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권능으로 무림최강-107화 (107/185)

무림맹 척살대(1)

신승 어르신이 남겨놓은 서책을 찾은 지도 어언 닷새째.

장경각은 오늘도 시끌벅적하기 그지없었다.

“이쪽은 어떻게 되고 있나?”

“현재 준비 끝났습니다. 바로 시작해도 될 것 같습니다.”

“좋아. 그럼 복호 시작하고, 어려운 부분 있으면 바로 물어보게.”

“알겠습니다.”

“일차 복호본 끝났습니다! 검사 해주시기 바랍니다!”

“지금 바로 가지!”

단 이틀.

소림사에서도 내로라하는 학승들이 모여준 덕분에 신승의 암호를 해독하는 방법을 찾는데 걸린 시간이었다.

기본적으로 암호라면 빠삭하게 알고 있는 나도 있거니와, 천하제일의 사찰 소림사에서 뽑은 최고의 학승들까지 더해진 결과였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겨우 시작점에 불과했으니, 내가, 그리고 우리가 할 일은 아직도 한참 남아있었다.

“유 시주, 여기 삼차 퇴고까지 끝낸 번역본입니다. 한 번 확인해보시죠.”

“감사합니다, 대각 대사님.”

일단 학승들이 내가 알려준 복호 방법으로 신승의 서책에 있는 암호를 해독한다.

그다음에는 틀린 부분을 일차적으로 상위 단계의 학승이 확인하고, 두 번째에는 대각이 확인한 후, 세 번째에는 내가 확인한다.

물론 어마어마하게 불필요하고 쓸데없어 보이는 식이긴 하지만, 나는 물론이거니와 소림사 내의 다른 고승들도 반발하진 않았다.

“단 한 사람이라도 억울한 누명을 쓴 사람이 나오는 것보단, 저희가 피곤한 것이 훨씬 낫지 않겠습니까.”

대각이 밝은 미소를 띠며 하는 말에 어찌 반박할까!

물론 우리한테 시간에 여유가 있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

“무림맹에서 저에 대한 수배본을 뿌렸다고요?”

“···그렇습니다.”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방장은 내게 고개를 숙이며 말을 이어나갔다.

“모두 제 잘못입니다. 유 시주의 말을 그저 거짓으로 치부해 유 시주가 소림에 있다는 걸 무림맹에 전부 알려줬습니다.”

“무림맹에서도 그걸 듣고 소림사로 찾아온다는 거군요···.”

“그때는 오직 대각 사형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던지라, 전후사정은 알아볼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유 시주.”

···소림사 방장이 바로 앞에서 머리를 박는 모습을 또 언제 볼까, 싶기는 하지만, 그걸로 기분이 나아지진 않았다.

[캬! 내가 살다 보니 소림사 방장한테 절을 받는 날도 다 오네? 야, 유현아. 우리 이러지 말고 삼고두례(三叩頭禮)도 한 번 시켜보지 않을래? 하라고 하면 진짜로 할 것 같은데.]

···옆에 이 미친놈은 생각이 조금 다른 것 같지만.

화순의 말도 안 되는 소리는 한 귀로 흘려낸 뒤, 다시 방장과의 대화로 정신을 집중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이런 소문이 도는 자를 어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방장 대사님이야말로 저들과 다른, 정파의 진짜 본보기가 아니겠습니까?”

“유 시주···감사합니다.”

감동한 얼굴로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이는 방장에게 들리지 않도록 짧은 한숨을 내쉰다.

···뭐, 이번 일은 그냥 소림사에 빚 하나 얹혀놨다고 생각하자.

그래도 어떻게든 도망칠 수는 있으니까.

그래도 이젠 완숙한 화경이고, 금강부동신법도 완벽하게 익혔는데 겨우 사람 몇 명한테 도망치지 못할까.

정 안되면 그냥 아직 해독 못한 서책을 전부 들고 튀었다가, 어디서 몇 달에 걸쳐서 혼자서 해독해서 뿌리면···.

“그래도 당장에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네···네? 당장에···걱정할 필요 없다니요?”

북해로 도망칠까? 남만으로 도망칠까? 이런 고민을 하고 있던 도중 갑자기 그 생각을 끊는 방장 대사의 목소리에 바로 정신을 되찾는다.

뭔가 이상한데···? 당장···???

“유 시주의 경지를 저조차도 파악할 수 없다, 라고 적어 보내드렸으니까요. 아마 유 시주의 경지를 그들이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수준으로 생각하고 있을 테니, 그들이 유 시주를 잡으러 오시는 데에도 하루 이틀 걸리는 건 아닐 겁니다.”

···그러니까.

지금 무림맹에서는 나를 소림사의 방장조차도 알지 못하는 경지에 이른 정체불명의 고수···로 보고 있다는 말이네?

···이건 안 좋다.

차라리 다른 사람이 주장한다면 ‘어떻게 겨우 약관의 나이에 그만한 경지에 오르나!’라는 말이 나오겠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소림사의 방장이 그렇다고 말했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어중이떠중이 수천 명의 말보다 더 가치 있는 소림사 방장의 말.

그 전부를 받아들이지는 못할지언정, 그래도 만반의 준비는 하고 올 것이 분명하다.

즉, 내가 도망치는 것도 더럽게 어려워질 전망이다···라는 소리지.

···젠장.

“일단은 알겠습니다···.”

그래도 너무 절망적인 정보만 있는 건 아니다.

그의 말마따나 내가 고수인 걸 알아차린 이상, 그들도 오랜 시간 동안 나에 관한 준비를 할 터.

그게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어찌 됐건 하루 이틀 만에 끝날 일은 아니다.

거기에다가 인원수가 늘어나면 무림맹에서부터 소림사까지 오는 시간도 자연스레 길어질 수밖에 없으니, 일단 내가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오래 걸릴 건 분명했다.

그동안 어떻게든 신승 어르신이 남겨놓은 서책을 전부 해독할 수만 있다면, 내가 뒤집어쓴 누명도 해결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오기 전에 해독을 다 못 끝낸다면···.

“···시주? 유 시주?”

“네? 아, 네. 대각 대사님. 왜 그러십니까?”

“아니요, 갑자기 멍하니 계셔서 불렀습니다.”

아무래도 방장과의 대화를 너무 길게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어느새 내 앞 책상에 가득 쌓인 종이와 거기에 대각 대사가 들고 온 종이까지.

대체 얼마나 정신을 팔고 있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내 앞에는 일이 잔뜩 쌓여 있었다.

“아, 죄송합니다. 지금 바로 다시 시작하죠.”

“···역시 피곤하십니까?”

“네? 아니요, 피곤은 무슨···.”

“십관을 나오고 나신 뒤에도 거의 휴식 없이 일만 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오늘 하루 정도는 쉬시지요.”

아니, 그래도 별로 피곤하진 않지만···.

···아니, 여기선 그냥 쉴까.

육체적으로는 당연히 전혀 피곤함을 모르지만, 정신까지 그러리란 법은 없다.

남만 탈출 이후부터 정말 한시도 쉬지 않고 천라지망에, 화경급 고수와의 싸움에, 신승의 죽음. 거기에 소림사 도착에 연이어 소림십관 돌파까지.

···이렇게 보니 진짜 온갖 일은 다 당했구나.

근 몇 년간의 고생과도 비견될만한 요 며칠간의 사건 사고에 짧은 한숨을 내쉬며, 대각 대사에게 대답했다.

“그럼 잠시만 쉬고 오겠습니다.”

“네, 그 시간 동안에는 저와 제자들이 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대각 대사에게 감사를 표한 뒤 사흘째 한 번도 일어난 적 없던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다.

몇십 시진 째 자리에 앉아 있었지만, 딱히 아프거나 힘들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권능은 싸울 때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초인으로 만들어 줬기 때문이다.

소림사와의 오해가 풀린 이후, 새로 바뀐 숙소에 들어와 침상에 등을 기댄다.

수면···은 딱히 생각 없고, 식사···도 사찰에서 먹을 수 있는 건 거기서 거기고···.

역시 이럴 때는 그것밖에 없나.

[무공이나 확인하게?]

그것 말곤 할 게 없지.

몸이 피곤하면 수면이나 식사가 필요하지만,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역시나 정신 회복.

그러기에 가장 좋은 건, 역시나 내 성장을 직접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권능에 대해 궁금한 것도 있었으니까.

[사용 가능 무공 :

천마창법 10성

-오의 : 와류(渦流) 개방

-극의 : 폭우(暴雨) 개방

천마금나수 6성

-오의 : 불파(不破) 개방

-극의 : 미개방

천마보법 5성

-오의 : 군림(君臨) 개방

-극의 : 미개방

강화 가능 무공 : 옥음독기공 5성.]

···으음.

역시나 바뀐 건 없나.

금강부동신법을 깨우친 직후, 나는 지금처럼 바로 오른팔에 있는 무공을 확인했다.

혹시나 금강부동신법이 권능과 융합해 어떠한 특별한 무공이 된 건가, 싶어서 말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지금 보는 대로. 바뀐 무공 하나 없이 예전에 있던 그대로였다.

···이건 어떻게 된 거야?

[글쎄, 나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처음 내가 금강부동신법을 사용하는 걸 보고 ‘이런 건 불가능해!’하고 정신 붕괴 상태까지 가버린 화순도 지금은 담담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거렸다.

하긴, 어느 누가 천마한테 무공을 전수하겠냐.

[아니, 사실 천마가 무공을 전수받은 경우는 꽤 많아.]

응? 정말로?

[너처럼 그렇게 극적인 건 아니고, 그냥 전대 천마나 마교의 고수가 현 천마에게 힘이 되고 싶다는 이유로 자신의 내공이나 무공을 전수한 경우는 종종 있었거든. 뭐, 물론 권능을 얻은 이후로는 아무런 소용도 없었지만.]

확실히 권능의 역사를 생각하면 그런 인간이 없었을 리 없다.

마교라고 해서 사람 목숨을 무슨 파리 목숨처럼 생각해서 자기 무공만 높아지면 괜찮다며 다 죽이고 다니는 건 아니지만, 그런 사람이 아주 없는 건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종종 그런 미친놈이 천마가 될 수도 있지.

하지만 권능은 지금까지 그런 꼼수는 전혀 먹히지 않았다.

오직 정당히 싸워서 승리함으로써만 그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금강부동신법은 화순에게도 엄청난 충격이었다.

[천마의 권능을 얻은 자가 천마의 무공이 아닌 무공을 쓰는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권능을 얻기 전에 무공을 익히고 있다면 그것 중 몇 가지만 천마의 무공이 되고, 후에 익히는 건 아무런 소용도 없지.]

그럼 이번 경우는···.

[나도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그래도 어느 정도 예상해보자면···.]

으음, 으으음, 긴 시간 대답을 꺼내지 못하고 입안에서 중얼거리고만 있던 화순이 겨우 입을 열었을 때, 그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경악스러웠다.

[금강부동신법이···천마의 무공과 견줄만한 유일한 무공이라는 소리지.]

···그게 무슨 소리야?

[아니, 일단 어디까지나 예상일 뿐이고, 확신은 아니라는 건 알아둬.]

크흠, 그렇게 입을 연 화순은 천천히 자기 생각을 설명했다.

[본디 천마의 권능은 다른 무공을 흡수해서 천마의 무공을 강하게 만드는 거야. 그건 근본적으로 다른 무공이 천마의 무공보다 수준이 낮은 무공이기에 가능한 일이지.]

으음···확실히 예전에 그런 말을 한 번 한 적 있었지.

[그래. 결국 그렇게 하는 이유는 권능이 자신의 주인을 더 강하게 만들려고 해서 그런 거야. 다른 저급한 무공을 익혀봐야 별 도움도 안 될 테니, 무공의 밑거름이나 되라, 이 말이지.]

그런데 그런 천마의 권능이 금강부동신법을 흡수하지 않은 이유가···나보고 익히게 하기 위해서라고?

[물론 어디까지나 예상일 뿐이야. 하지만 금강부동신법은 여러 오의나 극의를 알고 있는 나도 놀랄 정도로 엄청난 무공이야.]

확실히 화순의 말대로였다.

당장 오의와 극의를 여러 가지 사용하고 있는 나도 금강부동신법. 역전(逆轉)을 처음 사용하고 나선 어디 이런 말도 안 되는 기술이 있나, 하고 경악했으니까.

사람이 움직이지 않고도 모든 공격을 피한다. 말 그대로 회피의 근본 원리를 완전히 뒤집는 듯한 그 놀라운 능력은 당장 다른 오의들이나 내 유일한 극의. 폭우와 비교해도 뭐가 더 수준이 낮다고 말할 수 없었으니까.

이런 화순의 설명도 그렇게 생각하면 이해가 간다.

천마의 권능은 내가 금강부동신법을 완벽히 익혀서 강해지기를 원했기에 금강부동신법을 흡수하지 않고 가만히 둔 것이다.

···물론 천마의 권능과 직접 얘기해본 적도 없는 데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할 수 있긴 하지만.

그래도 권능이 금강부동신법을 흡수하지 않은 덕분에 소림십관도 무난히 빠져나왔네.

[그건 그렇지.]

천마의 권능도 엄청난 능력이지만, 그렇다 해서 소림십관을 반드시 빠져나올 수 있었느냐? 라고 묻는다면 솔직히 나도 확답할 수 없었다.

지금 내가 가진 천마의 권능이 너무 공격적인 것만 있었으니까.

물론 폭우나 와류를 마구 쏟아붓다 보면 탈출할 수야 있겠지만···그렇게 되면 십관은 물론이거니와 그 위에 있는 소림사도 아주 그냥 난장판이 됐겠지.

그래도 덕분에 누구 하나 다치거나 부서진 것 없이 나올 수 있었으니, 어쨌든 다행이지.

지금껏 궁금했던 점이 풀린 덕분일까, 쌓여 있던 피로도 어느 정도 가신 기분이다.

그런데 천마의 무공과 비슷한 수준의 무공이라···.

금강부동신법을 만든 사람은 대체 어떤 사람일까.

···아니, 애초에 천마의 권능 자체가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오직 천마의 혈족에게만 이어진다는 권능을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이유는 뭘까.

하나의 궁금증이 풀린 이후에 뒤이어 몰려오는 여러 의문에 머리가 더욱 복잡해진다.

언젠가 이 의문에 대한 대답을 들을 수 있게 될 날이 올 것인가.

대답이 나오지 않는 의문을 끝없이 되뇌다, 결국에는 스르륵 눈이 감긴다.

얼마만 인지도 모르는 수면은 그렇게 조심스럽게 찾아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