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권능으로 무림최강-142화 (142/185)

사후 세계로(1)

사후 세계로의 여정.

일단, 처음 감상을 말하자면···.

죽는 줄 알았다.

천수와 선화가 만들어낸 심연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그 순간 우리를 덮친 건.

콰과과과과!!!

끝도 보이지 않는 어둠으로 빠지는 듯한 감각과.

후우우우웅!!!

어둠으로 인해 시각이 완전히 봉인된 탓에 더욱 또렷하게 들려오는 소름 끼치는 바람 소리였다.

아, 그리고 또 하나.

“꺄아아아아악!!!”

거기에 독고화의 비명까지 더하면 완벽하겠네.

아니, 애초에 이런 상황에 비명 한 점 내지르지 않고 이런 거나 분석하고 있는 게 더 비정상적이겠지만.

하지만 실제로 현세에서도 이 정도 속도로 떨어져 봐야 죽지도 않을 텐데, 이미 사후 세계로 간다는 언질까지 받은 이상 내가 이것을 두려워할 요소는 조금도 없었다.

그렇게 내가 어딜 보고 있는지도 모를 어둠이 얼마쯤 지속되었을까.

귀를 스치는 바람 소리도 적응되고,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던 독고화의 비명도 슬슬 가라앉던 그때.

쿵!

지축을 울리는 커다란 소리와 함께 드디어 우리는 땅을 밟을 수 있었다.

“아···콜록, 콜록, 콜록!”

한참 만에 비명 말고 다른 말을 내뱉으려던 독고화는 입을 열자마자 바로 헛기침을 반복했다.

하긴, 저렇게 비명을 내질렀는데 목이 아프지 않은 게 더 이상하지.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쿨럭, 쿨럭. 크흠, 아, 네. 별문제는 없어 보여요.”

내 본 심정은 ‘그렇게 비명을 질렀는데 목은 좀 어떠냐.’ 라는 것이었지만, 그녀는 사후 세계로 들어오고 나서 몸은 좀 어떻냐, 이런 식으로 받아들인 듯했다.

기침을 내뱉으며 자신의 몸 상태를 이리저리 확인한 그녀가 대답하자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다행이군요. 그럼, 다음 문제는···.”

그녀에게 향했던 시선을 돌려, 사후 세계의 하늘과 이 땅 위의 풍경을 가만히 응시한다.

우리가 방금 빠져나왔던 그 심연만큼 어두운 하늘에는 본디 하늘과 땅을 비춰줘야 할 태양도, 그런 태양이 없는 자리에서 대신 빛을 내야 할 달도, 심지어 자그마한 빛을 뿜어내며 반짝이는 별도 존재치 않았다.

하지만 기이하게도 땅을 보는 건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

아니, 어려움이 없는 걸 넘어, 오히려 한낮의 현세보다도 더욱 대지 위에 존재하는 걸 파악하기 쉬웠다.

“···여기가 어디인지 알아내는 거군요.”

그렇기에 더욱 똑똑히 알 수 있었다.

사방팔방 둘러봐도 어디 하나 보이지 않는 사람의 흔적.

지평선 너머까지 뭔가 인위적인 것이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 그 검은 대지 위에 생명이라 부를 수 있는 건 오직 우리 둘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사자에게 들키지 않도록 여기로 보내 놓은 걸까요? 아니면 사후 세계 대부분이 이렇게 아무것도 없는 땅인 걸까요?”

“글쎄요. 일단 동자를 통해 우리의 요청은 확실히 전해진 상황이긴 하니, 일부러 이곳에 보냈다는 말이겠지요. 만약 아니라면 저희에게 어떤 식으로도 언질을 줬을 테니까요.”

“그렇다면···여기서부턴 어떻게 움직이면 될까요?”

독고화의 질문에 나도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입을 여는 걸 망설였다.

조금 더 이야기를 듣고 왔어야 했나? 아니, 만약 우리가 사후 세계에 관해 더 알아야 할 사항이 있었다면, 우리보다 먼저 그가 이야기를 꺼냈을 텐데.

하지만 정작 천수는 최후의 대책인 빛의 끈을 제외하곤 정말 아무런 말 한마디도 남겨주지 않았다.

대체 무슨 의도로, 어떤 이유로 그리한 것인가.

주변에 혹시나 지표로 삼을만한 뭔가가 없나, 하고 계속해서 풍경을 파악하며 어찌 움직여야 하나, 하고 계속 파악하고 있던 그때.

[야, 유현아.]

응?

독고삭을 포함한 세 사람과의 싸움 이후, 조금은 전의 모습을 되찾았던 화순이 나를 불렀다.

내 머리보다 더 높은 위치에서 나처럼 주변을 파악하고 있던 화순은 이마를 찌푸른 채 어디 한 쪽으로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왜? 무슨 일 있어?

[저기, 저쪽.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뭔가 날아오고 있는데?]

날아오고 있다고? 혹시 새인가? 누군가 기르는 놈인가?

[아니, 누군가 기른다고는 말하기 조금 그런데···애초에 저건···.]

내 질문에 뭔가 중얼거리고 있던 화순은 곧 눈을 있는 대로 크게 뜨더니 다시 내 쪽을 바라보며 큰소리로 외쳤다.

[···젠장, 저건 새가 아니야!]

응? 하늘을 나는 것 중에 새 말고 뭐가 그렇게 눈에 띈다고···.

[사람이야, 사람!]

엥?

[사람이 날아오고 있다고!]

그리고 화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앗!”

하늘이라도 찌를 양 높아진 독고화의 목소리가 내 귓구멍을 파고들었다.

그녀의 시선이 향한 곳은 화순과 같은 방향.

“저, 저기 뭔가가···!”

“저도 봤습니다.”

그리고 화순을 향했던 시선을 그쪽으로 돌리자, 나 역시 그것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엎드려 누운 모양새로 우리를 향해 쏜살같이 날아오는 열댓 명의 인간들.

가장 좋은 방향은 그들이 그저 지나가는 사람이라 우리가 갈 방향만 듣는 거겠지만···.

“쯧.”

부자연스러우리만치 우리 쪽을 향한 그들을 보아하니, 그건 어디까지나 희망 사항에 불과한 듯했다.

등에 메고 있던 두 자루의 창을 양손에 꽉 쥐며, 놀란 표정으로 그들을 응시하고 있던 독고화를 향해 외쳤다.

“곧 싸움이 일어날 것 같습니다. 준비하십쇼!”

“아, 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하긴 했지만, 그래도 마교의 여식이라는 걸까.

싸움이라는 말에 바로 정신을 되찾은 독고화는 역시 마찬가지로 등에 메고 있던 봉을 꺼내 기수식을 취했다.

그리고 잠시 뒤.

“저기다! 저기 사람이 있다!”

“죽여! 죽여! 죽여!”

“잡아 죽여 우리의 힘으로 바꿔라!”

“우호호호호!”

우리를 향해 날아오던 사자들은 마치 사냥감을 쫓는 유목민들처럼 고함을 내지르며 우리를 향해 날아오는 속도를 더욱 높였다.

제일 빠른 건 역시나 놈들이 우리에게 도착하기도 전에 와류를 날려서 모조리 쓸어버리는 거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선 예외다.

어디까지나 우리가 우선해야 하는 건 정보의 습득.

그러기 위해선 이들 중 최소 하나 이상은 살아남아 있어야 했으니까.

적의 강약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와류를 날렸다가 예상보다 더 약한 탓에 모조리 죽어버리기라도 한다면 이쪽이 더 손해다.

최대한 그들의 강함을 파악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확실하게 제압해 정보를 얻는다.

이게 최고의 방도이리라.

“히야아앗!”

내가 마음을 다잡는 동시에 제일 앞에서 날아오고 있던 사내가 괴성을 내지르며 날아오던 기세 그대로 나를 향해 공격했다.

챙!

날아오는 가속도에 더해 놈의 허리춤에서 뽑힌 검은 마치 빛살처럼 내 목을 노려왔다.

지금껏 검을 사용하는 무인을 상대해본 적은 많지만, 이만큼 깔끔하며 완벽한 발도는 처음이었다.

아마 현세의 무인으로 치면 초절정은 되지 않을까.

만약 다른 사람이었다면 첫수에 변변한 대책도 내놓지 못한 채 목을 내줬으리라.

그래.

‘다른 사람이었다면’ 말이다.

끼긱!

“히···쿠웩!”

하지만 놈은 상대를 잘못 만났다.

내가 걸어온 사지(死地)에서 이 정도 공격은 마치 일상과 다를 바 없었으니.

놈의 검격을 오른손의 철혼으로 힘들이지 않고 막아낸 후, 바로 왼팔의 진양을 휘두른다.

그렇게 사후 세계 최초로 조우한 사자의 머리가 터져나가는 걸 바라보며, 바로 뒤편의 사자들을 향해 창을 날린다.

후웅!

“!”

“크륵!”

“컥!”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로 날아오던 놈을 차례로 관통하는 철혼.

그제야 날아오던 놈들이 속도를 늦추기 시작했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조금 전 일격과 막을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철혼에 몸이 관통당한 세 놈만으로도 이미 놈들의 수준을 파악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날벌레처럼 재빠른 속도로 날아다니는 것만 제외하면 절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 정도라면.

후웅!

“칵!”

“끼엑!”

이 정도로도 충분하지.

철혼을 날린 기세를 실어 그대로 몸을 날리며 손에 들고 있던 진양을 휘두르자, 기껏 날아오는 걸 멈춘 이득도 없이 놈들의 몸이 반으로 찢겨나갔다.

여기까지 내가 쓰러뜨린 놈이 총 여덟. 그리고 독고화가 상대하고 있는 놈이 두 놈.

이제 내 눈앞에 있는 이놈만 대충 제압해서 정보만 얻으면 그만인가.

최후미에서 날아오고 있던 놈은 역시나 예상대로 힘도, 기세도 앞서 날아오고 있던 놈들보다 약했다.

아니, 애초에 이런 싸움에도 익숙하지 않은 듯 몸을 잘게 떨고 있는 놈.

이런 놈이 정보를 내뱉는 데에는 최적인 법이지.

“어이, 네놈.”

그렇게 생각하며 입을 연 그 순간, 나는 보았다.

놈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며, 어떠한 표정을 짓는걸.

그것은 분명.

후웅!

비웃음이었다.

그것을 자각한 순간, 나는 바로 뒤를 향해 방금 회수한 철혼을 휘둘렀다.

퍽!

그 순간 팔을 통해 전해져오는 둔탁한 느낌.

그것은 조금 전 느꼈던 바로 그 감각.

조금 전 내가 머리를 깨부숴버렸던 그 느낌 그대로였다.

그리고 눈앞의 광경 또한 느낌과 조금도 다를 바 없이 똑같다.

“쿠웩···.”

아까와 똑같은 비명을 내지르며 다시 아래로 떨어지는 놈.

“젠장.”

그러고 보니 그랬다.

사후 세계의 주민들, 사자는 현세의 인간들이라면 절명할 공격을 맞고도 다시 살아난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설마 번개 유령 수준의 강자가 아니라 이 정도의 사자도 되살아날 줄이야.

그리고 첫 사자의 머리를 깨부수자마자,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몸을 관통당했던 나머지 세 사자도, 몸이 반으로 갈라졌던 네 사자도 누워있던 자리에서 일어섰다.

“흐흐흐흐···.”

“키키킥!”

기분 나쁜 웃음소리를 흘리며 아까보다 기세등등하게 나를 노려보는 놈들을 보며, 아직 한창 사자 두 명과 싸우고 있는 독고화를 향해 소리쳤다.

“조심하십시오, 소저! 놈들은 저번 그놈처럼 되살아납니다! 한 번 쓰러뜨렸다고 안심하지 마십시오!”

“네, 알겠어요!”

그래도 둘을 상대하면서도 어느 정도 여유는 있는 걸까. 독고화는 한창 싸우는 와중에도 내 말에 빠르게 대답했다.

이걸로 내가 할 수 있는 대책은 끝.

이제 남은 건.

“이게 네놈들이 사냥하는 방식이라면 지금 여기서 똑똑히 알려주마.”

멋모르고 나를 속인 사자 놈들에게 그 대가를 치르게 해주는 것뿐.

“그런 게 전혀 통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끼야아아아악!!!”

영원히 끝나지 않을 학살이 시작되었다.

*****

“···그래서.”

사람의 흔적도 없던 땅이라는 건 이제는 옛말.

수많은 전투 흔적이 여실히 남은 그 땅에는 나와 독고화 외에 단 한 명의 사내만이 남아 내 앞에 존재하고 있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무릎을 꿇고, 팔을 땅바닥에 둔 채, 머리를 박고 있다···.

즉, 오체투지를 하고 있었다.

“네놈들은 여기에 찾아오는 갓 죽은 사람들을 사냥해서 강해지는···그런 놈들이라, 이 말이지?”

“예! 그렇습니다!”

“그리고 너는 신입이라 이번이 첫 사냥이고?”

“예! 말씀대로입니다!”

놈은 고개를 박은 채 벌벌 떨며 내 말에 하나하나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첫 사냥이라는 건 아무래도 거짓말은 아닌 모양이었다.

계속해서 되살아나던 놈들은 두려움 없이 나를 향해 몸을 날리던 반면, 이놈은 뒤쪽에서 계속 기회만 보면서 나갈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이놈에게 들은 바로는 되살아나는 횟수는 이들이 죽여 흡수한 사자의 숫자에 비례한다고 하니, 이토록 두려워하던 걸 보아 이놈은 단 한 명의 사자도 죽이지 못했다는 뜻이겠지.

···그걸 생각하면 번개 유령 그 미친놈이 자신을 사후 세계의 왕이라 칭했던 것도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동자랑 나와 연전을 벌이고도 계속 살아나는 건 물론, 최후도 되살아나는 횟수가 다해서 죽었다기보단, 너무 강한 힘을 버티지 못하고 죽었다는 느낌이었으니까.

참고로 말하자면 지금은 흔적도 없어진 다른 놈들도 마지막 순간에는 이놈처럼 두려워하다가 사라졌다.

“그러고 보니 나한테 끝장난 놈들은 완전히 사라진 거냐? 이제 환생도 못 해?”

“아, 아니요, 그건 아닐 겁니다. 제가 듣기론 그렇게 된 사람들은 이제 인간이 되지 못하고 벌레나 쥐새끼같이 약한 짐승으로 태어난다고 합니다.”

“흠, 그래?”

그렇다면 번개 유령 그놈도 지금은 벌레나 한낱 짐승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 말인가.

···과연 그게 그놈에게는 행운일까, 아니면 불행일까.

아니, 이미 죽은 놈 생각은 더 하지 말자.

지금은 당장 내 눈앞에 닥친 일부터 처리해야지.

“그런데 왜 이곳은 이렇게 아무것도 없지? 네놈들 말대로 여기 인간이 자주 나타나면 마을까지는 아니더라도 뭔가 흔적은 남아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게···사실은 이곳에도 처음에는 다른 여느 마을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훌륭한 마을이 설립되어 있었다곤 합니다. 그런데···.”

“그런데?”

“···최근 일어난 전쟁으로 인해 마을이 박살 난 이후로는 이렇게 버려져, 많은 사람이 사자로 다시 태어나는 장소임에도 아무도 찾아오지 않고···.”

“너희 같은 쓰레기 놈들만 되살아나는 횟수를 늘리기 위해서 종종 찾아온다···이 말이지?”

“아, 예, 그렇습죠. 헤헤헤.”

본인을 쓰레기 취급했음에도 분노하는 기색 하나 없이 헤픈 웃음만 날리는 사내.

하긴, 그토록 압도적인 힘을 보여줬는데 벌벌 떠는 것 말곤 뭘 할 수 있을 리가 없지.

대충 궁금했던 부분은 다 들었으니, 이제 이놈을 살려 둔 진짜 이유를 꺼낸다.

“어이, 네놈.”

“네, 넵!”

“이 근처에 사자가 모여 지내는 마을로 우리를 안내해라. 그럴 자신이 있다면 네놈들의 본거지로 데려다줘도 상관없지만···.”

우드득.

“그 순간, 벌레로 태어날 각오는 해야 할 거다. 알겠나?”

“네, 네! 알겠습니다!”

내 말에 벌떡 일어나 바로 고개를 숙이는 그놈.

그렇게 사후 세계를 탐험하기 위한 첫 여정이 시작되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