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교제일화(2)
“그래서.”
옆에 있던 납작한 바위에 앉아 턱을 괸 채 그녀의 길고 긴 이야기를 경청하던 나는 고개를 느릿하게 끄덕이며 말했다.
“그 비밀 서고에 있는 갑골문에서 죽은자와 이야기할 방법을 찾았고···그걸로 부모님과 이야기를 하러 가고 싶어서 가문을 뛰쳐나왔다···이 말씀이군요?”
“네. ···그런데 남의 입으로 들으니까 진짜 미친 소리 같긴 하네요.”
“당연하죠.”
흥. 작게 콧방귀를 뀌며 그녀의 말에 대답했다.
“진짜로 미친 소리니까요.”
뭐, 갇혀 사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모르는 건 아니다.
나도 한창 심할 땐 몇 달씩 숙소와 일만 반복하곤 했으니까 말이지.
그렇게 생각하면 몇 년은 넘게 마교에만 갇혀 있던 그녀의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그건 아닌데···.
“힘들다는 건 알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런 이상한 소리를 믿다니···그것도 무슨 말도 안 되는 갑골문을 믿으십니까.”
“그래도···.”
우울 반, 짜증 반 섞인 표정으로 뭔가 말할까 말까 우물쭈물하는 그녀.
혹시 ‘이게 마교에서도 천마가 허락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는 서고에서 발견한 거라고요!’라고 외치고 싶기라도 한 걸까.
아니···그러니까 그걸 감안 해도 미친 소리라고요.
[천마 서고···거기에 갑골문 같은 게 있었나?]
당장 천마의 바로 옆에 꼭 붙어있던 권능의 영혼부터가 이렇게 말하는데 말이지.
혹시 마공을 익히다가 회까닥 돌아버린 놈이 가져다 놓은 거 아닐까?
안 그래도 마교에서는 마공 익히다가 미친 노고수 이야기가 자주 나돌곤 했다.
천마의 서고라 해봐야 진짜 천마만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허락받은 사람이라면 오갈 수 있으니까.
미친놈 하나가 자기가 무슨 선술을 쓰는 도사라고 생각해서 죽은 사람이랑 이야기할 방법이 적힌 갑골 하나 가져다 놨다고 하는 게 더 신빙성이 있었다.
아무리 설명을 해도 내 반응이 시원찮다고 생각한 걸까. 독고화는 화가 난 듯 입술을 빼죽 내밀며 자신이 방금 꺼낸 쪽지를 내게 내밀었다.
“자, 여기요. 한 번 읽어보세요.”
“이건 뭡니까?”
“그 갑골문을 번역한 거예요. 내가 이거 구하려고 얼마나 힘들었는데, 내가 대체 어떤 고생을···.”
거기서 멈추지 않고 뭐라 뭐라 구시렁거리기까지 하는 그녀.
···원래 이 아가씨가 이런 성격이었나?
옥천과 혼인한 이후론 거의 대외 활동을 하지 않아서, 소문으로 들은 성격만 아는데, 최소한 내가 들은 대로와는 전혀 다르다.
하긴, 옥천 같은 인간과 결혼했으면 어떻게 제정신을 유지하겠어. 권력을 얻겠다고 자기 사부도 죽이는 인간인데.
그래도 그렇게 바뀐 성격에 좋은 점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최소한 이런 헛소리를 믿을 일은 없을 것 아냐?
[캬, 이것 봐라. 죽은 사람이랑 얘기할 방법만 있는 것도 아닌데?]
으음···그러게.
이거 직접 보니 더 가관이다.
갑골문에는 죽은 사람과 얘기할 방법 하나만 적혀 있는 게 아니었다.
안개만 먹고 살 수 있는 법과 그림으로 들어가는 방법. 그리고 연단을 통해 신선이 될 방법 등, 저잣거리의 사기꾼들도 하지 않을 온갖 괴상한 이야기가 잔뜩 적혀 있었다.
···독고삭.
당신을 존경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 부분은 용서 못 하겠다.
아무리 딸이 사랑스럽다고 해도, 세상 살아가는 방법 정도는 가르치는 게···?!
벌떡!
“힉?! 가, 갑자기 왜 그래요?”
[뭐, 뭐야?! 너 갑자기 왜 그래?]
한창 불평불만을 쏟아내던 독고화와 내 위에서 쪽지의 내용을 보며 웃던 화순은 갑자기 내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놀란 듯 외치며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런 두 사람의 의문에도 나는 대답 하나 없이 그녀가 건넨 쪽지에 적힌 한 줄의 문장을 뚫어지라 응시했다.
[···권능을 창조하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을 준 여러 친우에게 다시 한번 감사를 표하며, 그들이 내게 알려준 이야기를 여기에 남긴다. 나의 후손은 부디 그들과의 연을···.]
천마의 서고에 적힌 갑골문.
그리고 거기에 적힌 권능과 창조.
이것을 뜻하는 말은 단 한 가지밖에 없다!
이 갑골문을 남긴 사람이 바로.
[초대···천마님 이었다고?]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리는 화순.
···하지만 부정할 순 없다.
오직 천마밖에 알지 못하는 권능에 대한 발언과, 그것을 창조했다고 당당히 공언하는 이 태도.
역대 천마 중에 회까닥 돌아버린 천마가 만들었다···라는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지만, 만약 그랬다면 화순이 이걸 보고 이렇게 말하진 않았겠지.
그렇다면 여기 적힌 다른 이야기도···.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이 말인가.”
“미, 믿어주시는 거예요?”
갑작스레 달라진 내 말투에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기쁜 듯 묻는 독고화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말도 안 되는 소리긴 하지만···증거물이 이렇게 뻔히 있으니, 믿지 않을 수가 없군요.”
하나의 이야기가 사실이라 해서 나머지 이야기 모두가 사실이란 법은 없지만, 그래도 나머지 모두를 거짓말이라고 확언할 수도 없다.
아니, 설사 여기 적힌 내용 전부가 거짓이라 해도 마지막의 이 한 줄의 문장만 사실이라면 상관없다.
내가 마교로 가려 했던 바로 그 이유.
권능에 엮인 진실을 알아낼 수만 있다면 말이다.
“여기로 가실 생각입니까?”
“네, 가야죠.”
내 말에 잠깐의 주저도 없이 바로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
“알겠습니다.”
어차피 마교로 가봐야 확실히 권능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른다.
애초부터 그들에게 권능에 대한 정보가 실제로 있을지도 모르고, 설사 있다고 해도 알려줄 이유도 없으니까.
그래도 혹시나, 어쩌면 하는 생각에. 정말 안되면 훔쳐서라도 얻겠다는 생각에 가보려고 했지만···.
“그렇다면 저도 함께 가죠.”
이렇게 확실한 정보가 있다면 다르지.
“저, 정말인가요?!”
내 말에 놀람 반, 기쁨 반인 목소리로 되묻는 독고화.
“어차피 한 번 엮인 인연 아니겠습니까. 여기에 적힌 내용도 조금···흥미가 돌고요.”
“고마워요! 당신의 도움만 있다면 그곳에 가는 것도 어렵지 않을 거예요!”
내 말에 눈을 반짝이며 내 양손을 꽉 잡아주는 그녀.
하긴, 지금 같은 상황에서 내 도움은 그녀에게 먹구름 속 한 줄기의 빛이나 마찬가지였다.
생전 처음 마교에서 벗어난 그녀에게 중원은 별세계와 다를 바 없다.
마교의 손길에서 도망치는 건 물론, 먼 여행길을 떠나는 것까지 누군가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
그녀가 이토록 기뻐하는 것도, 본인부터가 그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녀에게 있어서 나와 마주쳤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행운이었다.
그녀에게 해를 끼칠 생각은 전혀 없으면서 긴 여행길을 도와줄 사람은 전 중원을 뒤져봐도 나 말곤 찾을 수 없었을 테니까.
···하늘에서 딸을 지켜보고 있던 독고삭이 나와 그녀를 만나게 해줬다고 해도 믿을만한 행운이었다.
“그렇게 생각해주시니 저도 감사하군요. 자, 그러니 슬슬 출발하시죠.”
감사를 표하는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곧 긴 여정이 시작될 바로 그곳. 동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동이(東夷)로.”
*****
보통 무인이라면 각자의 꿈을 가지게 되기 마련이다.
정파의 고수라면 자신의 문파의 장문인이나 장로. 혹은 전투단을 지휘하는 단장이 되길 바라며, 사파의 고수라면 자신만의 문파를 세워 남들의 위에 서기를 원한다.
그렇다면 마교의 무인은 어떨까.
물론 마교의 교리에 따라 사후세계에서 더 강한 힘을 가지기 위해 무공을 단련하는 이들도 더러 있었지만, 아무리 교에 심취한다 해도 현생을 중요히 여기는 사람들도 있는 법.
그런 이들이 바라는 건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그들이 원하는 건 대개 한 가지였다.
백만 교인 중 오직 열 한 사람밖에 들어올 수 없는 그곳.
마교를 이끄는 여섯 천장과 네 장로. 그리고 마교의 신이자 교주인 천마만이 존재할 수 있는 바로 그곳.
천마대전.
그리고 지금.
독고삭이 떠난 이후 몇 년 만에 열 한 사람이 처음으로 모두 모이게 되었다.
“·········.”
오직 천마만이 앉을 수 있는 천마좌에 앉은 옥천과.
“·········.”
“·········.”
“·········.”
그보다 낮은 자리에서 고개를 숙인 채 침묵하고 있는 여섯 천장과 네 장로.
물론 이 열 한 명이 모두 모인 적이 전혀 없던 건 아니었다.
당장 옥천이 폐관 수련에 들어가기 전에도 이들은 한 자리에 모여 비어있는 천마의 자리에 대한 대책을 논했으니까.
하지만 지금과 이때는 그 경우가 완전히 다르다.
아직 천마 대리라는 이름으로 그들과 동등. 아니, 더 낮은 자리에 있던 거나 마찬가지였던 그때의 옥천과 달리, 지금 옥천은 당당한 한 사람의 천마로써 이 자리에 있었으니까.
그것은 각자가 있는 자리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똑같은 탁자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그때와 달리, 지금 옥천은 그들과는 완전히 다른 위치에서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껏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자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옥천의 표정은 그리 좋지 못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니까.”
전의 그에게선 찾을 수 없던 위엄과 기운을 주변에 두른 채 팔걸이에 팔을 올리고 턱을 괴고 있던 옥천은 무표정한 표정으로 담담히 입을 열었다.
“그녀를 놓쳤다···이 말인가?”
무감정한 목소리에, 무감정한 반응.
하지만 그 아래에 있던 열 명의 고수들은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처음으로 내린 명령을 무참히 실패했다, 이 말이군.”
지금 옥천이 진심으로 분노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번 작전에 참가한 인원이 총 몇 명이지?”
“추적조가 삼백에, 만약을 대비한 전투조가 이백···.”
“전부 잡아서 옥에 가둬라.”
마치 하품이라도 하듯, 너무나 자연스레 튀어나오는 말.
“나와 그녀의 혼인식에 그들의 목을 내가 직접 칠 것이니.”
무료한 목소리로 뱉어내는 끔찍한 명령.
전의 옥천을 모르던 자도, 알고 있던 자도 몸서리치게 만드는 그 말에 누군가는 고개를 들고 입을 열려 했지만.
“뭐지?”
옥천의 발언 한 번에 모두 다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장로와 천장이 옥천의 무공을 두려워한 건 아니다.
각자에 대한 무공에 대한 자신감이 하늘처럼 높은 그들이다. 옥천의 무공이 천마의 자리에 오를 만큼 낮지 않다는 건 인정하지만, 무공만으로 그들을 두렵게 만드는 건 설사 독고삭이 살아돌아온다해도 불가능한 일이다.
···그들이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건 그의 눈이었다.
죄답지도 않은 죄를 지었다는 이유로 오백의 교인을 죽인다고 말하는 그의 눈.
거기엔 어떠한 감정도, 생각도 읽어낼 수 없었다.
여기 모인 열 명은 모두 마인이다. 적게는 수십을, 많게는 천에 가까운 인간을 죽인 적이 있던 이들이다.
하지만 그런 그들조차, 인간을 죽일 때 저토록 무감정할 수 없었다.
바로 그 때문에 그들은 옥천이 두려웠다.
끝없는 무저갱을 바라보는 듯한 그 감각.
무지(無知).
세간의 두려움을 한몸에 사는 마교의 천장과 장로인 그들조차, 옥천의 앞에선 자신의 이해를 한껏 넘어선 ‘뭔가’를 바라보며 두려워하는 어린아이와 다를 바 없었다.
“그녀가 어디로 갔는가에 대한 정보는 없나?”
그들에 관한 이야기는 그 한 마디로 끝났는지, 옥천은 바로 다음 주제로 이야기를 넘겼다.
그의 말에 충격을 받았던 색천장은 살짝 늦게 그의 말에 대답했다.
“아, 네. 이번에 여식께 의뢰를 받았던 마교 소속 학자의 말에 따르면···.”
“학자?”
전혀 예상외의 인물에 옥천은 색천장의 말을 끊고 목소리를 높일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학자랑 이야기를 나눴다고?”
“네. 서고에서 찾은 갑골문을 해석해달라 부탁했다고 합니다.”
“갑골문이라···그래서?”
“일단 해석해내긴 했지만, 온갖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넘쳐났다고 합니다. 너무 터무니없는 이야기라 학자도 거의 기억은 나지 않는다고 했지만···여식께서 향하실 곳은 알 수 있었습니다.”
“그게 어디지?”
“그가 말하길, 분명 동이에 관한 이야기가 여러 번 나왔다고 합니다.”
“동이?”
“네.”
색천장의 보고에 옥천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동이에 관한 이야기는 그도 여러 번 들은 적 있었다.
대부분이 어린아이에게 전해주는 동화와 같은 이야기였지만.
···어린 시절이라.
순간 무표정하던 옥천의 눈에서 순간 빛이 살짝 깃들었다.
이제는 잘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시절.
평무사에 불과했지만 언제나 웃음을 짓고 있던 아버지와 가족을 사랑했던 어머니.
그리고 거기서 웃고 있는 나-
“그렇군.”
하지만 그것은 아주 잠깐일 뿐이었다.
순식간에 눈동자의 빛을 지운 옥천은 열 사람에게 말했다.
“어차피 잠깐의 유흥일 뿐이다. 그녀는 결국 마교로 돌아올 수밖에 없어. 정 안되면 그녀의 초상화라도 무림에 뿌리면 그만이다. 그럼 싫든 좋든 살기 위해선 돌아올 수밖에 없겠지.”
자리에서 일어선 옥천은 열 사람을 내려다보며, 낮고 고요한 목소리로 명령했다.
“대관식은 예정대로 진행한다. 그때쯤 되면 그 시시한 방랑도 끝나겠지. 혼인식은 그때 대관식과 함께 진행하면 그만.”
그리고 그런 그의 명령을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받드는 여섯 천장과 네 장로.
“그대들은 지금처럼 그때를 준비하도록.”
“존명!”
그렇게 독고화에 대한 안건은 별다른 이야기 없이 그렇게 넘어갔다.
그저 안에만 갇혀 있는 걸 답답해한 어린 소녀의 가출 정도로.
하지만 그 누가 알았을까.
지금 그들이 가볍게 넘긴 그녀의 일탈이, 마교를 향한 거대한 폭풍이 되어 다시 찾아오게 되리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