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능의 진실(1)
파앙!
검과 창이 부딪히는 순간,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양쪽의 몸이 반대 방향으로 튕겨 나갔다.
서로의, 서로를 향한 최강의 일격.
그것이 서로 상쇄되는 순간 터져 나온 충격파는 한낱 인간의 육신으로는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설사 인간 중 제일 강하다는 화경의 고수도 마찬가지.
공중에 떠올라 있던 놈은 물론, 땅에서 창을 날렸던 나도 몇십 장은 되는 거리를 구르고 또 구를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날아갔을까. 겨우 충격의 여파가 줄어들고, 다시 운신이 자유로워진 순간.
쾅!
발을 땅에 박아 날아가는 걸 멈추는 동시에, 그쪽 다리에 힘을 주고 땅을 박찬다.
군림(君臨).
천마보법의 오의를, 오직 내가 도약하기 위한 용도로만 사용한다.
휘잉!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공중을 날아오르는 육신. 조금 전 충격파로 인해 날아갈 때와는 비교도 안 되는 속도로 다시 전장으로 복귀한 내 눈앞으로.
“으아아아아!!!”
나와 동시에 날아갔던 그놈이, 다시 한번 전신에 진한 푸른 기운을 감싼 채 날아왔다.
그 뒤로 이어지는 건 당연히.
쾅!
또 다른 한 번의 격돌!
하지만 서로 이번에는 날아가지 않는다. 날아갈 수 없다!
한순간의 틈이라도 내보였다간, 그때가 바로 패배라는 걸 나나 놈이나 똑똑히 알고 있었으니까.
쾅! 쾅! 쾅!
두 번, 세 번, 네 번!
서로의 무기, 서로의 무공, 서로의 전력을 맞부딪힌다!
끼긱!
드디어 처음으로 맞이한 대치.
놈의 검과 내 두 자루의 창이 서로 교차하고, 조금의 차이도 없는 힘과 내공의 겨룸.
서로의 가쁜 호흡 소리까지 들을 수 있는 그런 위치까지 다가온 놈과 나.
한창 힘겨루기를 하고 있던 도중, 놈이 입가를 크게 비틀며 입을 열었다.
“본디 가질 수 없는 것으로, 가져선 안 될 것으로 여기까지 온 것만큼은 칭찬해주마.”
“가질 수 없는 것, 가져선 안 될 것···개소리하는데···.”
끼긱. 나의 창이 살짝 앞으로 나아가고, 그만큼 놈의 검이 뒤로 물러난다.
“이건 내 것이다. 전대에서 정당한 방법으로 물려받은 내 근원이란 말이다. 본디 받아야 할 놈이라면, 그놈이 혼자 큰 욕심을 부리다가 못 받은 거니 그놈 탓이라고 전해주라고.”
나는 현 천마. 아니, 정확히는 천마 대리인 옥천을 생각하며 한 말이었지만, 놈은 오히려 같잖다는 듯 흥,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놈도, 그 전의 놈도 마찬가지다. 아니, 놈들의 핏줄 모두가 마찬가지야!”
끼긱!
이번에는 놈의 검이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가고, 내 창이 뒤로 밀린다.
“거짓된 핏줄의 인간들이 본디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져가서 마교니 뭐니, 기괴한 세력을 세워 자신들이 제일인 양 날뛴다. 그것이 우리에겐 얼마나 같잖은 것인지 아느냐?”
“그게 무슨 개소리야···권능은 애초부터···!”
“하! 아직도 무슨 말인지 이해 못 하겠나?”
챙!
놈이 한순간 힘을 실어 창을 튕겨낸다. 조금 전 그 거리가 무색하게 거리를 벌리는 우리 둘.
그렇게 멀어진 상황에서도 놈은 목청을 높이며 나를 향해 소리쳤다.
“권능은 본디 우리 일족의 것! 저놈들은! 아니, 저놈들뿐만 아니야! 자신들을 근1원(中原)이라 부르는 그 멍청이들도 다를 바 없다! 모두가 태초께서 가져와 준 축복을 자신들의 것인양 목을 뻣뻣이 세우고 소리치고 있지! 이게 옳다고 생각하나? 올바른 방식이라고 생각하나?! 아니!”
쿵!
“모두 틀렸어! 놈들은 전부 틀렸다고! 이 무공도, 이 땅도, 이 권능도 놈들에겐 애초부터 어울리지 않던 것! 그것을 원래 가져야 할 존재들이 가진다. 이것이 잘못됐다고?! 틀렸어! 잘못된 건 애초부터 너희였단 말이다!”
언뜻 광기까지 내비치는 놈의 말을 듣고, 그제야 나는 놈들이 무엇을 바라는지 깨달았다.
“너는···아니, 너희는 화산파를, 정파를 부리려고 했던 게 아니었어.”
놈들이 바라는 건 그 위의 것.
“네놈들은···정파를 모두 없애려고 했던 거였나?!”
“정파뿐만 아니다. 정파, 마교···그리고 자신들을 무인이라고 떠들어대는 같잖은 인간들. 그리고 스스로를 중원의 주인이라, 하늘의 아들이라 칭하는 우민의 일족도 마찬가지.”
“하늘의 아들···설마 황제 폐하를?!”
설마 이황자와 삼황자에게 손을 뻗고 있던 것도 이놈들이었단 말인가?!
예상보다도 더 넓은 영역까지 손을 뻗고 있는 놈들에게 나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그저 필요했던 일일 뿐이다.”
너무나 가벼운 말투. 너무나 가벼운 행동.
과거에서 그들이 벌인 일과 그 결과를 경험했던 사람으로서, 그들의 모습에서 너무나 큰 위화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네놈이 우리의 계획 몇 가지를 무너뜨렸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것도 상관없다. 이미 우리는 네놈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긴 세월 대계를 준비해왔지. 좀 더 편한 방법을 사용했을 뿐, 조금 더 복잡하고, 네놈이 건드릴 수도 없는 방법은 무수히 많다.”
번뜩!
“그때는 네놈의 같잖은 힘으로도 어찌할 수 없을 것이다.”
나조차도 읽어낼 수 없는 감정으로 번들거리는 놈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몸을 흠칫 떨었다.
마교의 정보요원으로 살아오는 동안 온갖 인간 군상을 다 만나왔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다시 엮여선 안 될 인간들도 여럿 만났다.
···이 인간은 그중에서도 최악.
완전히 뒤틀린 머릿속 세계 안에서, 오직 자신만이, 혹은 자신이 속한 집단만이 옳다며 날뛰는 미친놈들.
심지어 이놈들은 자기들 머릿속에 있는 그 멍청한 이상을 현실로 이룰만한 세력과 능력까지 갖추고 있다.
그런 놈을 바라보며,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선 놈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걸 왜 나한테 전부 말해주는 거지?”
위화감.
첫 번째 죽음을 맞이하던 그때, 제 일을 모두 술술 불던 마멸검과 비슷했다.
하지만 그때와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마멸검이야 그 더러운 성격 탓에 죽기 직전의 나를 놀리기 위해 말한 거라고 할 수 있지만···이놈은?
무려 황실과 정파. 그리고 마교에까지 암약하던 놈이다.
지금처럼 누구 하나가 압도적으로 유리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그저 놀려먹기 위한 수단으로 이 모든 걸 술술 불었다 하기엔 기이했다.
“간단해. 첫 번째는 경외다.”
“경외···?”
“그래. 사실 나는 중원의 모든 인간은 그저 덜떨어진 열화에 불과하다 생각했다. 우리보다 한참 못한 무공으로 대적할 수 있을 리 없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놈의 눈에서 지금껏 그 정체를 알 수 없던 감정이 한 꺼풀 벗겨졌다.
그리고 거기에 남은 건 두려움.
“···네놈과 함께했던 그 노승. 그를 보곤 생각이 바뀌었다.”
“신승 어르신을 말이냐?”
“그래. 바로 그 말이다. 그는 강했다. 아주 놀라우리만치 강했지. 중원의 모든 무인이 하찮다 생각했던 내게 그는 내가 단 한 번밖에 느껴보지 못한···경외를 느끼게 했지.”
“하···자기가 죽인 사람한테 경외라···본인 띄우기는 아주 천재적인 사람이로구만?”
뭐, 자기랑 비슷하게 싸운 인간은 그 사람뿐이었다···이런 말인가?
만약 진짜라면, 이놈은 진짜 개자식이다.
내가 그에게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 어렴풋이 알고 있으면서 저런 말을 하다니.
“아니.”
하지만 놈은 부정했다.
“나는 그를 죽이지 못했다. ···아니, 애초부터 건들이 는 것조차 불가능했지.”
“···뭐?”
그게 무슨 개소리야. 이 인간 말고 신승 어르신을 죽일 수 있었던 사람이 대체 누가 있다고···.
“그분···.”
“그분?”
“그의 목숨은 그분이 직접 거두셨다. 그리고 나는 느꼈지. 그분은 역시 그 누구에게서라도 승리를 거둘 수 있다고.”
···겨우 정상적인 감정을 보이던 놈의 눈이, ‘그분’이라는 자를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다시 아까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런 상태로 하늘을 바라보며, 놈은 떨리는 목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다짐했다! 나는 그분의 발끝에도 따라갈 수 없다고! 그분의 옆에서 그분을 보좌하는 것이야말로 나의 사명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휙!
놈은 고개를 돌려 다시 나를 마주했다.
순간 흠칫하고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그 기괴한 눈빛.
“네놈은 신승이 죽은 이때, 그것을 막아서는 최악의 방해물! 그리고 나는 그런 네놈을 죽이기 위해 친히 여기까지 찾아온 것이다!”
“그 말인즉···이놈의 목숨 따위, 어떻게 돼도 아무런 상관없었다는 소리군?”
“흥! 그놈도 어차피 쥐새끼. 모든 일이 끝나면 마찬가지로 숙청될 인간에 불과하지.”
수혈을 집혀 잠들어 있느라 이 말을 듣지 못했던 게 이놈에게 행운일까, 아니면 불행일까.
아니, 어차피 고문을 당하다 죽든, 아군인 줄 알았던 사람에게 죽든 거기서 거기인가.
“첫 번째가 경외라면···두 번째 이유는?”
“흥. 그거야말로 더 말할 필요도 없는 당연한 이유지.”
고오오!
“네놈은 이 자리에서 죽을 테니까!”
쾅!
마치 땅을 박차듯 공중에서 나를 향해 쏜살같이 날아오는 놈!
날아오는 동시에 휘두른 검에는 엄청난 힘이 담겨 있었다.
쾅!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
창을 들어 올리는 게 조금만 늦었더라면 정말로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르는 일격.
···안 되겠다.
놈에게서 조금 더 정보를 캐내 볼 생각이었지만, 이대로는 까딱 실수하면 내 목숨까지 위험하다.
오의를 써서 놈의 목숨을 거두는 수밖에···!
“흥, 멍청한 놈. 그 훔친 것을 사용할 생각이냐?”
“훔친 거, 훔친 거 하지 말라고 했지?! 나는 정당하게 이걸 얻었다고!”
“그 정당함은 이미 수만 년 전 잃어버린 것이라는 걸 이미 몇 번이고 말했을 텐데? 네놈도 알고 있지 않으냐, 그 권능이라는 것이 반푼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반푼이···?”
그게 뭔 소리야?
나는 놈의 말에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화순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너 설마 나한테 뭐 따로 숨긴 것 있냐?
[뭔 헛소리야. 너는 쟤를 믿냐, 아니면 나를 믿냐?]
아니, 물론 너를 믿긴 하지만···.
저놈의 모든 말을 헛소리 치부하기엔 권능과 관련된 사실을 이것저것 너무 많이 알고 있었다.
물론 그것을 옥천에게 들었다면 아주 말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놈의 말투를 들어보면 옥천이 알 수 있는 이상의 뭔가를 알고 있는 듯한 눈치다.
즉, 저 반푼이라는 말도 어딘가 근거를 가지고 내뱉은 말일 수 있다는 말이다.
[확실히, 저놈은 나도 모르는 뭔가를 알고 있을지도 몰라.]
화순은 분명 권능에 붙어있는 영혼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권능의 모든 걸 아는 건 아니다.
권능을 만든 인간이 초대 천마라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그가 정확히 어떤 사람인지는 기억하고 있지 못할뿐더러, 그것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내 힘이 네놈에게 반푼이라 들을 만한 힘은 아니지 않나?”
놈의 말대로 반푼이밖에 안되는 힘이라 쳐도 나는 그것만으로도 놈과 호각으로 싸우고 있다.
아니, 오의와 극의를 모두 사용하고 있지 않다는 걸 생각하면 사실상 내 승리는 확실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
하지만 내 말에도 놈은 오히려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그 반푼이 밖에 안되는 힘으로 거기까지 올라온 건 칭찬해주지. 하지만 네놈에겐 보이지 않겠지?”
“···뭐?”
“권능에 묶인 위대한 혼. 모든 것의 시작이었던 바로 그분. 태초의 존재로부터 태어났으나, 태초의 존재에게서 버림받고 말았던 그분을 네놈이 볼 수 있느냔 말이다!”
권능에 묶인 위대한 혼···아니, 설마···.
[내가 좀 잘나긴 했지만, 저런 놈한테 위대하다는 말을 듣고 싶진 않았는데.]
흔히 듣지 못했던 칭찬의 말에도 오히려 인상을 쓰는 화순.
얘가···진짜?
혹시 권능에 묶인 다른 영혼이 있는 건 아니야?
[미친놈아. 그게 할 말이야.]
아니, 그렇게 말한 건 좀 미안한데···아무리 그래도···.
진짜로 나도 모르게 부정의 말이 튀어나올 정도로 경악스러운 말이었다.
물론 화순이 이것저것 도움을 많이 준 건 맞지만···.
위대한 혼이니···태초의 존재이니···.
말하는 게 너무 커진 거 아니야?
“그분께 도움을 받지 못하는 권능은 한낱 반푼이. 아니, 권능이라 이름 붙이는 것도 부끄러운 것. 그래서 네놈도, 네놈에게 그 권능을 전해준 전대 천마도! 지금껏 그것을 이어받아 온 모든 천마가 반푼이라는 것이다! 이제 알겠나? 내가 왜 너에게 패배할 리 없다고 한 것인지? 그런 가짜로는 내게 절대 이길 수 없어!”
“아, 음, 그, 가짜라는 것 말인데···!”
“이제 말은 더 필요 없다! 그만 죽어라!”
고고고고!!!
“아니, 말은 좀 듣고···!”
쾅쾅쾅!!!
내가 무어라 말을 하기도 전부터 기를 끌어올려 마구 나를 향해 내려치기 시작하는 놈.
아까와 같은 정교함은 찾아볼 수 없었지만, 이제는 그것을 상회하는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다.
수백, 아니. 수천 년은 이어져 왔을 화산파의 건물들이 놈의 공격 한 번, 한 번에 가루로 화할 정도였으니.
“위대한 혼의 소리도 듣지 못하는 네놈에게 그 권능은 과분하다! 이제 그만 본래의 자리로 돌아오게···!”
“이 새끼가, 진짜!”
펑!
군림을 섞은 진각을 밟아 하늘 높이 떠오른다. 아까처럼 멀리서도 아닌 가까운 위치에서 뛰어오르지만, 놈은 나를 막기는커녕 보지도 못했다.
놈의 공격에 의해 피어오른 흙먼지에 의해, 오히려 놈의 시야가 가려진 탓이었다.
“놈!”
“그 위대한 혼이니 뭔지 나는 모르지만! 내 옆에는 그것보다 훨씬 대단한 영혼이 붙어있다고! 그리고 이건!”
고오오!!!
창끝에서 피어오르는 엄청난 기세. 그것을 놈도 느꼈는지, 지금껏 땅을 후려치던 기운을 모두 모아 나를 향해 날려왔다.
집채만 한 몽둥이를 수십 개씩 휘두르는 것 같은 모양새의 공격. 한 방만 맞아도 뼈를 추스르기도 불가능할 강력한 공격이었지만.
“그 녀석이 내게 가르쳐준 거다!”
내가 조금 더 빠르다.
천마창법 오의 와류.
천마창법 극의 폭우.
그 두 가지가 섞인, 내 최강의 일격!
콰과과과광!!!!
그것은 신의 분노라 일컬어지는 번개보다도 빠르고, 자연의 붉은 피라 부르는 용암보다도 무시무시한 힘.
말 그대로 폭풍우 그 자체가 놈의 전신에 휘몰아쳤다.
자그마한 인간 세계에서, 감히 절대라 칭해지는 화경의 고수에게 맛보여주는 진짜 절대적인 힘!
“끄아아아아악!!!”
그 힘을 직격으로 맞은 놈이 끔찍한 비명을 내지른다.
한 번의 폭풍우가 지나고, 마치 빨랫줄에서 벗어난 천처럼 땅으로 추락하는 놈의 육신.
그런 놈의 전신에는 방금 휘몰아친 폭풍우의 흔적이 가득했다.
“네, 네놈···어떻게···그런 반푼이 권능으로···.”
“그러니까 반푼이가 아니라고. 나는 네놈이 말하는 그 위···대한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아주 끝내주는 영혼이 하나 보인단 말이다.”
“뭐···?”
내 말을 들은 놈이 쉬이 열리지 않는 입을 열어 벌레 기어가는 목소리로 무언가 말하기 시작했다.
“위대한···혼이···보인다고···? 아냐, 그럴 리···아니···설마 네놈···!”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의 빛이 바로 이런 것인가. 광기와 분노로 번들거리던 놈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 여자의 핏줄이었나?!”
“···뭐?”
그 여자의 핏줄? 그게 무슨 소리야?
내 의문에도 놈은 그저 자신이 할 말만 마구 지껄일 뿐이었다.
“큭큭큭. 그랬군. 그랬어! 왜 그놈에게서 권능을 이어받을 수 있느냐 했더니! 바로 그 때문이었군!”
“그 여자라니···너 누구를 말하는 거야?!”
“네놈, 죽기 직전의 그놈을 찾아간 것, 우연이 아니겠지?”
“?!”
확실히 놈의 말대로 그건 우연이 아니다.
미래의 일을 알고 있던 내가, 그가 어디서 죽을지 알고 찾아갔던 일이니까.
그리고 나는 그걸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었다.
단 한 사람. 오직 나만이 볼 수 있고, 나만이 들을 수 있는 화순을 제외하곤.
“역시, 그 표정을 보아하니 너 뭔가 알고 있었군···그래, 그 여자가 네놈에게 그걸 맡겼단 말인가?”
콰직!
계속되는 놈의 발언에 결국 나도 참지 못하고 놈의 멱살을 잡아 내게로 끌어당겼다.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그 여자라니! 너, 설마 우리 어머니를 말하는 거냐?!”
“크큭, 중원에 우리의 피가 유출된 건 오직 그때 한 번뿐이었지. 어째서 네놈이 권능을 십분 발휘 할 수 있는지···알겠···군···.”
쿨럭, 쿨럭, 쿨럭.
놈의 말이 천천히 느려지더니, 곧 피와 내장 섞인 기침을 토하기 시작한다.
안 된다, 이건. 죽기 직전이다.
이미 폭우와 와류를 한 번에 맞은 이상, 대라신선이 와도 그를 살리는 건 불가능하다.
그것을 이성으론 이해하고 있지만, 내 본성은 완전히 반대로 행동했다.
오히려 놈의 멱살을 더욱 강하게 쥐어 잡고, 앞뒤로 마구 흔든다.
“빨리, 빨리 말해! 우리 어머니가 네놈의 그 잘난 집단과 대체 무슨 관계가 있다는 말이야!”
“큭, 크륵, 크르르···.”
전신에 상처가 다분하고, 끔찍한 내상까지 당한 참혹한 죽음 속에서도 놈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내게 진실을 말해주지 않고 떠나간다는 것이 그리도 기쁜 것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생기라곤 느껴지지 않는 놈의 축 늘어진 시체에서 손을 뗀다.
땅으로 힘없이 쓰러지는 놈의 육신.
나는 그런 놈의 시체 앞에서.
“대체···네놈은 뭘 알고 떠난 거냐.”
대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을 던지는 것 말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