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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능으로 무림최강-115화 (115/185)

정파 내전(4)

챙!

기괴한 푸른 기운이 도인현이 든 검과 맞부딪히자, 빨간 불똥이 번쩍였다.

“큭!”

검을 통해 팔로 전해진 충격에 도인현이 침음성을 흘렸다.

평상시 같았다면 충분히 감당할만한 충격이었지만, 지금의 상태론 그것도 버티기 힘들었다.

“으하하하! 보라! 그 잘난 화산 제일의 기대주가 패배하는 모습을!”

그에 반해 기순홍은 웃는 낯으로 그를 향해 소리쳤다.

몸도, 육신도 팔팔할뿐더러 도인현의 검과 맞닿지도 않은 그가 고통스러워할 이유는 없었다.

힐끔.

도인현은 검을 바로잡으며 자신의 뒤편을 바라보았다. 남궁무진을 위시한 남궁세가의 사람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그 숫자라 해봐야 겨우 열 명.

서른 가량의 화산파 측 인원을 더해도 겨우 사십. 그에 반해 일흔에 더해 타 명석천의 입김을 받은 타 문파의 무인들까지 여럿 모여있는 저편을 상대하기엔 턱없이 모자랐다.

완전히 바깥으로 밀려나 있는 외부 무인들은 갑작스러운 화산파의 내전 상태에 어찌할 바도 모르고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도인현의 이름을 듣고 왔지만, 지금껏 그들을 여기까지 끌고 온 건 명석천이었다.

그런 두 사람의 싸움에 어찌 다른 사람들이 끼어들까.

···아니, 차라리 낫다. 반반으로 인원이 나뉜다 쳐도, 사람을 부리는 방법을 모르는 도인현에게는 별 도움도 안 된다. 차라리 저쪽에 가만히 서 있는 편이 더 도움이 되리라.

결국 마흔으로 백여명을 상대하면 된다···이건가.

‘···좋지 않다.’

“흐흐흐, 그래, 그 눈빛. 그 눈이 보고 싶었어.”

현재 전황을 파악한 도인현이 입술을 이로 꽉 물자, 기순홍이 입가를 비틀이며 도인현을 비웃었다.

“세상에 자기만 잘났다는 듯 목 뻣뻣이 세우던 놈이 현실에 절망하는 바로 그 꼬락서니! 그런 걸 보고 싶었다고!”

푸와앗!

기순홍의 광기 어린 목소리에 그의 주변에 서리던 푸른 기운이 늘고 줄기를 반복했다.

···저 푸른 기운.

화산의 기운과는 상극과 다름없는 저 기운에 도인현은 힘을 쓰지 못했다.

자신의 기운이 더 강할 때는 종이 자르듯 자를 수 있었지만, 저 기운이 더 강할 때는 아무리 두드려도 깨지지 않는 방패와 같았다.

결국 저것을 이기기 위해선, 저 기운을 상회하는 힘으로 베어내야 한다는 뜻이었다.

···더 강한 힘.

쾌와 환을 중점으로 수련하고 있던 도인현에게 더 강한 힘이란 거리가 먼 이야기였다.

물론 그 재능과 도인현 본인의 노력까지 더해 동년배는 물론 한 배분 높은 고수와 비교해도 더 한 높은 내공을 가지고 있긴 했지만, 그것도 몸 상태가 정상일 때의 이야기다.

지금처럼 바닥에 있는 내공까지 다 긁어서 사용한 상황에서는 자신보다 두 수는 아래에 있는 상대에게도 어찌할 수 없었다.

그가 자랑하던 속도는 검도 들기 힘든 육신의 피로 앞에선 지나가던 잠자리도 앉을 정도였고, 그가 피어 올린 꽃의 향기까지 느껴지던 환검은 그 무엇도 피어내지 못했다.

설마 이 순간에 자신의 약함을, 부족함을 통감할 줄이야.

피식.

분명 자신이 불리한 상황임에도, 기이하게도 웃음이 피어올랐다.

이번이 몇 번째더라. 자신이 약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때가.

“···어이, 네놈. 뭐냐.”

기순홍이 자신의 부른다는 사실조차 잊고, 도인현은 추억에 잠겼다.

처음은 분명 사부님과의 첫 대련에서였다. 스스로는 재능이 없다 하셨지만, 도인현의 사부는 훌륭한 무인이었다.

지금과 같은 마음가짐을 가지게 된 것도 그 분 덕분이었으니.

그분에게 부끄럽지 않은 제자가 되기 위하여 지금까지 노력했다.

“네놈, 도대체···.”

두 번째는 당연히 그때였다. 유현과 신승의 만남.

그때가 처음이었다.

누군가와 겨뤄보기도 전에 패배를 인정했던 적은.

하지만 좌절은 없었다. 유현의 일격을, 그런 일격을 파훼하는 신승의 모습을 떠올리며 수련에 수련 거듭했다.

그리고 오늘.

다시 한번 맞붙은 유현은 자신과는 완전히 다른 영역에 들어서 있었다.

아무리 공격하고, 또 공격해도 맞지 않는 그 신법과 아무리 기를 끌어올려도, 한 번에 그 모든 것을 산산이 부수는 강력한 일격까지.

변명의 여지도 없는 압도적인 차이. 말 그대로 깔끔한 패배였다.

“도대체 왜 웃고 있느냔 말이다!”

‘···웃고 있어? 내가?’

기순홍의 목소리에 도인현은 자신의 입가를 매만졌다.

‘···정말이네.’

양쪽 끝으로 올라간 입꼬리. 그리고 깊게 팬 보조개.

기순홍의 말대로 도인현은 정말로 웃고 있었다.

이토록 절망적인 상황에서, 지울 수 없는 패배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대체···.

···대체 왜 미소를 짓고 있는 걸까?

“···흥! 너무 큰 공포에 맛이라도 간 거냐?”

비꼬는 듯한 기순홍의 말에 도인현은 자문했다. 정말로 나는 지금 또 다른 패배 앞에서 공포에 질린 것인가?

아니.

대답은 잠깐의 고민도 없이 튀어나왔다. 눈앞의 기순홍에게 맛볼 공포 따위 두렵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이놈에게 패배한다는 그림부터 전혀 그려지지 않는다.

告.

분명 이토록 힘들고 어려운 상황인데 지지 않을 거라 확신하는 이유가···.

···아.

그것 때문이구나.

“좋아, 원한다면 맛보여주마! 그 압도적인 패배를···!”

“아니.”

“···뭐?”

챙.

기순홍의 말에 도인현은 힘없이 검을 축 늘어뜨린 채로 말했다.

“···뭐가 아니라는 거냐?”

“그걸로는 부족해. 아주 한참은 부족하다고.”

“부족해?”

“그래. 너는 모르겠지만, 패배라는 건 그렇게 가벼운 게 아니야.”

인생을 통틀어 몇 번 경험해보지 못한 패배지만, 오히려 그러므로 잘 알고 있었다.

진짜 패배의 아픔과 고통.

“그리고 그것을 이겨내기 위한 노력을, 그저 한 번 졌다고 자신의 근본조차 버리며 달려드는 네가 과연 알까?”

“이놈···무슨 헛소리를···!”

“솔직히 말하면, 나도 잘 몰랐어. 근데 이제 좀 알겠더라.”

씨익.

“진짜 패배라는 게 뭔지.”

“개소리하지 마라!”

퍽!

기다란 채찍처럼 변한 기순홍의 푸른 기운이 도인현의 몸을 후려쳤다.

“진짜 패배? 진짜 패배?! 이게 바로 진짜 패배다! 내게 손가락 하나 까딱 닿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는 것! 그게 네놈이 겪을 진짜 패배다! 죽어라! 죽어! 죽어! 죽어어어어!!!”

퍽! 퍽! 퍽! 채찍을 넘어 이제는 숫제 주먹처럼 마구 휘둘러지는 푸른 기운. 그 공격에 출 늘어진 도인현의 육신이 좌우로 마구 흔들렸다.

“도 소협!”

슥.

“?!”

뒤에서 내공을 회복하며 싸움을 관망하고 있던 남궁무진은 바로 도인현을 향해 달려가려 했지만, 오히려 다가오지 말라는 듯 손을 드는 그의 모습에 발을 멈췄다.

지금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빠져나올 방법이라도 있다는 것인가?

그게 아니라면···.

“그 잘난 척 하는 입도! 기분 나쁜 얼굴도! 네 그 같잖은 자존심도! 전부, 전부, 전부 다 망가뜨려 주마!”

퍽!

그 기운이 오른쪽 어깨를 후려친다.

퍽!

그 기운이 왼쪽 옆구리를 후려친다.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고통.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아픔.

하지만 여전히, 패배와는 거리가 멀다.

그래, 이것 봐.

서걱!

“···뭐?”

이렇게 쉽게 이겨낼 수 있잖아.

한창 도인현을 두들겨 패던 기순홍은 뭔가를 베어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 주변을 바라봤다.

누가, 뭘 벤 거지?

지금 맞부딪히고 있는 사람은 기순홍 본인과 도인현뿐. 심지어 둘 중 뭔가를 베려면 검을 베고 있는 도인현 말곤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팔을 축 늘어뜨리고 있는 놈이 칼질할 수 있을 리가···.

“···응?”

그 직후, 기순홍은 팔에서 느껴지는 싸늘한 통증에 그곳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런 그가 마주한 것은.

“아.”

자신의 한쪽 팔이 잘린 채, 아래로 떨어진 모습이었다.

“아아아아아!!!”

그제야 느껴지는 강렬한 통증과.

“죽여버리겠다아아아아!!!!”

그 이상의 격렬한 분노!

더 이상 장난은 없다. 이제는 정말로 놈을 쳐 죽여버리겠다!

그런 분노에 가득 찬 상태였기에, 기순홍은 미처 알지 깨닫지 못했다.

도인현을 향해 공격을 날리면서도, 혹시나 그의 반격을 대비해서 푸른 기운으로 몸을 감싸 완벽하게 전신을 보호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조금 전 뭔가를 베어내는 소리가, 그저 자신의 팔만 베어내는 소리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로 인해.

서걱!

자신이 전력을 다해 날려 보낸 기운은 물론.

“끄아아악!”

자신의 옆구리에 커다란 상흔을 입게 된다는 사실을.

“네, 네놈! 대체, 대체 어떻게···?!”

분명히 체력도, 내공도 없었다. 손가락 까딱할 힘도 없어 계속 맞기만 했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그만한 거리에서 자신에게 검을 휘둘렀다고?

가능할 리 없어!

“모르겠네.”

“뭐, 뭐라고?”

“그냥···이런 패배 같은 거, 용납할 수 없었을 뿐이야.”

이런 녀석에게 질 수는 없다.

그런 의지를 담아 놈을 바라보자, 아주 훤하니 보였다.

어떻게 검을 휘둘러야 하는지, 얼마만큼 힘을 써야 벨 수 있는지.

그리고 그대로 따라 하자, 놈의 기운과 팔이 잘리고, 옆구리도 잘렸다.

···이게 그 깨달음인가 뭔가 하는 그건가?

지금껏 자신의 노력으로만 경지에 올랐던 도인현에게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설마 전투 도중에 뭔가를 깨닫게 된다는 것이 정말로 가능할 줄이야.

생전 처음 겪어보는 특이한 충만감에 도인현은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전신에 느껴지는 아릿한 통증과 텅 빈 단전. 그리고 여전히 검 한 자루 들고 있기 힘든 체력은 그대로였지만, 그래도 승리만큼은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아, 안 돼! 이대론 죽을 수 없어!”

도인현에게서 느껴지는 심상치 않은 기운에 기순홍은 어떻게든 도망쳐 뒤에서 두 사람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던 명석천에게 다가갔다.

“살려···!”

콰직!

“컥!”

하지만 그것이 오늘 그가 할 수 있는 최악의 선택이었다.

“쓸모없는 놈. 기껏 그런 무공을 전수해줬더니···.”

“큭, 크륵, 크르르륵.”

“겨우 저런 것한테 패배해?”

우드득!

“쓸모없는 놈.”

목뼈가 나가는 소리와 함께 명석천의 손 위에서 축 늘어지는 기순홍의 시체.

그것을 멀리 던져버린 명석천은 자리에서 일어나 도인현과 다른 화산파 제자들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네놈들은 내 손으로 모두 쳐 죽여주마.”

조금 전 기순홍이 내뿜던 기운과는 그 궤를 달리하는 어마어마한 기운.

조금 전 깨달음을 얻은 도인현으로도 도저히 어찌할 방도를 찾을 수 없는 기운이었지만···.

···도인현은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제가 시간을 잘 끌었습니까?”

“충분히요.”

마치 자신을 위한 구원처럼, 하늘에서 내려와 준 한 사내가 있었으니까.

명석천이 더 다가오는 걸 막듯, 그 사이로 다가온 유현은 분노로 일렁이는 명석천의 눈을 마주했다.

“네놈···!”

“거, 부하로 쓸 거면 좀 더 쓸만한 인간들로 쓰지 그래? 다 맛이 가서 말이 하나도 안 통하더라고. 그래서 그냥 다 재워놓고 왔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하는 유현을 향해 어마어마한 기운을 뿜어내는 명석천.

“그래서, 부하는 저게 다냐?”

“···네놈을 쳐죽일 인간들이라면 여럿 구해왔지.”

기운을 끌어올린 명석천의 곁에 그와 비슷한 기운을 사용하는 화산파 제자와 명석천을 따르는 이들 몇이 다가왔다.

하나하나가 기순홍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강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지만.

“재밌네.”

유현은 그런 그들을 보면서 오히려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이 기술이 정신이···아주 조금은 더 멀쩡한 놈들에게도 먹히나 궁금했거든.”

지금의 유현에게는 그들조차 그저 새로운 기술을 시험해 볼 시험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챙!

유현은 두 자루의 창을 꽉 쥔 채, 눈앞에 있는 고수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다 죽지 말고 어떻게든 버텨봐라. 다 써보기도 전에 죽으면 좀 많이 아쉬울 테니까.”

싸아.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살기에 명석천을 제외한 다른 이들은 잘게 몸을 떨었다.

그리고 곧, 그 이유도 깨닫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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