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2)
일촉즉발.
서로의(그러니까, 말 그대로) 기 싸움은 멈췄지만, 그렇다 해서 우리가 바로 웃으며 서로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함께 걸어갔다는 건 당연히 아니다.
물리적인 대립은 멈추었을지 몰라도, 우리는 여전히 대치 상황에 빠져 있었다.
나는 독고화를 안은 채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고, 그들 또한 중앙의 노인 외의 두 사람은 내가 빈틈만 보이면 바로 달려들려는 듯, 기세를 죽이지 않고 노려보고 있었으니까.
···꿀꺽.
이들이 우리가 목적하던 동이의 신선···아니, 정말로 신선이 맞는지 아닌진 모르지만, 어쨌든 기이한 능력이 있는 자들이라는 건 알았다.
조금 전 그 사실과 같은 환각과 그 목소리의 형태를 띤 기운까지.
견문이 좁다곤 할 수 없는 나도 그런 건 지금껏 단 한 번도 본 적 없었다.
물론 진짜라면 저런 건 대수도 아니겠지만···말이지.
“···알려주는 건 어렵지 않지만, 조건이 있다.”
“뭔가?”
“지금 그녀는 조금 전 네놈들의 공격에 작지 않은 피해를 보았다. 먼저 그녀를 치료할만한 곳이 필요하다. 이야기는 그 뒤다.”
더 심해지기 전에 멈추긴 했지만, 독고화의 내상은 자연 치유로 어찌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니었다.
지금 내 내공으로 그녀의 내상이 더 심해지지 않는 걸 막고는 있었지만, 이 정도로는 현상 유지 이상도, 이하도 될 수 없다.
한시라도 빨리 제대로 된 곳에 눕혀 치료를 진행해야 했다.
아무리 신선이라지만, 그들도 어딘가 숙식은 할 터.
네놈들의 안방을 내놓으라는 소리나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바로 거절할 정도로 말도 안 되는 제안은 아니겠지.
내 말에 바짝 긴장하고 있던 두 사람의 시선이 내가 아니라 중앙의 그에게로 향했다.
역시나 그가 결정권자였나.
겉모습으로는 딱히 큰 차이점을 보이지 않았지만, 은연중에 풍기는 분위기나 기운은 분명 그가 단 한 발자국이라도 그들보다 앞선 경지에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짧다고도, 그렇다고 길다고도 말할 수 없을 만한 시간 동안 고민하고 있던 그는 결국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다른 두 노인도 경계 태세를 풀고 허리를 꼿꼿이 폈다.
···허, 명령 체계 하나는 확실하다, 이건가?
신선 세계도 편하지만은 않군.
“어차피 그 아이에게도 물어볼 것이 있었으니, 상관없겠지.”
그의 허락이 떨어지자, 나는 바로 그녀를 녀석의 등에 눕히고, 녀석을 이끌고선 놈들의 뒤를 따랐다.
한 치 앞도 바라보기 힘든 풀숲은 사라졌지만, 하늘에 닿은 정상은 안개와 구름에 가려 여전히 볼 수 없었다.
설마 정말로 정상에 사는 건가? 저 하늘까지 올라가야 한다는 말인가?
내상으로 인해 가쁜 호흡을 내쉬고 있는 독고화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지켜보고 있자, 앞에서 걷고 있던 그가 입을 열었다.
“정상까지 올라갈 일은 없으니, 그리 걱정할 필요 없네.”
“···혹시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신통력도 있나?”
“그 정도는 아니지만, 행동이나 말투에서 무슨 생각을 하는가 정도는 읽을 수 있네.”
힐끔. 그는 살짝 우리를 바라보더니, 다시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서로 상극인 기운을 품고 있으면서 그토록 지극정성이라니. 둘 사이에 뭔가 사정이 있는가?”
“그저 길 가다가 만난 사이일 뿐이야. ···애초에 상극이니 뭐니, 그것도 당신에게 듣고 나서야 알았고.”
아니,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당연히 그녀와 내가 비슷한 기운의 내공을 지니고 있을 줄 알았다.
내 무공의 근간은 어디까지나 천마의 힘이라 할 수 있는 권능이었고, 그녀는 천마의 여식이었으니, 서로 어느 정도 연관은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사실은 오히려 반대.
지고지순한 기운의 집합체인 내 내공과 달리, 그녀는 기운은 말도 안 될 만큼 혼탁하고, 복잡했다.
내 기운이 불순물 없는 철로 이루어진 탑이라면, 독고화의 기운은 온갖 것이 잔뜩 섞인 모래탑과 같았다.
만약 내가 완숙한 치료 경험이 없었더라면, 감히 건드리는 것조차 불가능했을 만큼 상극의 기운.
오히려 내 기운은 그들이 방금 내뿜고 있던 그 순수한 기에 조금 더 가까웠다.
내가 그들에게 좀 더 공격적으로 나서지 않았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저들이 정말로 권능과 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 생각 한 줄이 공격을 막아선 것이다.
물론, 아직 정답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느 정도 올랐을까.
여전히 산의 정상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거기 걸린 구름의 크기는 알 수 있을 만한 거리까지 오르자 주변에서 나나 그 노인과 비슷한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마을···? 아니, 그렇게 칭할 정도는 아닌가.
그 힘은 분명 눈앞의 노인처럼 강인하지만, 많아도 서른을 넘지 않았다. 마을이라기보단, 그저 뜻이 맞는 사람끼리 모인 모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왔느냐.”
그리고 그런 그들의 기운이 모인 곳의 중심지에 도착한 순간 누군가가 나타났다.
나보다 머리 둘은 작은 키에 앳된 얼굴. 그리고 짧게 자른 머리.
겉모습만 봤을 땐 여기 기거하는 이들을 모시는 동자처럼 보였지만···아니다.
이 강대한 기운.
나와 함께 왔던 노인 셋을 모두 합쳐도 이기지 못할 엄청난 힘이 지금 그에게서 느껴지고 있었다.
“조금 늦었구나. 그리고···.”
스윽.
나와 독고화를 살짝 스치듯 살핀 동자는 다시 노인에게로 시선을 돌려 말했다.
“예상치 못한 손님도 데리고 왔고.”
“죄송합니다. 본디 그냥 쫓아낼 생각이었지만···.”
“아니, 괜찮다. 오히려 잘했다.”
노인의 말에 동자는 나와 독고화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그 아이는 괜찮나?”
“···지금은 내상 때문에 잠깐 재워놨소.”
분위기상 하대를 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존대를 하기에는 아직 이 자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결국 어정쩡한 반 존대로 그에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를 치료하고 싶은데, 혹시 그녀를 눕힐만한 장소가 있소?”
“그럴 필요 없네.”
싱긋.
아이 특유의 쾌활한 웃음을 입가에 그리며, 그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 아이는 이미 치료를 마쳤으니 말이야.”
“그게 무···?”
“헉!”
내가 채 말을 끝내기도 전에 녀석의 등 위에 몸을 싣고 있던 독고화가 크게 숨을 들이켜며 상체를 일으켰다.
“나, 나는 무슨···어떤···?”
갑작스럽게 잠에서 깨어난 독고화는 놀란 표정으로 자신의 몸을, 특히 단전 부분을 계속해서 더듬었다.
내가 수혈을 집어 재우기 직전까지 단전이 깨지는 듯한 고통을 받았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자신의 상태를 스스로 확인하는 그녀의 옆에서 나 역시 그녀의 몸을 최대한 살폈다.
깨어나자마자 내뱉었던 첫 호흡을 제외하면 호흡도 고르고, 흔히 고통을 느끼면 자연스레 나와야 할 식은땀도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있다.
···진맥을 짚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지금 그녀는, 그의 말대로 완벽하게 치료된 상태였다.
“단전에 탁한 기운이 많아 그것도 함께 고쳐볼까 했지만, 이미 그 자체가 단전이 되어버려서 어쩔 수 없구나.”
···정말로 이 동자가 치료한 게 맞구나.
진맥을 짚어보지 않는 한 모를 독고화의 단전 상태까지 다 안다는 듯 말하는 그를 보면, 믿고 싶지 않아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진맥은커녕, 다가가지도 않고 그토록 심한 내상을 치료한다는 게 일반 상식적으로는 말도 안 되는 소리였지만···.
“자, 그럼 자네가 말한 건 해결되었으니, 이제는 우리가 물었던 걸 답해줄 차례겠지?”
지금 그의 앞에서는 ‘상식’이라는 단어조차 무의미했다.
*****
독고화를 손도 대지 않고 순식간에 치료한 동자가 우리를 데리고 간 곳은 도가라면 으레 하나씩 걸려있는 족자에서 자주 나오는 그런 신선의 집이었다.
지붕에 오르면 구름에도 닿을 듯 하늘과 가까운 초가집은 두 개의 방과 하나의 부엌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자, 이쪽이네. 들어오게나.”
손님방으로 보이는 자그마한 방으로 우리를 안내한 동자는 한쪽 모서리에 있던 방석을 세 개 나와 독고화. 그리고 자신의 자리에 내려놓았다.
“더럽지는 않으니 편안히 앉게. 이래 보여도 깔끔한 걸 좋아해서 빨래는 자주 하니까 말이야.”
하하하! 아이에게 걸맞은 높은 웃음소리를 기분 좋게 내뱉으며, 그는 먼저 자리에 앉았다.
어떤 면에서 보면 아이 같고, 어떤 면에서 보면 노인 같으며, 어떤 면에서 보면 세속에서 벗어난 신선처럼 보인다.
···도저히 내 안목으로는 그 정체를 파악할 수가 없다.
조금이라도 정보를 캐내려면···일단 그의 말에 따르는 게 좋겠지.
그의 말대로 자리에 앉는 그 순간, 나와 독고화의 앞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차와 여러 종류의 다가가 눈앞에 나타났다.
···선술(仙術)이라기보단 요술(妖術) 같군.
그나마 조금 전 그의 능력을 직접 지켜봤던 나와 달리, 정작 그 당사자면서 자신의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르고 있던 독고화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목청을 높였다.
“꺄악! 이, 이건 뭐예요! 도대체 어떻게 차가?! 다과가?!”
“숨겨놨던 걸 다시 꺼냈을 뿐이네. 간단한 선술이지.”
그는 그렇게 말하며 어느새 그의 앞에도 똑같이 나타난 차를 조심스럽게 들어 한 모금 삼켰다.
동자의 손에는 어울리지 않는 큼지막한 찻잔이었지만, 기이하게도 그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어울렸다.
“그래.”
우리가 각자 차를 한 모금씩 하고 잔을 다시 내려놓자, 동자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일단 내가 질문을 하겠다고 데려왔지만, 내 질문은 하나뿐이고, 자네들이 내게 물을 건 많아 보이니 먼저 질문을 받겠네. 뭐가 궁금한가?”
갑자기 자신들의 영역으로 들어온 우리에게 질문을 하는 게 아니라, 질문을 할 기회를 주겠다 말하는 동자.
그런 그의 태도에 나와 독고화는 서로를 가만히 바라보다, 다시 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정말로 무슨 질문이건 다 대답해 주는 걸까?
“그···.”
우리 둘 중 먼저 입을 연 건 독고화였다.
더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꿀꺽, 긴장 어린 침을 삼킨 그녀는 조심스레 입을 열어 본인이 그토록 원하던 질문을 꺼내 들었다.
“···혹시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그쪽이냐!
아니, 물론 나도 궁금하긴 하지만! 궁금하긴 한데! 말투도 그렇고, 행동도 그렇고, 저 나이 먹을 대로 먹은 것 같은 노신선 같은 사람한테 존대 받는 것도 그렇고!
진짜 절대로 겉모습처럼 보이지 않긴 하지만!
그래도 가장 먼저 할 질문이 있지 않을까?!
그런 의미의 시선을 그녀에게로 향하자, 그녀는 또 그녀대로 ‘왜요! 당신도 궁금했잖아요!’이런 눈빛을 보내왔다.
···아니, 사실이긴 하지만! 그래도 좀 더 중요한 질문을 꺼내도 괜찮잖아!
“하하하! 참으로 재밌는 아이들이로구나!”
우리의 그런 시선 교환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그는 큰 소리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이라···뭐, 겉모습보다는 더 먹긴 했네.”
···아니, 그거야 당연하겠지.
“···라고 말하면 원하는 대답이 아니겠지.”
장난스럽게 미소를 지은 그는 우리의 뒤편에 있는 문을 바라보며 다시 대답했다.
“밖에 있는 저 아이의 조부가 내 동갑 친우였네. 그거면 대충 대답이 되었는가?”
허리까지 수염이 자란 노인의 조부···으음···.
독고화도 나랑 비슷한 걸 생각했는지, 어딘가 불편한 표정을 지으며 눈앞의 동자를 바라보았다.
“여기서 살아가다 보면 시간 따위는 잊게 되지. 그래서 나도 내 정확한 나이는 모르네.”
“아···그렇군요···.”
그녀가 원하던 정확한 숫자 같은 건 나오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것만으로 그럭저럭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그러면 겉모습은 어쩌다가···.”
여전히 우리가 찾아온 이유와는 전혀 상관없는 질문이었지만, 동자는 불쾌한 기색 하나 없이 웃으며 그녀의 말에 대답했다.
“원래는 나도 저 아이처럼 나이에 어울리는 모습이었지. 하지만 수련을 쌓아 경지에 오르니 하얀 머리가 새까맣게 변하고, 주름진 얼굴이 점점 펴지더니···이리되더군.”
그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몸을 보라는 듯, 위에서 아래로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래도 크게 불편한 점은 없네. 속세였다면 큰 소란이 일어날지도 모르나, 여기 있는 사람들은 그런 건 신경도 쓰지 않는 사람들이니 말이야.”
“그, 그렇군요.”
아직 여기 있는 사람이라 해봐야 겨우 네 명밖에 못 만나봤지만···확실히 그는 여러모로 대우받고 있다는 건 느낄 수 있었다.
“그래, 이 정도면 내 신상명세에 대한 궁금증은 풀렸을 테고.”
싱긋.
“이제 자네들이 이 험난한 거리까지 찾아온 진짜 이유···들어볼 수 있겠나?”
소리 없이 입가로만 미소를 짓는 그의 모습에 독고화는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자신이 먼저 이야기를 해도 되겠느냐, 그런 시선이었다.
끄덕.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다시 동자에게 시선을 돌려 질문했다.
“여러분은 혹시···죽은 사람과 이야기할 수 있나요?”
여기 찾아온 목적. 이유. 그리고 바램.
긴장과 기대로 떨리는 눈으로 동자를, 그리고 그의 입을 가만히 응시하는 독고화를 향해, 동자는 대답했다.
“그렇네.”
긍정.
“우리는 죽은 자와 이야기할 수 있네.”
“그, 그렇다면!”
그토록 원하던 대답에 독고화가 만면에 미소를 띄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허나.”
하지만 그런 그녀의 기대를 단숨에 자르는 동자의 말.
“지금은 할 수 없네.”
그가 처음으로 꺼낸 단호한 표정에는 조금의 반박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의지가 굳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