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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능으로 무림최강-140화 (140/185)

사후 세계와의 연락(1)

그곳에서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낸 듯싶었지만, 의외로 바깥에선 긴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

주변의 구름도 큰 변화가 없었으며, 동자의 표정도 긴 시간 동안 기다린 사람이라 보기엔 힘들었다.

그리고 그런 의문을 확신으로 만들어준 건, 싱긋싱긋 웃고 있던 동자 본인이었다.

“그곳에서의 시간 흐름은 이곳과는 전혀 다릅니다. 아무리 그곳에서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누어도, 이곳에선 아주 짧은 시간밖에 되지 않죠. 도낏자루 일화의 역이라 할 수 있지요.”

도낏자루 일화라면···신선들이 바둑을 두는 걸 보고 있다 보니, 어느새 200년이 지났다던 그 이야기인가?

그것이 그녀의 능력 덕분인지, 아니면 정말로 그의 말대로 그곳의 시간 흐름이 현세보다 느린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느 쪽이건 내겐 상관없었다.

너무 긴 시간이 흘러서 동자가 먼저 떠나가지 않았다는 사실이 중요할 뿐.

하산하는 길. 아까처럼 앞에 서서 길을 걷던 동자가 입을 열었다.

“안에서는 선정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셨습니까?”

“별···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별 이야기가 아니기는 무슨.

말을 내뱉은 본인 스스로조차 부정할 만큼, 그 안에서 들었던 이야기는 정말 내 인생 그 자체를 송두리째 뒤집을 만한 이야기밖에 없었다.

내가 십오 년 전으로 돌아오게 된 이유부터, 권능의 창조자 초대 천마에 관련된 이야기.

그리고 무엇보다···.

힐끔.

···이 녀석의 과거까지.

마치 세상 모든 것이 거짓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처럼 완전히 절망한 표정.

선정에게서 자신과 초대 천마의 진실을 듣고 난 이후부터 화순은 쭉 이 표정이었다.

나와 관련된 진실도 충격스럽긴 마찬가지였지만, 녀석에 비하면 새 발의 피.

내가 지금껏 궁금했던 것의 진실에 대해서만 들었던 건에 반해, 이 녀석은 자신이 일생 받아왔던 고통이 자신의 친아버지로 인한 것임을 깨달았으니 말이다.

그것도 보통 사람의 일생을 수백 번은 될 만큼 긴 시간 동안 말이다.

···이렇게 충격받지 않는 게 오히려 말이 안 되는 상황이지.

“목소리의 이면에 뭔가 숨은 것은 있으나···제가 감히 건드릴 부분은 아니겠죠.”

높은 경지의 수련 덕분일까, 아니면 수백 년에 이르는 연배 덕분일까.

그는 내 목소리에서 분명히 뭔가를 느꼈음에도, 그것을 다시 묻는 일 없이 가볍게 넘어갔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아니요. 무얼요.”

뒷짐을 진 채 걷고 있던 그가 당연한 일인양 대답했다.

“선정과 이야기를 나누고 난 후면 으레 보이는 반응입니다. 선정의 이야기는 뭐랄까···사람의 근간을 흔드는 무언가가 있거든요.”

“당신도 비슷한 반응이었습니까?”

“하하하! 선정과 처음 만난 건 너무 옛날이라 선정과 나눈 이야기까진 기억나지 않지만···밖으로 나오자마자 처음 절 마주했던 스승님의 짓궂은 웃는 표정은 똑똑히 기억나는군요.”

“···선정의 성격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한 모양이군요.”

“인간으로서 감히 가늠할만한 존재가 아니니까요. ···허나, 그 이야기에 너무 깊이 짓눌려있진 마십시오.”

“네?”

“영산에서 수련하는 이들에게 도는 한 가지 이야기가 있지요. 선정과의 대화는 곧 시련이다.”

앞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멈추고 뒤로 돌아 나와 정면으로 마주친 동자는 마치 가르침을 내리는 스승처럼 진중한 표정과 목소리로 말했다.

“이것은 시련만큼 어렵고 고되다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넘어서면 얻는 것 또한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얻는 것이 많다···으음, 깊이 새겨듣겠습니다.”

“선정도 누군가 망가지길 바라며 그런 이야기를 전한 건 아니니···너무 안 좋은 의미로만 받아들이진 말아달란 말입니다.”

확실히 그녀도 그런 의미로 화순에게 그런 이야기를 전한 건 아니리라.

아니겠지마는···.

[·········.]

···부디 이겨내고 일어서기만을 빌어야겠지.

그렇게 분명 하산하는 길임에도 불구하고, 등산하는 것보다 훨씬 긴 것처럼 느껴지는 하산길은 쭉 이어졌다.

*****

나와 화순이 선정을 만나고 난 이후, 우리가 묵고 있는 산에도 이런저런 변화가 나타났다.

가장 큰 변화라면 역시나 이번 사후세계에 관련된 일 때문에 지금껏 외부로 파견을 나가 있던 선인들이 돌아온 일이었다.

“외부인이 어째서 여기에···.”

“선정의 가르침을 받으려고 온 게 아니라고? 그럼 대체 왜 온 것인가?”

“또 본인의 욕심만 차리러 온 이들인가···.”

처음에는 외부인이라고 나나 독고화에게 반감을 보이던 이들이 많았지만.

“뭐라고? 그가 정말 선주님께서도 패배한 사자를 물리쳤단 말인가?!”

“그뿐만 아니라, 선정께서 친히 불러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허어, 그런 위업을 보인 자라면 충분히 이곳에 묵을 자격을 갖췄다 할 수 있지.”

그들이 없는 동안 있었던 일을 듣고 난 후에는 그 태도를 완전히 바꿔, 마치 오랫동안 함께했던 동료처럼 나를 받아들였다.

물론 그것 덕분에 겉으로 보이는 뭔가가 바뀐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훨씬 지내기 편해졌다는 건 분명한 사실.

그들의 태도 변화에 기뻐한 건 독고화도 마찬가지였다.

“합! 합! 합!”

그들이 모여있는 수련장 한 켠, 다른 이들이 들고 있는 봉과 똑같은 모양의 봉을 꽉 쥔 채 열심히 흔드는 그녀.

동자의 배려로 이곳에서 생활하는 동안 원하는 걸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말에 그녀가 제일 먼저 선택한 건 다름 아닌 무공이었다.

저번 선인들과의 첫 만남에 마공의 폐해(혹은 고통)를 똑똑히 느낀 그녀는 새로운 무공에 목말라 하고 있었고, 이곳의 무공은 그런 그녀의 욕구를 해결할 수 있는 수많은 무공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독고화가 선택한 건 바로 봉.

지금껏 검을 사용하던 그녀가 봉을 새로 익히는 건 분명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 그녀는 자신이 괜히 천재라 불리던 게 아니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그녀에게 무공을 가르치던 선인들이 놀랄 만한 속도로 순식간에 새 무공을 습득해나갔다.

그런 독고화가 영산으로 돌아온 선인들과 만나게 된 건 필연이었다.

“허리는 쭉 펴고! 팔은 더 멀리!”

“호흡은 그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전신을 관조하여 온몸에 기가 퍼져나가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시선을 봉 끝에 두십시오. 봉 끝과 시선 모두 흔들리지 않을 때, 그때 진정 무기가 곧 신체의 연장선이 되는 겁니다.”

외부로 나간 이들은 남아있던 이들보다 더 높은 경지에 올라 있는 고수들이었다.

번개 유령을 위시한 사후세계의 사자들이 지닌 강함을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그만한 수준의 강자가 아니라면, 사후세계로 끌려가는 건 사자들이 아니라 선인들이 되었을 테니 말이다.

“수련은 잘 되고 계십니까?”

“네. 수련하면 할수록 몸에 활력이 넘쳐나고, 단전 안의 내공도 점점 말끔해지는 기분이에요. ···마교에서 무공을 익힐 땐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각이에요.”

“그거 다행이군요.”

독고화가 수련에 수련을 거듭하는 동안 나라고 해서 놀고만 있었던 거 당연히 아니다.

내가 선정과 만남에서 얻은 건 정보뿐만이 아니었다.

[임무 조건 : 자연의 힘으로 이루어진 세 개의 정수를 획득하라.

빙정(氷精) : 획득.

독정(毒精) : 획득.

선정(仙精) : 획득.]

[임무 보상 : 개당 40년의 내공. 임무 전원 달성 시 120년의 내공 획득 가능.

현재 120년 내공 획득.]

아주 오래전에 받았던 바로 그 임무.처음에는 대체 무얼 얻어야 하는지도 막막했던 그 임무를 지금은 완벽히 완수한 상태였다.

그리고 그 보상도 역시나 어마어마했다.

단 하나의 임무로 백 이십 년의 내공이니. 갑자로 치면 이갑자요, 그 내공만으로도 중원 무림에선 절정이나 초절정으로 인정받을 만한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정수를 통해 얻은 것이 내공만 있는 건 아니었다.

중원의 어느 누구도 감히 넘볼 수 없는 엄청난 양의 내공이 잠들어 있는 단전.

그리고 한 쪽에 자리 잡은 세 개의 이질적인 기운.

그 성질은 모두 어디 하나 공통된 부분 없이 다르지만, 분명 내 단전 한켠에 자리 잡고 있는 기운이요, 내게 힘을 주는 중요한 존재였다.

그리고 그 정체는 물론, 지금까지 내가 만났던 세 자연의 정수의 파편들이었다.

얼음의 힘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도록 해주는 빙정.

어떠한 생물이라도 죽일 수 있는 독을 뽑을 수 있는 동시에, 나 자신도 만독불침으로 만들어주는 독정.

아직 직접 써본 적은 없지만, 그 능력을 생각하면 이 둘에도 절대 뒤지지 않는 힘을 낼 수 있는 선정까지.

하나만 가져도 세상을 호령할만한 기운을 세 가지나 내 수중에 두고 있었으니, 사실상 무공, 내공과 더불어 내가 이만한 강함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 준 원동력 중 하나인 셈이다.

“흐읍, 후우.”

이미 다른 이들 모두가 잠든 깊은 밤.

아무리 중원이나 각종 세외의 다른 무인이 봐도 몸서리칠 정도로 수련한다는 선인들도 수련을 쉬고 잠을 잘 수밖에 없는 이 시간에도 나는 심상 속에서 수련에 수련을 거듭하고 있었다.

깊게 심호흡한 직후, 나는 정신을 가다듬고 내 상대를 그려나갔다.

거대한 체구와 전신에서 넘쳐흐르는 사나운 기세. 그리고 서 있는 것만으로도 느껴지는 압박감까지.

내 머릿속에 있는 이들 중 이만한 존재감을 위시할 수 있는 인간은 딱 하나.

독고삭.

지금 자신의 숙소에서 숙면을 취하고 있을 독고화의 아버지이자, 내가 아는 최강의 고수 중 한 사람이었다.

이와 비견할 수 있는 강자라 해봐야 신승이나 아까 싸웠던 번개 유령 정도일까.

전에 만났던 그 가주인가 뭔가 하는 사대도 약한 건 아니었지만, 이 세 사람과 비교하자면 역시 반수 정도 뒤처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내가 아는 최강의 사내, 그 뒤에서 하나둘 튀어나오는 다른 이들.

북해빙궁의 궁주와 독정에 빙의된 남만의 전대 황제.

옆에 독고삭이 서 있어서 빛이 바래긴 하지만, 그래도 각자의 세력권에선 독보적인 무력을 지닌 두 사람.

거기에 독고삭까지 포함한 이 세 사람이, 오늘 내 수련 상대였다.

“···이런 게 격세지감인가.”

처음에는 독고삭의 일수도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과거에, 언젠가 독고삭과 어느 정도 겨룰 수 있게 되었다가, 나중에는 큰 어려움 없이 승리를 거둘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지금은 그걸로도 모자라 두 사람의 강자와 함께 싸우려 한다.

참으로 무모한, 비이성적인 싸움이지만.

어째서일까.

“전혀 질 것 같지가 않은데 말이야.”

철혼과 태양. 두 자루의 창을 양손에 꽉 쥔채, 어마어마한 기세를 내뿜고 있는 세 사람을 가만히 바라본다.

그리고.

푸왁!

세 가지 기운이 섞인 강렬한 기세가, 내 전신에서 폭발했다.

*****

쩡!

근처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몸서리쳐질 만큼 싸늘한 한기.

그런 한기를 가득 머금은 장이 내 가슴을 향해 날아오자, 나는 바로 손을 들어 그 옆면에 손을 가져다 댔다.

스윽.

본디라면 이렇게 흘려보내는 것만으로도 내 손까지 꽁꽁 얼어붙겠지만, 내 손바닥에는 지금 빙궁주가 내뿜은 한기에 비견될만한 냉기가 담겨 있었다.

덕분에 아무런 피해 없이 흘려보낸 일장, 하지만 그에 반해 그는 전심전력을 다 한 일격이 빗겨나가자 훤히 약점을 들어낼 수밖에 없었고, 나는 그런 약점을 절대 놓치지 않았다.

푸왁!

그가 나를 노렸던 것처럼 그대로 그의 가슴에 박히는 내 일장.

빙정의 기운에 더해 불파의 강도까지 합쳐지자, 그의 단련된 근육과 뼈를 뚫고 내장까지 한순간에 닿는다.

한 번의 공격이 실패하자마자 바로 절명한 빙궁주의 뒤편으로, 독정에 빙의된 황제가 일격을 날린다.

권각에 서린 강렬한 독의 기운을 매섭게 뿜으며 달려드는 그.

본디 내 기억 속의 그는 이토록 체계적인 몸놀림 같은 건 불가능했지만, 내 심상 속에선 그 무엇이라도 가능했다.

독정에 취했다고는 믿기 힘든 훌륭한 무공으로 내게 달려드는 그였지만.

“흐읍!”

여전히 그렇다 해도 내가 내공도, 무공도, 심지어 독도 내가 한참 높은 경지에 있었다.

기합과 함께 땅을 밟아 강한 기운을 뿜어낸다.

군림.

독기가 섞인 군림이 한순간에 그의 몸을 감싸자, 앞으로 주먹과 발을 뻗던 그가 입을 벌린 채 몸이 굳는다.

고통이 아니라, 그의 몸에 들어간 신경독이 근육과 뼈 모두를 굳게 만든 탓이었다.

아무리 독정에 빙의된 상태라 해도 육신을 움직이는 건 뼈와 근육.

독으로 그 모두가 녹아내린 이상 어떤 짓을 해도 움직일 수 없었다.

그 뒤에 그를 처리하는 건 간단. 몇 번의 공격으로도 간단히 무너져내리는 그의 육신.

이제는 한 줌의 핏물로 바뀐 그를 바라보며, 힘없이 자리에 털썩 주저앉는다.

“후우···역시 힘드네, 힘들어.”

얼어붙은 빙궁주와 핏물로 변한 황제.

그리고 그 뒤편, 이 둘과 비교하면 깔끔하게 시체로만 남은 독고삭이 보였다.

그리고 그의 양옆에 떨어져 있는 반 토막 난 창 두 자루.

일부러 말해 뭐하겠느냐만, 물론 내 창이었다.

독고삭과 빙궁주. 그리고 황제의 협공은 매서웠다.

어찌어찌 독고삭을 먼저 제압할 순 있었지만, 두 자루의 창을 잃은 탓에 남은 두 사람은 권각으로만 쓰러뜨릴 수밖에 없었다.

“독고삭은 이백 수 넘게, 황제는 칠십 수 이, 빙궁주는 삼십 삼 수···아직 좀 더 줄일 수 있으려나.”

첫 수련으로는 괜찮은 성과지만, 더 줄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좀 더 강해질 수 있다.

이 생각은 여전히 나를 기쁘게 만든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보다···.

“···마음은 좀 풀렸냐?”

[·········.]

내가 강해지는 걸 무엇보다 좋아하던 화순의 무표정한 눈길.

그것을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리는 게 내게는 무엇보다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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