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 세계와의 연락(2)
이 무모한 싸움을 강행했던 데에는 내 강함을 시험해보기 위함 뿐만 아니라, 쭉 우울해하던 화순의 기분을 조금이라도 풀어주기 위함도 있었다.
처음 화순과 만났을 적부터 녀석은 내가 강해지는 걸 누구보다도 좋아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일부러 우리 두 사람 모두 인정하는 제일의 강자, 독고삭과 세외에서도 손꼽히는 강자 둘을 더 불러와 한 판 붙었건만···.
“싸우는 건 제대로 봤냐?”
"···아니."
···역시나.
"하아···미안하다."
내 눈초리에 담긴 감정을 읽은 것일까. 화순은 내가 뭐라고 말할지 알고 있기라도 한 듯, 먼저 입을 열어 사과를 전했다.
“아직 그 이야기 때문에 힘드냐?”
"·········."
내 질문에 화순은 쉽사리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했다.
잠깐 입을 열어 뭐라 말하려 했긴 했지만, 곧바로 다시 입을 닫고 짧은 한숨만 내쉬었다.
“···역시 초대 천마님이 네 아버지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거냐?”
"아니, 그 부분은 그래도 좀 나아졌어. 나를 이런 모습으로 권능에 가둬놨다는 건 확실히 충격적이긴 했지만···지금 내가 진심으로 걱정하는 건 다른 부분이야."
“다른 부분?”
내 질문에 화순은 고개를 느릿하게 끄덕이며 자신의 양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그가 대체 어떻게 나를 이런 권능이니 뭐니 하는 것에 가둬놨는가···이제 그런 건 궁금하지도 않아. 내가 진심으로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건, 그가 혹시 그 외의 뭔가 또 다른 안배를 해놓은 게 아닌가···하는 거지."
“어떤 부분에서 그렇게 걱정하는 건데?”
"···감정."
한 단어만을 짧게 내뱉은 화순의 목소리에는 숨길 수 없는 공포가 진하게 서려 있었다.
“나는 너의, 아니, 너뿐만 아니라 지금껏 수많은 권능의 주인들이 강해지는 모습을 지켜보고, 그들이 강해지는 걸 보고 기뻐했지. 그것이 내 가 해야 할 일인가 아닌가 이전에, 그들이 강해지는 걸 보기 좋았거든. 그런데 그 만남 이후로 나 스스로 의심이 드는 거야. ···그 감정이 정말로 나의 감정인가 하는 그런 의심이.”
화순의 그런 의심은 분명 정당했다.
지금 그가 말하는 게 다른 사람이었다면 나는 당연히 불가능하다고 딱 잘라 말하겠지만, 지금 그가 말하는 건 그런 상식의 영역을 아득히 넘어선 존재였다.
선정의 첫 제자가 아직 살아있던 그 순간부터 살아왔던 고대의 존재이자, 그들에게 수많은 가르침을 받아온 선인.
아니, 그 두 사람뿐만이 아니다.
그가 이곳에서 지냈던 기간을 생각하면, 그가 이곳에서만 배웠으리라는 법은 없다.
중원은 물론, 북해와 남만. 어쩌면 내가 알지도 못하는 수많은 곳에서 그들의 가르침을 흡수하였을지도 모른다.
그중 타인의 감정을 지배하는 법이 없을까?
화순이 걱정하는 부분은 바로 그것이었다.
“어쩌면 내가 깃들어 있는 이들이 강해지는 걸 보고, 그걸 기뻐하는 게 그의 안배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더는 순수하게 네 싸움을 보고 즐길 수 없게 됐어.”
“확실히 그 작자라면 그런 일도 가능할 법하긴 하지.”
자기 아들까지 평생 권능이라는 괴상망측한 능력 안에 가둬놓은 인간이다.
그런 인간이 자식의 감정까지 마음대로 매만지지 않으리란 법은 없었다.
“도대체 그런 짓을 벌인 목적이···이유가 뭘까?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그를 이해할 수 없어. 도대체 뭘 실험하려고 그런 짓을 벌인 거지?”
지금 화순이 한 말은 나도 선정과 이야기를 나눴던 때부터 품고 있던 고민이었다.
자식을 팔아넘기는 부모는 회귀 전후 따질 것 없이 여럿 봐왔다.
제일 큰 이유는 역시나 돈이었지만, 그 외의 경우가 없던 건 아니었다.
누군가는 권력을, 누군가는 복수를, 누군가는 자신의 꿈을 위해서.
자식을 마치 물건처럼 자신이 원하는 대로 부렸던 부모들.
하지만 그 어떤 이들도 초대 천마와 같은 일을 벌인 자는 없었다.
그가 화순을 이렇게 만든 진짜 목적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가 받았다는 세 장의 환생부 중, 그가 사용했던 두 장의 환생부.
그는 대체 어떤 일로 죽음을 맞이하여 그것을 사용한 것일까.
“우리에게 그 의문을 해소할 수 있는 날이 올까?”
“사후 세계와의 연락은 얼마 지나지 않아 가능할 테지만···.”
이미 수천, 수만 년 전에 목숨을 잃은 인간이다.
초월적인 강함을 가지고 있었던 건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평생 사후 세계에 있으리란 법은 없다.
어쩌면 그 힘을 모두 포기하고 다시 평범한 인간으로 환생했을지도 모르니까.
“언젠가···.”
후우, 짧게 한숨을 내쉰 화순이 조용히 말을 이어나갔다.
“그를 볼 수 있는 날이, 하다 못 해 그의 생각을 알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네.”
*****
우리가 그런 의문을 품고 있건 말건 상관없이 시간은 여실히 흘러갔다.
사자들을 잡기 위해 나섰던 선인들이 대부분 돌아오자, 처음에는 여유 있던 이곳도 점점 좁아지기 시작했다.
만약 시선 아래에 있는 구름만 없었다면, 여느 도시에 있다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우리가 받는 대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그들은 우리를 존중하여 줬으며, 덕분에 더없이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
그리고.
“유현님.”
“아, 네.”
“선주님께서 일행분과 함께 부르셨습니다. 모든 준비가 끝났다. 이 말 한마디면 충분하실 거랍니다.”
드디어 우리가 이곳에 찾아왔던 목적을 해결할 수 있는 날이 찾아왔다.
이른 아침 찾아온 심부름꾼의 말에 따라, 나와 독고화는 동자의 숙소로 향했다.
이제는 북적북적한다는 말이 더 어울리게 된 영산 위에는 그동안 안면을 튼 선인들이 나나 독고화를 보고선 인사를 건넸다.
“드디어 오늘입니까?”
“그간 기다리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부디 원하시는 걸 얻으시길 바랍니다.”
실보다도 얇은 머리카락을 가진 어린아이부터 자신의 키보다도 긴 수염을 가진 노인까지.
각양각색의 선인들은 이미 우리가 동자를 찾아가는 이유를 알고 있었는지, 너나 할 것 없이 우리를 응원했다.
“어서 오십시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동자의 숙소에는 그 혼자 있는 게 아니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천수라고 불러주십시오.”
“선화입니다.”
지금껏 이곳에서 본 적 없던 근육질 사내와 아름다운 여인.
설명을 요구하는 나의 눈빛에 동자는 싱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 두 사람은 하계에서도 제일 먼 곳에 나타난 사자들을 잡으러 떠났던 이들입니다. 그에 어울리는 강함과 능력을 갖추고 있지요.”
“그렇다면 현세에 나타났던 사자들은 모두 몰아낸 겁니까?”
“네. 이 두 사람을 끝으로 밖으로 파견 나갔던 선인들은 모두 되돌아왔습니다.”
“그거 다행이군요.”
번개 유령처럼 강한 사자는 물론 얼마 없겠지만, 여전히 그들은 현세의 사람들에게 위협적인 적이었다.
그런 놈들이 남아있는 건 역시 내게도 큰 문젯거리였으니까.
“그럼 현세의 일은 모두 끝났더군요?”
“네. 이제 다시 원래 삶으로 돌아가야죠. 물론 그 전에 두 분이 부탁하셨던 일은 확실히 끝마쳐야겠지만요.”
“감사합니다.”
“그럼 두 분, 준비 되셨습니까?”
동자의 질문에 나는 대답에 앞서 독고화를 바라보았다.
어차피 내가 이곳에 찾아온 목적은 달성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여기서 들을 수 있는 이야기는 모두 들었거니와, 거기에 더해 선정의 기운이라는 귀한 힘까지 얻었으니 말이다.
이번 일은 전적으로 그녀만을 위한 일.
그녀의 의사가 내 생각보다 더 중요한 일이었다.
“···부르실 때부터 이미 각오하고 있었어요.”
내 시선을 받은 독고화는 내게 감사하다는 의미로 고개를 까딱하더니, 바로 동자에게 대답했다.
“그럼 준비해도 되겠습니까?”
“네, 부탁드릴게요.”
“알겠습니다. 천수, 선화.”
“네.”
“네, 선주님.”
“지금 바로 시작해주게.”
동자의 요청에 고개를 끄덕인 두 사람은 뭔가 기이한 행동을 취하기 시작했다.
천수라 자신을 소개한 사내가 품 안에서 적색 양초를 꺼내 알 수 없는 방향에 맞춰 내려놓자, 선화라는 여인은 그것에 불을 붙이며 어떠한 진언을 외운다.
이곳에 묵는 동안 동이의 여러 언어를 습득하긴 했지만, 그들의 언어는 그 어떠한 언어와도 달랐다.
아니, 애초에···언어는 맞나?
어찌 들으면 그냥 막 내지르는 헛소리처럼 들리지만, 또 어찌 들으면 다른 그 어떤 언어보다도 체계적이며 효율적인 말처럼 들린다.
그들의 행동이 기이한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 한기.
내 단전에 자리하고 있는 빙정조차 막아줄 수 없는 기이한 한기.
십 수 개가 넘는 양초를 세웠음에도 오히려 방 안에 서리가 낄 정도로 방 안의 온도는 급격하게 내려가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저희가 익히고 있는 선술 중에서도 특수한 계열의 선술을 익혔습니다.”
정체불명의 한기에 나와 독고화가 불편함을 느낀다는 걸 깨달은 것일까.
두 사람의 행동이 한창인 와중에 동자가 입을 열어 설명을 시작했다.
“보통 선술은 현세의 기운을 사용하지요. 하늘의 기운을, 땅의 기운을, 강의 기운을, 숲의 기운을 빌려 사용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서 선술 모두가 현세의 기운만 사용하는 건 또 아닙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이 두 사람처럼 다른 기운을 사용하는 선술도 있죠.”
“설마 그 기운이라는 게···?”
“네, 예상하시는 대로···이 두 사람은 사후 세계의 기운을 사용합니다.”
흡!
동자의 말에 내 옆에 있던 독고화가 놀란 듯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나 역시 그녀만큼은 아니더라도 놀란 건 마찬가지였다.
설마 현세의 인물 중 사후 세계의 힘을 사용하는 자가 있을 줄이야!
나 역시 보통 사람은 하나 가지기도 힘든 기운을 세 가지나 다룰 수 있긴 했지만, 사후 세계의 기운은 그 궤가 완전히 다르다.
꿀꺽.
점점 많아지는 촛불과 끊임없이 이어지는 진언들을 보고 들으며 그가, 그녀가 벌이는 괴이(怪異)를 바라본다.
그리고 잠시 뒤.
고오오오!
방 안에 깊이 깔린 한기를 씻어내기라도 하듯, 그들이 만들어낸 촛불의 진(陣) 중앙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광채와 열기.
“큭!”
“꺅!”
마치 그 아래에 태양이 있기라도 한 것 마냥, 끊임없이 뿜어져 나오는 광채와 열기에 나와 독고화는 짧은 비명을 내지르며 눈을 가릴 수밖에 없었다.
“두 분 모두.”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제 눈을 뜨셔도 됩니다.”
광채 사이로 들려 오는 동자의 목소리에 우리 두 사람 모두 감겨 있던 눈을 게슴츠레하게 떴다.
어느새 수십 개가 세워진 촛불의 진. 세 개의 크고 작은 원으로 이루어진 진의 중심에는 사람 하나는 통과할 수 있는 거대한 구멍과 그 끝을 알 수 없는 심연.
“와아···.”
“이건?”
그리고 마치 그 심연 속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유일한 생명줄인 양, 진언을 외우고 있던 선화의 팔에 연결된 금색의 선이 그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사자가 현세에 들어가는 데에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것처럼, 산자 또한 사후 세계로 가는 데에 작지 않은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의식을 끝낸 직후라 그런 것일까. 천수는 힘에 부친 듯 전신에서 땀을 흘리면서도 나와 독고화에게 사후 세계에 관해 설명했다.
“그 때문에 저희처럼 사후 세계의 선술을 익힐 땐 그에 대한 대비책을 준비해둬야 하죠.”
“그럼 이번 의식도 그 대비책을 위한 겁니까?”
“네, 저희야 여러 번 사후 세계를 오갔기에 이런 대책 없이도 큰 문제는 없지만 두 분의 경우는 다르니까요.”
“그럼 저희는 사후 세계에서 뭘 조심해야 합니까?”
내 질문에 천수는 머리에 흐르는 땀을 소매로 훔치며 다시 설명을 이어나갔다.
“두 분에겐 두 분을 사자처럼 보이게 해주는 특수한 주문을 사용할 겁니다. 이것만으로도 사후 세계를 여행하는 건 큰 문제가 없지만, 그래도 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요. 그걸 대비한 게 바로 이 끈입니다.”
천수는 그리 말하며 선화의 팔목에 연결된 빛의 끈을 가리켰다.
“이것은 저희의 기운으로 만든 것으로, 이 끈은 현세의 사람들에게는 잘 보이지만 사후 세계의 인물들에게는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이걸 사후 세계로 떠나기 전 두 분의 팔목에 묶어둘 것입니다.”
“그럼 혹시나 저희가 위험할 일이 생기면···?”
“팔목의 끈을 강하게 세 번 끌어당겨 주십시오. 그러면 저희가 바로 진언을 외워 두 분을 현세로 다시 불러들이겠습니다.”
“하지만 혹시나 사자와 싸울 일이 생겨서 손을 사용할 일이 있다면요? 팔이 묶인 상태에선 힘을 발휘하기 쉽지 않을 텐데요.”
“그건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의식적으로 끈을 잡아당기지 않는 한 두 분의 행동에는 한 치의 불편함도 없을 테니까요.”
확실히 여러 번 사후 세계를 오갔던 이라 그런지 사후 세계를 오가는 대책에 대해선 확실한 듯했다.
“자, 그럼 손을 내밀어 주십시오.”
“네.”
“여기 있습니다.”
천수의 요청에 손을 내밀자, 그가 선화의 손목에 묶여 있던 끈을 끌고 와 우리 두 사람의 손에 묶었다.
“자, 이제 되었습니다. 잊지 마십시오. 언제든 위험한 순간이 오면, 손목의 끈을 세 번 끌어당겨 주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명심할게요.”
확실히 끈이 묶인 걸 확인한 뒤, 우리는 촛불의 진으로 만들어진 사후 세계의 입구 안에 섰다.
···저번 선정과 만났을 적 보았던 구멍과 하나 다를 것 없는 구멍.
빠지는 순간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것만 같은 심연이지만.
“준비는 되셨습니까?”
“네.”
동자의 질문에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는 독고화.
그런 그녀의 표정에는 두려움 따윈 한 점 없이, 이제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기대만이 가득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다녀올게요!”
동자를 향해 인사하며 그 심연 안으로 빠져들어 가는 우리 두 사람.
그런 우리의 머리 위로, 동자와 천수가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마치 잘 다녀오라는 듯, 걱정과 안부를 담은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