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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능으로 무림최강-120화 (120/185)

화산파로(4)

내게 목덜미를 잡힌 채 땅바닥을 질질 끌려가는 화산파의 장문인이 한껏 목청을 높였다.

“아, 아무도 없느냐! 아무나 나를 구하러 오란 말이다아아아!”

“소용없어.”

나는 그를 끌고 가는 걸 전혀 멈추지 않은 채, 입만 열어서 그에게 말했다.

“애초에 너희들이 놀던 연회장에 오기 전에 바깥은 다 정리해놨거든.”

“모, 모조리 다 죽였단 말이냐?!”

“죽이긴 왜 죽여. 내가 무슨 피에 미친 살인귀인 줄 아냐? 다 푹 재워뒀으니 걱정하지 마라.”

이 인간이랑 연회장에서 같이 놀던 인간들은 물어볼 필요도 없는 죄인들이라 모조리 참살했지만, 화산파 내에 있던 화산의 제자들은 다르다.

그들 중 누가 죄를 지었고, 죄를 지었는지 나는 전혀 모르니까.

그들에 대해선 내일 아침, 아래에 있는 관원과 포졸들에게 맡길 생각이다.

어차피 화산파의 무인들이 벌인 죄의 증거야 이 인간이 어딘가에 잘 보관하고 있을 테니까.

“아, 하긴 지금 네가 제자들이나 걱정할 때는 아니긴 하지.”

씨익. 공포로 인해 흔들리는 놈의 눈을 직시하며 싸늘한 미소를 보여준다.

“이제 곧 똥오줌도 못 가리게 될 텐데, 어떻게 남을 걱정하겠냐. 안 그래?”

“아, 아니야! 나는 아무런 죄, 죄가 없다고! 아무것도 모른단 말이야!”

“그것도 걱정하지마. 딱 반 시진. 그만큼만 지나면 네가 화산파에 처음 입문하고 먹었던 점심 반찬 개수까지 줄줄 말해줄 테니까. 내가 고문 배운 사람이 아주 그냥 제대로 가르쳐주더라고.”

그래도 정보 요원 출신이라 고문에 대해선 웬만한 사람보다 더 잘 알고 있었지만, 진짜 금군 출신 인간은 수준이 다르더라.

심지어 그런 걸 눈앞에서 실습이라는 이유로 직접 보여주는데···어휴···.

[진짜 역시 제일 무서운 건 인간이라니까. 다시 알았어.]

그러게 말이야.

마교에서 온갖 끔찍한 꼴은 다 보고 살았던 화순조차 감탄할만한 실력이었으니, 더 말 안해도 되겠지?

“히이익!”

내 말에 끌려가던 장문인의 몸이 부르르 떨리더니, 그의 아랫도리 부분이 축축해졌다.

“야, 야야. 그러지 마. 안 그래도 고문 시작하면 줄줄 쌀 건데, 그렇게 벌써 지려놓으면 정리하기···.”

우뚝.

쓸데없이 겁만 많은 화산파의 장문인을 향해 소리치던 도중, 갑자기 나를 향해 날아온 싸늘한 기운.

너무나 익숙한 그 기운에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그린다.

“왔구나.”

“뭐, 뭣?!”

“역시 이놈만 억지로 살려 둔 게 제대로 먹혔나보네.”

···안 그래도 너무 절묘하다고 생각했다.

갑자기 정체불명의 괴집단이 나와 신승 어르신을 덮친 직후, 나에 관한 소문이 강호 무림에 퍼진다니.

물론 조사하다 보면 언제건 들킬 수는 있는 일이다.

아무리 내가 최선을 다해 증거로 쓸만한 건 모조리 지워놨지만, 내가 미처 지우지 못한 증거를 찾을 수 있는 사람도 있으니까.

하지만 이번 일은 너무 수상했다.

제대로 된 증거를 찾았다 하기엔 그 기간도 너무 짧고, 어떤 증거를 찾았다는 소문도 없었다.

혹시나 해서 소림사에 있을 적 무림맹에 파견 나가 있던 무승에게 물었지만, 그도 증거 같은 건 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렇게 되면 결론은 하나.

누군가가 ‘애초에 증거는 없지만, 심증은 가던 범죄’를 나에게 뒤집어씌웠다.

이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무림맹 내 다섯 개의 중추 문파를 완전히 장악한 놈들이다. 증거가 없더라도 한 명을 죄인으로 만드는 건 어렵지 않을 터.

문제는 ‘그렇게 만든 주체.’

나를 억지로 죄인으로 몰아야 하는 그 존재가 누구인가.

···그리고 그 답을 내는 건 간단했다.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왜 이렇게 반가울까 몰라. 응?”

바로 옆. 다른 건물에 비해 특히 높은 지붕의 맨 끝부분에 서 있는 검은 인형.

“당신은 어때?”

신승 어르신의 목숨을 거둔 그 남자를 향해 눈을 부라린다.

“당신도 마찬가지 아닌가?”

“나는 네놈 따위 보고 싶었던 적 없다.”

그때 들었던 것과 거의 다르지 않은 목소리.

아니, 조금은 다르다.

“내가 보고 싶었던 건, 네놈이 목숨을 잃고 땅에 널브러져 있는 모습이었으니까.”

이미 말에서부터 줄기줄기 흘러나오는 끔찍한 살기.

그 자체만으로도 사람이 숨도 쉬지 못하게 만들 끔찍한 살기 안에서 나는 미소를 지은 채 그를 바라보았다.

“그건 좀 힘들 것 같은데.”

방금 그가 내뿜은 것과 하등 다르지 않은 살기를 내뿜으며.

“나도 네가 그러는 꼬락서니를 보고 싶어서 말이야.”

감당할 수 없는 살기에 진작부터 기절한 장문인의 목덜미를 놓고, 양손에 창을 꽉 쥔다.

그렇게.

쿠웅!

모두가 잠든 화산파의 중심에서 두 외인의 싸움은 시작되었다.

*****

그리고 그 시각. 화산의 아랫부분.

지금 그곳에는 야심한 밤이라고는 믿기 힘든 어마어마한 인파가 몰려 있었다.

곳곳에 피어오른 횃불과 모인 이들에게서 풍겨오는 흉흉한 기세. 그리고 날카롭게 갈려 있는 창까지.

어떠한 목적으로 왔는지 알 수 없으나, 최소한 관광으로 온 게 아니라는 건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전방.

딱 봐도 휘황찬란한, 절대 전장에서 쓸 리 없는 보여 주기용 갑옷을 입고 있는 통통한 체형의 누군가는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감시해라! 만약 누구 하나라도 벗어났다는 이야기가 들리면 그땐 네놈들의 수급을 내가 직접 거둘 테니까!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병사들의 힘찬 대답에도 여전히 만족하지 못한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그는 뒤에 설치된 천막으로 들어갔다.

천막 내부는 그의 갑옷만큼이나 화려한 내부와 고급스러운 가구가 가득했지만, 그의 표정은 여전히 밝지 않았다.

털썩. 그의 체구만큼이나 커다랗고 푹신한 의자에 앉은 그는 탁자 위에 준비된 술을 향해 손을 뻗었다가, 바로 다시 손을 거뒀다.

지금 술을 마시고 있는 꼬락서니를 그에게 들켰다간, 진짜로 목이 날아갈지도 모르니까.

“···젠장.”

도독이라는, 자신이 다스리는 주(州) 안에서는 황제와 비견될만한 직위에 올랐음에도 술 한 잔 마음대로 마시지 못하다니.

내 상황이 대체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나.

한숨을 내쉬던 도독은 보기도 싫은 술병을 아무렇게나 던졌다.

챙그랑!

병이 깨지는 순간 천막 안을 가득 채우는 주향. 마시지 못한다면 이렇게라도 즐기려는 듯 의자에 몸을 기대며 그는 술 냄새를 가득 들이켰다.

진짜로 공기에 취했는지, 아니면 기분 탓인진 몰라도 술에 취한 듯 점점 몽롱해지는 정신에 기분 좋게 미소를 짓던 바로 그 순간.

펄럭!

“크, 큰일 났습니다!”

“뭣?!”

우당탕!

갑작스레 천막 안으로 들어온 병사가 큰소리로 외치자, 깜짝 놀란 그는 의자에 몸을 기대고 있던 도독은 바로 뒤로 넘어져 버렸다.

“헉! 괜찮으십니까?!”

“젠장! 대체 뭐냐! 뭔데 허락도 없이···!”

“아, 저, 밖으로 나와보십시오! 지금 하늘이 갈라지고 있습니다!”

“뭐···라고?!”

병사의 말에 머리끝까지 화가 치솟아 오른 도독은 벌떡 일어나 그의 멱살을 잡고 침을 튀기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이놈이 이런 긴급한 와중에 그런 헛소리나 지껄이고 있는 것이냐! 뭐라고? 하늘이 갈라져?!”

“하, 하지만···.”

“이번 일이 끝나면 네놈의 목숨을 내가 직접 거둬들이겠다! 하늘이 갈라지기는 무슨···.”

펄럭!

분노가 머리끝까지 차오른 상태로 천막 밖으로 나온 그는 밖의 모습을 보고 더욱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산 위를 지켜보라고 단단히 명령하고 왔는데, 모든 병사가 하늘만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닌가!

“이놈들이!”

도독이 분노 섞인 고함을 내지르려던 그 순간.

번쩍!

쿠콰콰과광!!!

하늘에서 엄청난 광채와 함께 지축을 울리는 굉음이 퍼져나오는 게 아닌가!

그의 고함은 그 굉음에 삼켜져 병사들의 귀에는 미처 닿지 못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정작 그 분노 섞인 고함을 내지르려던 도독 또한 그 광경을 정신없이 볼 수밖에 없었으니까.

“허···.”

그 높은 권력만큼이나 보통 사람은 볼 수 없는 광경을 여럿 봐왔던 그도, 지금 눈앞의 광경은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하늘이···갈라지고 있다니···.”

우지직!

그리고 그가 말을 꺼내는 동시에.

끼기기기기긱!!!

하늘에 붉고 푸른 기다란 상흔이 나타났다.

*****

역시나 예상대로다.

그는 정말, 끔찍하리만치 강했다.

끼기기기긱!!!

그는 내가 전에 봤던 다른 화산파 고수. 명석천과 비슷한 무공을 사용했지만, 그 경지나 힘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것이었다.

그저 자신의 기를 날려 보내는 것에 불과했던 명석천과 달리, 그는 자신이 뿜어낸 유형의 기운을 바퀴 모양의 칼날이나 날카로운 창날을 수십, 수백 개씩 만들어 날려 보냈다.

전후좌우. 사방팔방.

심지어 한 번 공격이 끝난 칼날도 잠깐의 기다림 없이 계속해서 다음 공격을 날려 보내니, 실질적으로 체감되는 공격의 숫자는 그것의 몇 배.

말하자면, 지금 나는 수천의 병력과 맞상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지금 이런 상황에선 금강부동신법도 전력으로 발휘하기 힘들었다.

강력한 두, 세 개의 공격이라면 역전(逆轉)으로 피할 수 있지만, 지금처럼 수많은 공격은 어렵다.

설사 몇 개를 피하더라도, 나머지 수백이 나를 다시 노려온다.

피하고, 피하고, 또 피할 수밖에 없는 공격들.

그리고 나는 지금 이 순간이.

“큭!”

너무나 즐겁다.

“하압!”

거짓 한점 없는 놈의 고함.

나를 향해 뻗은 손부터 머리까지 두껍게 솟아오른 힘줄.

단 한 순간도 나를 놓치지 않기 위해 부릅뜬 눈까지.

누가 봐도 분명한 전력.

지금 이놈은 자신이 발휘할 수 있는 최고, 최강의 무공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것과 맞서 당당히 승리한다.

그것이야말로 내가.

끼긱.

이놈에게 목숨을 잃은 신승 어르신에게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일 테니까.

나의 정면으로 날아오는 수백 개의 칼날을 향해 꽉 쥔 창을 휘두른다.

콰앙!

창끝에서 나온 거대한 와류가 수백 개의 칼날을 부서뜨리고 놈을 덮쳤다.

“큭!”

자신에게 와류가 닿기 직전 하늘로 날아오르는 놈.

푸른 기운에 둘러싸인 놈은 매섭게 나를 노려보았다.

“이 하찮은 도둑놈이···.”

“뭐?”

도둑놈? 갑자기 뭔 헛소리야.

“그것의 근원조차 모르는 쓰레기.”

번뜩!

“본디 가질 수 없는 보물을 얻은 아이가 그것의 가치도 모르고 흔드는 꼬락서니로구나.”

“그게 무슨 개소리냐!?”

“크큭, 네놈은 네 힘의 근원조차 모르는 것이더냐?”

우뚝.

하늘에 떠오른 채 지껄이는 놈의 말에 나는 모든 행동을 멈췄다.

내 힘의 근원.

나의 무공.

천마의 권능을···알고 있다는 것인가?

“너···설마···마교의 사람이냐?”

“크흐흐, 마교? 내가 그런 곳 따위에 속해있을 사람으로 보이느냐?”

“아니···그건 아니겠지.”

오랜 시간 마교에 속해있었지만, 저런 무공은 들어본 적도 없다.

저토록 다재다능한 무공을, 그것도 명석천같이 별 대단한 능력도 없어 보이는 첩자에게까지 가르칠 무공을 강해지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한다는 마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게 어디 가당키나 한 이야기인가.

“그럼 네놈은 대체···?”

“내 정체가 그토록 궁금하다면.”

챙!

그가 드디어 옆구리에 달아놨던 검집에서 검을 꺼내 들었다.

우웅.

그러자 그의 주변에 옅게 퍼져있던 푸른 기운이 모조리 그 검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번쩍!

이 깊은 야밤에도 화산파 전체를 뒤덮을만한 푸른 광채와 함께, 모든 것을 집어삼킬 무시무시한 기세가 그의 검에서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어디 한 번 살아남아서 알아보도록 해라.”

“흥.”

챙!

하긴, 놈이 내 무공을 알아보건 말건 상관없지.

“어차피 네놈은 여기서 죽을 예정이니까.”

그리고.

고고고고고!!!

쾅!

놈의 검과 나의 창이 맞부딪혔다.

그리고.

우지직!

끼기기기기긱!!!

하늘이 갈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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