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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능으로 무림최강-112화 (112/185)

정파 내전(1)

전장은 순식간에 침묵에 잠겼다.

조금 전만 해도 승리를 의심치 않았던 척살대도, 유현이 강함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토록 강하리라곤 전혀 몰랐던 소림사의 승려들도.

삼천이 넘는 무인이 오직 단 한 사람. 유현의 무위에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저거···설마···.”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유현의 일격에 기절한 남궁무진과 도인현이 일어나려는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침묵이 짙게 깔린 전장으로 아련히 울려 퍼졌다.

“신승 대사의 일절···금강부동신법이 아닌가?”

확신 한 점 없는 미약하디 미약한 목소리.

만약 평상시였다면 사람들의 발걸음이나 기침 따위로 지워질 만한 목소리였지만, 이런 침묵 속에서는 조금 전 유현이 만들어낸 폭풍. 와류처럼 전장을 뒤덮었다.

“···금강부동신법?”

“들어본 적 있어, 전혀 움직이지 않고도 모든 공격을 맞지 않는다는 소림의 일절···.”

“소림의 일절이라 하기도 우습지. 지금껏 무림에서 그걸 사용하신 건 신승 대사 뿐이었으니, 사실상 신승의 일절이라 해야 맞는 말 아니겠나?”

“아니, 잠깐. 그 말은 설마!?”

처음 나왔을 땐 조용한 목소리가 점점 커져 전장을 뒤엎듯, 척살대의 의혹 또한 눈 내린 비탈길을 구르는 눈덩이마냥 커지기 시작했다.

“그가 신승 대사의 진전을 이어받았다는 말인가!?”

“아니, 그럴 리가···그는 분명 우리의 일원을 죽인 마인인데···.”

“신승 대사가 마인도 알아보지 못했다는 게 말이 되냐!”

“그 말이 아니잖아! 무림맹의 조사 결과론···!”

“어떻게 조사했는지도 모르는 무림맹 놈들의 말보단 신승 대사의 안목을 믿겠어!”

신승의 명성은 유현은 물론, 신승 본인조차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커져 있었다.

최근 화산파나 개방을 포함한 여러 정파에서 보인 실망스러운 모습과 최근 무림맹주와 만나는 횟수가 늘어났다는 소문.

그리고 유현이 요청한 정보를 얻기 위해 강호 무림 전역을 뛰어다니는 동안, 그에 관해 알아본 사람들이 많았던 것까지.

이런 몇 가지 요소 덕분에 최근 무림에선 신승이 뭔가 목적을 가지고 움직인다, 같은 소문이 퍼지고 있던 판국이었다.

그 때문에 무림인 전원···까지는 물론 아니더라도, 적지 않은 인원이 신승의 발호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래서 지금 소림사의 옆에 서서, 소문으로만 듣던 신승의 무공을 직접 펼치는 유현의 모습에 이토록 많은 인원이 목소리를 높인 것이다.

지금 척살대가 신승의 안목을 믿겠다는 사람과 그래도 무림맹을 믿겠다는 사람으로 나뉘어 다투는 건 바로 그런 연유에서였다.

만약 신승이 평상시 하던 것처럼 무림에 나서지 않았다면, 그게 아니라면 무림맹에서 조금 더 믿음을 줬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지만 말이다.

하물며 본디 그것을 앞에서 막아야 했을 도인현은 유현의 옆에서 일격을 당하고 널브러진 상태.

지금 유현을 막아 세울 사람 따윈···.

“이 무슨 혼란이냐!”

···있었다.

명석천.

용봉대전의 실질적 우승자···라는 명성 말곤 사실상 사람들을 이끌어 갈 만한 명목은 없던 도인현과 달리, 실질적으로 이 척살대의 수장으로 인정받는 사내.

지금껏 대체 어디서 있었던 것인지는 아무도 몰랐지만, 어찌 됐건 그가 등장한 순간은 참 절묘했다.

의문의 목소리가 나오고, 그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동요하기 직전. 정말로 조금이라도 시간이 더 흐르면 이런저런 말이 나올 시점을 틈타 앞으로 나선 것이다.

그러자 동요하던 사람들은 물론, 가장 먼저 진짜니 가짜니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들까지 입을 다무는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가 나타나 의문을 해소해줬고, 그래서 모두 입을 다물었다···같은 좋은 이야기는 아니었다.

“겨우 한낱 무공 때문에 이토록 흔들린단 말인가! 금강부동신법은 직접 본 이가 손에 꼽는 절세의 신공! 저런 약관을 겨우 넘긴 애송이가 사용할 법한 무공인 것 같으냐!”

그저 내공을 힘껏 사용해 목청을 높여 의문을 품은 자의 입을 다물게만 할 뿐.

“저자의 무공이 진실이라는 증거는 무엇도 없다!”

“저, 정말인가?”

“하···하긴. 그 소림사에서도 신승 대사 이후로 익힌 무공을···저 어린놈이···.”

“맞아! 어디 이상한 마공을 익힌 거겠지! 저게 위대한 소림사의 금강부동신법 일 리 없어!”

“저건 가짜다!”

“거짓말이야!”

하지만 우습게도 그런 것이 지금 흔들리는 사람들에게는 터무니없이 잘 먹혔다.

확신이 있는 사람들은 그 한 마디에 흔들릴 일이 없었지만, 지금 저들은 도인현과 남궁무진의 패배라는, 자신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에 큰 충격을 받아 믿음이 흔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확신이 넘치는 한 마디가 필요했을 뿐이다.

그것이 전에는 의심하였던 사람들의 말이었고, 지금은 명석천의 말이라는 차이점만 있을 뿐.

자신의 한 마디로 다시 자신이 원하던 방향으로 흐름을 끌고 오는 데 성공한 명석천이었지만, 그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아직 남아있는 불순분자들 때문에?

아니, 그건 아니다.

어차피 그들 또한 삼천의 인원에 꼽사리 낀 인간들일 뿐이다. 지금은 의문을 품고 있지만, 어차피 전쟁이 벌어지면 싫든 좋든 따라올 수밖에 없는 어쭙잖은 놈들이다.

지금 그의 표정이 심상찮은 이유는 그들이 꺼낸 말.

‘그’ 소림사.

‘위대한’ 소림사.

‘그분’.

오직 소림사만을 존경하고 띄워주는 그 한 마디 때문이었다.

‘···이 멍청한 것들. 지금 너희를 이끄는 사람들이 소림사냐, 아니면 이 화산파냐? 대세도 모르는 아둔한 것들 같으니라고.’

소림사, 소림사, 소림사!

아무런 일을 안 하는 걸 넘어, 저 반대편에 있는 소림사를 왜 이토록 부르짖느냔 말이다!

태생부터 화산파는 소림사의 아래라는 듯한 그 말투에서 명석천은 분노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젠 그것도 끝이다.

일부러 이만한 인파를 끌고 온 이유가 무엇인가.

설마 겨우 사람 하나 잡자고?

벼룩 하나 잡자고 궁궐을 부수고 새로 세우자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지금 유현의 옆을 굳건이 지키고 있는 저 소림사.

그들까지도 모두 없애기 위해 이렇게 모아온 것이 아니던가.

물론 겨우 한 번의 패배로도 이토록 흔들리는 자들을 어찌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만···그것도 생각하지 못했을까.

삼천의 병력을 다루는 데에 삼천 모두를 쓸 필요는 없다.

더군다나 이런 어중이떠중이들 따위, 그 십분지 일만 앞서 나가도 그 뒤를 자연스레 따라갈 뿐.

물론 소림사에 맨정신으로 싸움을 걸 사람 따윈 없지만···.

‘그건 달리 말하자면 맨정신만 아니면 상관없다는 소리지.’

찰랑.

그가 몸을 흔들자, 옆구리에 달려 있던 가죽 주머니가 움직이며 액체가 담긴 소리를 내었다.

이미 이 안에 담긴 마약 주를 마신 자만 기백.

정해진 단어만 내뱉으면 물불 가리지 않고 저 소림사의 고수들을 향해 달려들 인간들이었다.

가능하면 도인현이 그렇게 달려들었다가 저들에게 죽는 게 제일이었지만···그래도 이들로도 충분히 그 효용은 할 수 있을 터.

그 이후엔?

먼저 달려가는 기백의 인원을 따라 삼천의 무인이 백팔나한으로 달려들겠지.

아무리 천하의 백팔나한이라 하더라도 삼천의 군세를 막아낸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물론 수백, 어쩌면 천은 죽일 수 있겠지만, 그 정도야 얼마든지 제물로 바칠 수 있었다.

화산이 제일이 될 수 있다면 말이다.

씩.

이 손짓 한 번으로 이제는 강호 무림 제일의 문파가 누구인지, 무지몽매한 자들도 모두 알 수 있을 것이다.

“가라! 정파의 위대한 무인들이여!”

그의 한 마디에 곳곳에 자리하고 있던 마약주에 취한 자들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뛰어라!”

휙!

그의 손이 내려오는 동시에.

“으아아아!”

“죽여! 죽여! 죽여!”

“끼에에에엑!!!”

잘못된 광기에 찬 자들이 달려오기 시작했다.

*****

“···유 시주가 말씀하셨던 대로군요.”

“으음.”

백팔나한의 수좌, 대선은 옆에 있던 나한승의 말에 침음성을 흘렸다.

자신들을 향해 몰려오는 저 수많은 무인.

그중에서도 가장 앞에 있는 이들의 상태는, 딱 봐도 정상이라 하기엔 문제가 많아 보였다.

“···마약의 제조 및 판매에도 손을 대고 있는 자들이 있으니 조심하라 하였지만···설마 이런···.”

으득.

“이런 짓을···!”

정마대전 당시, 가장 큰 피해를 본 소림사의 제자인 만큼, 대선은 그의 사부와 사조에게 전쟁 당시 마교가 얼마나 악독했는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의 악행과 그런 그들과 싸워 이기는 정파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동자승의 마음은 두근거리곤 했다.

···하지만.

“그들조차···부하를 마약에 취하게 한 채 돌격시키는 일은 없었거늘!”

가장 앞에서 벌겋게 뜬 눈으로 괴성을 지르며 달려오는 저들은 유현이 말해줬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저들을···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

대선의 옆에 서 있던 나한승이 대선을 향해 물었다.

그런 그의 이마에 흐르는 한 줄기의 식은땀.

그것이 지금 그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아니, 전혀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었다.

본래라면 솔선수범해 진을 갖출 준비를 하고 있을 그가 대선에게 대답을 바라고 있었으니 말이다.

‘···가장 용맹한 나한승이던 그가 이 정도라면, 뒤의 다른 아이들은 보나마나겠군.’

물론 대선 본인도 지금 이 상황이 두렵다. 마인이라면 수천, 수만이 몰려와도 두려움 없이 그 앞을 막아서겠지만, 지금 자신들이 막아야 할 상대는 지금껏 한 번도 예상치 못한 이들이었으니.

허나, 그렇다 해서 뒤로 물러설 수도 없다.

그들은 자신들의 사문, 소림사를 지키는 관문이었으니.

그들이 물러서면, 그 뒤는 소림사의 사형제들이었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도 그들에게는 한 줄기의 희망이 존재했다.

‘유 시주···.’

겨우 정신을 차린 도인현과 남궁무진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유현.

“부디 작전대로···잘 시행되길 바랍니다.”

한 달 전의 그라고는 믿기 힘들 만큼 순수한 신뢰.

그 짧은 시간 만에 대선을 아군으로 만든 유현의 능력.

그것을 생각하며, 대선은 큰 목소리로 외쳤다.

“백팔나한은 들으라!”

유현이 처음 십관에 나왔을 때와 똑같은 말투.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뜻은 전혀 달랐으니.

“우리 소림을, 정파를, 모두를 지키기 위해!”

쿵!

각자의 위치로 몸을 날린 나한승이 그의 말에 동의하듯 크게 발을 굴렀다.

“개진!”

우웅!

강렬한 기의 폭풍과 함께.

“끼야아아아악!!!”

“키에에에에에엑!!!”

마약에 취한 수백의 정파 무인이 그들에게 당도했다.

*****

“이게 정말로 사실입니까?”

“보시는 대로입니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내가 건넨 자그마한 서책을 몇 번이고 뒤적이던 도인현이 고개를 들어 내게 물었다.

하긴, 당연한 반응이었다.

이미 화산파가 이번 일에 발을 깊숙하게 담그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나조차도 화산파가 저지른 온갖 죄악에 치를 떨고 있었는데, 화산파에서 평생을 살아온 제자가 그걸 보면 어찌 반응할까.

“···흠. 대충 뒤가 구린 놈이 있을 거라곤 생각했지만, 이 정도일 줄 몰랐군요.”

그나마 남궁무진은 이 사실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서책에는 남궁세가의 악행은 애초부터 존재하지도 않았거니와, 강호의 현 상황에 대해 도인현보다 훨씬 잘 알고 있던 그는 대충 그런 일이 있으리라고 예상하긴 했던 모양이다.

물론 턱을 타고 흐르는 한 줄기의 땀을 보아, 이 정도라곤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지만.

두두두두두두!

“와아아아아!”

“앞으로! 앞으로오오오!!!”

한창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도중, 저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목소리에 나는 충격에 빠진 둘은 잠깐 미뤄두고 척살대 측을 바라보았다.

···어우, 설마설마했는데, 저걸 진짜 하네?

가장 앞에서 입가에 흐르는 침을 닦을 생각도 없이 달려오는 핏발 선 괴인들.

마교에서도 한 번 시험해보고, 이것들은 절대로 쓰면 안 되겠다면서 취소했던 마약병들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저걸 설마 다시 보게 되는 날이 올 줄이야.

···그것도 다름 아닌 정파인의 손에서.

“···죄송하지만, 지금은 그냥 충격에 빠져 있을 때는 아닌 듯하군요.”

“네? 그게···으음···.”

내 말에 내가 보고 있던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남궁무진이 더 말할 필요도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대피하시죠. 저는 할 일이 있어서 말입니다.”

“할 일이라면···?”

“막아야죠.”

솔직히 당장 말을 꺼냈던 나도 정말로 그럴까···싶었던 그 작전.

하지만 실제로 일어났으니 내 할 일을 해야지.

“저 미친놈들 뒤를 따르고 있는 멀쩡한 인간들은 어떻게든 살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

내 말에 멍하니 있던 남궁무진은 놀라움이 가득한 웃음을 내뱉었다.

“유 소협 잡으려고 삼천이 넘게 몰려온 사람들을 살려주시겠다고요?”

“서책을 읽어보셔서 아시겠지만, 저들도 어떤 미친놈에게 선동당해서 온 불쌍한 사람들일 뿐이니까요. 살려주긴 살려줘야죠. 물론.”

씨익.

“이런 상황으로 만든 개자식들은 철저하게 죄를 물을 생각이지만요.”

“흐흐흐, 그거 참으로 마음에 드는 이야기군요.”

스윽.

“저도 옆에서 좀 도와드려도 되겠습니까?”

“···힘은 남아있습니까?”

“제왕검형 쓸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소리 몇 번 지를 내공은 있습니다. 저쪽에 남궁세가랑 엮인 사람도 많으니, 제 말을 어느 정도는 들어주겠죠.”

“알겠습니다. 도 공자는···.”

중얼중얼중얼.

“···일단 여기서 잠깐 쉬게 두죠.”

“네, 그렇게 하지요.”

정신적 충격이 심했던 탓일까. 서책에 눈을 떼지 않고 무어라 중얼거리는 지금 그를 건드리면, 무슨 사단이 일어나도 아주 큰 사단이 일어날 것 같았다.

“그럼 가시죠.”

내 옆에서 검을 들어 올린 남궁무진을 향해 말했다.

“정마대전 이후, 처음으로 삼천의 정파 무인들을 막으러 가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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