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1)
그날 저녁.
“으하하하하!”
“라꾸바! 라꾸바!”
유목민 부족에서는 성대한 잔치가 열렸다.
마을 중앙에 커다란 모닥불 여섯 개를 피우고, 거기에 숫양을 통째로 한 마리씩 굽고, 그 주변에는 아이고 어른이고 할 것 없이 소나 양. 말의 젖으로 만든 술로 거나하게 취한 사람들이 목청을 높여 전통 노래를 부르며 춤을 췄다.
족장의 옆에서 통째로 구운 양과 소의 고기 중 제일 좋은 부위를 건네받은 나와 독고화는 그들의 전통에 맞춰 주머니칼로만 그것을 먹으며 그 광경을 즐거이 바라봤다.
“우웅···마쿠나···마쿠나···.”
미아는 저기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서 마유주를 한 입 받아먹고 와선 취한 듯 벌겋게 물든 얼굴로 독고화의 옆에 꼭 달라붙어 있었다.
그리고 독고화는 그런 미아를 귀찮아하는 기색 하나 없이, 오히려 웃으며 쓰다듬어 주고 있었다.
족장(들어보니 미아는 그의 손녀라고 한다)은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너를 마쿠나라 생각한다.”
“마쿠나요?”
“손위 자매. 너의 말로는 언니다.”
“언니···.”
족장의 말에 독고화는 살짝 놀란 듯, 허나 불쾌한 기색은 없이 미우의 취한 얼굴을 가만히 응시했다.
“그렇군요.”
잠깐 뭔가를 생각하듯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던 그녀는 처연한 미소를 지으며 미아의 얼굴 전부를 아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저도···항상 동생이 있었으면 했거든요.”
“그렇습니까?”
“네. ···하지만 불가능한 일이었죠.”
왜? 라는 질문을 꺼내려다 바로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어머니, 서란이 그녀를 낳고 일 년이란 짧은 시간 만에 목숨을 잃었던 사실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그래도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종종 아버지에게 그런 부탁을 하긴 했어요. 동생이 가지고 싶다, 동생이 있으면 좋겠다···하고요. 그렇게 하면 아버지가 절 쓰다듬어 주셨거든요.”
마치 독고삭이 그렇게 했다는 듯, 그녀는 술과 잠에 반씩 취한 미아의 머리를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그것도 오래가진 않았지만요.”
“···그러고 보니.”
쉬이 열리지 않는 입을 마유주로 살짝 적시고 다시 열었다.
“죽은 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하셨는데···어떤 분과 이야기를 나누시고 싶으신 겁니까?”
“·········.”
우뚝.
내 질문에 독고화는 순간 미아를 쓰다듬던 손을 멈췄다.
하지만 그건 아주 잠시. 자신을 쓰다듬던 손길이 멈추자 미아가 몸을 떨었고, 독고화는 바로 다시 그녀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어머니요.”
그리고 그녀의 입 또한 다시 움직였다.
“그리고 가능할진 모르겠지만, 만약에 된다면 아버지도요.”
역시나 그런가.
아니, 애초에 그녀가 부를 만한 사람이라면 그 두 사람밖에 없긴 하겠지만 말이다.
사실 이번 질문은 진심으로 궁금했던 것도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다음 질문을 꺼내기 위한 준비일 뿐이지.
“혹시나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어떤 걸 물어보시러 가시는 건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이번은 대답이 나오기까지 전만큼 길게 걸리지 않았다.
아주 잠깐 입을 닫고 있던 그녀는 살짝 입을 열어 취기와 웃음기 섞인 대답을 꺼냈다.
“···의외네요. 지금껏 물어보지 않으시길래 그런 쪽으론 궁금하지 않으신 줄 알았는데요.”
“궁금하긴 했죠. 다만 실례일까 봐 여쭈지 못했을 뿐이죠.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정말로 그게 가능하지 않을지도 몰랐고요.”
“그럼 지금은요?”
“이때가 아니면 물어보지 못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이제 이 여정의 끝도 보이기 시작하고, 서로 취기도 적당히 돌았잖습니까. 각자 속에 살짝 담아뒀던 이야기는 나눌 만하죠.”
“흐음, 그런가요.”
그녀는 그리 말하며 미우를 쓰다듬는 것과 반대쪽 팔로 칼을 들고 고기를 찍어 입으로 옮겼다.
아주 천천히, 오랫동안 그것을 씹고 있던 그녀는 마치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꿀꺽, 그것을 삼켰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이 나온 건 그 직후였다.
“사실 질문할 거리는 잔뜩 생각해놨었어요. 내게 어머니가 없다는 걸 자각했을 때부터였으니까, 두 살? 세 살? 아마 그때부터 질문을 생각해놨을 거예요. 심지어 어디에다가 적어두기도 했었죠. 뭐, 그 쪽지는 예전에 잃어버렸지만요.”
어릴 때의 추억을 이야기하듯 그녀는 조곤조곤 말을 꺼냈다.
“그 질문을 하는 게 애초부터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는, 질문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아무리 저희 가문이 대단하다고 해도 그 방법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죠. 제 손이 닿는 서책을 모두 읽고, 하인들에게 천 리 밖의 정보도 찾아오라 했죠.”
···그러고 보니 정보부 제일의 실력을 갖춘 대대가 천마의 여식이 내린 임무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설마 십수 년째 하나의 임무만 맡고 있던 갑 대대의 임무가 그거였나?
회귀 전 궁금했던 의문이 하나 풀리는 순간이었지만, 딱히 그것을 내색하진 않았다.
그저 가만히 그녀의 이야기에 집중하기만 할 뿐.
“그렇게 방법을 찾고, 찾고, 또 찾는 사이···제겐 질문 그 자체보다 질문할 방법을 찾는 게 오히려 주가 되어버렸어요. 방법이 목적을 잡아먹은 거죠.”
“세상사에 흔히 있는 이야기죠. 특히 그러는 이유조차 잊어버리면 더욱 그렇고요.”
“후후, 그렇죠.”
내 말에 미소를 짓던 독고화는 품 안을 뒤적여 한 장의 종이를 꺼내 들었다.
지금 이 여정이 시작된 그 이유. 초대 천마가 남긴 갑골문의 번역본이 적힌 쪽지였다.
“설마 그 대답이, 저희 가문의 서고에 있으리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 했지만요.”
“행복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그런 이야기인가요?”
“뭐, 행복인지 아닌진 모르겠지만요.”
자신이 바라던 그 부분, 죽은 자와 이야기할 수 있는 방법에 시선을 향하고 있던 그녀는 다시 품 안에 그것을 집어넣었다.
“고마워요.”
“네?”
이야기의 끝에 튀어나온 그녀의 발언은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
그저 지나가듯 말한 게 아니라, 진심이 담긴 감사.
그것은 마교를 지배하는 천마의 여식이 꺼냈다고는 믿기 힘든 발언이었기 때문이다.
“당신이 아니었다면 그 이유도, 목적도 모두 이루지 못했을 테니까요.”
“···뭘요.”
그저 이해관계가 들어맞았을 뿐이다, 그 이상, 그 이하의 이유도 없다는 게 본심이었지만.
“곤경에 처한 여인을 구하는 건 당연한 일이죠.”
입에서 나온 대답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후후, 그런가요?”
내 대답에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독고화는 고기를 담은 접시 옆, 가죽 부대를 들어 올려 입가로 가져갔다.
우리의 대화는 그걸로 끝났지만, 우리를 위한 축제는 여전히 이어졌다.
아주, 아주 긴 시간 동안 쭉.
*****
다음날 정오.
높이 솟아오른 태양 아래서 다시 우리의 여정을 시작하기 위해 나와 독고화는 부족의 입구로 향했다.
따로 누군가 배웅을 해주러 오진 않았지만, 그것에 아쉬워하진 않았다. 이미 어제 부족장이 이에 관해 이야기를 해줬기 때문이다.
“우리는 배웅하지 않는다. 다시 돌아온 사람을 환대할 뿐이다. 너희도 그렇다.”
마유주를 잔뜩 마시고 거나하게 취한 부족장은 껄껄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모든 일이 끝나면 돌아온다. 그러면 또 환영한다.”
···참으로 그들다운 대응이었다.
어제 함께 이야기를 들었던 독고화는 아쉬움 가득한 표정으로 족장의 천막. 정확히는 미아가 있는 그곳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아주 잠깐. 마음에 남아 있던 아쉬움을 지운 그녀는 웃으며 나를 향해 말했다.
“일이 끝나면 꼭 다시 돌아오죠.”
“네, 그렇게 합시다.”
부족을 뒤로한 후, 우리는 끝없이 펼쳐진 동쪽 평야를 달려나갔다.
평상시라면 외부인을 혐오하다 못해 증오하는 다른 유목민 부족으로 인해 험난한 여정이 되어야 했겠지만, 그들도 죽은 자를 두려워해 한 곳에만 박혀 있는지라 그럴 걱정은 없다고 한다.
그의 말대로 지평선을 넘고, 또 넘을 때까지 우리의 앞에는 누구도 나타나지 않았다.
마치 세상에 나와 그녀, 그리고 녀석 이렇게 셋만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착각까지 일어나는 평야.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아무것도 없던 지평선 너머에서 무언가 천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뾰족한 뭔가로 보였던 그것은 가까이, 좀 더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 실체를 우리 앞에 드러냈다.
그것은 산이었다.
“···허어.”
“흠···.”
그것도 아주, 아주 높은 산.
중원에서 제일 높다는 태산조차 이 산 앞에선 그 이름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하늘조차 좁다며 구름을 뚫고 솟아오른 그 산은 평원의 중심에서 그 위용을 당당히 자랑하고 있었다.
“여기가 바로 그가 말했던 신성한 산···일까요?”
“아마 그렇겠죠. 이 평야에 그 외에 다른 산은 보이지 않으니까요.”
지금껏 우리가 달려왔던 평야에는 산은커녕 조금이라도 높다 싶은 언덕조차 보이지 않았다.
혹시 그런 언덕까지 이 산에 살아가는 신선들이 신통력으로 다 가져다가 붙여놓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다른 명확한 단서가 있다면 여기라고 확신이라도 할 수 있겠지만, 족장이 말해준 건 달려가면 산이 보일 것이라는 이야기 말곤 없었다.
“일단 들어가 보죠. 아니면 다시 나가서 찾아보면 될 일이니까요.”
“네, 그렇게 하죠.”
내 제안에 우리 두 사람은 천천히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산은 사람의 손길이 하나 닿지 않은 듯 울창한 밀림이 만들어져 있었다.
산을 닮은 듯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있는 나무와 무릎까지 자란 풀.
정말로 이곳에 신선이 살고 있긴 하는 걸까?
아니, 애초에 사람이 살긴 하는 걸까?
올라가는지, 아니면 내려가는지, 그것도 아니라면 평지를 걷는지조차 의심스러워진다.
···아니면, 혹시.
“낭자.”
“네?”
녀석의 등에 탄 채 주변을 살피고 있던 그녀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뭔가 이상합니다. 이건 지금···!”
내가 채 말을 끝내기 직전, 갑자기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리.
“옴(?).”
인간의, 짐승의 소리도 아닌 기괴한 소리에 바로 주변을 살핀다.
아니, 소용없다.
지금 이 소리가 들려오는 건 어디 한 방향이 아니라···전 방향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우웃!”
풀썩!
“낭자!”
문제는 그 소리뿐만이 아니었다.
가만히 녀석의 등 위에 타고 있던 독고화가 그 소리가 들려오자마자, 갑자기 외마디 비명과 함께 말 위에서 떨어진 것이다.
다행히 무릎까지 자란 풀 덕분에 어디 다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상적이라는 말은 아니었다.
잘게 떨리는 몸과 비 오듯 흐르는 식은땀. 그리고 들끓는 내공까지.
이건···설마 주화입마인가? 갑자기 왜!?
“옴.”
“옴.”
“옴.”
그녀의 진맥을 잡아보려는 순간, 다시 사방에서 들려오는 그 소리.
이번에는 하나가 아니라 몇 개의 소리가 동시에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더욱 크고 세차게 떨려오는 그녀. 그뿐만 아니라 단전에서 느껴지는 이 기운은···.
[내공이 흩어진···진짜 주화입마잖아!]
젠장!
설마 이 소리 때문이야? 어떻게 소리···.
···아니, 보통 소리가 아니다.
독고화의 반응에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지금 이건 그저 평범한 소리가 아니었다.
기(氣) 그 자체.
지금 나나 독고화. 혹은 다른 무인의 단전에 있는 가공된 내공과는 전혀 다르다.
마치 자연의 그것. 인간이라면 그 누구라도 가지고 있는 선천지기보다도 더욱 자연스럽고, 순수한 기.
그것이 바로 이 소리의 정체였다.
···그렇다면 지금 그녀가 이렇게 반응하는 이유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의 단전에 담겨 있는 내공의 근본은 마공.
지금 우리를 짓누르고 있는 이 순수한 기와는 완전히 상극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약 그녀가 마공이 아니라 순수한 내공을 익혔다면, 아니, 마공을 배웠다 하더라도 초절정의 경지에 오르지만 않았어도 이런 상황까진 가지 않았겠지만···역으로 너무 높은 경지가 독이 된 순간이었다.
“옴!”
“옴!”
“옴!”
“커흑!”
마치 끝을 내겠다는 듯 더욱 커지는 소리. 아니, 기와 점점 세차게 떨리는 독고화의 몸.
그리고 입가로 흐르는 한 줄기의 붉은 액체로 만들어진 길.
젠장! 소리의 정체나 파악하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운에 독고화가 더 큰 해를 입기 전에 바로 발을 들고 아래로 내려찍는다.
군림(君臨).
나의 발자국이 닿은 곳에 삿된 기운은 존재치 못하니.
그녀의 전신을 압박하고 있던 순수한 기운은 내 발끝에서 뿜어져 나온 기운에 의해 산산이 부서지고, 으스러졌다.
“웃!”
“큭!”
“무?!”
그리고 그와 동시에, 정확히 세 방향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조금 전의 정체도 알 수 없는 소리와는 다른, 분명한 인간의 목소리였다.
“나와라! 나와서 정체를 밝혀라!”
당장이라도 그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달려가 정체를 밝히고 싶었지만, 내상을 입은 그녀를 내버려 두고 갈 순 없었다.
결국 내가 택할 수 있는 건 두 가지밖에 없다.
이들이 먼저 나와주길 바라거나.
그게 아니라면 정체고 뭐고 그들이 독고화에에 더 큰 해를 끼치기 전에 모조리 쓸어버리는 것.
“네놈들의 목적과 정체를 밝히란 말이다!”
이번에는 경고의 목적까지 더하기 위해 조금의 살기도 섞어 외친다.
“·········.”
“·········.”
“·········.”
들린다.
아니, 느껴진다.
세 사람이 서로 기로 뭔가를 전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중원의 무인이 사용하는 전음(傳音)과는 다른 무슨 수단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건가?
잘은 모르겠지만, 그들이 서로 전하고 있는 그 기운은 내가 아는 전음보다 조금 더 둔탁하고···억지로 붙이자면, 원초적인 느낌이 들었다.
“···알겠다.”
내 정면, 가장 큰 기운이 느껴지고 있던 방향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신 조건이 있다.”
가래가 낀 듯 걸걸하면서도 노쇠한 그 목소리는 유창한 한어로 내게 말했다.
“···조건?”
“그래. 단 하나의 질문에만 답하면 된다.”
스르륵.
그가 말을 하는 순간, 주변에 있던 풀과 나무가 순식간에 내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것을 대신해 거기에 나타난 건 돌과 바위로만 이루어진 산과.
“그 순수한 기운.”
정갈한 백색의 도포를 갖춰 입고, 허리까지 기른 백발의 수염을 가진 세 명의 노인.
“너는 그걸 대체 어디서 얻은 것이냐?”
그것은 말 그대로 족자에서나 볼법한 신선(神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