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능의 진실(2)
놈의 사망 이후, 남은 일들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수혈이 집혀 날이 샐 때까지 정신없이 숙면하고 있던 화산파 제자들은 내가 장문인에게 아주 특별한 방법(대부분의 고문과 조금의 자백)으로 얻은 정보를 토대로 밑에 있던 관원들이 끌고 내려갔다.
남은 인원들은 정말 극소수. 이제 겨우 화산파에 입문한 어린 제자나, 나갈 일이 전혀 없는, 말 그대로 순수한 도인들 정도 밖에 남지 않았다.
화산파에서 이번 일에 깊이 관여된 줄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그리고 그중엔 내 눈에 익은 사람도 포함되어 있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알아보기도 싫은 인간 두 사람이 말이지만.
“놔! 놓으란 말이야! 너희들 내가 누군지는 알아?!”
“우리는 섬서 유가장의 후계자들이다! 네놈들 따위가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란 말이다아아아!!!”
···거기엔 내 동생들. 아니, 동생이라고 부르기도 아까운 두 놈이 관원들을 향해 온갖 행패를 부리고 있었다.
그런 놈들의 행패에 가까이 다가가지조차 못하는 관원들.
저놈들의 무력이 두려워 저렇게 구는 건 물론 아니다. 그보다 더한 경지에 이른 무인들도 전부 구속한 관원들이 저들을 두려워할 리가 없지 않은가.
나는 옆에서 두 사람을 바라보며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도독에게 말했다.
“저 둘은 조심하라고 관원에게 명령하였소?”
“아, 저기, 그게···아무래도 저 둘은 어사님이 직접 명령하시는 편이 나을 것 같아···.”
“···불필요할 정도로 과도한 충성심이군.”
움찔.
내 말에 도독의 몸이 크게 떨렸지만, 나는 그에 신경 쓰지 않고 멀리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아버지 앞에서 쓰고 있던 가면은 모두 벗어던지고 관원들을 향해 행패나 부리고 있는 두 놈.
···저놈들의 인성 교육을 이런 타락한 화산파가 아니라 다른 곳에 맡겼다면 좀 더 괜찮아질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문뜩 스쳐 지나가는 걸 보니, 역시 핏줄이라는 건 무시하기 힘든 모양이다.
“저들의 죄는 정확히 어떻게 되오?”
“당장 참형에 처할 정도는 아닙니다.”
“···그럼 죄가 작지는 않다는 소리군.”
현재 화산파에서 참형에 처할 만한 죄인은 장문인과 그의 최측근. 혹은 그런 그들을 도와 이번 일에 정말로 깊게 관여된 인간들뿐이었다.
그런데 구태여 참형이라는 말을 꺼낼 정도라면, 놈들의 죄가 작지는 않다는 말이리라.
“사실상 곤장 수백 대는 예정된 상황이고, 거기서 옥에 갇힐지 말지는 좀 더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곤장 맞다 죽으면 죽는 거고, 안 죽어도 옥에 가둔다, 이 말이오?”
“어흠, 저, 그···.”
“···법에 맞게 처리하시오. 이번 일에 나는 관여하지 않을 생각이니.”
“아, 네. 알겠습니다.”
내 단호한 목소리에 도독은 후다닥 그들에게 달려가 관원들을 향해 뭐라 소리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조금 전 우물쭈물하던 게 거짓말인 것처럼 후다닥 달려가 둘의 몸을 묶는 관원들.
갑작스러운 그들의 태도 변화에 둘은 목소리를 더욱 높였지만, 그것도 곧 관원들의 몽둥이찜질에 침묵으로 바뀌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몸을 돌려 화산파 바깥으로 도약했다.
이제 겨우 화산파의 일이 끝났을 뿐이다.
이번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선, 여전히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었다.
*****
이번 정파 사태 덕분에 호사가들의 입은 마를 날이 없었다.
어느 객잔에 들어가도 이번 이야기의 전모를 듣고 싶어 하는 무인은 넘쳐났고, 그들에게 이야기를 해주다 보면 그날 술값은 물론이요, 밥값에 숙소 값까지 모든 것이 처리되었기 때문이다.
“···거기서 정혈탐마, 아니, 이제는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위선타파께서 딱! 나타나셔서 그렇게 외치셨다는 것 아닌가!”
이 객잔에 있는 호사가는 특히나 말빨이 살아 있는 사람이었는지, 객잔 내 무인은 물론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까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어찌 감히 네놈들이 정파의 이름을 그리 당당히 공언하고 다니는 것이냐! 타인을 괴롭히고, 약탈하며, 심지어 죽이는 작자들이 어찌 정파라 할 수 있느냔 말이다!”
했던 적도 없는 대사를, 전혀 맞지도 않는 성대모사까지 하면서 따라는 호사가.
하지만 듣는 이들은 그런 거 전혀 모르는지, 아니면 애초부터 신경을 쓰지 않는진 몰라도 오히려 더욱 흥미진진하다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 말에 발끈한 화산파와 그 휘하의 다른 정파 놈들이 달려드는 그 순간! 그분께선 품 안의 백금 패를 들고 크게 소리쳤지!”
호사가는 거기까지만 말을 하고 갑자기 큼큼, 헛기침을 몇 번 하기 시작했다.
이야기가 더 이어지지 않는 것에 애가 타던 사람 중 그나마 눈치가 빠른 사람이 주방을 향해 손을 흔들자, 국그릇과 닷 푼짜리 술 한 병이 호사가의 앞에 나타났다.
옆에 있던 사람이 따라준 술을 한 번에 들이켠 호사가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황실 어사 출두야~!”
오오오!
전혀 닮진 않았지만, 그래도 언뜻 위엄이 느껴지는 그의 말투에 주변에 있던 관객들은 모두 감탄의 탄성을 내뱉었다.
“거기서부턴 더 필요한 것도 없었지! 사방에 숨어있던 금군이 와다다다, 몰려와서 무인들을 포위하니, 이제는 완전히 상황이 역전됐지. 두려운 듯 몸을 떠는 무인들을 바라보며 저자들을 포박하라 외치는 어사님의 목소리! 캬!”
자기 혼자 말하고 자기 혼자 감탄하는 꼴이 퍽 웃겼지만, 그 모습에 웃음을 짓는 사람은 없었다.
진지하게 그를 직시한 채 다음에 나올 이야기만을 기다릴 뿐.
그 뒤로도 호사가의 이야기는 한창 이어졌다.
이번 일의 주체인 화산파를 직접 찾아가 무너뜨리고, 청성파를 포함한 네 개 문파는 금군을 직접 이끌고 죄인들을 제압했다는 것부터, 그때를 틈타 정파 자체에 불신감을 불어넣으려 하던 사람들에게 선과 위선을 똑바로 분간하라고 일갈하는 모습까지.
사실과 거짓이 적절히 섞여 있었지만, 정확한 건 어느 쪽이건 이야기의 주인공을 한껏 띄워주고 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리고 모든 일이 끝난 후. 무림맹주이신 검성께서 친히 초대하신 뒤, 여러 이야기를 나눈 후, 정파 무인이 정도를 벗어나지 않도록 무림맹 감찰단의 단장직을 맡기는 건 물론, 무한한 지원을 약속하셨지.”
덜컹.
거기까지 호사가의 이야기가 진행된 후, 한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 잔밖에 마시지 않은 술병 옆에 은자 한 냥을 두고 가는 사내를 신경 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본인 이야기를 남의 입에서 들은 기분은 어떤가요?”
그를 밖에서 기다리던, 한 명의 아름다운 여인을 제외하곤 말이다.
“하도 이곳저곳에서 섞인 게 많아서 제 이야기인 줄도 몰랐습니다.”
“어머, 그런가요? 제가 듣기엔 아주 생생한 이야기였는데요. 황실 어사 출두야!”
푸흡. 안에서 이야기하던 호사가보다도 더 괴상한 성대모사에 사내는 순간 웃음을 내뱉었다가, 바로 다시 헛기침을 몇 번이고 반복하며 겨우 입을 열었다.
“죄, 죄송합니다, 공주마마. 결례를···.”
“호호, 괜찮아요. 일부러 그런 거니까요.”
싱긋.
사내의 갑작스러운 웃음에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공주는 밝은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
“쭉 인상만 쓰고 있던 게 싫어서 장난 한번 쳐본 거니까요.”
“하아···그렇습니까.”
걱정거리가 다 없어지고 나니 장난기만 남으신 것 같군.
사내, 유현의 그런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쿡쿡 웃고 있던 공주는 곧 미소를 멈추고 진지한 얼굴로 살며시 입을 열었다.
“이젠···돌아가시나요.”
“네, 그래야죠. 너무 길게 자리를 떠나기도 했거니와···.”
유현의 여정은 이미 예정되어 있던 것보다 두 배는 넘게 시간을 사용한 판국이었다.
더군다나 그 여정이 조용했던 것도 아니고, 전 강호 무림이 시끌벅적할 만한 사건과도 엮여 있었으니, 고향에서도 자신 걱정에 이만저만이 아니리라.
그리고.
“···꼭 알아봐야 할 일이 있으니까요.”
화산파에서 겨뤘던 그 남자와 그가 내뱉었던 여러 가지 발언들.
지금의 유현에게는 그 말의 진의를 알아보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유현의 진지한 얼굴을 옆에서 가만히 응시하고 있던 공주는 조금은 씁쓸하다는 얼굴로, 뒷짐을 진 채 하늘을 바라보며 조용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금방 또 떠나가시는군요.”
공주의 말에 유현 또한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유현 또한 공주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많았다. 남만의 일에 대한 오해도 풀어주고 싶었고, 그 외에 그녀가 없는 사이 겪었던 여러 일에 관해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하루 이틀로는 도저히 끝날 겨를이 보이지 않는 기나긴 이야기를 그녀의 옆에서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이번 일은 그런 욕심 때문에 무시하고 넘어가기엔 너무나 큰 일이었다.
이미 목숨을 잃고 돌아가신 어머니와 자신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권능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비밀인 회귀까지.
지금껏 일부러 무시했던 의문이 목전까지 들이 밀어진 이상, 이젠 무시할 수도 없다.
그래도.
“이번에는 공주마마께서 직접 제게 찾아와 주셨으니, 다음번엔 제가 직접 가겠습니다.”
이 정도 약속은 해도 괜찮겠지.
유현의 한 마디에 고개를 다시 유현에게로 내린 공주는 놀란 듯 그를 잠깐 바라보다, 곧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기다릴게요.”
*****
유현과 공주가 헤어지던 그 시각.
신강의 마교.
그중에서도 금지 중의 금지라 불리는 천마의 폐관 수련실.
한낱 수련실 따위가 금지라 불리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마교가 만들어진 이후, 수많은 천마가 수련했던 폐관 수련실은 이미 그 자체만으로도 역대 천마들의 심득이 가득하다 해도 과언이 아닌 곳.
당장 벽에 걸쳐진 빼곡한 상흔만으로도, 무공의 벽 앞에서 절망하고 있는 마교인 이라면 누구라도 갈구할 수밖에 없는 무의 흔적이 가득했다.
하지만.
쿵! 쿵! 쿵!
“젠장, 젠장, 젠장!”
그런 심득들이 한 사내의 손에 의해 철저히 망가지고 있었다.
그 사내의 이름은 옥천.
본디 천마여야 했으나 운명의 장난으로 지금은 그저 천마 대리라는, 있으나 마나 한 직책으로 불리는 바로 그 사내였다.
그런 그가 지금 역대 천마의 심득까지 부숴가며 화내는 이유는 무언인가?
쿵!
욕석을 내뱉으며 푸른 기운이 일렁이는 주먹을 벽에 날리던 옥천은 마지막으로 한 방 거대한 일격을 날리더니, 곧 털썩 주저앉았다.
“대체···대체 어디로 사라진거냐, 이 개자식아···.”
자신에게 이 무공을 전수해준 바로 그 사내.
폐관 수련 중에도 언제든 찾아왔던 그 사내가, 벌써 두 달째 자신에게 찾아오지 않고 있었다.
“대체 어디로 간 거냔 말이다! 내가 필요할 때 이렇게 사라지면 어쩌란 말이냐고!!!”
지금 옥천의 무공은 어디까지나 걸음마 수준.
그것만으로도 웬만한 무공으로는 상처조차 남길 수 없다는 폐관 수련실의 진흙 벽처럼 부술 수 있었지만, 지금의 옥천은 이걸로 만족할 수 없었다.
더 높은 경지에 오르기 위해선 그 사내의 도움이 필수 불가결이었다.
“지금도 밖에선 저 빌어먹을 새끼들이 내가 나오기만을 호시탐탐 기다리고 있을 텐데···!”
그저 같잖기만 한 천마 대리라는 직책이라도, 지금 옥천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이름이었다.
정파에게 목숨을 잃은 하급 무사의 아들인 옥천에게 다른 끈이 있을 리 만무 지사.
천마의 제자라는 이름조차 스스로 버려버린 지금, 그가 기댈 수 있는 건 이 직책 말곤 없었다.
“그놈은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거냔 말이다!”
···지금 그가 유현에게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는 옥천으로썬 그렇게 울부짖는 것 말곤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그에게 도움이 올 리는 없다.
이제 남은 건 그저 절망하고, 또 절망하다, 마교의 수뇌부들과 약속한 시간을 이렇게 허무하게 보낸 채 버려지는 것.
그리고 그에게 원한을 가진 마교인들에게 목숨을 잃는 것.
그것밖에 없다고 생각한 그 순간.
[재밌구나.]
“뭣?!”
갑자기 그의 귀에 들려오는 목소리.
“누, 누구냐! 누구냔 말이다!”
어느 누구도 들어올 수 없는 천마의 폐관 수련실.
그런 곳에서 어떻게 다른 이의 목소리가 들릴 수 있단 말인가!
물론 그 사내는 제집 안방인 양 마음대로 들어왔지만, 그건 그의 높은 무공과 자신이 알려준 통로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자신의 머리론 그만한 경지에 오른 이가 마교에. 아니, 다른 어이든 있다는 건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물며 비밀 통로조차 알려주지 않았는데 들어온다는 건 그의 경지로도 불가능.
지금 옥천이 두려움에 떠는 이유는 지금 여기로 들어온 그 누군가가, 그보다 높은 경지에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하지만 옥천의 예상은 정확히 반 만 맞았다.
[능력보다 과분한 욕망과, 그것을 알면서도 끝없이 갈구하는 그 욕심.]
지금 그 목소리의 주인은 폐관 수련실에 없었지만.
[말 그대로 인간 그 자체가 아닌가!]
옥천이 아는 그 사내보다 월등한 경지에 올라 있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으니.
“누구, 누구야! 대체 누구냐고!”
[그것을 네가 알 필요는 없단다.]
슈우욱.
“크억!”
무언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옥천의 전신으로 파고드는 기이한 기운.
“끄아아아악!!!”
그 견디기 힘든 고통과.
우둑, 우둑, 우두둑.
전신의 뼈에서 들려오는 기괴한 소리에 옥천은 비명을 내질렀다.
하지만 기이하게도 그런 순간에도.
[네가 알아야 하는 건 딱 하나.]
옥천의 귓가에는 그의 목소리가 똑똑히 들려왔다.
[네가 꿈꾸던 그 힘을, 내가 줄 수 있다는 사실이지.]
그리고 그 말을 끝으로 옥천은 털썩, 눈을 감은 채로 힘없이 쓰러졌다.
그렇게 옥천이 정신을 잃은 상태에서도 그의 육신에서는 끝없이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노란색 땀방울이 계속해서 솟아나고 있었다.
계속, 또 계속.
그가 일어날 때까지, 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