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능의 진실(3)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은 그 여느 때보다 편안했다.
물론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 편했던 적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번에는 그 경우가 다르다.
“아이고, 황실 어사님. 어서 오시지요. 자, 이쪽입니다. 이쪽. 편안히 쉬시다 고향으로 돌아가시지요.”
“으흠. 고맙소.”
지금 내 앞에서 알랑방귀 뀌는 이 사내는 다름 아닌 이 현의 현령.
현 내에서는 왕과 다를 바 없는 권세를 누리는 사람이 지금 내게 어떻게든 잘 보이려고 애쓰고 있었다.
이번 일을 좀 시끌벅적하게 처리하긴 했지만, 그래도 내 얼굴을 노출했던 적은 거의 없었다.
금군이야 관원들에게 내 얼굴을 말할 이유도 없었거니와, 이번에 나랑 깊게 관련된 섬서쪽 관원들에게는 내 얼굴을 밝히지 말라고 신신당부해놨으니까.
하지만 내 얼굴은 그렇다 해도 이름이 퍼지는 것까진 막을 수 없는 법.
내 호패를 보고 정체를 간파한 문지기들은 바로 나를 현청으로 모셨고, 덕분에 나는 어느 현이건 들릴 때마다 온갖 귀빈 대우란 귀빈 대우는 다 받을 수 있었다.
“헤헤, 저 정대옥이 어사님을 잘 모셔드렸다···이것만 기억해주시면 됩니다. 헤헤헤.”
“허허, 걱정하지 마시오.”
물론 그때마다 받는 청부는 모조리 개무시할 생각이었지만.
애초에 몇 번 만날 일도 없는 분한테 미쳤다고 한 번 본 사람의 이름을 알려주겠냐.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점은 같은 섬서성이라 누구한테 대접받을 일이 많지 않았다는 점일까.
그리고 유가장으로 돌아온 그 날.
“첫째 도련님이 돌아오셨습니다!”
“유가장의 문을 열어라!”
“문을 열어라!”
생전 두 번째로, 오직 나만을 위해 유가장의 대문이 열리고.
“와아아아아!!!”
“유현 도련님이 돌아오셨다!”
“유현! 유현! 유현!”
그 안에서 수많은 환영 인파가 나의 이름을 연호했다.
역시나 예상대로 여기까지 소문이 퍼졌던 걸까.
그 넓은 유가장이 좁다고 느껴질 만큼 엄청난 인파.
가문에서 일하는 하인이나 일꾼은 물론, 우리 현에서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여기에 모인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가운데,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텅 빈 길 가운데로.
“다녀왔느냐.”
그저 잠깐 밖에 나갔다 들어온 나에게 말을 건네듯, 가벼운 목소리로 말을 건네는 아버지와.
“유현 도련님···훌쩍.”
아버지의 뒤에서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내는 총관.
“도련님!”
그리고 이제는 몰라볼 만큼 건장해진 기정이까지.
나를 맞이해준 세 사람을 향해,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네, 다녀왔습니다.”
*****
내가 돌아온 직후, 유가장은 완전히 축제의 장으로 바뀌었다.
유가장 휘하 사업체는 물론, 우리 현정표국과 그 지부의 직원 모두가 모인, 말 그대로 대축제.
그 넓은 유가장으로도 모자라 바깥 거리까지 전부 사용해야 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규모의 축제가 밤새도록 이어졌다.
“자, 한잔하거라.”
“감사합니다, 아버지.”
아버지가 웃으며 건넨 술을 한입에 털어 넣는다.
지금껏 마셔본 적 없는 독특한 향과 맛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생전 처음 먹어보는 맛이지만, 전혀 불쾌하진 않다.
아니, 오히려···.
“어떠느냐. 입맛에 맞느냐?”
“아, 네. 처음 먹어보는 맛인데 생각보다 괜찮군요. 이 술은···?”
쪼르륵.
내 말에 대답 없이 당신의 잔에 술을 가득 따른 아버지는 나처럼 그것을 한입에 들이키셨다.
“···네 어머니가 담근 술이다.”
“어머니가···?!”
“네 어머니가 제일 좋아하던 술이기도 하지.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재료로 뭘 하나 싶더니, 이 술을 몇 항아리나 빚더구나.”
그렇게 말하며 다시 잔에 술을 따르는 아버지.
적색이라고 해야 할까, 황색이라고 해야 할까.
맛만큼이나 뭐라 똑 부러지게 설명할 수 없는 독특한 색깔의 술은, 중원과 북해. 그리고 남만까지 다녀왔던 내게도 생소한 맛이었다.
“네 어머니는 평상시엔 조신했지만, 술을 마실 땐 전혀 달랐지. 술잔이 작아서 답답하다면서 항상 국그릇으로 술을 마실 정도였어. 다른 것도 아니고 직접 술을 빚었을 정도니 말이야.”
껄껄껄! 아버지는 평상시의 그답지 않게 큰 목소리로 웃으며 당신이 보던 술잔의 술을 다시 한번에 들이켰다.
평상시에는 거의 한 적 없던 어머니의 이야기에, 내 머릿속엔 기쁨보다 그 남자의 말이 먼저 떠올랐다.
아버지라면 어쩌면 그 이야기의 진위를 알고 있는 게 아닐까.
“혹시 아버지께선···어머니가 어디서 오셨는지 아십니까?”
내 생각을 다 끝내기도 전에 내 입에서는 그 말이 튀어나왔다.
“음? 네 어머니 말이더냐?”
다행스럽게도 아버지는 그런 질문을 던진 걸 깊게 받아들이지 않으신 모양이다.
오히려 내 질문에 잠깐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더니,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여셨다.
“나도 정확하겐 모르겠구나. 네 어머니가 자기 과거를 먼저 이야기한 적도 없었고, 나도 구태여 물어본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역시 그런가.
아버지는 애초에 그런 것에 신경 쓸 분이 아니었고, 어머니도 뭔가 특별한 이유가 없지 않은 한 먼저 이야기를 꺼내실 분은 아니다.
역시나 저것이 진실인지 아닌지 찾는 방법은···.
“아, 하지만.”
“네?”
“아버지···그러니까, 네 할아버지가 물어보신 적은 있었지.”
할아버지?
···솔직히 말해서 별로 친하진 않다. 아니, 애초에 친할 수가 없다.
애초에 어머니가 아버지와 결혼하기 이전부터. 아니, 그 이후에도 쭉 어머니를 싫어하시던 분이니까.
그리고 그런 두 분의 아들인 나는 거의 보지도 않으셨다. 내가 일곱 살이 될 때까지, 지금은 옥에 갇힌 내 동생 두 놈은 몇 번이나 만나셨던 분이 나는 얼굴 한 번 마주한 적 없었으니까.
아마 물어봤다, 라는 말도 최대한 순화해서 말씀하신 거지, 사실상 추궁에 가까웠을 것이다.
“네 할아버지의 성격도 불같긴 했지만, 네 어머니만큼은 아니었지. 서슬 퍼런 할아버지의 질문에도 조금의 물러섬도 없이 당당히 말했지. 내가 어디서 태어났고, 어디서 왔는지가 그토록 중요하냐고.”
“그, 그렇습니까···.”
···내가 기억하던 어머니와는 많이 다르지만, 원래 추억이라는 건 미화되는 법이라는 말도 있으니까.
“하지만 거기서 그녀가 말했지. 나도 어디선가 누구를 이끌었던 사람이라고. 할아버지는 그때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하셨지만, 나는 그때 느꼈단다.”
취한 듯 잔의 술을 천천히 돌리던 아버지는 느릿하게 입을 여셨다.
“그녀는 분명 누군가의 위에 있던 사람이다, 라고 말이다. 어쩌면 무가였을지도 몰라. 그녀에게서 한순간 느껴졌던 패기는, 이 애비나 할아버지에게는 없는 무언가가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습니까.”
이번 아버지의 이야기로 어머니의 정확한 태생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몇 가지는 알 수 있었다.
어머니가 누군가를 다스리는 직책에 있었다는 사실과, 무공을 익혔다는 사실.
물론 어머니에게 직접 말로 듣지도 않고 어떻게 알 수 있냐고 할 수 있겠지만, 아버지의 직감은 믿을 만하다.
직감 하나만으로 유가장의 이름을 전국에 알리게 했다는 말까지 있는 아버지의 직감.
십 할까진 아니더라도 팔, 구 할의 정도의 정확성은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어머니의 정확한 정체는 알 수 없다.
이건 역시···.
“아버지.”
“응? 왜 그러느냐?”
“곧···또 떠나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정파와 황실. 그리고 정확하게 맞는지, 아닌진 모르지만 북해와도 연관되어 있을지 모르는 그 세력.
어쩌면 어머니와 깊은 연관이 있었을지도 모르는 그들.
그들의 정체를 알아내야만 했다.
“·········.”
내 말에 아버지는 미소를 지우고 조금 굳은 표정으로 다 비워진 술잔을 가만히 응시했다.
“네 그···직책과 관련된 일이더냐?”
“아니요, 그건 아닙니다.”
“···그럼 순수한 네 의지로 그러려는 것이더냐?”
“그렇습니다.”
“꼭 필요한···일이더냐?”
···지금껏 들어본 적 없던, 아버지의 걱정 어린 목소리.
“네가 지금껏 했던 일을 모두 알고 있는 건 아니지만, 황실 어사라는 직책이 그냥 우연히 얻어지는 건 아니란 건 알고 있다. 그만한 공을세울 수 있을 정도로 위험천만한 일이라는 말이겠지.”
툭.
잔을 내려놓고, 진지한 표정으로 나와 눈을 마주하는 아버지.
“정말로 꼭 해야만 하는 일이더냐?”
고민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중원 전역은 물론이거니와, 북해에 남만까지. 웬만한 사람은 한 번 가보는 것도 힘들다는 나라들을 이 년도 안 되는 시간 만에 다녀왔다.
그러고도 아직 해야할 일이 남아있다니.
차라리 모두 포기하고, 어찌 됐건 상관없이 그냥 고향에서 평안한 일생을 살아가는 게 낫지 않을까, 하고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저는 제가 이만한 힘과 직책을 얻은 데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과거로 온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머니가 이곳까지 찾아왔던 이유.
어머니를 아는 그들이 정파와 황실에 침투한 이유.
그리고 누구도 모르던 권능에 대한 진실을 아는 그 남자까지.
“그리고 그것을 파헤치는 게···제 숙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숙명···숙명이라···.”
내 말에 아버지는 슬며시 입가에 미소를 그리더니,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그녀처럼 말하는구나.”
“···어머니 말입니까?”
“그래, 그녀도 무슨 일이건 숙명, 숙명 말하곤 했지. 내가 이 일을 해야 하는 건 숙명이니, 저 아이가 그렇게 해야 하는 건 숙명이니···이러면서 말이다.”
숙명···어쩌면 어머니도 그런 숙명에서 벗어나, 이곳 중원까지 왔기에 그런 말버릇을 가진 게 아닐까.
···물론 진실을 전혀 모르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선, 그저 예상일 뿐이지만.
“그것이 네가 정말로 옳다고 믿는다면.”
어머니의 진실을 생각하고 있던 내게, 아버지는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보렴.”
“아버지···.”
“하지만 일이 끝나면 바로 돌아오려무나. 집에 가족이 두 사람밖에 없으니, 퍽 쓸쓸하더구나.”
···아버지는 아직 두 동생이 어떤 일을 벌였는지 알지 못하신다.
이번에 화산파에서 많은 이들이 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은 꽤 유명하지만, 거기에 누구누구가 연관되어 있는지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나마 남은 이들 중에서 무공의 경지가 제일 높고, 이번 일에서 화산파의 양심임을 직접 다른 무인들에게 보여줬던 도인현이 화산파를 정리하고 나면 그때 공표할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아마 아버지께선 이번 일이 끝나면 두 놈이 곧 집으로 돌아오리라고 생각하고 계신 거겠지.
“네.”
아버지의 요청. 혹은 왜 이렇게 외롭게 두느냐는 타박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금방 돌아오겠습니다.”
*****
그렇게 축제가 끝난 다음 날.
본래 계획대로라면 아버지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기정이와 내 부하들과 간단한 이야기를 나눈 후 바로 떠날 생각이었지만, 어제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아직 할 일이 남아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곳’으로 향하자, 이미 입구부터 수많은 인파가 나를 맞이했다.
나를 위해 대기시켜놓은 게 아니다.
원래부터 이만한 숫자의 하인이 항상 대기하고 있는 곳이다.
“어서 오십시오, 큰 도련님.”
다른 하인들이 옆에서 가만히 시립하고 있는 그때, 홀로 움직이는 누군가.
“무슨 일로 여기 찾아오셨습니까?”
제일 앞에서 나를 맞이하는 노년의 하녀. 오랫동안 ‘그녀’를 모셔왔던 하녀는 고개를 숙인 채 나를 향해 물었다.
“···어제 축제 때 안 보이셔서, 혹시나 몸이 편찮으신가 싶어 인사차 찾아왔지.”
아버지와 이야기가 끝난 직후, 혹시나 ‘그녀’가 있나 싶어서 사방을 둘러봤지만, 예상대로 그 자리에 없었다.
하긴, 축제에 올 기분이 아니었겠지.
이런 상황에서 나를 축하하는 자리에 있고 싶을 리가 없지 않은가.
“사모님께선 며칠 전부터 몸이 편찮으셔 숙소에만 있으셨습니다.”
“그래? 그럼 내가 인사하러 왔다고 좀 전해주게.”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노년의 하녀를 향해, 지금껏 단 한 번도 내가 직접 꺼낸 적 없던 그 이름을 꺼낸다.
“어머니에게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