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정(4)
선정의 설명은 쭉 이어졌다.
“환생부는 아주 오래전 두 번 사용되었다가, 긴 시간 누구도 사용하지 않았던 것을 당신의 어머니가 당신에게 전해줌으로써 다시 작동되었습니다.”
[그럼···혹시 저의 어머니께서···그리고 제가 초대 천마님의 핏줄일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까?]
“제가 알기로 환생부가 외부로 유출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아마 그런 뜻이 되겠죠.”
쿠궁!
선정의 입에서 튀어나온 충격적인 발언에 나와 화순은 서로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독고삭이 내게 천마의 권능을 아무런 문제 없이 건네줄 수 있었던 이유도, 내가 그토록 천마의 권능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내가 천마의 핏줄이기에!
[자, 잠시만!]
하지만 의외로 순순히 받아들인 나와 달리, 화순은 다급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팔을 뻗으며 소리쳤다.
뭐, 그렇다고 해서 그런 녀석의 모습에 실망이나 아쉬움은 느끼지 않았다.
화순에게 초대 천마가 어떤 의미를 지닌 존재인지, 이미 한참 전부터 알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솔직히 나도 다른 놈이 ‘유현 너는 초대 천마님의 핏줄이란다’라고 하면 ‘미친놈이 사기를 치려면 좀 더 말이 되는 사기를 쳐라’라고 할 테고.
“네, 뭔가요?”
[아무리 그래도 이상하잖아. 그, 당신이 세상 모든 걸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정말로 단 한 번도 환생부가 밖으로 나간 적 없던 것 맞아!? 혹시 초대 천마님의 후손 중 하나가 술에 미쳐 팔아넘겼을 수도···!]
“아뇨, 그럴 일은 없습니다.”
화순의 말을 단호히 부정하는 선정.
“그것은 제 제자의 영혼 파편이 담긴 물건. 그것이 어디 있는지, 언제 사용되었는지도 파악하지 못한다면 스승 자격이 없지요. 첫 부적은 그가 받고 나서 십 년의 세월이 지난 후 사용되었고, 하나는 이십 년의 세월이 지난 후 사용되었죠. 그리고 남은 하나는 아주, 아주 긴 세월을 지나 당신이 사용하였고요.”
[그, 그럼···.]
“예. 그의 어머니가 초대 천마의 핏줄이며,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환생부를 들고 그에게 건네줬다···이것이 가장 옳은 추론이겠죠.”
반론 한 점 용납할 수 없을 정도로 단언하는 그녀의 모습에 화순도 더 다른 이야기를 꺼내진 못했다.
그저 충격을 속으로 삭이듯, 한숨만 연거푸 내뱉을 뿐이었다.
“충격이 많이 심하신 듯하군요.”
[예, 뭐···아니, 이놈이 그래도 천마의 핏줄이나 그런 쪽이라곤 생각했지만···설마 초대 천마님과 엮여 있으리라고는 생각 못 했으니까요.]
벅벅.
신경질적으로 자신의 더벅머리를 마구 긁는 화순.
그의 복잡한 심경이 담긴 손짓에 안 그래도 봉두난발이던 머리카락은 더욱 엉망진창이 되어갔다.
“하긴 충격이 심하실 수밖에 없겠죠.”
그녀는 걱정 어린 한 편, 우리를 달래는 듯한 목소리로.
“그가 당신의 먼 후손이라는 건, 분명히 큰 충격일 테니까요.”
담담히 두 번째 폭탄을 떨어뜨렸다.
[···네?]
[···네?]
지금 그 말을 들은 내 표정이 어떨까?
그 의문은 길게 이어질 필요도 없었다. 내 옆에서 그 이야기를 들은 화순이 나와 똑같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어머나, 모르셨나요?”
[아니, 당연히 몰···그런 걸 어떠···그게 무슨···.]
[미쳤습니까?]
평온한 목소리로 묻는 그녀에게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헷갈려 이런저런 말을 꺼내다 마는 화순과 그런 화순이 내 선조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심한 말을 입에서 내보내는 나.
우리 두 사람의 격앙된 반응에 선정의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 화가 나서 그런 게 아니라, 진심으로 놀랐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기억하고 계시리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군요.”
[아니, 아니아니아니. 저는 그냥 권능에 엮인 영혼일 뿐이라고요? 제가 왜 이 녀석의 선조···아니, 초대 천마님의 아들이라는 말입니까?]
“왜, 라니···.”
만약 표정만 바꿀 수 있다면, 너무나 당연한 질문을 들었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뜰 것만 같은 목소리로 그녀는 말했다.
“제가 직접 봤으니까요. 당신을 데리고 산에 올라오는 그의 모습을 말이죠.”
[직접 봤···그 말은 제가 여기를 왔던 적이 있단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당신이 말했죠? 왠지 모르게 익숙하다고요. 그건 당신이 여기 와봤던 건 물론, 저와도 만났던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확히는 현세에 남아있는 돌멩이 모습으로 마주했겠지만요.”
‘그때는 당신도 그런 모습은 아니었지만요.’ 담담한 목소리로 말하는 그녀와 달리, 이미 연속된 충격 발언으로 인해 우리 둘은 몸조차 가누지 못할 지경이었다.
내가 초대 천마의 핏줄이고, 녀석도 초대 천마의 핏줄. 그것도 나의 엄청나게 먼 조상이라니.
사실 나는 네 아빠였다···같은 소재는 이제 저잣거리의 닷 푼짜리 잡서에서도 지루한 소재라면서 안 쓴다고···!
[그 말.]
내가 그녀가 내뱉은 발언의 충격을 어떻게든 이겨내기 위해 이를 악물며 버티는 사이, 생전 처음 들어보는 화순의 차가운 목소리가 내 귀로 꽂혀 들어왔다.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사실이겠지?]
“그렇습니다. 저와 제 첫 제자의 명예를 걸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녀가 대답하자마자 뒤이어 들려오는 악에 받친 목소리. 얼굴을 마치 악귀처럼 일그러뜨리며, 그는 분노를 담아 소리쳤다.
[초대 천마는! 내 아버지는 나를 권능에 가뒀다, 이 말인가! 내 아버지가 나를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이런 꼴로 만들었다는 말을 믿으라는 말인가!]
화순은 나와 만나기 전부터, 아주 오랜 세월 동안 권능에 묶여 있었다.
지금에야 내가 만났던 그 누구보다도 수다쟁이인 그지만, 정작 그는 권능에 묶여 있던 삶의 대부분을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 공허한 삶을 살아왔다.
아니, 그걸 살아왔다고 말할 수 있을까.
누구랑 엮일 수도 없었고, 엮이지도 못했다.
그저 그 자리에 가만히 ‘존재’하고 있기만 했을 뿐.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자신을 창조해준···혹은 그렇다고 생각했던 초대 천마에 대한 분노나 증오는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아는 다른 마교 교도와 비교해도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열렬한 존경과 사랑을 보내왔다.
그런데 그 결과가, 아니, 시작이 그런 이야기라니.
지금 그가 내뱉는 분노만큼 정당한 목소리가 어디 있으며, 지금 그가 흘리는 눈물만큼 순수한 슬픔이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그런 화순의 노도와 같은 감정의 파도 앞에서 선정은 담담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제가 기억하는 당신은 무척 약했습니다.”
[당신이 기준이라면 그 누구라도 약할 수밖에 없겠죠.]
또 이야기를 돌린다고 생각했을까. 불퉁한 화순의 목소리에 그녀는 바로 부정의 말을 꺼냈다.
“아뇨, 저를 기준으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인간···당신과 똑같은 나이의 아이들과 비교해도, 당신은 정말 너무나 연약했습니다. 육신에 담긴 기운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근육의 양도, 그리고 뭣보다 튼튼해야만 하는 뼈까지. 그 어디 하나 정상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 부분 하나 없이, 모두가 엉망진창이었죠.”
힐끗.
선정의 말에 눈동자만 살짝 돌려 화순을 바라봤다.
지금 화순의 외면은 그런 그녀의 발언과는 모두 반대였다.
백(魄)만 남은 지금의 나와 달리 넘쳐나는 기운과, 숨길 수 없는 근육. 그리고 통짜라는 말이 무엇보다 어울리는 몸집까지.
이런 녀석이 태어날 땐 그런 약골이었다고?
“물론 원래 가지고 있는 골격이나 근본적인 기운은 그의 아들인 만큼 훌륭했지만, 당신은 그걸 제대로 살릴 순 없었어요. 당신의 육신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으니까요.”
[치명적인 문제? 그게 뭐였습니까?]
“구음절맥. 지금껏 수많은 사람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았던 그 저주를 당신 또한 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움찔.
가만히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기만 하려고 마음먹었다 해도, 그 단어에 반응하지 않는 건 역시나 무리였다.
구음절맥.
오직 싸우거나 죽이는 것으로만 얻을 수 있는 권능의 임무 중, 유일하게 누군가를 치료해야만 얻을 수 있는 내공.
그리고 그 질병이 바로 화순이 앓고 있었다는 구음절맥이었다.
···과연 이것이 우연일까?
[사내아이는 구음절맥에 걸리지 않는 것 아니었습니까?]
선정의 설명에 화순은 바로 의문의 목소리를 냈다.
확실히 그의 말 대로였다. 중원의 길고 긴 역사에도 몇 번 나온 적 없는 구음절맥이지만, 그런 극소수의 경우 속에서도 구음절맥이 사내에게 발현되었다는 이야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 것이, 구음절맥은 음기로 맥이 막히는 현상이다. 양기가 넘치는 사내아이가 맥이 막힐 만큼의 양기를 쌓을 방도는 거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세간에 알려진 바로는 그렇죠. 하지만 사내아이가 구음절맥에 걸리는 경우나, 여자아이가 구양절맥에 걸리는 경우가 전혀 없는 건 아닙니다. 다만 그렇게 되면 상극된 기운으로 인해 삼 년도 버티지 못하고 목숨을 잃기 때문에 많이 알려지지 않을 뿐이죠.”
[그럼 제가 그런 경우였단 말입니까?]
“···그의 노력 덕분에 당신은 운명을 거스르고 예정된 삶보다 더 긴 삶을 허락받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죠. 스스로 걷는 것조차 불가능했고, 쇠락한 육신에서는 금방이라도 혼백이 빠져나올 것만 같았죠.”
[·········.]
“그리고 그는 그런 당신을 데리고 이곳으로 올라왔죠. 마지막 희망을 붙잡기 위해서.”
스윽.
그녀의 눈동자가 다시 화순에게로 향한다.
연민과 그리움. 애정을 담은 그 눈빛은, 마치 오랫동안 헤어졌던 아들을 보는 어머니의 그것과 한없이 닮아 보였다.
“그의 노력은 어느 정도 결실을 맺었습니다. 움직이는 것조차 불가능했던 당신은 스스로 일어설 수 있었고, 창백했던 얼굴에는 혈색이 돌았죠.”
[그럼 저는 완치된 겁니까?]
“그건 아니었어요.”
그리고 그 눈빛에 슬픔이 깃드는 건, 화순의 단 한마디면 충분했다.
“아무리 강력한 선술과 저의 힘. 그리고 그의 능력이 있다고 해도 구음절맥은 끔찍한 저주였습니다. 그 모두를 더해도 병의 기색을 늦추는 게 한계였을 정도니까요.”
[사내의 구음절맥이 여자의 구음절맥보다 치료하기가 힘든 겁니까?]
“훨씬 더요. 맥을 막고 있는 음기를 해체하기만 하면 몸 안에 어떻게든 녹일 수 있는 여자와는 달리, 사내에겐 그 자체가 이미 지독한 독기에요.
한 번 뚫어도 어디 몸 밖으로 벗어나지 못하도록 꽉 붙잡아줘야 하는데, 만약 억지로 음기를 몸 밖으로 꺼내려고 했다간 음기로 막혀있던 맥에 양기가 몰려들어 더 큰 참사가 벌어질 수 있어요. 괜히 그나 제 제자가 치료하지 못했던 게 아니에요.”
그렇게 말하는 선정의 목소리에는 초대 천마와 자신의 제자에 대한 자부심과 함께, 당시의 화순에 대해 안타까움도 함께 섞여 있었다.
“그는 결국 당신의 치료를 끝내지 못하고 하산했죠. 그 뒤로 저에게 찾아오는 다른 아이들을 통해 그에 관한 이야기는 몇 가지 듣긴 했지만···전부 확실하게 믿을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었죠.”
[아마 마교의 설립이나 그 외에 여러 일이 있었을 테니까요. 그들이 들은 소문도 이런저런 살을 붙인 것일 테니 어쩔 수 없죠.]
“그가 어째서 당신을 이런 모습으로 만든 건지는 저도 알 수 없지만···그래도 그라면 분명 뭔가 생각이 있어서 그리했으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
선정의 말에도 화순의 다문 입은 열릴 기색이 없었다.
자신이 사실은 살아있는 인간이었으며, 심지어 초대 천마의 아들이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역시 긴 시간이 필요한 듯했다.
[그렇다면 권능은 여기서 만든 게 아니란 말씀입니까?]
“그 밑바탕은 제가 가르친 여러 선술이 깔려있긴 하지만, 제가 아는 선술 중에 그런 능력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렇군요.]
역시 그렇겠지.
만약 그녀가 가르쳤던 선술 중 권능과 비슷한 효용을 보이는 선술이 있었다면, 그걸 익히지 않았을 이유가 없었으니까.
역시 천마의 권능은 그 이름답게 초대 천마가 직접 만든 능력인 듯했다.
선정과의 문답 이후에도 여전히 침묵을 고수하는 화순을 슬쩍 쳐다본 그녀는 다시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제가 당신께 해드릴 수 있는 이야기는 이 정도인 것 같군요. 혹시 더 궁금하신 점이 있나요?]
“아뇨, 없습니다.”
선정과의 대화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이걸로 모두 얻었다.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면 좋겠지만, 그녀가 아는 건 환생부를 가지고 있었다, 외엔 없는 것 같았다.
물론···전혀 예상치 못한 이야기도 이것저것 많이 들었지만 말이다.
“다행이군요. 이제 두 분을 다시 현세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조금 충격이 있을 수 있으니, 대비하세요.”
···충격이라면 이미 여기서 들은 이야기로 충분히 경험했는데.
농담이나 한마디 던지고 갈까 했지만, 지금 옆에 나보다 훨씬 큰 충격을 받은 사람이 있었기에 나는 입을 다무는 수밖에 없었다.
“다음에 만날 땐 좀 더 웃는 모습으로 볼 수 있으면 좋겠네요.”
[네, 저도 그러길 바랍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조금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선정을 향해 손을 흔들며, 천천히 그녀의 기운에 따라 공중으로 떠오른다.
그리고.
파앗!
처음 이곳으로 왔을 때 만큼이나 찬란한 광채와 함께, 내 눈앞에는.
“이야기는 잘 나누고 오셨습니까?”
“···네. 원 없이 말하고 왔습니다.”
나를 여기까지 데리고 와준 동자가 나를 맞이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