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권능으로 무림최강-111화 (111/185)

세 사람의 비무(2)

가장 먼저 움직인 건 남궁무진이었다.

쿵!

대지조차 흔들리게 만드는 진각으로 시작된 남궁무진의 검무(劍舞)는 그저 연회에서 사용되는 그것마냥 화려함은 한 점 없이, 오직 처음부터 끝까지 묵직함만이 가득했다.

한치를 나아가는데도 한참이 걸리는 기이한 검무.

그것의 정체를 알아차린 사람은 가장 가까이에 있던 유현과 도인현이 아닌,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저건 설마···제왕검형?”

세 사람 간의 전투 중에 혹시라도 방해될까 싶어 멀리 떨어진 척살대원 중 하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제왕검형이라고?!”

“창천검이 제왕검형을 익혔다!”

“후대 검왕이 정해졌단 말인가!”

제왕검형이 어떤 무공인가.

남궁세가 제일의 무공이자, 오직 남궁세가의 적자에게만 허락된다는 무공!

남궁무진이 그 무공을 물려받았다는 사실은, 사실상 그가 후대의 검왕. 즉, 다음 대 남궁세가주가 된다는 증명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중요한 무공을 다름 아닌 이 자리에서 선보일 줄이야!

크게 흔들리던 아군의 사기를 다시 높이려던 속셈이었다면, 그것은 분명 성공적이었다.

“와아아!!!”

“남궁무진! 남궁무진! 남궁무진!”

“남궁세가의 후계자가 우리와 함께한다!”

남궁무진이 제왕검형을 선보이자마자 쏟아지는 환호.

가히 하늘조차 울리고, 땅조차 흔든다는 게 바로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닐까.

그만큼 그들의 환호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하지만 누구도 멈출 수 없을 것만 같던 환호도 직후에 선보인 도인현의 무공 앞에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우우웅!

도인현이 기를 끌어올리자, 그의 주변에 피어오르는 진한 자색의 기운.

그리고 그와 동시에 멀리서도 느껴지는 매화향까지.

여기 모인 이들 중 어느 누구 하나라도 그런 특징을 띄는 무공을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자하신공(紫霞神功).

화산파 제일의 무공이자, 오직 장문인과 그에 인정받은 인물 외엔 전수하지 못한다는 무공.

물론 이들 중에 도인현이 자하신공을 전수하지 못했다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그는 정마 무림 제일의 기재이자 현 세대 제일의 고수.

화산파가 특출난 멍청이 집단이 아닌 이상, 도인현에게 자하신공을 전수하지 않을 리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그들 또한 그의 자하신공이 이만한 경지에 올랐으리라 예상한 이는 없었다.

삼성에 이르면 몸이 붉어지고, 육성에 이르면 운공할 때 주변에 자색의 유형화된 기운이 떠다니며, 극성에 이르면 진한 매화향을 퍼뜨린다.

오랜 세월 강호 무림을 전전한 이들도 자하신공을 운공할 때의 매화향을 맡아본 이는 손에 꼽았다.

현 화산파 장문인의 꼬락서니가 그 모양 그 꼴인 것도 물론 있지만, 그것을 고려하더라도 자하신공을 수련한다는 건 극히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자하신공의 매화향이, 다름 아닌 저 어린 검수에게서 피어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산전수전을 다 겪은 강호 무림의 명사들도 입을 다문 채 경악할 만큼 충격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들의 가슴에는 승리에 대한 확신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제왕검형의 후계자와 자한신공을 극성까지 익힌 고수의 합공!

그 어느 누가 이들에게서 도망칠 수 있단 말인가!

조금 전만 해도 유현의 정체에 크게 흔들리던 척살대의 사기는 곧 하늘을 찌를 듯 치솟아 올랐고, 그것은 잠시 멈춰져 있던 환호를 다시 시작하기에 충분한 이유였다.

“무림맹은! 제일이다!”

척! 가장 앞에서 있던 사내가 손을 들고 큰 목소리로 무림맹의 이름을 연호하기 시작했다.

“와아아아아!”

“무림맹! 무림맹! 무림맹!”

미친 듯이 환호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던 남궁무진은 딱 한 마디만 생각했다.

‘젠장!’

자신을 향해 환호하는 사람들을 향한 온갖 욕설을 말이다.

‘저것들은 뭐가 좋다고 저따위로 환호하고 난리야?!’

저 두 사람이라면 분명 순식간에 승리를 쟁취할 것이다.

그런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지금 도인현과 남궁무진의 상황은 전혀 좋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정반대.

지금 도인현과 남궁무진은 유현을 털끝만큼도 건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의 협공에 문제가 있었다? 그건 아니다.

남궁무진 본인이 생각해도 도인현은 훌륭하리만치 제왕검형의 본질을 파악한 후,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움직여주고 있었다.

제왕검형은 중(重)의 묘리를 극한으로까지 끌어모은 무공.

한 번 펼치면 그 순간 상대는 주변을 무겁게 짓누르는 제왕검형의 기운에 의해 움직이는 것조차 버거워진다.

그뿐만이 아니다. 똑같이 제왕검형의 영역 내에 이어도 시전자가 원한다면 어떤 사람은 제왕검형에 영향을 받고, 또 어떤 사람은 받지 않도록 하는 것조차 자유자재였으니, 혼자서 사용하는 것도 물론 강하지만, 여러 사람이서 사용하면 더욱 강한 무공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남궁무진의 예상대로 도인현은 느려진 유현을 상대로 무시무시한 맹공을 퍼붓고 있었다.

그 대상자가 아님에도 몸서리칠 만큼 엄청난 쾌검.

일격, 일격이 자신의 전력과 하등 다를 것 없는 도인현의 공격에 남궁무진은 경악하는 동시에 감탄하며, 믿음직한 동시에 질투했다.

나와 별다를 것도 없는 나이에 이만한 무공이라니.

남들의 눈에는 전혀 노력 따윈 없는 것 같지만, 실상은 남궁세가에서도 제일가는 노력가인 남궁무진조차 도인현의 성장 속도에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니지. 정작 놀라야 하는 건···.’

하지만 그런 생각도 오늘까지.

‘···이쪽이겠지.’

그런 도인현의 성장 속도도···눈앞의 이 남자와 비교하면 한참을 모자라니 말이다.

분명 손을 드는 것조차 백 근의 모래주머니를 단 것처럼 무거울진대.

분명 한 걸음 나아가는 것조차 천근의 강철을 미는 것마냥 힘겨울진대.

어찌 눈앞의 이 사내는, 이 남자는!

‘그 모든 것을 당연한 것처럼 피하느냔 말이다!’

분명히 느려졌다. 처음 제왕검형을 펼치기 전 보였던 유현의 속도에 비하면 지금은 달팽이가 움직이는 것에 불과할 정도로 느렸다.

하지만 그런 움직임으로도 유현은 도인현의 쾌검을 아주 여유롭게 피해냈다.

찌르기인가 하면 베고, 그런가 싶으면 칼등으로 후려치며, 또 그러다가도 올려친다.

흐르는 물처럼. 아니, 빠른 속도로 떨어지는 폭포처럼 휘몰아치는 도인현의 연격, 연격, 연격.

자신이 맨몸이라도 피할 수 있을까 싶은 그 맹격을 유현은 너무나 손쉽게 피했다.

이 느린 세상에서.

모두가 느려야만 하는 이 세상에서.

홀로 유유히.

챙!

한창 피하기만 하던 유현이 두 사람의 검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동시에 막아낸다.

막는 순간 들려오는 소리조차 하나로 들릴 만큼 완벽하게.

끼긱.

끼기긱.

전혀 예기치 못한 순간 검이 막힌 두 사람은 어떻게든 검로를 막고 있는 창을 밀어내보려 하지만 소용없다.

압도적인 힘의 차이.

내공, 근력, 무공. 그 어떤 것으로도 이기는 건 불가능하다.

두 사람은 서로의 눈을 보고 그 사실을 순식간에 알아차렸다.

휭!

그렇다면 억지로 힘을 뺄 필요는 없다.

검로는 오직 하나로만 정해진 건 아니다. 수십, 수백, 수천. 원한다면 얼마든지 늘려낼 수 있다.

뒤로 검을 빼내고, 이번에는 전혀 예상치 못할 검로로 검을 보낸다.

조금 전 공격들과는 완전히 다른 검로, 완전히 다른 기술.

누군가에게는 죽음 직전에 사용하려 했던 절초였고, 누군가에게는 세가의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숨겨놨던 최후의 기술이기도 했다.

그리고 또 어느 누군가에겐.

챙.

조금 전의 일격과 하나 다를 바 없는 공격이기도 했다.

두 사람의 공격이 다시 한번 막힌다.

이번에는 그 충격은 아까보다 훨씬 심대하다.

이번 공격은 그들이 발할 수 있는 최고, 최강의 일격. 유현에게도 확실히 통한다,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래도 어느 정도는 피해를 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아까와 동일.

지금 유현에게는 아까의 그 공격과 지금의 절초에 차이가 없다는 이야기인가?

아니다.

아니야.

“그럴 리 없어!”

남궁무진은 지금껏 써왔던 가면을 벗었다.

사람 좋은 미소, 친절한 행동.

그런 가면을 쓰면서 숨겨왔던, 맹렬한 투쟁심과 승리하고 싶다는 욕망을 여실히 드러냈다.

제일 먼저 가면을 벗었던, 도인현을 처음 만났던 그때처럼.

두 번째로 가면을 벗었던, 남궁세가의 현 가주인 아버지 앞에서 강해지고 싶다고 울부짖었던 때처럼.

그리고 지금 이 세 번째는 그 두 번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단전에 있는 모든 내공을 끌어올려 제왕검형의 범위를 극도로 좁힌다.

오직 유현의 주변을 향해서만 높아지는 중압감.

쿵!!!

으직, 으지직!

몸을 짓누르는 내공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유현의 육체가 반 치 만큼 가라앉는다.

이제는 무언가 무거운 물체를 들고 있는 걸 넘어, 저 깊은 바닷속 아래에 갇힌 것과 같다.

위에서 뿐만 아니라 전신을 짓누르는 무게와 압력.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 것도 어찌 할 수 없는 이 상황에서.

슉.

그가 움직였다.

유현의 모습에 가려져 서로를 보지도 못하고, 한창의 싸움 중이라 한마디 말도 하지 못했지만, 두 사람의 합공은 말 그대로 완벽했다.

분명 남궁무진은 유현이 손가락 하나 꼼짝하지 못하도록 강력한 압박감을 주고 있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한순간뿐.

실제로 당장 유현에게서 느껴지던 압박감은 처음의 십. 아니, 백분지 일로 줄어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런 순간을 놓치지 않고 도인현은 자신이 뿜어낼 수 있는 최고, 최강의 일격을 선보였다.

칠절매화검(七絶梅花劍)의 일곱 번째 초식. 자하신공을 극성에까지 익히지 못하면 펼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는 최강의 검격.

도인현 본인조차 사람에게 사용하는 건 너무 위험하다는 생각에 봉해두고 있던 것이지만, 그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만약 지금 이 공격을 유현에게 선보이지 않는다면, 분명 평생동안 후회하리라고.

후웅.

···누군가 말했다.

화산파의 고수들은 검으로 매화를 꽃피우는 자들이라고.

그리고 점점 고수가 되어갈수록, 점점 적은 칼질만으로도 아름다운 매화를 피우게 된다고.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 도인현의 경지는 어느 정도일까.

후웅.

한 번의 검격으로 한 송이의 매화가 피어오른다.

후웅, 후웅.

두 번의 검격으로 열 송이의 매화가 피어오른다.

후웅, 후웅, 후웅!

세 번, 네 번, 다섯 번,

백 송이, 천 송이, 만 송이.

그의 주변에만 피어올랐던 꽃이 세 사람의 주변으로, 그리고 종래에는 천지를 뒤덮는다.

그리고.

후웅.

여섯 번의 검격에 천하가 꽃으로 뒤덮이고.

파앗!

일곱 번의 검격에 그것이 합쳐져 한 송이의 거대한 매화를 피워내니.

그것이 칠절매화검 최후의 초식.

단 한 송이의 매화만으로도 천하를 뒤덮으니, 천하에 똑같은 매화향이 피어오르누나.

하여 이것을 일화만란(一梅漫瀾)이라 부르노라.

천하의 어느 누구도 피하는 걸 허용치 않는 화산 최고의 절기.

그리고 그 순간, 도인현과 남궁무진은 두 가지를 깨달았다.

지금 이 합공이 두 사람이 행할 수 있는 제일의 공격이라는 사실 하나.

그리고 또 하나의 사실은.

“세상이···.”

“···뒤집혔다?”

처음부터 유현은 피한 적조차 없다는 사실을.

천하와 지상, 그 어디에도 피할 데 없는 것처럼 보이던 도인현의 공격이, 너무나 당연한 일인양 유현의 옆으로 비켜나간다.

그저 이 세상이 허용치 않았다.

유현의 육신에 상처가 난다는 그 사실을.

“그럼.”

지금껏 침묵한 채 두 사람의 공격을 순순히 받아주고만 있던 유현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이제는 제 차례군요.”

너무나 담담하면서도, 소름 끼치는 그 목소리!

정말로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도 없던 두 사람이 젖먹던 힘까지 끌어모아 검을 들어 올려 막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두 사람의 방어···혹은 발버둥조차.

고고고고-

유현의 일격에는 어찌할 수 없었다.

천마창법 오의 와류(天魔槍法 奧義 渦流)

절대로 무너뜨릴 수 없을 것만 같던 제왕의 검도.

천지에 널리 퍼져나간 향긋한 매화향도.

자연의 분노, 폭풍 앞에선 어떠한 반항조차 하지 못했던 것처럼.

그리고, 폭풍이 지나간 자리에는 오직 한 사람만이 올곧이 서 있었으니.

“·········.”

그는 양손에 두 자루의 창을 쥔 채, 척살대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껏 세상에서 숨기고 있던 유현의 진짜 실체가 전 무림 강호가 아는 순간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