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파로(1)
상황은 순식간에 끝났다.
수만의 금군에 의해 잡혀간 무인 중 명석천과 관계없는 외부의 무인들은 죄의 경중과 명석천에게 얼마나 협의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근처 장원에 연금했고, 명석천과 그의 부하들은 감옥에 가두어 놨다.
일을 전부 처리한 직후, 소림사의 숙소 내에서 쉬고 있던 금군측 지휘관이 찾아와 내게 설명해준 것이다.
“놈의 뒷배에 관해선 저희 금군 측에서 최선을 다해 파악하겠습니다. 황실 어사께선 편히 쉬시지요.”
···아마 고문을 하겠다는 소리겠지.
고문이라면 나도 아주 젬병은 아니지만, 아무리 천하제일이라 해도 하나의 문파에서 키운 정보 요원과 국가에서 직접 기른 고문 기술자의 수준은 하늘과 땅 차이 수준이었다.
당장 마교의 고문을 다 참은 죄인이 군의 고문에는 한 시진도 버티지 못하고 눈물 콧물 다 흘리며 알려줬다는 소문이 정보 요원 내에는 자자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아마 일이 끝나고 나면, 이젠 똥오줌도 제대로 못 가리는 인생만 남겠지.
“이번 일에 대해 최대한 외부에 소문이 퍼지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걱정하지 마십시오. 여기에 관련된 무인들은 전부 연금했고, 근처에 거주하는 백성은 현령과 도독을 시켜 함구하도록 하였으니까요. 외부로 소문이 퍼져나가려면 최소한 달포는 걸릴 겁니다.”
금군의 지휘관은 내가 요청했던 대로 모든 일을 완벽하게 처리해냈다.
지금 소림사가 있는 숭산 근처의 정보는 완벽하게 통제되고 있었다.
즉, 현재 무림맹에서 파견한 삼천의 무인에 대한 정보도 무림맹이나 화산의 귀에 들어갈 일은 없다는 말이었다.
“현재 명석천 측과 관련된 문파는 그의 사문인 화산파를 포함해 개방과 청성파. 그리고 하북팽가와 섬혼창가. 옥일명가가 관련된 것으로 보입니다.”
총 여섯 개의 문파.
신승 어르신이 내게 남겨주셨던 서책에 적힌 문파 중 이름이 가장 많이 나왔던 문파들이었다.
아마 이들을 주축으로 다른 중소문파가 수족 노릇을 했던 거겠지.
금군 지휘관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른 부분을 물었다.
“그 서책에 적힌 죄에 대해 아는 인원은 있었습니까?”
“수괴인 명석천을 포함해 화산파의 인원 중 다섯이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개방도 하나. 청성파 문도 하나. 그리고 하북팽가 제자 하나가 알고 있었습니다. 섬혼창가와 옥일명가 측에선 아직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아직 파악하지 못한 건가요, 아니면 없을 가능성이 큰 건가요?”
“아직 전원에게서 정보를 캐낸 건 아니지만, 남은 인원의 무공의 수위를 보았을 땐 없을 가능성이 큽니다.”
지휘관의 말에 나는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가 안 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이번 일의 주축은 화산파. 다른 문파 쪽에서는 일부러 문파의 주요 인원을 보낼 필요는 없었을 테니까.
“무공이 낮다 해도 문파의 주축일 가능성은 있으니 면밀히 조사해주시길 바랍니다.”
간단히 말해서, 더 빡세게 고문해달라는 소리다.
“알겠습니다.”
금군 지휘관은 내 말에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이만 편히 쉬십시오. 다른 필요한 일이 있으시다면 언제든 불러주십시오.”
“감사합니다.”
금군의 지휘관이 숙소 밖으로 나가고 잠시 뒤, 곧바로 또 다른 손님이 내 숙소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유 소협, 계십니까?”
언제나 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입가에 그리고 있는 남궁무진과.
“잠깐 이야기 나눌 수 있겠습니까?”
전과는 확연히 다른, 허허로운 기운을 몸에 감싸고 있는 도인현.
무림맹에서 그나마 안면이 있는 두 사람의 방문에 미소를 띠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물론이죠, 어서 들어오시지요.”
“하하하! 감사합니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유 소협.”
조금 전까지 금군 지휘관이 앉고 있던 탁자에 앉은 두 사람에게 차를 내주려던 찰나, 남궁무진이 손을 들어서 내 손길을 막더니 품을 뒤져 커다란 병 하나를 꺼내 들었다.
아직 뚜껑을 열기도 전에도 느껴지는 들큰한 주향. 아주 진하면서도 고급스러운 술이라는 걸 열어보기도 전에 알 수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는 데에는 그냥 차보다는 곡차(穀茶; 절에서 술을 이르는 말)가 좋지 않겠습니까?”
“허어, 승문 밖을 나가는 건 금지 아니었습니까?”
정보의 유출을 대비하여 금군의 출입까지 막는 실정이었다.
그나마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건 성하 공주나 나 정도밖에 없는 지금, 남궁무진이 술을 구할 방도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제가 누굽니까? 남궁무진하면 친화력, 친화력하면 남궁무진 아니겠습니까? 제 방을 관리하는 금군 분과 이야기를 좀 나눠보니, 마음이 아주 잘 통하시던 분이더군요. 물론 이것도 조금 사용했지만요.”
그렇게 말하며 손가락 두 개로 원을 만드는 남궁무진.
“제 방에서 뭔가 나가는 건 절대 금지지만, 그분이 안으로 들여보내 주시는 건 불가능하진 않다더군요. 차 대신 곡차 들여보내 주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었고요.”
“하아, 그랬군요. 그렇다면···.”
덜컹. 아까 지휘관이 찾아오면서 가져왔던 두 개의 병을 탁자 위로 올렸다.
남궁무진이 가져왔던 술보다 더욱 진한 주향이 느껴지는 고급스러운 병의 등장에 두 사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건 괜히 들고 와달라고 했군요.”
“아이고, 무슨 말씀입니까? 다다익선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곡차도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요. 하하하!”
그 직후 시작된 작은 연회. 그냥 먹기엔 독한 술에 제대로 된 안주는 없었지만, 모두 각자의 이야기에 독한지도 모른 채 연거푸 몇 번이고 술잔을 돌렸다.
술 두 병을 다 비우고, 남은 한 병을 천천히 나눠마시던 도중, 도인현이 입을 열었다.
“유 소협의 그 무공···역시 금강부동신법이 맞습니까?”
그의 질문에 한창 웃고 떠들던 남궁무진도 침묵에 잠긴 채 나를 바라보았다.
“···저도 예상치 못한, 우연한 기회에 얻은 무공일 뿐이지요.”
“혹시 그 무공을 전수해주신 분이 정말로···?”
“네, 맞습니다. 신승 어르신이시지요. 두 분이 보셨던 서책 또한 그분이 남기신 거고요.”
“아!”
“그리고 그분의 유지를 유 소협께서 이으신 거군요.”
신승 어르신의 안배에 감탄하는 남궁무진과 역시나, 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는 도인현.
“···그렇게 거창한 일인진 아직 모르겠군요.”
그저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처음 신승 어르신에게 그에 대해 파보자 했던 것도 나였고, 그걸 위해서 남만에도 다녀왔었으니까.
그분에게서 무공을 사사하는 건 정말로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지만···.
“그래도 그분 덕분에 이번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겠지요.”
만약 그분의 인연 없이 이 일을 홀로 맞닥뜨렸다면, 나는 내 편 하나 없는 무림을 황실의 힘으로 지울 수밖에 없었을 테니까.
어쩌면 현 무림의 안정이 그분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신승 어르신의 안배가 우리의 지금을···그리고 미래를 남겨줬다 할 수 있겠죠.”
“후후, 그 말 마음에 드는군요.”
“자, 그분을 위해 한잔하시지요.”
남궁무진이 잔을 들자 도인현과 나도 마찬가지로 잔을 들어 그 안에 담긴 술을 한 번에 들이켰다.
탁. 다시 탁자 위로 내려오는 잔이 잔잔한 소리를 퍼뜨리는 동시에, 그와 비슷한 음량으로 도인현의 말이 뒤이어 들려왔다.
“유 소협. 이제···화산파로 가실 생각입니까?”
“···네, 이제 가야지요.”
이번 일에 엮인 다른 문파. 개방이나 청성파. 그리고 하북팽가를 포함한 다른 중소문파의 경우는 금군이 나서기로 했지만, 화산파는 다르다.
전생부터 현생까지. 이런저런 악연으로 이어진 화산파만큼은 내 손으로 직접 처벌하겠다.
그렇게 금군은 물론이거니와 이 두 사람에게도 이미 공언해놨기 때문이다.
일부러 소문을 퍼뜨리지 않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만약 삼천의 무인이 다 잡혀들어갔다거나, 패배했다는 소문이 알려지는 순간, 범인은 화산파조차 버리고 도망칠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이다.
“혹시 그들을 처벌하지 말아달라···라는 부탁을 하시려는 건···.”
“아뇨, 그건 절대 아닙니다. 이미 그들이 지은 죄를 아는데 어찌 그런 몰염치한 부탁을 할 수 있겠습니까?”
혹시나 하는 심정에 물은 질문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손을 흔드는 도인현.
내 발언에 어지간히 놀랐는지, 그의 주변에 있던 허허로운 분위기조차 크게 흔들릴 만큼 당황하던 그는 헛기침을 몇 번 하며 입을 열었다.
“흠흠. 제가 부탁드리고 싶은 건 반대입니다.”
“반대···라면?”
“···화산의 썩은 부분은 그 안에 있던 제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입을 연 도인현의 말에는 그에 대한 고민과 고뇌가 절절히 섞여 있었다.
“저 또한 그것을 바꿔보기 위해 어떻게든 힘쓰고, 노력해봤지만···한계는 명확했습니다. 저는 한낱 화산의 제자일 뿐. 거기에 소속된 이상, 저 역시 그들의 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죄인일 뿐이었죠.”
“도 소협은 그들과 다릅니다. 죄가 죄인지도 모르고 자신들의 이득만을 위해 남을 피해 입힌 자들과 어찌 자신을 동급 취급하십니까?”
“하하하, 말씀은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 역시 화산의 사람입니다. 그들이 얻은 이득을 간접적으로나마 얻지 못했으리라는 확신은 없죠.”
쭉. 씁쓸한 표정으로 한 잔의 술을 들이켠 그는 굳건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유 소협께서 되셨다 생각하시는 만큼, 이 정도면 화산이 지은 죄가 갚아졌다고 생각하시는 만큼···그들을 벌하여 주십시오. 그 뒷정리는 제가 어떻게든 해보겠습니다. 제가 알던···그리고 다른 이들이 알던 화산으로 되돌려 보겠습니다.”
“·········.”
화산의 죄를 벌해달라는 화산의 제자.
그렇게 말하는 그의 심정이 어떠할지, 나는 절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진심만은 분명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의 진심 어린 부탁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화산의 썩은 부분을 모두 도려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 세 사람이 모인 술자리는 그렇게 끝났다.
서로의 속에 품고 있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각자의 마음속에는 서로 비슷한 감정이 피어올랐다.
혹자는 우정이라 부르는, 그런 감정이.
*****
“떠나시나요?”
“네. 최대한 빨리 가야죠.”
이른 새벽.
소림사의 승문 앞. 떠나려는 나를 배웅해주는 사람은 성하 공주 한 사람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전부 금군의 감시 아래 숙소에 박혀 있거나 감옥에서 고문을 받고 있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하지만 그녀는 미리 말 한마디 건네지 않았음에도 내가 떠날 걸 미리 짐작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혹시 감시하고 계시던 건 아니겠지?
“혹시 감시하던 건 아닐까, 하고 생각하실까 봐 말씀드리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감시는 안 했으니까.”
“그 말씀, 감시 의혹 강도만 더 높아진다는 거 아시죠?”
“폭풍단장의 행동 양식을 읽을 수 있게 된 것뿐이에요. 만날 사람들이랑 만나고 나면 바로 일하시러 출발하시잖아요?”
으음···반박을 못 하겠다.
군대에서 생활하던 그 시절부터 빨리빨리가 몸에 익어서 뭔가 일이 있다 하면 앞서 나가는 게 버릇이 되어 있었으니까.
특히 단장으로 진급하면서부터 더욱 그랬지.
“···그래서 아침나절부터 나오셔서 절 기다리고 있었습니까?”
“네, 배웅 없이 떠나는 폭풍 단장의 모습을 생각하니 제가 다 씁쓸하더군요. 그래서 저라도 배웅하자고 생각해서 왔죠.”
소풍이라도 나온 듯 싱글싱글 웃으며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 하아, 하고 들리지 않게 짧은 한숨을 내쉰다.
고민이 다 사라져서 그런가. 전보다 훨씬 밝아진 모습은 기쁘지만, 피곤하긴 더 피곤해진 것 같네.
그래도.
“···감사합니다.”
그래도 누군가의 배웅이 있으니 마음이 다르긴 하네.
내 감사 인사에 그녀는 더욱 밝아진 얼굴로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잘 다녀오세요. 나중에 이번 일에 대해서도 꼭 얘기해주시고요. ···어제처럼 거짓말은 하지 마시고요.”
···아직도 남만의 일을 거짓말로 생각하시나.
하긴, 나 같아도 내 부하 중 하나가 북경으로 올라가서 황제 폐하도 고개를 숙일 만큼 큰 공을 세웠다···라고 하면 이 미친놈이 뭐라는 거야, 할 테니까.
···나중에 남만 물건을 선물로 드리면 생각이 좀 달라지시겠지.
“알겠습니다. 재밌는 이야기를 준비해놓겠습니다.”
“네, 기대할게요.”
내게 손을 흔들어주는 성하 공주를 뒤로하며, 나는 화산과의 악연을 청산하기 위해 길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