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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능으로 무림최강-108화 (108/185)

무림맹 척살대(2)

유현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유현의 강함을 진작부터 알고 있던 화산파의 장문인은 유현을 확실히 제압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네 생각은 어떠하냐.”

다시 선풍도골의 도사로 모습을 바꾼 화산파의 장문인은 자신이 부른 화산의 제자를 향해 말했다.

“이번 건은 네게도 좋은 기회다. 최근에 얻은 네 성취를 천하에 보일 기회일뿐더러, 악독한 마인을 처단한다는 공까지 얻을 수 있지.”

“하지만···.”

“하물며.”

뭐라고 반박의 말을 꺼내려던 제자의 말을 단숨에 자른 장문인은 조금 전 그 말투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날카로운 시선을 그에게로 향하며 말했다.

“전번 용봉대전 때 네가 그와 어울려 다녔다는···‘헛소문’을 재우기에도 좋다.”

움찔.

마치 자신의 가슴을 향해 손가락으로 쿡쿡 찌르는 듯한 장문인의 말투에 화산의 제자, 도인현은 몸을 떨었다.

“그건···.”

“그때 너나 그놈이나 밖에 크게 나돌아다니진 않아서 딱히 그 이름이 알려진 건 아니지만,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의 제자들은 너희 둘이 돌아다니는 걸 똑똑히 보았다. 그 이야기를 확실히 잠재우려면 네가 이번 척살대에, 그것도 총 책임자로 나서는 게 무엇보다 좋은 방법이다.”

이미 답을 정해놓은 듯한 장문인의 대답에 도인현은 이를 악물 수밖에 없었다.

“유환이랑 유성이는···.”

“내가 말을 꺼내기 전부터 이미 어떻게든 나가고 싶어서 안달이더군. 자기 형이 그런 죄인이라는 게 퍽 부끄러웠던 모양이야.”

세 형제에 얽힌 사연을 알고 있던 도인현은 그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어쩌면, 장문인도 그걸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그저 신경 쓰지 않을 뿐이다.

지금 도인현이 이러는 것과는 반대로 말이다.

“그래서, 어쩌겠느냐?”

“···네, 알겠습니다.”

전신을 얽매이는 장문인의 목소리에 도인현은 결국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꺼내고 싶지 않던 대답이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그가 어찌할 방도는 없었다.

사문의 어른에게 복종하라.

십수 년 넘게 세뇌에 가까울 정도로 도인현을 옭아매던 그 한 줄의 말이 이번에도 똑같이 적용한 탓이다.

장문인 집무실 밖으로 나온 도인현의 표정은 영 좋지 않았다. 물론 원치도 않은 대답을 억지로 꺼내야 했던 사람의 표정이 좋을 리 없었지만, 그보다는 다른 이유가 더 컸다.

“···정말로 그런 일을 벌인 겁니까, 유 대협.”

용봉대전이 시작하기 전, 도인현은 자신감이 넘쳤다.

또래 무인 중 분명 자신이 제일이라는 확신이.

도인현 본인의 자만심 때문이라기보단, 그의 주변 사람들의 말과 행동 덕분이었다.

수백 년에 한 번 나올 인재. 장차 화산을 이끌어갈 고수. 최연소 매화 검수가 될 아이.

그리 넓지 않은 인간관계였지만, 그 사람들 모두가 그를 띄워주기 바빴으니 그리 생각할 법도 했다.

아니, 현실이 그러했다. 그는 정말로 수백년에 한 번 나올 인재이자, 화산을 이끌어갈 고수이며, 매화검수가 될 자격 또한 충분했으니.

하지만 그런 자신감이, 단 한 달 사이에 두 번이나 산산이 조각났다.

처음은 섬서성 유가장에서 처음으로 유현과 검을 맞댔던 때였다.

물론 자신도 전력을 다한 건 아니었지만, 유현처럼 시종일관 평온을 유지할 순 없었다.

하지만 유현이 군에서 오랜 시간 종군했다는 걸 안 뒤론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삼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엄청난 숫자의 실전을 경험했던 그라면 충분히 여유를 부릴 수 있으리라고.

그 생각이 완전히 틀렸다는 걸 아는 건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 그 날 밤의 싸움.

감히 서 있는 것조차 힘겨운 신승의 힘과 그런 힘 앞에서도 당당히 맞서며 신승에게 통렬한 일격까지 날리는 유현.

진짜 천재가 거기 있음을, 자신의 강함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바로 그때 깨달았다.

그렇기에 용봉대전의 우승자라는 영광조차 거절한 채, 지금껏 폐관 수련을 진행했다.

그리고 유현에게 이길 수 있을진 몰라도, 어떻게 실망은 시키지 않을 경지에 올랐다···라고 생각하고 밖으로 나왔건만.

···유현은 정파에서 수배된 악인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도인현은 그런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한순간 함께 여행을 다녔다, 라는 이유로 생긴 동료애 때문인가?

아니다.

애초에 동료애같은 게 문제였다면, 오히려 사문에 더 진심으로 충성했겠지.

도인현이 지금 떠올리고 있는 건 그런 두루뭉술한 감정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자신의 검과 맞닿은 창. 그리고 그날 밤 봤던 그 창술.

한점의 악의도 없는 순수한 무(武)의 집합체.

그것이야말로 자신이 보았던 진실이요, 지금까지 믿고 따르던 목표이자, 도인현이 아는 유현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지금 강호 무림에. 아니, 거기까지 갈 필요도 없이, 화산파 내에만 해도 지금 그의 이름은 현세에 강림한 악귀와 같은 취급을 받고 있었다.

···과연 어떤 것이 진실인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도인현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강제로 떠넘겨진 여정이지만, 부디 확실한 진실이라도 알 수 있기를 바라며.

도인현은 한동안 돌아오지 못할 화산파를 천천히 돌아보기 시작했다.

*****

“쯧. 왜 이리도 말을 듣질 않는지.”

도인현이 빠져나간 장문인 집무실.

그 안에는 이미 장문인이 주안술을 통해 자신의 얼굴을 청년의 그것으로 바꿔놓은 상태였다.

“···어찌 됐건 당신들이 원하는 대로 일은 진행했소. 이 정도면 되겠소?”

“그래, 충분하다.”

마치 사방에서 들리는 듯한 누군가의 목소리에 젊은 장문인은 속으로 쯧, 하고 혀를 찼다.

그가 한참 전부터 방 안에 있다는 건 진작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모습도 보이지 않고, 또 기척도 내지 않는다는 걸 기쁘게 받아들인다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에 대해 불만을 꺼내느냐? 그건 당연히 아니다.

‘무공의 성취는 분명 훨씬 올랐을 텐데, 아직 그 위치조차 파악할 수 없다니.’

처음 이 자와 만났던 그 날.

장문인의 자리 따윈 꿈도 꾸지 못하던 말단의 화산 제자.

그런 그가 화산파의 장문인이라는 위치에까지 오를 수 있게 된 건 전적으로 이 사내 덕분이었다.

하지만 그토록 긴 시간이 지나고, 무공의 경지도 훨씬 완숙해졌건만, 아직 그 목소리가 들리는 곳조차 파악할 수 없다.

그토록 힘겹게 오른 위치에서조차 감히 바라볼 수 없는 경지.

···누가 보아도 부하 취급과 다를 바 없는 이 상황에서 순순히 사내의 명령을 따르는 데에는 이 또한 작지 않은 이유를 차지했다.

물론 가장 큰 건 금과 술. 여자와 마약이지만.

“그런데 이대로도 괜찮겠소? 이대로 가면···.”

“가면?”

“···사람이 한둘이 죽는 게 아닐 텐데?”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했던가.

온갖 더러운 수단으로 장문인이라는 자리에 오른 그였지만, 그래도 그 자리에 있으며 여러 일을 처리한 덕분인지 지금 이번 일에 대한 큰 그림도 볼 수 있었다.

“전 무림에서 정파의 무인들을 끌어모아 한 번에 소림사로 쳐들어가다니···소림과의 전쟁은 그렇다 쳐도, 이만한 숫자면 관에서도 절대 좌시하지 않을 텐데?”

아무리 관무불가침(官武不可侵)이라지만, 이건 절대 두 집단이 동등한 존재라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무림이라는 건 어디까지 관의 허락이 있기에 존립 가능한 것.

만약 강호 무림이 국가를 뒤흔들 위협이 될지도 모른다는 ‘조금의 의심’이라도 생긴다면, 관은 얼마든지 무림을 지울 수 있다.

지금 사내의 계획은 딱 그런 수준이었다.

무려 전국 정파에서 끌어모은 정예 삼천을 데리고 겨우 하나의 사찰과 그 안에 있는 한 사람을 핍박하라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그 사찰이 천하제일 사찰 소림사고, 그 한 사람이 화경의 경지에 오른 절대 고수라는 사실은 차치하고서도 말이다.

그 속사정이야 어쨌건, 겉으로 봤을 땐 무림에 관해 모르는 관에선 그리 볼 수밖에 없다.

아니, 관은 어찌어찌 무마할 수는 있다. 뒤로는 온갖 구린 짓을 할지라도, 그래도 앞에서는 정파다운 짓거리를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마교는?

근 삼십 년 넘게 싸움 한번 없던 마교라지만, 그래도 분명 서로가 적이라는 건 바뀐 적 없다.

그런데 정파에서 갑자기 먼저 삼천의 병력을 끌어모은다?

마교에서는 신경 쓰일 수밖에 없고, 그 틈을 타 전쟁을 원하는 과격파에서 목소리를 높일 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게 되면···정말로 전쟁이 벌어지게 된다.

누구도 바라지 않던 정마대전이.

최악 중의 최악의 사태까지 떠올리는 장문인의 앞에 사내는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

언제나처럼 전신을 그 재질도 알 수 없는 검은 옷으로 감싸고 있는 사내.

어둠 속에서 몸을 숨기고 있던 그는 장문인의 앞에 나타나자마자 소름 끼칠 만큼 스산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상관없다. 이번 일에 대해 네가 신경 써야 할 건 이제 끝났으니.”

“진짜로 그럴 속셈인가?”

그런 사내의 말투에 진심으로 그런 생각이라는 걸 깨달은 장문인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그 안에 담긴 건 마지막 양심인가. 그게 아니라면.

“···흠, 이제 보니 그게 걱정인가 보군. 걱정하지 마라.”

사내의 얼굴에 있는 복면 아랫부분이 눈에 띄게 뒤틀렸다.

그건 분명 미소.

“네게 주던 금과 마약은 여전히 꾸준히 공급해줄 테니까.”

“그래···.”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라면 수백만의 목숨조차 버릴 수 있는 ‘똑같은 존재’를 향해 보이는 미소였다.

“그거면 안심이군.”

*****

그렇게 시작된 도인현의 세 번째 무림행은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화려했다.

곧 정파 무림을 대표하게 될 사내를 아무 숙소에 묵게 할 수는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물론 그 진짜 속셈은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화산파의 행보를 보이자는 생각에서 나온 행동이었지만.

마치 어울리지 않은 옷을 입은 것마냥, 그 모든 일정을 힘들어하던 도인현의 마음이 그나마 풀린 건 그가 유일한 친구라 부를 수 있는 그를 만난 시점이었다.

“오느라 고생했소, 도 소협. 여기선 푹 쉬시오.”

“고생이라뇨. 화산에서 숙소와 식사는 잘 준비해줬습니다.”

“그래서 고생이라는 거 아니오?”

“···뭐, 그렇긴 하지만 말이오.”

길게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음에도 진작에 도인현의 마음을 읽어낸 남궁무진은 도인현의 말에 껄껄 웃으며 각자의 앞에 있는 잔에 술을 가득 채워 넣었다.

“오랜만에 함께 무림맹에서 만났거늘, 좋은 술은 없더구려. 이미 모일 대로 모인 사람들에게 다 팔아넘겼나 보지.”

“혹시 얼마만큼 모였는지 아십니까?”

“안 그래도 부하들에게 알아 오라 했소.”

도인현이 폐관 수련을 하는 사이, 남궁무진 또한 놀고만 있던 건 아니었다.

창궁무애단은 아니지만, 그에 비견되는 명성을 가진 남궁세가의 무력집단. 십이창천검협(十二蒼天劍俠)의 장을 맡고 있었으니 말이다.

도인현의 질문에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남궁무진은 품을 뒤적이더니 작게 접힌 쪽지를 내밀었다.

“그리고 결과는···내가 정말 바라지 않던 쪽이더군.”

그리고 그건 종이를 펼친 도인현 또한 원하지 않던 사실이었다.

“이천!?”

“거기에 아직도 전국에서 속속들이 사람이 모이고 있는 건 물론, 무림맹에서 소림사까지 출발하는 동안에도 인원을 모은다고 하였소. 그걸 생각하면···.”

“···삼천은 모이겠구려.”

“그렇소.”

쭈욱. 자신의 앞에 놓인 잔을 들고 그 안에 있는 술을 모두 들이킨 남궁무진은 쯧, 하는 소리와 함께 단언했다.

“미친 짓이지.”

“···겨우 한 사람을 잡기 위한 집단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일이군요.”

“·········.”

쪼르륵.

남궁무진은 아무런 말 없이 잔에 다시 술을 가득 채웠다.

“안 그래도 화산의 기류도 심상치 않더구려. ···물론 내가 화산에 입문할 때도 어릴 때 듣던 모습과는 달랐지만, 최근은 정파라 말하기도 힘들 만큼 달라졌더군요.”

연거푸 술을 삼키는 남궁무진과 달리, 도인현은 술이 가득 담긴 잔을 그저 만지작거리기만 했다.

행동은 정반대일지 몰라도, 두 사람의 속내는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저희가 알던 정파는···.”

“·········.”

병에 남은 술까지 모두 입안에 털어 넣은 남궁무진은 쿵! 하고 탁자가 흔들릴 만큼 큰 소리로 술병을 내려놓고선 입을 열었다.

“이번 일로 그게 밝혀지겠지요. 얼마나 많은 피가 흐를지는···아무도 모르지만.”

“그리고 그 선두에 우리 세 사람이 있겠죠. 저와 남궁 소협. 그리고···.”

“···유 대협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두 사람은 동시에 용봉대전의 그 날 밤을 떠올렸다.

지금껏 자신들을 끝없이 채찍질할 수 있었던 그 싸움을.

“이런 말을 하면 안 되지만···차라리···.”

후우, 도인현은 유일하게 자신의 속내를 모두 보일 수 있는 한 사람의 앞에서 진심을 꺼냈다.

“···차라리 소림사에 일찍 도착했으면 좋겠군요.”

그때가 되면 어떻게든 모든 일의 결말이 날 테니까.

그것이 좋은 방향인지, 아니면 지금 도인현이 상상하고 있는 최악의 방식인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쿵!

“···한잔 더 하러 가시겠습니까? 좋은 곳을 제가 알고 있습니다. 사람도 그리 많이 모이지 않고요.”

“···네.”

쭈욱.

도인현은 긴 시간 만지작거리고 있던 술을 쭉 들이키곤 자리에서 일어섰다.

“술이든 뭐든, 지금 이 상황을 잊을 수만 있다면 뭐든지요.”

그렇게 누군가의 복잡한 속내와 함께 무림맹의 밤은 깊어져 갔다.

···유현의 척살단이 소림사에 당도하기 일주일 전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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