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死者)의 습격(2)
우르릉! 쿠르릉!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는 말이 이보다 어울리는 광경이 또 있을까.
산 정상에 걸려있던 구름이 모두 사라지고, 쨍쨍한 푸른 하늘이 가리는 것 하나 없이 떠올라 있었지만.
쾅! 쾅! 쾅!
그 하늘에 어울리지 않는 천둥소리는 끊임없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으하하하하!!!]
···그리고 거기에 더해 별로 듣고 싶지 않은 웃음소리까지.
화순과 닮은(그러니까 얼굴이 닮았다는 게 아니라, 그 외의 모든 부분이.) 그 정체불명의 존재는 목도 아프지 않은지 하늘에서 번개가 한 번 내려칠 때마다 그에 지지 않는 웃음 또한 함께 뱉어내고 있었다.
[이 하찮은 현세의 존재들아! 빨리빨리 선정을 내놓지 못할까!]
자신의 번개를 피해 도망치는 이들을 향해 날리는 일갈.
그의 양손에 어린 번개는 아래에서 도망치고 있는 이들을 아주 아슬아슬하게, 허나 다른 피해는 없을 정도로 빗겨 맞추고 있었다.
아직은 사람을 해할 생각은 없다는 건가?
물론 인내심이라고는 국에 끓여 먹으려고 해도 없는 외모를 보아하니, 이 상황도 곧 한계에 이를 것 같지만···.
“갈!”
쿠구궁!
다행히도 그것을 막아낼 수 있는 사람이 여기에도 있었다.
“사후의 존재가 어찌하여 이 땅을 떠도는가! 당장 본디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지 못할까!”
[으응?]
자신을 향해 소리친 사람이 누군가, 하는 얼굴로 아래를 바라본 번개를 부리는 유령은, 곧 자신을 부른 것이 한낱 어린아이라는 걸 깨닫곤 얼굴이 일그러졌다.
[···흥! 내가 잠깐 없는 동안 현세가 아주 엉망진창이 되었군. 겨우 이런 꼬맹이가 네놈들의 대가리냐?]
고고고!
[살 이유가 없는 놈들뿐이구나!]
분노에 가득 찬 고함을 내지르며, 주변에 휘감고 있던 파괴적인 백색의 기운을 사방으로 흩뿌리는 유령.
곧 그것은 강력한 번개로 화해, 본인들이 안전하게 숨어있다 생각한 사람들을 향해 내려치기 시작했다!
쿠구구궁!
그들 하나하나가 모두 수련을 거친 선인들이지만, 지금 그들을 향해 내려치는 번개는 그들의 경지로 어찌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진심으로 죽이겠다는 살심을 품은 일격!
“하압!”
하지만 그것을 가만히 보고 있을 동자가 아니었다.
거친 함성과 함께 땅을 박찬 그의 손에는 유령의 것과 비슷한, 허나 그 성질은 완전히 반대인 부드러운 백색의 기운이 서려 있었다.
고오오오-
번개가 다른 선인들의 몸에 적중하기 직전, 동자의 부드러운 기운이 그들의 몸을 감쌌다.
쾅!
그리고 그 직후 내려치는 번개. 하지만 그렇게 내려친 번개는 그들의 육신에는 조금의 해도 끼치지 못했다.
진심의 살기를 담은 번개가 아무런 공격도 되지 못했다는 걸 깨달은 유령은 굳은 얼굴로 동자를 노려봤다.
[네놈···.]
그리고 그에지지 않는 분노를, 허나 살기는 한 점도 느껴지지 않는 동자의 눈빛에 굳은 얼굴을 풀고 입가에 슬며시 미소를 그리는 유령.
[···강하군. 네놈이 여기의 대가리라는 게 거짓은 아니었던 모양이야.]
“나는 이들의 우두머리 같은 게 아니다. 그들을 가르치는 스승이자, 그들에게서 배워나가는 제자이며, 그들과 함께 수련하는 동료일 뿐.”
대지에서부터 천천히 올라온 연기와 같은 하얀 기운이 동자의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마치 선녀의 날개옷처럼 일렁거리는 하얀 기운에는 그 유약한 모습과 달리 엄청난 힘이 느껴졌다.
[흥. 어느 쪽이건 상관없다!]
동자의 강력한 기운에 흥미가 생긴 건지, 아니면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부끄러움인진 몰라도 유령 또한 기운을 모으기 시작했다.
[나는 번개의 왕! 현생은 물론 사후 세계에서도 그 강함을 인정받아 두 번째 좌까지 오른 존재!]
번개의 왕이라. 다루는 힘을 보아하니 꽤 어울리는 이름이긴 하지만···자칭하기엔 조금 쪽팔리지 않나?
미적지근한 눈빛으로 그를 보고 있자니, 유령. 아니, 번개의 왕이 나를 바라보며 싱긋, 미소를 짓는 것이 아닌가.
[으흐흐, 내 이름을 듣고 두려움에 빠진 것이더냐?]
···응?
[하하하! 내 현생도, 사후 세계에서도 그리했지! 내 이름만 들으면 두려워하는 자가 부지기수였으니!]
···아니, 그럴 리가 없잖아.
[좋아! 마음에 들었다! 내 번개에도 도망치지 않는 그 무모한 용기와 나를 향한 존경의 눈빛! 네놈을 내 첫 번째 현계의 부하로 임명해주마!]
으하하하! 다시 한번 우렁찬 웃음을 내지르는 유···아니, 번개의 왕.
괜히 화순이랑 닮은 게 아니랄까 봐 아주 그냥 헛소리하는 것도 비슷한···.
[얌마! 왜 거기서 나를 욕하는 건데!]
아, 듣고 있었냐?
[당연하지! 쳇, 갑자기 왜 나를 욕하는 거야.]
내 말에 투덜거리던 화순은, 곧 진지한 표정으로 기세를 끌어올리고 있는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저놈, 말투나 이름은 이상하지만 그 강함은 진짜야.]
···그래, 그렇지.
번개를 다룬다, 라고 말하는 무인은 중원에도 여럿 있다.
번개의 기운을 담은 창을 쓴다는 뇌창이라는 고수나, 번개와 같은 속도로 검을 휘두른다고 말하는 뇌검문같은 문파. 혹은 번개처럼 암기를 쏘아낸다고 하는 당가의 뇌뢰골같은 무기들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한낱 복제품.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이자는, 진짜로 번개를 부리고 있었다.
번개의 왕이라는 이명을 자칭할만한 능력은 갖추고 있다는 뜻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그 이름이 좋게 들린다는 건 절대로 아니지만.
[흐아압!]
“하압!”
쿵!
화순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이, 대치를 끝낸 둘은 서로를 향해 강대한 기운을 분사하기 시작했다.
쾅!
쾅!
쾅!
그것은 일진일퇴. 아니, 만진만퇴의 싸움이었다.
땅이 좁다는 듯 하늘로 날아오른 두 사람은, 각각의 몸에 두른 기운을 한껏 서로에게 날린다.
모든 것을 부수는 파괴력과 빛과도 같은 속도를 갖춘 번개와 모든 것을 포용하는 부드러움과 저 넓은 하늘조차 모두 뒤덮는 광대함을 지닌 구름.
말 그대로 자연 간의 전쟁이 저 하늘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그것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관객은 오직 단 한 사람. 나밖에 없었다.
번개와 구름의 전쟁에는 한낱 파편조차 보통의 사람. 아니, 아무리 고절한 경지에 이른 자들이라 해도 목숨을 잃을 만한 힘이 담겨 있었다.
동자에게서 구함을 받은 선인들은 각자가 안전하다 생각한 장소에 숨은 채 부디 자신을 향해 공격이 날아오지 않기만을 비는 게 전부.
물론 나한테도 그런 파편들이 날아오지 않는 건 아니었으나.
번쩍!
쿵!
모든 것을 부수는 번개를, 절대 부술 수 없는 방패(不破)로 막아서고.
고오오-
스윽.
모든 것을 아우르는 구름은, 그것이 스스로 나를 피하니(逆轉).
그 위대한 결투를 아무런 걱정 없이 지켜볼 수 있는 이는 나 말곤 없었다.
쾅!
끼기긱!
크그그그그-
둘의 싸움은 원거리, 근거리를 나누지 않았다.
먼 거리에서 번개와 구름으로 힘을 겨루다가도, 어느새 가까이 다가가 서로를 향해 주먹과 발을 날린다.
온갖 해괴한 경험을 해왔던 나조차 감탄과 경악을 반복할 만큼, 엄청난 싸움의 연속.
한 번의 싸움으로 서로의 육체에 상흔이 새겨지면, 그 상흔을 순식간에 지우며 다음 싸움으로 넘어간다.
수십, 수백 번은 더 죽고 죽일 전투를 치렀음에도, 상처 하나 남지 않는 싸움이라!
이 모순된 싸움에는 한 치의 틈조차 없었다.
동자를 돕기 위해 그 틈을 노리고는 있었으나, 오직 두 사람밖에 나오지 않는 연극에 억지로 끼어들려는 불청객처럼 도저히 끼어들 틈이 없었다.
오히려 이 싸움에 끼어들면 동자에게 방해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하지만.
내가 더 길게 걱정할 겨를도 없이 그들의 싸움은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크윽!”
그것이 내가 원치 않던 방향이라는 게 문제였지만.
동자의 한줄기 비명과 함께 싸움의 판세 또한 많이 달라졌다.
한 줄기의 번개가 옆구리를 스친 직후, 뒤로 밀려 나가기 시작하는 동자.
옆구리의 상처 때문에? 아니, 그건 아니다.
분명 다른 이었다면 싸움을 이어나가기는커녕 죽느냐 마느냐를 걱정해야 할 만큼 극심한 상처였지만, 그는 그런 상처조차 일순간에 회복했다.
저 상처를 남기는 동시에 뭔가 한 것이 분명하다.
[으하하하하!!!]
확실한 승기를 거머쥐었다는 걸 깨달은 것일까. 번개의 왕은 동자를 향해 내려치는 번개의 강도를 점점 높이기 시작했다.
아슬아슬하지만 수월하게 막아가던 전과 달리 점점 뒤로 밀리기 시작한 동자는 어떻게든 직격만은 당하지 않기 위해 자신의 주변에 기운을 끌어모았지만.
끽!
그것도 어디까지나 시간 벌기일 뿐.
이제 그의 패배는 기정사실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쾅!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그 소리 자체만으로도 하늘을 울리게 하는 거대한 번개와 함께.
펑!
동자의 전방을 막고 있던 옅은 구름이 부서지며.
“끄아아악!!!”
그 뒤를 쫓는 끔찍한 비명.
마침내, 싸움의 끝이 찾아온 것이다.
“선주님!”
숨어있던 선인 중 하나가 그 비명 소리를 듣고 밖으로 빠져나와 그에게 달려갔다.
하늘하늘, 마치 공중에서 떨어진 습자지처럼 느릿하게 추락하던 그를 잡아채는 건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번개에 당해 거멓게 탄 전신. 호흡은 하고 있었지만, 매우 옅고, 또 느릿느릿하다.
“치, 치료를···!”
[으하하하하!]
동자를 받아낸 선인이 덜덜 떨며 그를 향해 손을 뻗는 그 순간, 하늘에서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자, 이제 네놈들의 대가리도 쓰러졌으니, 살고 싶다면 순순히 내 말을 따라라.]
“허, 헛소리, 우리가 네놈의 말을···!”
[흡!]
쾅!
“히이익!”
숨어있던 다른 선인이 그의 말에 튀어나와 목소리를 높였지만, 그의 발치에 번개가 내려치자 그 입을 다무는 수밖에 없었다.
[내가 원하는 건 네놈들의 대가리의 목숨도, 네놈들의 목숨도 아니다.]
번뜩!
[선정! 내가 영원불멸 현세의 왕으로 남을 수 있도록 해주는 보물!]
그는 탐욕스러운 눈빛을 전혀 숨기지 않은 채, 쓰러진 선인과 동자를 받아든 선인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큰소리로 외쳤다.
[그것만 얻을 수 있다면 너희들은 목숨은 무가치하다! 그러니 내놔라! 너희의 보물을! 진정 영원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나의 보물을!]
“그것은···줄 수 없다···.”
“선주!”
그의 욕심 가득한 외침에 정신을 차린 듯, 동자는 겨우겨우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것은···현세의 업화···현세의 정수···사자가 감히···품을 수 있는 건···아니니···.”
[아직도 죽은 자이니, 산 자이니 마구 시끄럽게 떠드는 것이냐?]
쿵!
동자의 말에 하늘에서 내려온 그는 성큼성큼, 힘 있는 발걸음으로 그에게 다가갔다.
[보물은 오직 강자의 것이어야만 한다! 죽은 자니, 산 자니! 그런 건 아무걷소 상관 없어!]
“힘에 대한 집착···본디···환생을 겪어야 할···당신이···그토록 버티는 이유가···그런 건가···?”
동자의 질문에 그가 눈매를 꿈틀거리며 크게 발을 굴렀다.
[그래!]
쿵!
[그 넓은 대지를 모두 지배하여 하늘의 주인! 번개의 왕이라 불리던 내게도 죽음은 찾아왔다! 허나 진정으로 강한 자는 죽음 이후에도 여전히 강한 법! 이것이 바로 세계의 법칙이요! 규칙이었다! 그렇다면 그런 강함을 영원토록 구가하고자 하는 것이 잘못됐다는 것이냐! 아니!]
쿵! 쿵! 쿵!
분노인가, 아니면 열망인가.
알 수 없는 감정을 품은 채 계속해서 발을 구르던 그는 번뜩! 강렬한 안광을 내뿜으며 큰소리로 외쳤다.
[그것이 세상의 흐름이다! 진정한 강자는 그 힘을 영원히 간직할 수 있어야 진짜 강자인 법! 그것을 위해선 선정이, 나의 힘을 영원토록 유지할 보물이 필요하다!]
“···죽음 뒤에도 욕망을 내려놓지 못한 이여. 그것은 틀렸네.”
[뭐라?]
“현세의 보물은 현세의 존재에게 맡겨야 하는 법···자네는 그것의 주인이 될 수 없네···.”
[그렇다면 네놈이 그것의 주인이어야 한다는 말인가? 너 같은 약자가?]
“아니. 나도 아니지.”
스윽.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돌린 동자의 시선이 어딘가로 향했다.
자신을 받아준 선인도 아니고, 그를 향해 목소리를 높인 선인도 아닌, 제삼의 인물.
“···응?”
그러니까, 나한테.
“···운명이란 기이하지. 전혀 알 수 없는 때에, 알 수 없는 식으로 해답을 내놓곤 하니까. 그 해답을 손에 넣을 수 있느냐, 없느냐는 순전히 운일 뿐이지만.”
까맣게 탄 얼굴로 부드럽게 미소를 지은 그가 내게 말했다.
“자네가 생각하기엔···내가 운이 좋은 것 같나?”
“·········.”
챙.
동자의 말에 별다른 대답 없이, 나는 등에 메고 있던 두 자루의 창을 꺼냈다.
아니, 대답이 없었다는 건 틀린 말인가.
이만큼 확실한 대답은 또 없을테니까.
“고맙네···.”
[네놈···!]
상반된 기운 만큼이나 상반된 반응을 보여주는 두 사람.
“솔직히 딱히, 끼어들 생각은 없었지만···저분이 저리 부탁하니..”
물론 거짓말이다.
안 그래도 선정이니 뭐니, 이야기가 나올 때부터 한껏 끼어들고 싶어서 몸을 애태우고 있었으니까.
“한 판 제대로 붙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