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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능으로 무림최강-119화 (119/185)

화산파로(3)

만약 강호의 무인들에게 천하제일의 문파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몇몇 마교나 사파의 인물을 제외하면 단 하나의 문파의 이름이 튀어나올 것이다.

소림사.

천하공부 출소림(天下工夫 出小林)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아다닐 만큼 다양한 무공과, 그 무공 하나하나를 극성까지 익힌 강력한 무인을 매번 배출하는 그 힘!

거기에다가 정파 무림의 거두라는 말이 부끄럽지 않은 그 올곧은 심정. 천하에 파란이 일어난다면 제일 먼저 일어나는 협의심까지.

천하제일의 문파라는 이름에 그보다 어울리는 이들은 없다.

그것이 바로 세간의 평가였다.

하지만 천하제이(天下第二)의 문파는 어디인가?

···이제는 이야기가 좀 많이 갈리기 시작한다.

오대세가의 필두이자, 타지 사람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세가의 고질적인 병폐를 제일 먼저 타파하고 외부의 인원을 끌어모아 그 힘을 불리고 있는 남궁세가의 이름을 꺼내는 이도 있고.

천하에 없는 곳이 없다는 거지들. 백만이 넘는 방도수를 자랑하며, 천하에 얻을 수 없는 정보가 없다는 거지들만의 문파. 개방의 이름을 꺼내는 이도 있으며.

중소문파의 꿈과 희망. 단 몇십 년 만에 오대세가와 구파일방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으며, 현재 강호 무림에서 중소문파가 당당히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만들어준 바로 그 문파. 선풍제일문의 이름을 꺼내는 이도 있었다.

그렇게 무수히 쏟아지는 여러 문파의 이름의 틈바구니에서, 질문을 꺼낸 이는 곤란하다는 듯 뒷통수를 긁다가 하나의 묘수를 낼 것이다.

그렇다면 천하제일의 검문은 어디오? 하고.

천하제일의 문파라는 소림이지만, 아무래도 불가의 문파다 보니 날붙이를 쓰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강호에서도 가장 많은 사람이 사용하는 무기는 역시나 검인 법.

그리고 그것을 제일 잘 사용하는 문파는 어디냐는 그의 질문에, 질문을 받은 이들은 천하제일의 문파를 질문받았을 때 만큼이나 빠르게 그 문파의 이름을 꺼내리라.

화산파.

천하제일의 도문(道門)이자 천하제일의 검문(劍門).

강호에 퍼진 그 명성만큼은 절대 소림사에도 뒤지지 않는다는 문파. 검을 다루는 이라면 경외해 마지않는 문파.

그리고 지금, 그런 화산파에선···.

“으하하하! 좋구나, 좋아!”

···연회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그것도 보통 화려한 연회가 아니다.

도가의 문파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고급스러운 술과 음식. 그리고 한 사람당 최소 세 명은 붙어있는 기녀. 그리고 누군가 보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사방에서 들려오는 야릇한 신음까지.

도가의 문파라고는 절대 믿을 수 없는, 어디 졸부가 자기 측근을 모아서 하는 연회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지만, 여기 모인 이들 중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아니, 오히려 누가 더 방탕하게 노느냐는 경연을 하기라도 하듯 조금 더 많은 여인을, 조금 더 가깝게 붙이기에 여념이 없을 뿐.

그리고 제일 상석. 가장 많은 여인과 가장 고급스러운 술과 음식을 앞에 둔 채 흡족하게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던 청년은 자리에서 일어나 잔을 들고 큰소리로 외쳤다.

“마음껏 마셔라, 마음껏 즐겨라! 오늘은 화산파가 새로운 천하제일 문파로 군림하게 된 것에 대한 축제의 날이니! 누구 하나 즐기지 않는 자는 내가 직접 목을 칠 것이야!”

하하하하! 얼큰하게 취한 청년의 말에 다른 사람 모두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모두가 기쁘게 웃는 모습을 즐거이 바라보던 청년은 다시 자리에 앉았고, 옆에 있던 여인들은 각자 젓가락을 들어 그의 입으로 음식을 가져가기 시작했다.

방탕의 끝. 문란의 끝.

천하제일의 도가 문파라는 화산파의 이름이 더럽혀지고 있는 그 모습에 누구 하나 슬퍼하는 이도, 원통한 이도 없었다.

“경하드리옵니다! 장문인!”

“이제 어느 누구도 천하제일의 문파가 우리 화산이라는 데에 반박하는 이가 없을 겁니다!”

오히려 알랑방귀. 상석의 청년에게 어떻게든 아부를 하기 위해 있는 말, 없는 말 마구 내뱉을 뿐.

그들의 말을 하나도 빠짐없이 즐기는 청년. 화산파의 현 장문인인 그는 기분 좋게 웃으며 잔을 들었다.

“이제 우리 화산의 승천을 막는 우매한 이들은 모두 사지로 끌려가고, 진정으로 화산을 아끼는 우리만이 남았으니 이것은 작게는 화산의 복이요, 크게는 무림의 복이라 할 수 있소.”

휙!

“그리고 그건 모두 나와 여러분의 덕이라 할 수 있소!”

그가 먼저 술을 꾹꾹 눌러 담은 잔을 하늘 높이 들어 올리자, 아래에 있던 다른 이들도 함께 잔을 들었다.

“화산의 안녕과 무림의 평화를 위해!”

“화산의 영원한 군림을 위해!”

그 말을 끝으로 모두가 각자의 잔에 담긴 술을 한 번에 비우던 그때.

쿵!

거대한 연회장 입구의 문이 열리고, 거기서 한 사람이 나타났다.

“·········?”

“누구···냐?”

갑작스러운 불청객의 등장에도 연회장 내에 있던 사람은 누구 하나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몇 년. 아니, 몇십 년의 세월이 흐른 듯한 허름한 가사로 전신을 꽁꽁 감싼 사내.

이들 중 저 가사를 알아보지 못하는 이는 없었다.

“소림의 가사를 입은 자가 왜 여기에···.”

장문인의 최측근임을 자랑이라도 하듯 그와 가장 가까운 자리에 있던 사내가 중얼거린 한 마디가 지금 여기 있는 모두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었다.

소림의 고승으로 보이는 누군가의 등장에 이들이 이토록 흔들리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소림의 쇠락을 술안주로 씹고 뜯고 즐기던 이들이었지만, 그들 마음 한켠에는 여전히 소림에 대한 경외가 존재했다.

천하제일의 문파!

그 이름을 그토록 갈구해왔기에, 평생토록 얻고 싶어 하였기에 더욱더 소림의 저력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다가 이 절묘한 등장까지.

마치 기다렸다는 듯 자신들의 눈앞에 나타난 소림의 가사를 입은 사내.

이것에 당황하지 않는 이는 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네놈은 누구냐.”

그것을 이겨내야만 진정한 천하제일의 문파가 될 수 있는 법.

그렇게 생각한 젊은 장문인은 열리지 않는 입을 억지로 열고 그에게 말을 걸었다.

저벅, 저벅, 저벅.

하지만 사내는 장문인의 질문에도 아무런 대답 없이 연회장을 가로질러 안으로 들어갔다.

ㄷ자 모양의 연회실에는 마치 사내를 위한 무대와도 같았다.

그 압도적인 존재감에 누구 하나 제지하는 이 없이 안으로 들어온 사내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주위를 바라보았다.

그들이 마시고 있는 술. 먹고 있는 음식. 그들이 옆에 끼고 있는 여인.

“아···.”

움찔.

생각보다 훨씬, 훨씬 더 젊은 사내의 목소리에 그 목소리를 들은 화산파 무인들이 크게 몸을 떨었다.

몇십 년은 된 허름한 가사에 어울리지 않는 젊고 무미건조한 목소리.

“안 되겠네.”

“뭐···?”

펄럭!

갑작스러운 사내의 말에 화산파 무인들이 놀라는 사이, 사내는 가사의 어깨 부분을 잡고 그것을 그대로 땅겼다.

그러자 그 안에서 나타난 젊은 사내.

그런 그가 소림의 무인이 아니라는 사실은 모두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가 중이 아니어서···라는 이유는 물론 아니다. 속가제자라면 이상 중이 아니어도 소림의 제자일 순 있으니까.

그들이 그가 소림의 제자라는 걸 알아본 이유는 딱 하나.

“너는···!”

직접 본 적은 없지만, 화산파의 무인들은 지금 그 누구보다도 그를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남자가 이곳에 있을리 없는 남자라는 것 또한 말이다.

“정혈탐마!”

“그래도 너희한테 정당한 벌을 주려고, 조금은 더 참아보려고 했는데.”

스윽.

가사를 뒤집어쓰고 있던 사내. 유현이 손을 들자.

쾅!

연회장의 문을 부수고 들어오는 두 자루의 창.

싸늘한 기운이 느껴지는 묵색의 창은 오른손에, 멀리서도 열기가 느껴지는 적색의 창은 왼쪽에 든 그는.

“아무래도 안될 것 같다.”

여기 있는 모두의 심장이 똑 떨어질 만큼 스산한 목소리로 뭐라 말하더니.

“그냥 여기서 다 죽어라.”

쾅! 쾅!

그대로 하늘을 향해 두 자루의 창을 동시에 던졌다.

누구도 반응할 수 없는 속도로 날아간 창을 보며 침을 꿀떡 삼키는 화산파의 무인들.

만약 저 창이 자신을 향해 날아왔다면 어떻게 됐을까.

소름 돋는 상상을 하고 있던 화산파의 무인들은 곧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는 창을 하늘로 던졌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창 따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맞을 가능성도 거의 없고, 맞아봐야 죽을 일도 없다.

멍청하게도 하늘 위로 창을 던진 유현을 향해 비웃음과 분노를 함께 내보이는 화산파의 무인들.

“이 하찮은 놈이···!”

“어디 같잖은 일을 하는 것이냐!”

옆에 안겨 있던 여인들을 내치고, 각자의 무기를 든 채 흉흉한 기세를 내뿜으며 유현에게 다가온다.

일촉즉발의 상황.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조차 유현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가장 앞에서 그를 향해 다가온 한 명의 화산파 무인이 검을 꺼내.

“죽어라!”

그를 향해 휘두르는 그 순간까지도 유현은 그저 하늘만 가만히 바라봤다.

“꺄아악!”

곧 피보라가 뿜어져 나오리라 지레짐작하고 비명을 내지르는 기녀들과 미소를 짓는 화산파의 무인.

그리고.

촤악!

천장까지 닿을 정도로 뿜어져 나오는 피분수.

“···어?”

하지만 그 피분수의 주인은 유현이 아니었다.

가장 앞에서 유현을 향해 검을 휘두르던, 그 화산파 고수의 것이었으니.

“으아···!”

그리고 그 피분수를 일으킨 그것의 정체를 깨달은 누군가가 큰 소리로 비명을 내질렀다.

“창이 내려온다아아아!!!”

쾅! 쾅! 쾅! 쾅!

그의 발언을 시작으로 하늘에서 내려오는 수천, 수만 자루의 창의 비.

그것은 화산파의 고수라면 누구 하나 가리지 않고 평등하게 내려왔다.

“으아악···!”

“사, 살려···!”

말 그대로 ‘쏟아져 내려오는’ 창에서 도망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막아보려는 이도, 어떻게든 피해 보려고 하는 이들도, 하다못해 유현에게 어떻게든 덤벼보려는 이들도.

“네, 네년 들이 막아라! 네년 들이···컥!”

“꺄악!”

종래에는 정파 무인의 협의도 버린 채 아까 전 옆에서 끼고 돌던 기녀들을 틈바구니에서 피해 보려 했지만, 그것도 통하지 않았다.

하늘에서 내리는 창은 기이하게도 기녀들에게는 어떠한 해도 끼치지 않은 채, 오직 화산파 무인들만을 노렸기 때문이었다.

이번에 유현이 새롭게 익힌 그 기술. 오직 자신이 원하는 자들에게만 피해를 줄 수 있는 그 기술이 만들어 낸 기적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창의 비가 내렸을까.

쿵!

쿵!

최후의 최후. 마치 자신의 소양을 다한 것처럼 하늘에서 떨어진 두 자루의 창. 철혼과 진양을 거둔 유현은 고개를 숙인 채 벌벌 떠는 기녀들을 향해 외쳤다.

“각자의 가게로 돌아가시오. 더 이상 여기 당신들이 있을 필요는 없으니.”

유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고개도 들지 않고 바로 도망치는 기녀들.

아무리 자신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더라도, 하늘에서 내려오는 수만자루의 창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이는 없었으리라.

모두가 떠난 걸 확인한 뒤, 유현은 고개를 돌려 제일 상석을 바라보았다.

단 한 자루의 창도 꽂혀있지 않은 상석. 그곳에는 고개를 땅에 박은 채 벌벌 떠는 장문인이 있었다.

그의 모습에 천하제일 도문이자 검문, 화산의 화산파의 장문인의 위엄은 전혀 없었다.

그저 제발 자신에게 창이 날아오지 않기만을 빌며 벌벌 떠는 약자만 있을 뿐.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장문인에게는 화산의 안녕 따위 별 필요 없었다.

자신만 좋을 수 있다면 천하조차 버릴 수 있는 사내가 그였다. 사문이니, 제자이니 그에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그저 자신의 권력욕을 충당하기 위한 도구였을 뿐이다.

그렇기에 지금 화산파 제자들이 모두 몰살당했다는 사실에 대한 절망보단, 자신의 육신에 한 점 상처 없다는 사실에 기뻐하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너는 특별히 살려뒀다.”

천천히 상석을 향해 올라서는 유현.

기녀들은 모두 빠져나가고, 다른 화산파 제자들은 모두 목숨을 잃은 연회장에는 오직 두 사람만이 숨을 쉬고 있었다.

“너는 특별히 살려뒀다. 아, 그래도 착각하지 마라. 네가 좋은 놈이라서, 착해서···이런 건 당연히 아니니까. 그저···.”

상석에 올라 장문인과 눈을 마주친 유현이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너한테서 얻어야 할 정보가 아직 한참 남아있거든.”

그리고 그런 유현의 미소를 바라보며, 그는 자신도 모르게 등에 식은땀이 올라오는 걸 느꼈다.

지금껏 수많은 인간군상을 봐왔던 그조차도 한 번도 보지 못한 싸늘한 눈동자.

“아, 그리고 죽지 마라. 기껏 금군한테서 배워 온 고문 기술. 다 써봐야 하니까.”

그의 절망은 이제 시작이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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