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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능으로 무림최강-116화 (116/185)

정파 내전(5)

푸욱!

“·········!”

폭우(暴雨)로 만들어진 얇은 창을 맞은 화산파 고수 중 하나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쓰러졌다.

즉사···는 물론 아니다. 애초에 몸에는 상처 하나 없다.

위력을 최대한 줄이고, 오직 혈도를 짚기 위해 특별히 개조한 폭우.

지금 놈은 한 번의 일격에 마혈과 아혈을 동시에 집힌 것이다.

“잡아! 잡으라고!”

벌써 다섯 명의 고수를 잃은 명석천이 분노 섞인 고함을 내질렀지만, 그놈들로는 나를 어찌할 수 없었다.

금강부동신법을 사용할 필요도 없었다. 이미 놈들과 나는 아득한 차이가 있었다.

놈들은 어디까지나 실험대.

내가 새롭게 익힌 무공을 완숙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줄 도구에 불과했다.

“흡!”

명석천의 고함을 듣고 급하게 뛰어온 타 문파의 고수를 향해 와류를 쏘아냈다.

이 와류 역시 종래의 와류와는 전혀 다르다.

휘몰아치는 바람 속에서 적의 혈도와 근육을 제압하는 기술.

내게 날아오던 고수는 물론, 그 옆에 서 있던 다른 두 명까지 와류에 휩쓸려 아까 그 화산파 고수처럼 정신을 잃은 채 땅바닥에 널브러졌다.

순식간에 쓰러진 부하들을 매서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던 명석천이 두 눈을 부릅뜬 채 날 노려봤다.

사람 하나는 가볍게 찢어발길 수 있을 것 같은 매서운 눈빛이었지만.

“뭘 봐?”

그런 눈빛 하나에 쫄 내가 아니다.

전장에서 저놈보다 더한 놈이 한둘인 줄 아나.

피식.

내가 비웃음 섞인 한 마디를 날려주자, 놈의 주변에서 넘실거리던 푸른 기운이 그 몸집을 더욱 크게 키웠다.

저놈의 쓸모없는 눈빛과 달리, 진짜로 마음만 먹으면 인간의 몸뚱어리를 찢어버릴 수 있는 진짜 무기.

저런 곳 안에 들어가는 건 진짜로 자살행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겠지.

스윽.

“앗!”

“유 소협!”

하지만 나는 다르다.

놈이 들어올 수 있으면 들어와 보라는 듯 몸집을 크게 부풀린 푸른 기운 안으로 나는 당당히 발걸음을 옮겼다.

“노옴!”

내가 들어서자마자 순식간에 크기가 줄어드는 푸른 기운.

놈이 자신의 기운을 거두어들였다? 당연히 아니다.

압축이다.

고기를 담아놓은 보자기를 짓누르듯, 푸른 기운에 감싸진 나를 짜부라뜨리기 위해 기운을 압축시키고 있다.

보통 사람이라면 순식간에 주먹만 한 크기로 줄어들 강력한 압력.

“이, 이놈 대체···!”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것처럼 산책이라도 하듯 천천히 걸어서 놈에게 다가갔다.

그 모습을 보자 찢어질 듯 커지는 놈의 눈.

“대체 무슨 사술을 쓴 것이냐!”

“사술은 개뿔. 사술은 네가 쓰는 게 사술이고.”

정말로 별 대단찮은 건 아니다. 그저 내 육신 밖으로 놈이 나를 짓누르기 위해 쓰는 힘만큼, 그대로 밖으로 기를 내뿜는 것뿐이다.

물론 원래부터 그런 무공인 녀석의 것과 달리, 나는 정말 무식하게 내공만 들입다 퍼붓는 것에 가깝지만···.

“내가 쓰는 건 정공법이라고 하는 거야. 알겠냐?”

어찌 됐건, 녀석의 기운에 안에서도 당당히 오갈 수 있다는 사실은 변치 않는다.

당연히 내가 다진 고기 꼴이 되리라 생각했던 명석천은 파랗게 질린 얼굴로 천천히 뒤쪽으로 한걸음, 한걸음 물러선다.

놈의 첫 번째 수인 마약 먹인 무인들도 전부 제압당하고, 두 번째 수인 화산의 제자들도 거의 다 내게 쓰러진 상황.

심지어 자신의 무공이 최고조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에 들어와서도 내가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으니, 절망하지 않을 수가 없겠지만.

퍽!

“으아아아악!!!”

내가 발로 놈의 복부를 차서 날리자, 놈이 세상이 떠나가라 비명을 내질렀다.

저만한 고수가 엄살이 심하다, 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지금 저녀석이 겪고 있는 고통은 한낱 엄살로 치부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할 것이 분명했다.

방금의 발차기는 그냥 평범한 발차기가 아니라, 군림을 사용한 발차기였기 때문이다.

맨땅에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지진이 일어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묵직한 충격이 일어나는 군림을 맨몸에 사용하면 어떨까.

고수의 위엄이고, 단전의 내공이고 뭐고 그저 비명을 지르는 악기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살상 기술들을 유용한 비살상 기술로 바꾸는 데 주력했던 이번 연구에서 유일하게 비살상 기술을 살상 기술로 바꾼 결과가 바로 이것이었다.

“쿠왁! 끄억, 끄어억!”

땅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피를 토하는 명석천의 모습에는 부하들을 다스리던 위엄도, 도인현을 노리던 살기도 없었다.

그저 지금의 고통에서 어떻게든 벗어나려 발버둥 치는 한낱 시시한 인간의 모습만 있을 뿐.

한껏 피를 뿌리던 놈이 잠잠해진 건 피를 거의 한 말은 내뱉은 뒤였다. 축 늘어진 몸으로 가쁘게 호흡을 내쉬고 있던 놈은 떨리는 눈동자로 사방을 마구 훑었다.

“으, 으어어···.”

“내공을 끌어올려도 소용없어. 이미 단전은 부서졌으니까.”

강하게 발휘하면 단단한 대지조차 박살 내 버리는 군림이다. 한낱 인간의 육신이 멀쩡할 리가 있나.

설사 그게 항시 내공으로 보호되고 있는 단전이라 해도 다를 바 없다.

군림으로 인해 이미 놈의 몸은 만신창이. 피부부터 근육, 뼈와 단전까지. 어디 하나 멀쩡한 곳은 남아있지 않았다.

아니, 아니다. 멀쩡한 곳이라면 딱 한 군데 더 있구나.

“네, 네놈들!”

그나마 멀쩡한 입을 벌린 명석천은 비명과도 같은 목소리로 이미 구경꾼과 하등 다를 바 없던 정파의 군세를 향해 소리쳤다.

“당장, 당장 이 악적을 쓰러뜨려라!”

“뭐, 뭐라고?”

자신들을 이끌었어야 할 두 화산파의 두 거물이 갑자기 내전에 돌입한 이후, 어찌해야 할지 추이를 지켜보던 이들은 갑작스러운 명석천의 발언에 그와 도인현. 그리고 나를 번갈아 보았다.

“이 남자를 쓰러뜨리라니···그 무슨···.”

“네놈들이 모인 목적도 잊은 거냐! 이 악적! 정혈탐마의 목숨을 거두기 위해서가 아닌가! 지금 그 악적이 정파 무인을 여럿 참살한 이 모습을 보고도 왜 그리 멍청하게 서 있느냔 말이다!”

“·········.”

명석천이 분노에 찬 고함을 마구 내질렀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움직이는 이는 하나도 없었다.

뭐···이런 상황에서 누가 움직일 수 있겠냐마는.

수백의 인원을 한 번에 휩쓸어버린 내 무력은 둘째치고, 지금 내 편에만 소림사와 화산파. 그리고 남궁세가까지 함께 하고 있다.

소림사 하나야 숫자의 폭력으로 어찌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그들도, 무려 세 개의 대형 문파와는 척을 지고 싶진 않으리라.

더군다나 그들이 가지고 있던 명분도 이제는 그 빛이 바랬다.

누가 봐도 화산파의 정통 무공을 사용했던 도인현과 달리,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기괴한 무공을, 그것도 자신의 부하들 모두에게 익히게 한 명석천.

지금 그가 정말로 화산파의 인물이 맞긴 한가도 확실치 않은 상황이다.

혹시나 지금 나와 맞서 싸워 나를 이긴다 쳐도, 그 뒤는?

만약 오히려 명석천이 화산파를 배신한 거고, 도인현이 제대로 된 화산파의 인물이라면 그들은 그의 반란을 도운 격.

지금 움직이지 못하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뭐···물론 움직였다고 해도 내가 당할 가능성은 없지만.

여기에는 개인적인 무력도 포함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왔군.”

저 먼 곳에서부터 들려오는 기마 소리에 고개를 들어 그쪽을 바라본다.

나만 겨우 들을 수 있던 소리가 점점 커지면서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사람도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반응은 누구 하나 다를 것 없이 모두 동일.

“저, 저게 무슨···!”

“이 소리는 설마···?!”

경악에 찬 눈빛으로 그곳으로 시선을 집중했다.

그리고 그 소리의 정체가 눈에 보일 무렵.

한 사내가 그쪽을 바라보며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 금군이다! 금군이 몰려왔다!”

오직 황제의 병사에게만 허락된 황색의 깃발을 하늘 끝에 닿을 정도로 높게 올리고, 지축을 울리는 말발굽 소리와 함께 이쪽을 향해 달려오는 병사들.

그들의 정체를 알고 누구 하나 두려워하지 않는 이가 없었으니.

아무리 군무불가침이라지만, 금군은 그런 것조차 무시한다.

그들이 지키는 것은 백성도, 국가도, 무림도 아닌 오직 황제 한 사람뿐.

황제에게 해가 된다면 그것은 어떠한 것이라도 부수고, 또 무너뜨린다.

본디 황제를 지키기 위해 자금성 밖으로 나오지 않는 이들이 밖으로 나오는 경우는 오직 단 한 가지.

“서, 설마 우리를 역적으로 아는 건가···?”

반역(反逆)!

황제를 무너뜨리고, 자신들만의 세상을 만들려는 죄인을 처벌하려는 그 순간뿐!

“아, 아냐! 아니라고! 우리는 반역도 따위가···!”

무인 중 하나가 벌벌 떨며 도망치려던 그때, 바로 옆에 있던 무인이 그의 팔을 낚아채며 큰소리로 외쳤다.

“도망치지 마! 도망치면 그땐 진짜 반역도 취급받는다!”

안 그래도 변호하기 어려운 죄가 반역죄다. 지금 도망쳐봐야 숨기는커녕 반역도가 도망친다며 즉결 처벌할 확률이 십 중 십할이다.

무인이. 아니, 명의 백성이라면 그 누구라도 금군에게서 살아남는 방법은 딱 하나.

그저 엎드린 채 자신들은 반란을 저지른 적이 없다고 빌고, 빌고, 또 비는 것뿐이다.

그냥 언뜻 세어도 십만을 넘어서는 금군이 수천의 무인을 둘러싸는 데에는 긴 시간도 필요 없었다.

순식간에 삼천의 무인과 백팔나한을 둘러싼 금군은 흉흉한 기세를 내뿜으며 각자의 자리를 지켰다.

갑작스러운 금군의 등장에 두려워하는 건 삼천의 무인 뿐만이 아니었다.

만사에 진지한 도인현은 물론, 웬만한 일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남궁무진도 자신의 가신들을 지키듯 앞에 선 채 걱정 어린 표정으로 금군들을 바라봤다.

“유 소협···.”

“걱정하지 마시오.”

걱정이 가득한 목소리로 나를 부르는 도인현과 눈을 마주치며, 나는 싱긋 미소지었다.

“다 계획된 일이니까.”

“계획된···일···? 그건 무슨 말씀···.”

다그닥.

남궁무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전장. 아니, 지금은 죄인을 효수하는 처형장이 되어버린 그곳에 말발굽 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졌다.

적갈흑백. 말을 전혀 모르는 이들이 보아도 감탄할 수밖에 없는 아름다운 명마 네 마리가 이끄는 황금의 마차는 수많은 사람의 시선의 틈바구니에서도 당당히 자신이 가야 할 곳.

···그러니까 내 앞으로 다가왔다.

하아, 이거 느낌이 딱 그분인데···.

사람들의 시선이 점점 황금 마차에서 나로 옮겨질 무렵, 도착한 황금 마차의 문이 열리고, 그 안에서는.

“오랜만이군요, 폭풍단장.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네···이런저런 일이 좀 있었지요. 기체후 일향만강하셨습니까···.”

입에 잘 달라붙지도 않는 극존칭을 붙이며, 나타나리라곤 전혀 예상치 못한 그녀를 입에 올린다.

“성하 공주마마.”

“후후, 이런저런 일이라. 확실히···지금 이 광경만 봐도 얼마나 많은 일을 겪었는지 알겠네요.”

이제는 소녀의 티를 완전히 벗어나, 완숙한 여인의 향기를 풍기게 된 그녀는 황실의 여인답게 고고한 분위기를 풍기며 주변을 살폈다.

“이번 사태가 끝나면 꼭 이야기해주세요. 오라버니께서도 폭풍단장의 이야기를 무척 고대하고 계시거든요.”

“네, 알겠습니다.”

“후후, 약속했어요.”

싱긋, 나를 향해 미소를 보였던 그녀는 다시 고개를 들어 얼리자 더 차가워질 수 없을 만큼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목소리를 높였다.

“병사들은 들으라!”

쿵!

그녀의 호령에 사방을 둘러싸고 있던 금군이 동시에 크게 창끝으로 바닥을 찍었다.

“이들 중 폐하께서 친히 임명하신 황실 어사의 목을 치겠다 공언하며 사람들을 모은 이가 있다! 이들 중 죄가 있는 자는 철저히 조사하여 그에 맞는 정당한 벌을 받게 하라!”

“충!”

공주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금군들이 점점 무인들을 옥죄이기 시작했다.

“나, 나는 죄가 없소! 정말이오!”

딸그랑!

“나도 마찬가지야! 나는 그냥 사람들을 따라왔을 뿐이라고!”

떨그렁!

점점 금군이 다가오는 압박감을 견디지 못한 무인들이 하나둘 각자의 무기를 버리기 시작했다.

여기 모인 무인들과 자신은 전혀 상관이 없다는 양, 무기를 버리고 고개를 다른 곳으로 돌리는 무인도 있었다.

금군이 가까이 다가가 무인들을 잡아들이기 시작했지만, 거기에 반항하는 이는 없었다.

금군의 무공도 다른 무인들과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거니와, 여기서 조금이라도 반항했다간 진짜로 반역도가 되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하나둘 금군에게 잡혀 순순히 끌려나가는 무인들.

도인현 옆에 있는 화산파와 남궁무진의 옆에 있는 남궁세가의 사람들에게도 금군이 다가왔지만, 내가 손을 들자 바로 고개를 숙이며 물러섰다.

“아, 참. 이거 돌려주는 걸 잊었네요.”

가만히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성하 공주가 품을 뒤져 하얀색 마패를 내밀었다.

저번에 대장군과 군마 공급 계약을 하면서 받았던 그 마패였다.

“이거. 서찰과 같이 보내셨더군요.”

“네. 저라는 증거를 알려드릴 만한 게 이것밖에 없어서···실례···였습니까?”

“아뇨, 딱히 대단한 것도 아니니까요.”

툭. 내 손 위로 마패를 내려놓은 그녀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저 황제 폐하나 그 대리인만이 임명할 수 있는, 오직 황실의 명령만을 받는 황실 어사를 증명하는 증표일 뿐이에요.”

아, 그렇구나. 그냥 황실 어사를···증명하는···증표···.

···젠장.

“···그리고 저는 그걸 서찰에다가 담아 보낸 거로군요.”

“네, 그렇죠.”

“아, 음···무릎 꿇으면 용서해주시나요?”

“호호호, 걱정하지 마세요. 그에 관해선 미리 말씀드리지 못한 제 잘못이 더 크니까요. 대신···.”

“대신···?”

“아까 약속한 이야기, 기대하고 있을게요.”

마지막으로 나를 향해 미소를 띤 그녀는 다시 황금 마차를 타고 떠나갔다.

그 많던 무인이 사라지고, 화산파와 남궁세가 무인 몇몇과 백팔나한만이 남은 전장.

짧게 한숨을 돌린 나는 그들을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모두 일어서십시오!”

내 말에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서는 사람들. 아직도 상황을 다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듯 텅 비어버린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그들을 향해 말했다.

“저희가 승리했습니다.”

그 직후, 이백여 명의 환호가 전장에 울려 퍼졌다.

과거로부터 이어졌던 타락한 정파와의 싸움이 드디어 마무리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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