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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능으로 무림최강-130화 (130/185)

동쪽의 파란(3)

내가 유목민 소녀와 조우한 지 약 한 식경 후.

나와 유목민 소녀. 그리고 겨우 나를 뒤따라온 독고화까지. 이렇게 울리 셋은 같은 방향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처음 내가 하늘에서 떨어질 때만 해도 경악했던 소녀는, 어떤 이유에서인진 몰라도 그 이후로는 적대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제압당한 이후에는 날뛰는 게 오히려 위험하다고 가르침을 받은 걸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

어느 쪽이든, 내가 지금 당장 알 방법은 없었다.

“이 아이가 자신의 부족으로 우리를 데려다줄까요?”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군요.”

소녀의 속도에 맞춘 덕분일까. 아까보다 훨씬 느릿느릿한 녀석의 발걸음에 조금 더 편해진 독고화가 나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아까 지도를 보여주며 부탁하긴 했는데, 그녀가 확실히 알아들은 게 맞는진 가고 나서야 알겠죠.”

독고화가 도착하기 전, 나에게 첫 공격이 막힌 이후로는 별다른 반을 보이지 않던 소녀에게 아까 받아온 지도를 보여주었다.

원래 목적지. 유목민의 부족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키자, 나와 지도를 번갈아 보던 소녀는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곧 독고화가 도착하자마자 먼저 고삐를 쥐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말이 안 통하니까 불편하네요. 그녀가 저희를 함정으로 끌고 가는 건 아닐지···.”

어차피 함정으로 데려간다 해도 도망칠 자신은 있긴 하지만···그래도 내가 홀몸은 아니니까.

사실 그녀와 만난 직후, 동이의 말을 어떻게든 익혀보려고 했지만, 너무나 많은 장해에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제일 큰 문제는 언어의 종류.

북해와 남만의 언어같은 경우는 익히기가 어려울 뿐, 뭘 익혀야 할지는 확실하다.

북해도 북해 전역에서 같은 언어를 사용했고, 남만 역시 마찬가지였으니까.

하지만 동이의 경우는 다르다.

고려인들은 고려의 언어를, 유목민은 또 유목민 자신들만의 언어를, 심지어 신선들도 자기들끼리만 사용하는 언어가 따로 있었다.

심지어 세 가지 모두 어디 같은 부분도 하나 없이 모두 토대부터 완전히 달랐으니, 하나를 익힌다 해도 다른 걸 쉽게 익힐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더군다나 항상 어떤 언어든 배울 때마다 큰 도움을 주던 화순도.

[나도 동이 쪽 말은 전혀 몰라. 아무리 탐구심 강한 천마라도 동이의 말까지 익힌 놈은 없었거든.]

라면서 학을 뗐으니, 그냥 말 다 했다.

하긴, 북해나 남만은 어딘가 도움이라도 되지, 동이랑은 거리도 거리거니와 무력집단인 마교엔 별 쓸만한 부분도 없으니, 그런 것에 신경을 쓰는 놈은 진짜 할 일이 없는 학자 말곤 없겠지.

설사 언어가 똑같았다고 해도, 지리조차 모르는 곳의 언어를 어떻게 익히겠냐, 라는 문제점도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말이다.

“부디 부족 내에 중원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있기를 빌어야죠.”

유목민 중 몇몇 부족은 중원의 상인들에게 말을 파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하니, 그들과 거래를 하려면 몇 사람 정도는 중원의 말을 익히고 있었을 가능성이 컸다.

일부러 중원에 가장 가까운 부족을 고른 것도 그런 기대 심리 때문이었다.

우리를 안내하듯 앞서 달려가는 유목민 소녀는 우리의 대화에 힐끔힐끔 뒤를 바라보았지만, 역시 알아듣는 건 무리였는지 다시 말을 부리는 데에만 집중했다.

그렇게 얼마쯤 달렸을까.

꾸르끼오! 꾸르끼오!

저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정체불명의 새소리.

···아니, 저건 새가 아니다.

“예정에 없던 손님이 함께 가는 걸 저쪽에서도 알아챘나 보군요.”

자세히 들으면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완벽한 흉내였지만, 전직 정보요원의 귀를 속일 순 없었다.

진짜 새소리와 사람이 흉내 내는 새소리에는 숨길 수 없는 몇 가지 차이가 있었고, 정보부 요원들은 대부분 그 차이를 느낄 수 있도록 교육받았다.

말에게 풀을 먹이러 나갔던 소녀가 돌아온다는 사실에 이런 가짜 새소리를 낼 이유는 없었으니, 아마 십중팔구 우리 때문에 낸 거겠지.

그에 맞춰 소녀가 타고 있던 말도 점점 속도를 늦추기 시작했다.

···으음, 이거 문제가 있는데.

아직 사람의 흔적은 보이지도 않건만, 벌써부터 느껴지는 이 살기.

자기들 딴에는 어떻게든 숨겨보려고 애쓰는 듯했지만, 내 감각을 속일 순 없었다.

다짜고짜 살기에 둘러싸인 게 별로 좋은 기분은 아니지만···벌인 짓이 벌인 짓이다 보니 말도 뭐라 못하겠네.

아니, 애초부터 말도 못 하지만.

“바우쿠! 쟈라! 샬타!”

하지만 그런 두터운 살기도 내 옆에 있던 그녀의 뜻을 알 수 없는 한 마디에 순식간에 사라졌다.

무슨 말인진 모르겠지만···그래도 그녀의 말에 살기를 지우는 걸 보니, 나쁜 뜻은 아니겠지?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녀가 우리를 믿고 있는 증거···라고 믿고 싶다.

그리고 잠시 뒤.

“바르타!”

소녀가 큰 목소리로 외치는 동시에 알아차렸다.

우리가 목적했던 그곳에 드디어 도착했다는 사실을.

*****

유목민의 부족은 북해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 크기는 제각각일지라도 원뿔 모양인 건 다를 것 없는 천막들부터, 마치 사람인 양 홀로 걷고 있는 말. 그리고 사방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까지.

그나마 천막에 동물 가죽을 말리고 있지 않거나, 천막이나 사람들의 옷 얇기가 눈에 띌 정도로 얇은 게 다를까.

그리고 거기에 하나 더 추가하자면.

“·········.”

“·········.”

“·········.”

으음~이 시선.

전장과 비교해도 한점 부족함 없는 이 살기.

만약 우리 옆에 소녀가 없었더라면, 살기등등하게 나를 노려보고 있는 사내들은 당장에라도 우리를 덮치고 있었을 것이다.

“바우타! 탈라!”

소녀도 그걸 알고 있는 건지, 부족에 진입한 뒤에도 우리 옆을 떠나지 않고 함께 걷고 있었지만, 곧 누군가를 발견하곤 후다닥 그쪽으로 달려갔다.

“미우!”

“바우타! 바우타!”

건장한 사내 대여섯을 대동한 노인은 자신을 향해 달려오던 소녀를 안아 들며 미소 지었다.

저만한 사람을 끌고 다닐 정도의 사람이라면···부족장이겠군.

한창 재회를 만끽하듯 서로 안고 있던 두 사람은 곧 나를 바라보며 다시 대화를 나누었다.

“미우, 비오카 샤이카?”

“마쿠타, 바우타, 마쿠타!”

“마쿠타?”

소녀의 이야기를 듣던 부족장은 고개를 기울이며 내게 다가왔다.

뒤에 있던 건장한 사내들이 그를 지키려는 듯 팔을 뻗었지만, 노인이 손을 들어 올리자 바로 다시 손을 내렸다.

소녀를 안은 채 내게로 다가온 노인은 입을 열었다.

“슈차르타샤 오리하우 라파?”

···뭔가 조금 전 나누던 대화랑 다른데?

어조도, 형식도, 그 말투도 전혀 다르다.

여전히 전혀 알아먹을 순 없는 건 마찬가지지만.

내가 여전히 입을 열지 않자, 이마를 찌푸린 채 내 대답만 기다리던 노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제 내 말 알아 듣다?”

드디어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말이 그의 입에서 나왔다.

“한어를 할 줄 아십니까?”

“유창하진 못하다. 아주 옛날 중원 갔을 때 배운 정도다.”

“아뇨,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군데군데 확실히 부족한 부분은 있었지만, 그 정도라도 감지덕지다.

최소한 말이 통한다면, 뭔가 얻을 수 있다는 소리였으니까.

“미우는 너를 하늘에서 내려온 자라고 말했다. 맞다?”

“하늘에서 내려온···예···뭐, 일단 그녀가 보기엔 하늘에서 내려왔죠.”

확실히, 평원에서 그녀···유목민의 말론 미우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져 내렸으니, 그녀가 보기엔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중원에도 하늘에서 내려온 자가 있나? 몰랐다.”

“저도 잘은 모르지만···많지는 않을 겁니다.”

지평선 너머에서 갑자기 나타날 정도라면, 보통 경지로는 어림도 없다.

신법만 주야장천 익힌 무인이라도 최소한 초절정 경지에는 올라야 가능할법한 일이니, 중원 전체를 뒤져도 열 사람도 채 안 될 것이다.

뭐, 물론 내가 중원의 고수를 하나하나 세어본 건 아닌지라, 정확한 숫자는 나도 모르겠지만.

“긴 이야기 될 것 같다. 너들 나 따라온다.”

여전히 어딘가 많이 부족한 한어였지만, 알아듣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그가 우리를 데리고 간 곳은 마을의 중앙에 있는, 제일 큰 텐트였다.

내부 역시 그 크기만큼이나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휘황찬란한 문양이 그려진 깔개부터 지금껏 본 적 없던 동물의 박제. 그리고 천막의 사분지 일을 뒤덮고 있는 거대한 동물의 가죽까지.

그중 방석으로 사용하는 듯한 커다란 가죽에 자리를 잡은 부족장은 나와 독고화를 몇 번 번갈아 보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

“중원의 하늘에서 내려온 자가 왜 여기에 왔다?”

“그게, 다름이 아니오라···.”

족장으로 보이는 노인을 향해 나는 우리가 왜 중원에서 여기까지 왔는지 설명을 시작했다.

혹시나 여기까지 그들의 손길이 뻗친 건 아닐까, 일단 숨길 수 있는 건 숨겨놓고 말을 꺼냈지만 말이다.

가만히 내 이야기를 듣고 있던 노인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네가 말하는 건 아마 영산에 살아가는 자들을 말하는 것이다.”

“영산에 살아가는 자들?”

“그들은 영산에서 하늘을 오르기 위해 수련에 수련을 거듭한다. 나도 모두 아는 건 아니지만, 그들은 여러 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우리의 땅에 그런 능력이 있는 이들이라면, 그들 말곤 없다.”

아무래도 중원에서 흔히 말하는 신선을, 이들 유목민은 그렇게 칭하는 듯했다.

“혹시 그들이 기거하는 곳을 알고 계십니까?”

“그들이 어디서 살고 있는지는 알지만···.”

내 말에 잠깐 주저하던 부족장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지금은 그들을 만날 수 없다.”

“네?! 어째서죠?!”

부족장의 말에 깜짝 놀라 되물은 건 내가 아니었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동안 마치 대감집 규슈처럼 가만히 뒤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독고화가 부족장의 말에 먼저 튀어나온 것이다.

하지만 그런 갑작스러운 질문에도 불구하고, 부족장은 놀란 기색 하나 없이 천천히 입을 열어 설명했다.

“죽은 자의 땅에 커다란 구멍이 나타났다. 그 틈으로 죽은 자들이 우리의 땅으로 들어오고 있다. 떠도는 걸 멈춘 것도 그래서다.”

“죽은 자의 땅? 커다란 구멍?”

···그러고 보니, 현령도 뭔가 비슷한 말을 들었다고 했지.

“영산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그 구멍을 막고 있다. 지금 가봐야 그들을 만날 수 없다.”

“혹시 그런 일이 전에도 있었습니까?”

“아니. 우리의 노래에도, 그들의 책에도 이런 일은 없었다.”

전에 이런 일이 없었다···라는 건, 곧 이 일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말과 다를 것이 없었다.

물론 몇십 년이 걸린다는 말보다야 좋게 들릴지는 모르지만···.

“···어쩌면.”

바로 그때.

얼마나 걸릴지도 모른다는 말에 절망 어린 표정을 짓고 있던 독고화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 싸움, 저희가 도움이 될지도 몰라요.”

“너들이?”

“물론 죽은 자의 땅이니, 구멍이 뚫렸다느니···무슨 말인지 저는 전혀 모르겠지만, 그래도 뭔가 괴상한 게 나왔다는 말이잖아요?”

퍽!

그녀는 마치 포권을 취하듯, 손바닥과 주먹을 맞부딪히며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거랑 싸우는 거라면, 누구보다 자신 있으니까요. 그렇죠?”

독고화는 그렇게 말하며 나를 향해 웃었고, 그런 그녀의 말에 부족장도 턱을 매만지며 뭔가를 고민하더니, 곧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미우의 말대로 너들이 정말 하늘에서 내려온 자가 맞다면···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봐요! 이분도 이렇게 말씀하시잖아요!”

부족장의 동의에 미소를 지으며 기뻐하는 독고화.

정말로 두 사람의 말마따나 도움이 될지, 안 될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들을 도울 건가?”

어떻게든 이번 일을 끝내고 나서야 우리를 도울 수 있다면, 무슨 일이라도 해줘야지.

“부족한 힘이나마 보탬이 된다면요.”

“알겠다. 내가 아는 영산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거처를 알려준다.”

그리고 오히려 그걸 바라고 있었다는 듯, 웃으며 입을 여는 부족장.

···하긴, 자신들의 옛 생활을 돌려주는 데 도움을 주겠다는데 누가 싫어하겠냐마는.

“하지만 날 너무 늦었다. 벌써 밤이다.”

밤? 벌써?

그의 말에 바깥을 들여다보자, 어느새 뉘엿뉘엿 해가 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동이는 해가 빨리 뜨고, 또 빨리 진다더니 그 말 대로인가.

“남은 이야기는 내일 마저 한다.”

“알겠습니다.”

나야 가능하다면 최대한 빨리 나머지 일을 끝내고 싶었지만···다른 사람의 피로를 무시하며 움직이는 건 역시 좋지 않겠지.

내 대답에 부족장은 좋은 선택이라는 듯, 미소를 지으며 다시 말을 이어갔다.

“너들은 손님이다. 너희 여기서 잔다. 최고의 대우 해준다.”

“그럼, 감사히 받아들이겠습니다.”

이 부분에서만큼은 북해의 부족과 다를 바 없구나.

오랜만에 느끼는 과거의 추억에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그에게 감사를 표한다.

부디, 남은 여정도 이토록 순탄하기만을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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