻗어왔다.
꽉!
두 사람의 손을 확실히 잡아챈 걸 확인한 후, 바로 단전의 기를 용천혈로 분출, 단숨에 하늘을 날아오른다.
처음에는 어떻게든 쫓아와 보려 하던 괴짜 놈들도 내가 날아오르는 높이가 도저히 자신들이 쫓을만한 거리가 아니라는 걸 깨달은 모양인지, 아래에서 나를 응시하다 곧 처음 나타났을 때처럼 조용히 사라졌다.
이토록 높은 위치로는 다른 사자들도 날아올 수 없던 모양인지, 나와 같은 높이에 떠올라 있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야.”
“네, 넵!”
내가 불러도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만 겨우 날리는 녀석.
하긴, 이놈도 이렇게 높이 올라오는 건 처음이겠지.
“그 괴짜 놈들이랑 너랑 무슨 사이냐. 똑바로 대답 안 하면···.”
···그리고 그 말은 협박하기도 훨씬 쉽다는 말도 된다.
놈을 잡은 손가락의 숫자를 다섯 개에서 세 개로 줄이자, 꼭 감고 있던 놈의 눈이 번쩍 뜨였다.
“···사후 세계 최초로 사자도 너무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죽어버리는지 알 수 있는 영광을 맞이하게 될 테니까.”
“예! 모조리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놓지 말아 주십시오! 제발!”
“좋아.”
내 협박에 눈물, 콧물 다 쏟아내는 놈이 아래쪽 물까지 쏟아내기 전에 천천히 땅을 향해 내려왔다.
혹시나 마을 안에서 놈들이 대기하고 있을 것을 대비해 일부러 마을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두 사람을 내려놓는다.
“휴우···이런 경험은 또 처음이네요.”
“헉, 헉, 헉, 흐읍···휴우. 아아아! 반갑다, 맨땅아! 네가 너무 그리웠어! 으허허헝!”
안색 하나 바뀌지 않은 채 땅 위에 두 발로 서는 그녀와 달리, 이제야 살았다는 듯 땅에 뺨을 비비는 녀석.
내려오는 도중에 손가락을 세 개에서 두 개로 바꾼 게 꽤 제대로 먹힌 모양이었다.
“추태 좀 그만 부리고 일어나 인마. 설명해야지.”
“아, 넵. 바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내 말 한마디에 녀석은 땅에 비비던 얼굴을 들고 나를 바라보았다.
흠흠, 몇 번 헛기침하던 녀석은 갑자기 하늘을 보더니, 어딘가 아련함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 이야기를 시작하려면, 제일 먼저 제 현생의 삶을···.”
“지금 너 때문에 이미 못 볼꼴 많이 봤거든? 최대한 짧게 얘기해라.”
“엌, 읔, 음, 네, 알겠습니다.”
내 한 마디에 뜻 모를 해괴한 목소리를 몇 번 내뱉던 놈은 바로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입을 열었다.
“혹시 두 분은 전장이란 게 어떤 곳인지 아십니까?”
···알기만 할까. 내가 삼 년 간 전전했던 게 중원 최고, 최악의 전장, 북방 국경지대인데.
아마 중원에서도 나보다 전장에 익숙할 사람은 대장군 정도밖에 없을걸?
하지만 그 사실을 구태여 입 밖으로 꺼내진 않는다.
이놈 성격상 여기서 말을 더 꺼냈다간 놈이 하는 말의 양만 더 늘어난다는 사실을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람임을 포기한 곳. 그리고 그런 사람을 포기한 사람이 모여 서로를 죽이는 곳. 그것이 바로 전장이죠. 저는 그런 전장에서 아직 사람임을 포기하지 못했던 반쪽짜리 병사였습니다.”
흠···병사라.
확실히 이놈의 움직임은 내공을 사용하는 무공보단, 근력을 더 중시하는 무예에 가까웠다.
“제가 목숨을 잃었을 땐 제가 병사가 된 지 정확히 이 년이 된 날이자, 제가 부대로 전입해 온 이래 가장 큰 전투가 있었던 날이죠. 저는 그날 제가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른 채 순식간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당연한 일이었죠. 누가 어떻게 죽고 죽였는지도 모르는 전장에 제 목숨이라고 달라야 할 이유가 뭐가 있었겠습니까?”
본인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녀석의 말투는 놀라울 정도로 담담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이미 자신을 사후 세계의 주민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일까.
그 답은 알지 못한 채, 녀석의 말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렇게 사후 세계로 오게 되었지만, 나쁠 건 없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제겐 행운이었죠. 병사가 되기 전, 제가 꿈꾸던 것을 할 수 있었으니까요.”
“꿈꾸던 거? 그게 뭔데?”
그 질문을 던진 건 내가 아니었다. 의외로 녀석의 이야기를 흥미진진한 눈빛으로 듣고 있던 독고화가 참지 못하고 질문을 꺼낸 것이었다.
“저는 옛날부터 여행을 떠나고 싶었습니다. 제가 알지 못했던 걸 보고, 느끼며, 알고 싶었거든요. 만약 집안 사정만 조금 더 넉넉했다면, 아마 도시와 도시를 전전하는 보따리상이 됐을지도 모르죠. 뭐, 물론 현실은 그렇게 쉽지 않았지만요.”
만나고 처음으로 자신의 감정을 담아(그것이 행복은 아닐지라도) 미소를 지어 보인 그 녀석은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다행히 여기선 저를 막아설 건 없습니다. 여기에선 살기 위해서 꼭 돈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고, 먹지 않아도 배곯을 일은 없었으니까요. 저는 마음껏 사후 세계를 돌아다녔습니다. 아까 그 친구들도 그때의 인연으로 만나게 된 것이죠.”
“네놈도 그 괴짜 중 하나였단 말이구만···그건 그런데, 왜 우리랑 만났을 땐 무법자가 되어 있었냐?”
내 질문에 녀석은 살짝 주저하듯 손을 만지작 거리더니,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함께 여행을 다니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저보다 훨씬 오래전 여기로 넘어와 아주 오랜 세월을 여행하던 친구였죠. 성격도, 행동도, 나이도 모두 달랐지만···기이하게도 우리는 금방 친해졌습니다. 마치 운명의 단짝처럼 말이죠.”
“그럼 그 친구는 지금 어디···.”
녀석의 이야기에 푹 빠져 있던 독고화는 질문을 꺼냈다가 바로 입을 다물었다.
질문을 꺼내는 동시에 그 친구라는 사람이 어떻게 됐는지 알아차린 것이었다.
독고화의 반응에 그녀가 알았다는 걸 녀석도 알아챘는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본디 이곳에서의 여행은 언제나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것이었으니까요. 그 친구도, 저도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다면 목숨까지 버릴 각오가 된 사람들이었습니다.”
후우, 녀석은 짧은 한숨을 내쉬고선.
“다 어리석은 착각이었죠.”
철저하게 과거의 자신을 부정했다.
“그 친구가 죽는 날 저는 떠올렸습니다. 죽음의 공포를, 그렇게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제 모든 걸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절망을 말이죠.”
미세하게 떨리는 그의 육신은 그 당시 그가 느꼈을 감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이곳에서 눈을 뜨면서 잊어버린 줄만 알았던 그 감정들은, 사실 제 마음 깊은 곳에서 때를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마주한 순간, 저는 이제 더 이상 이곳을 여행하는 것이 즐겁지도, 기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두려울 뿐이었죠.”
“그래서 무법자가 되는 길을 선택한 건가? 그때까지 여기서 만들었던 인연 모두를 포기해서라도?”
“···그때는 무슨 짓을 해서라도 오직 살아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그제야 왜 그 괴짜들이 그토록 이 녀석을 죽이지 못해 안달이었는지 깨달았다.
자신의 다음 생을 포기해서라도 이 땅을 여행하는 그들에게 있어서, 지금 녀석의 모습은 그들이 떨어질 수 있는 최악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에게 있어 아까의 공격은 자신의 옛 동료가 더욱 나락에 떨어지기 전에 할 수 있는 최후의 자비였으리라.
“하지만 그제야 깨달았죠. 저는 무법자로 살아갈 자격도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너, 우리를 잡으러 온 게 첫 출동이 아니었지?”
내 질문에 녀석은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습니다. 사실 벌써 열 번째 출동이었죠.”
“그리고 그동안 아무도 죽인 적도 없지?”
아까 공중에서 떨어뜨릴락 말락 할 때 느껴졌던 공포심은 진짜였다.
만약 그 반응까지 연기였다면, 전 중원의 극단은 최고의 인재를 아깝게 잃고 만 것이었으리라.
“·········참으로 웃기지 않습니까?”
내 말에 한참이고 대답이 없던 녀석은 피식,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현생에선 위의 명령에 따라 원치도 않던 싸움을 이 년 동안이나 하고 있던 놈이, 정작 본인의 의지로 누군가를 죽이자고 마음먹은 순간에는 아무도 죽이지 못하다니.”
부끄러운 자신의 모습을 숨기기라도 하듯, 녀석은 몇 번이고 자신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비비고, 또 비볐다.
“어쩌면 이것이 제 운명인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정쩡하고 무의미한 삶. 그런 삶을, 그리고 죽음을 경험하다 미물로 환생하는 것···어쩌면 그렇게 처음부터 정해졌던 걸지도 모르죠.”
“·········.”
녀석의 말에 나는 아무런 말도 꺼낼 수 없었다.
그런 인생은 없다, 라고 단언하고 싶어도 정말로 그러한지도 알 수 없을뿐더러, 설사 그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어떠한 말로도 지금 이 녀석을 위로할 수 없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아챘기 때문이다.
놈은 잠깐 품을 뒤적이더니, 거기서 한 장의 쪽지를 꺼내 내게 내밀었다.
“이걸 가져가시지요.”
“이건 뭐지?”
“저희···그러니까, 그 괴짜들은 이 도시, 저 도시 떠돌아다니기 때문에 도시마다 다른 돈은 거의 가지고 다니지 않고, 서로 거래를 하더라도 돈으로 값을 치르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펄럭. 그의 말을 들으며 그것을 열자, 거기에는 누군가의 손바닥 도장과 함께 ‘성중’이 ‘명도’에게 은혜를 받았다는 글 따위가 적혀 있었다.
“이건 그 대신 사용하는 겁니다. 그래도 이걸 가지고 있으면 대화 정도는 가능할 줄 알았지만···아무래도 아니었나 봅니다.”
“이걸 내가 사용할 수 있을까? 다시 공격하는 거 아냐?”
“저야 추방당한 몸이라 쓸 수 없지만, 두 분만 따로 가면 이야기가 다르죠.”
“명도···이게 네 이름이었나?”
그러고 보니 딱히 이름도 물어본 적 없었다.
애초에 마을까지의 길잡이로만 쓰고 버려둘 생각이었던지라, 서로 통성명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네. 뭐, 현생에서도 거의 불린 적 없고, 여기에서도 딱히 이 이름으로 불려본 적은 없습니다. 이런 데에나 겨우 사용할 정도죠. 제겐 이제 쓸모없는 물건이니 아까 그 골목으로 가져가서 사용하시지요. 제가 없으면 그들도 아까처럼 선뜻 공격부터 날리진 않을 겁니다.”
“그래···그럼 고맙게 받을게.”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라 그런지 마음이 편치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것까지 거절하기엔 우리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지금 우리에게 있어선 유일한 희망이자, 단서였다.
“이제 너는 어찌할 거지?”
“글쎄요. 이제 무법자 짓도 못 할 일이라는 걸 알았으니···또 이리저리 여행이나 떠나볼까 싶습니다.”
“···괜찮겠어? 지금 네 상황으로는 정보를 구하는 것도 용이치 않을 텐데.”
이제 이 녀석···아니, 명도는 여행할 때 필수적인 정보도 얻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사후 세계의 위험성을 생각했을 때, 그런 것도 모른 채 여행을 다니는 건 사실상 자살행위나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내 말에도 녀석은 힘없이 웃으며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렇게 되면 본래의 운명대로 되는 것이겠죠.”
그의 처연한 웃음 속에 섞인 그 감정은, 나라도 도저히 읽어낼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