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 세계로(2)
놈의 안내에 따라 평야를 가로지른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가 넘어온 곳에서 제일 가까운 곳에 있는 마을에 도착했다.
사후 세계의 마을이라 해서 현세에 있는 마을과 큰 차이점은 없었다.
“오늘 저녁은 뭘 먹을까?”
“오늘은 오랜만에 고기가 먹고 싶은데···.”
“자, 자! 모두 고기만두 하나 드셔보고 가세요! 쌉니다, 싸요!”
“여기 이거 하나 주세요.”
“옛! 열 푼만 주십시오!”
사람들이 생활하는 모습은 현세와 똑같고, 그 재질은 알 수 없지만 사람들이 살 수 있는 집과 객잔. 그리고 온갖 용도로 사용하는 건물이 마을 안에 가득했다.
딱 하나 다른 점이라면···.
슝!
슝!
슝!
···대부분 사람이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다는 점일까.
우리처럼 땅에서 걷고 있는 사람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런 사람들은 노점상에게 물건을 사러 잠깐 내려오는 사람들 정도뿐.
그 외의 다른 사람들은 전부 너나 할 것 없이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 연배를 짐작할 수 없는 노인부터 이제 겨우 말을 떼었을 법한 어린 아이까지.
어느 정도 힘이 있는 인간들만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꼭 그런 건 아닌 모양이다.
“어이.”
“네! 부르셨습니까!”
다른 사자들처럼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던 놈은 내 부름에 땅으로 내려와 바로 고개를 숙였다.
아까 협박이 제대로 먹혔는지, 놈은 내가 무슨 말을 내뱉어도 금방 달려와 귀를 기울였다.
“하늘을 나는 거, 뭔가 특별한 기술 같은 게 필요한 거냐?”
“아니요, 딱히 그런 건 필요 없고, 그냥 날아오르고 싶다, 라고 생각만 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진짜? 그거면 끝이야?”
“네. 옆에 아가씨도 지금 날아다니고 계시지 않습니까.”
응? 옆에 아가씨?
놈의 말에 고개를 돌리자,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작았던 독고화가 나와 정면으로 눈을 마주하고 있었다.
“···어떻게 하신 겁니까?”
“아, 아뇨, 저도 뭔가 특별한 건 아니고···그냥 날고 싶다고 생각하니 어느새 몸이 떠오르고 있던데요?”
···정말? 그렇게 쉽게 날 수 있다고?
하늘을 나는 건 아무래도 사자만의 능력 같은 게 아니라, 사후 세계이기에 가능한 기예 같은 것인 모양이다.
놈과 그녀의 말대로 하늘을 나는 건 딱히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어느새 몸은 땅에서 벗어나 하늘을 날아오르고 있었으니 말이다.
처음에는 움직이는 게 익숙하진 않았지만, 그것도 잠시. 날아오른 채로 몸을 가볍게 움직이니 얼마 지나지 않아 놈도 감탄할 만큼 쉽게 하늘을 유영할 수 있었다.
“대, 대단하시군요. 원래 이렇게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건 적어도 며칠은 필요한데···.”
“뭐···죽기 전에도 비슷한 일은 할 수 있었거든.”
내공을 뿜어내어 잠깐 공중에 떠다니는 것 정도야 초절정의 경지에 오르면 누구나 가능한 일이고, 내공이 높으면 높을수록 체공 시간 또한 길어진다.
그리고 화경 중에서도 내공의 양으로는 현세의 누구와 비교해도 압도적인 나야 말할 필요도 없겠지.
“하지만 지금이 훨씬 편하긴 하네.”
“그, 그러시다니 다행입니다.”
물론 생각만으로도 해도 몸이 떠오르는 지금과 떨어지지 않기 위해 내공을 용천혈에서 억지로 뿜어내야 하는 현세와는 안정도 면에서 비교도 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여기에서도 돈을 사용하나 보네요? 식사도 해야 하나 보죠?”
나만큼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나는 법을 숙지한 독고화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 마을에 있는 이들 대부분이 돈을 주고 뭔가를 사고팔고 있었다.
오직 힘의 논리가 모든 것을 지배하리라는 당초 예상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그녀의 질문에 우리를 안내했던 그놈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답했다.
“식사야 반드시 할 필요는 없지만, 아무래도 현세에서 하던 게 있다 보니 적지 않은 사람이 식사를 거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음식 맛도 현세랑 그렇게 차이는 없고요.”
하나 드셔보실래요? 하고 만두를 파는 상인을 가리키는 녀석에게 고개를 흔들었다.
사후 세계의 음식을 먹어보고 싶은 생강기 없는 건 아니지만, 지금 우리에겐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남아 있었다.
녀석은 내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며 아까 하던 설명을 마저 이어나갔다.
“그리고 지방을 지배하는 왕의 성격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이렇게 돈을 쓰는 지방이 있긴 합니다. 물론 이만큼 안정된 모습을 보이는 곳은 많지 않지만요.”
“···왕이라고?”
사후 세계를 지배하는 왕이라는 말에 순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유령 하나.
자신을 번개의 왕이라 칭하며, 현세 또한 지배하겠다고 날뛰던 그 작자.
···아니, 아니겠지. 그런 인간이 진짜 왕일 리가 없잖아.
“예. 이곳의 왕은 사후 세계의 왕 치곤 안정을 특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 규율을 중시하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돈을 사용한 거래도 일상처럼 시행되지요.”
“다른 곳은 안 그런 곳도 많나?”
“예, 뭐···아무래도 왕의 성격에 따라 다른 곳도 있다···라고 하더라고요. 저도 여기 말곤 돌아다녀 본 곳이 몇 없어서 정확히는 모르지만요. 그래도 여기보다 경우만 덜 할 뿐이지, 대부분 돈을 쓰긴 쓰더군요.”
그렇다면 돈을 쓰지 않는 곳은 마교에서 말하던 대로 힘이 우선일까.
···거기만은 별로 가고 싶지 않다. 응. 절대로 가기 싫어.
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던 그때, 가만히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독고화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런데···혹시 여기서 정보를 얻을 만한 곳은 없어?”
“네? 정보를 얻을 곳이요? 그건 갑자기 왜 여쭤보십니까?”
“나보다 먼저 여기로 넘어온 사람 중에 보고 싶은 사람이 있거든. ···혹시 찾을 방도가 있을까?”
“으음···먼저 넘어온 사람이라···.”
조금 돌려 말하긴 했지만, 놈은 금방 독고화의 말을 알아듣고 뭔가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방도가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솔직히 만날 가능성은 그리 높진 못할 겁니다. 아까 형님들···아니, 그놈들처럼 자신의 목숨을 늘리기 위해서 남을 잡으러 다니는 놈들이 하도 많아서요.”
“너도 그런 놈 중 하나였잖아.”
“크흡, 그, 그래도 저는 대인의 가르침을 받아들여 이제는 완전히 손 씻었습니다.”
“가르침은 개뿔.”
만난 지 한 시진이나 겨우 된 건 차치하더라도, 내가 너한테 뭘 가르친 게 없는데 가르침은 뭔 가르침이야.
···뭐, 그래도 마음만 먹고 누구 하나 진짜로 죽인 적은 없으니 놈들처럼 죽이진 않고 이렇게 부려먹고 있지만.
“어쨌든 그런 경우도 있긴 하지만, 아닌 이들도 사후 세계에서 지내며 힘이 좀 모였다 싶으면 대부분 인간으로 환생합니다. 현세나 여기나 사람 사는 곳이 비슷비슷 하다곤 하지만, 그래도 까딱 잘못하면 목숨을 잃고 미물로 환생할 가능성은 언제나 있으니까요.”
하긴, 중원이야 길 가다가 다른 사람한테 죽는 경우 따윈 거의 없지만, 여긴 이야기가 또 다르니까.
한 명 죽일 때마다 자기 목숨을 한 번 늘리는 꼴이니, 진짜 미친놈들은 좋다꾸나 하고 사람을 학살하고 다니겠지.
거기에다가 그러면 그럴수록 힘도 늘어나는 꼴이니, 원래 패악질이 심하던 인간이 더 심해질 일도 있을 것이고 말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진짜 사람 살 곳이 여기 진짜 사람이 살 곳이 아니구나.
괜히 힘 좀 모이면 바로 환생한다는 게 아니라는 걸 확실히 느껴졌다.
“그건 걱정할 필요 없어. 그 사람은 무척 강하니까. 그리고···.”
거기까지 말한 그녀는 뭔가를 생각하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 사람과 약속했어. 내가 찾아오는 그 날까지 날 기다리고 있겠다고. 그러니까 그 사람은 분명 여기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야.”
“으음, 그렇습니까···.”
딱 잘라 단언하는 그녀의 태도에 녀석은 뭔가를 고민하듯 침음성을 흘리더니, 곧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일단 결론만 말씀드리자면, 아주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정말?!”
“아무래도 현세에서만큼 각 도시의 교류가 크지는 않은지라 다른 도시의 정보를 얻는 게 쉽지는 않지만···어디나 괴짜는 하나씩 있는 법이죠. 그리고 그런 괴짜들이 모여 하나의 집단을 만드는 일들도 종종 있고요.”
“마치 사후 세계의 개방이나 하오문 같은 놈들이라는 거군.”
“예, 그런 것들이지요. 만약 아가씨가 찾는 그분이 아가씨 말씀대로 엄청난 강자라면, 필시 그 괴짜들도 정보를 가지고 있을 겁니다. 소문에 따르면 그놈들은 여행을 떠날 때를 대비해서 각지의 강자에 대한 정보를 잔뜩 모아둔다고 하니까요.”
“이 마을에도 그놈들이 있을까?”
“잠깐 발품을 팔아야겠지만, 찾는 게 어렵진 않을 겁니다. 이만한 규모의 마을이 흔한 것도 아니니, 분명 근거지를 마련해뒀을 테지요.”
흐음, 그렇단 말이지.
녀석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독고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일단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계획은 세워진 것 같군요.”
“네, 생각보다 단서를 일찍부터 발견했네요!”
내 말에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그녀. 아무래도 예상했던 것보다 빨리 원하던 걸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뻐하는 듯했다.
“일단 셋이 같이 움직이면서 정보를 구하도록 하는 게 좋겠어. 따로 다니기엔···아무래도 우리는 여기로 온 지 얼마 안 됐으니까, 만약을 대비해야지.”
뭐, 말은 이렇게 했지만, 사실 아직 이 녀석을 확실히 믿을 수 없다, 라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아무래도 어떤 신용에 의한 관계가 아니라, 협박으로 억지로 동행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니 도망칠 수도 있거니와, 까딱 잘못하면 우리도 모르는 곳에서 다른 동료를 데리고 올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아까와 같은 수준의 놈들이라면 몇백이와도 두려울 일은 없지만···우리의 목적은 싸움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그녀가 원하는 대상과 대화를 하는 것뿐.
일부러 사후 세계에서 혼란을 불러일으킬 이유는 전혀 없었다.
녀석은 그런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실없는 웃음을 지으며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아이고, 그럼 저야 좋죠. 요새는 객잔에 잠깐 앉아 쉬는 것도 다 돈이라, 앉아서 차 한 잔 시키는 것도 무섭거든요. 자, 자.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그런 녀석이 우리를 안내한 곳은 빛이 들지 않는 마을의 뒷골목이었다.
뭐 하나 떠올라 있지도 않은 하늘 아래에서도 기이하리만치 밝았던 마을과는 달리, 뒷골목은 그 기이한 빛조차 발을 들이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는 몰라도 마치 한밤처럼 어두웠다.
평상시엔 이런 어둠 따윈 마음껏 관철할 수 있던 내 시야도 이 어둠만큼은 기이하리만치 내 눈을 가리고 있었다.
마치 내 어린 시절, 한밤중 일어나 멀리 떨어진 변소로 홀로 발걸음을 옮기던 그때 느꼈던 어둠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는듯한 그런 어둠이었다.
하지만 우리를 안내하고 있는 그 녀석 그런 어둠조차도 익숙한 듯 아무런 영향 없이 골목 안으로, 안으로 우리를 이끌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익숙한데?
“여기 자주 왔었나 보지?”
“네?”
내 말에 깜짝 놀란 듯 그가 잘게 몸을 움츠리며 슬며시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생각보다 여기 지리에 익숙한 것 같아서 말이야.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용케도 길을 찾고 있고··· 여기 와 본 적이 있나?”
“아뇨, 그게···.”
“내 분명 누누이 경고했을 텐데.”
녀석이 뭐라 말을, 혹은 변명을 내뱉으려던 그때, 갑자기 저 어두운 골목 안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가 들려온 위치와 방향을 알아내기 위해 귀를 기울여봤지만···소용없다. 어느 건물인가는커녕, 위에서 들려왔는지, 혹은 지하에서 들려왔는지도 확실치 않다.
오직 저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확실한 건 그것 하나 말곤 없었다.
“한 번 떠나면 다시는 우리에게 돌아올 수 없다고 말이야.”
“아, 아니. 내가 다시 합류하려고 돌아온 게 아니라···.”
“변명은 필요 없다.”
아까와는 또 다른 목소리. 하지만 위치를 파악할 수 없는 건 여전히 마찬가지다.
“네가 죽음에 두려움을 느끼고 도망친 그때부터.”
“이미 네놈과 우리 사이는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넜으니.”
“네놈이 이제 다시 돌아왔으니.”
“판결은 딱 하나.”
슉! 슉슉슉!
골목을 이루고 있는 건물 위에 빼곡하게 나타난 검은색 그림자.
그들은 모두 한마음, 한뜻, 한목소리로 내 옆의 놈을 향해 소리치기 시작했다.
“사형.”
“사형.”
“사형.”
끝없이 반복되고, 또 반복되는 끔찍하게 단조로운 합창 소리를 들으며, 나는 질린 표정으로 옆에 있는 놈을 바라보며 말했다.
“···다음에 어디 집단에 소속될 땐, 좀 정상적인 곳으로 들어가라. 알겠냐?”
“···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