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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능으로 무림최강-106화 (106/185)

신승의 유산(2)

쿵!

장경각 내에 준비된 탁상에 바구니를 올리자, 탁상이 무너질 만큼 커다란 소리가 들려왔다.

“허어···이게 사조님이 남겨놓으신 그것입니까?”

“네. 단 한 권만 나돌아도 무림에 큰 파란이 일어날 물건이죠.”

이른바 명문 정파라는 놈들이 벌인 여러 죄악.

불법 자금 유통부터 청부 살인. 거기다가 걸리면 사형이나 마찬가지라는 탈세까지.

하나만 밝혀져도 문파 자체가 폭삭 망할 끔찍한 죄가 여기에 가득 적혀 있었다.

다만···.

“이거 한 번 읽어보시죠.”

“네? 제가 읽어도 되겠습니까?”

“어차피 보여드릴 생각이었습니다. 제가 말씀드린 게 사실이라는 걸 밝힐 증거가 필요하니까요.”

내가 건넨 책을 받은 대각은 조심스레 그것을 펼쳐 천천히 읽어나갔다.

팔락, 팔락, 팔락.

한 장, 한 장 심각한 표정으로 서책을 넘겨나가던 대각.

그런 그의 표정이 점점 의문으로 바뀌는 건 길게 걸리지 않았다.

“···음?”

팔락, 팔락, 팔락.

파라라락.

그러다 결국엔 그냥 서책을 잡고 파라락 넘겨나간다.

“이건···?”

“보시는 대로입니다.”

“다른 책자도 마찬가지입니까?”

“네. 그렇더군요.”

황망한 표정으로 다 읽은 서책을 내려놓고 나를 바라보는 대각에게 나는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나도 아까 처음 보고 진짜 기가 막히더라.

설마 그분이···.

“다른 서책도 처음 열 장을 제외하면 전부 암호로 작성되어 있습니다.”

···서책들을 전부 암호로 적어놨을 줄은 꿈에도 몰랐거든.

“허어···대체 왜···.”

“어쩔 수 없죠. 정파 무림의 집합체인 무림맹의 삼 할이 넘게 엮여 있는 사건입니다. 소림사가 직접 비리를 저지른 일은 없을지라도, 연관된 사람이나 그들의 사주를 받은 이들이 전혀 없으리라고는 할 수 없지요.”

“으음···일리 있는 말씀이군요.”

내가 마교에 있을 때도 이런 경우는 종종 있었다.

마교 내부의 비리를 파헤칠 일이 있으면 정보부에서 자체 제작하고 다른 곳에서는 퍼진 적 없는 암호로 문서를 작성하곤 했으니까.

물론 안 쓰는 경우도 종종 있긴 했지만.

응? 어느 경우냐고?

뭐긴 뭐야, 우리 쪽에서 비리 터졌을 때지.

애초에 계급도 높고 알만한 건 다 아는 사람이 왜 첩실을 두냐고.

아니, 첩실을 두는 건 그렇다 쳐. 근데 왜 횡령을 해서 그 돈을 첩실한테 다 가져다 바치냐.

결국 어떻게 됐냐고? 결국 걸려서 두 사람 전부 거열형 당했지 뭐.

···솔직히 지금이야 이렇게 담담하게 말하지만, 살아 있는 사람이 눈앞에서 찢겨나가는 걸 본 충격은 쉽게 잊혀지지 않았다.

지금? 내가 전장을 몇 년을 굴렀는데, 그 정도야 뭐 이젠 담담하지.

어찌 됐건.

“혹시 이런 암호를 보신 적 없습니까?”

“아뇨···형태도, 방식도 우리 소림에서 쓰는 것과는 다릅니다. 무림맹에서 사용하는 암호도 몇 가지 알고 있지만, 그중에서 같은 건 없는 것 같군요.”

그건 나도 알고 있다.

아직까진 무림맹에서 제작된 모든 암호를 기억하고 있었으니까.

몇 년 지나면 그때부턴 아는 게 몇 가지 줄어들긴 하겠지만, 그래도 아직까진 특급 암호라 해도 모두 해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신승이 써놓은 암호는 내 기억에 있는 것들과는 전혀 달랐다.

그가 자체적으로 만든 암호이거나, 그것이 아니더라도 최소한 무림맹에서 사용하는 암호는 아니란 뜻이었다.

“서책만 수십 권이라 앞에 있는 내용으로도 비리를 밝히는 건 어렵지 않지만, 제가 원하던 부분은 아무래도 암호로 되어있는 모양이군요.”

“지금 뒤집어쓴 누명을 벗길 수 있는 증거 말입니까?”

“네. 어느 정도 의심 가는 문파가 있지만···그 문파에 관한 내용은 일부러 다 암호로 하셨나 봅니다.”

회귀 전 내 목숨을 거두고, 현생에선 내게 당해 목숨을 잃은 마멸검.

화산파의 일대 제자이자, 당시 일류 고수였던 그 자가 대제자라는 이름으로 그곳에서 일했던 걸 보면, 어떤 식으로라던 화산파가 엮여 있다는 건 분명한 일일 터.

그렇다면 문제는 화산파에서 얼마만큼 이 일에 관여되어 있는가.

···하지만 솔직히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애초에 그들이 연관된 바가 적었다면, 신승 어르신이 이렇게 모조리 암호로 만들었을 리는 없겠지.

다시 말해, 지금 암호로 적힌 내용 중에 화산파 전체를 몰락의 길로 이끌 수 있을지도 모르는 정보가 존재한다는 뜻이었다.

“···유 시주.”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바구니 안에 담겨 있던 서책을 살피던 대각이 입을 열었다.

“네, 대각 대사님.”

“혹시 괜찮으시다면, 우리 소림 측에서 암호 해독을 좀 도와드려도 되겠습니까?”

“소림사에서 말입니까?”

“네. 이만한 숫자라면 암호의 해독과 정보의 정리도 짧지 않은 시간이 필요할 듯한데, 유 시주 혼자서 할만한 양은 아니지 않습니까?”

으음···틀린 말은 아니지.

암호를 해독할 방법이야 어떻게든 찾을 수 있지만, 진짜 큰 문제는 그 뒤다.

이만한 양을 혼자 해독하는 건 분명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며, 그 뒤에 정보를 정리하는 데도 꽤나 시간을 잡아먹을 게 분명하다.

물론 내가 시간만 넘쳐나면 그런 걱정도 없겠지만···그것도 확실치 않다.

지금껏 잘만 숨겨왔던 내 행적이 벌써 무림 전체에 퍼졌다는 건, 사실상 나를 잡아 죽이겠다고 선포한 거나 마찬가지란 소리.

언제 추격조를 편성해서 나를 잡으러 올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란 말이다.

한시라도 빨리 확실한 정보를 얻어서, 놈들에게 그 죗값을 치르도록 만들어야 한다.

거기에 소림사의 도움이라면···.

“그 도움, 거절하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유 시주.”

내 수긍에 진심으로 기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이는 대각.

안 그래도 소림사에서도 나를 소림십관으로 집어넣은 일에 대해 사죄하고 싶을 테니 서로가 잘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또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는데···.”

“네, 뭡니까?”

“혹시 소림사에도 전서구를 사용합니까?”

“전서구라면···네, 사찰 내에서 몇 마리 기르는 놈들이 있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만···누구에게 보내시려고 합니까?”

“많이는 아니고, 딱 두 개면 됩니다. 하나는 섬서성에 있는 현정표국으로 보내주시고, 남은 하나는···.”

···이게 얼마나 먹힐진 모르겠지만, 지금은 물불 가리고 있을 때가 아니니까.

“북경에 보내주시면 됩니다.”

부디 이번 일이 내 계획대로 이루어지길 진심으로 빈다.

그게 아니라면, 무림에는 정말로 감당할 수 없을 피바람이 불 테니까.

*****

그리고 유현이 장경각에서 신승이 남겨놓은 서책을 얻은 바로 그 시각, 무림맹의 대형 회의장에서는 회의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쿵!

“그러니 지금 당장 그를 잡기 위한 징벌부대를 설립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소!”

정확히 말하자면, 악을 쓰는 소리라고 해야 좀 더 옳겠지만.

높은 고성만큼이나 강한 기세를 품어내는 중년인의 말에 그의 주변에 있던 몇몇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의 인상이 어두워졌다.

“현재 그를 억류하고 있는 소림사에서 상황을 파악 중이라고 연락을 해오지 않았소? 좀 더 기다리면 그쪽에서 어련히 처리할 일을···.”

“어련히 처리하다니! 어찌 같은 정파의 일원이 억울한 죽임을 당했는데, 그 범인이 어딨는지 알고서도 이리 담담하게 말할 수 있단 말이오!”

쿵!

다시 한번 원형 탁상을 치며 호령을 내뱉는 중년인의 말에 방금 말을 꺼낸 중년 사내는 바로 입을 다물었다.

모두가 동등한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이라는 의미로 이렇게 원형 탁상을 만들었지만, 그것이 먹혀든 일은 거의 없었다.

그들이 속한 무림이란 세계는 무엇보다 힘의 논리가 강하게 적용되는 곳이었으니 말이다.

지금 다른 이들이 중년인의 말에 아무런 반박을 꺼내고 있지 못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회의장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고 있는 저 사내가 속한 문파는 무림에서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대문파이자 정파 무림의 거두 중 하나인 화산파였으니 말이다.

그의 말에 반박했던 중년 사내가 한 마디에 바로 입을 다문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그 사내가 속한 청성파 또한 같은 구파일방에 속해 있긴 했지만, 아무래도 그 명성이나 힘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으니 말이다.

처음으로 입을 연 청성파 대표의 입이 바로 다물어지자, 어두운 표정이었던 이들의 눈이 자연스레 지금은 비어있는 한 자리. 본디 소림사의 대표가 앉아있던 자리로 향했다.

아무리 화산파 대표라고 해도 항상 이렇게 소리를 지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들에게 명성으로도, 문파 자체의 강함으로도 절대 뒤지지 않는 한 문파가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 그는 사문의 급한 명령 때문에 사문으로 돌아간 상황.

화산파의 독주를 막을 장애물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흥. 똑바로 사는 정파의 인물까지 막 죽일 놈이 거지한테는 무슨 해코지를 했을까. 우리 개방도 화산파의 제안에 동의하는 바요.”

근래 들어 화산파의 의견에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경우가 많아진 개방에선 자연스레 그의 옆에 앉아 그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였다.

정파에서도 소속 인원으로만 따지자면 제일 많은 개방에서까지 동의하자, 다른 문파에서는 어떠한 반박도 꺼내지 못했다.

“반대하는 문파는 없소이까?”

이런 상황에서 누가 반박의 말을 꺼낼 수 있을까.

애초에 그에 관해 동조하는 사람이 없더라면 숫자로 막을 수 있겠지만, 삼 할 이상의 인원이 적극 찬성, 나머지 칠 할도 반대는 없는 상황.

결국 화산파의 요청으로 시작된 무림맹 대회의는 화산파가 원하는 대로 이끌어지다가 그렇게 끝나게 되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빠져나간 회의장에서는 개방과 화산파 두 문파의 대표가 웃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고생하셨습니다, 주옥 장로. 덕분에 안건을 통과하기도 손쉬웠습니다.”

“컬컬컬, 무얼요. 정파 무림의 안정을 중히 여기는 사람들끼리 잘 뭉쳐야지요. 요즘 정파의 고수라는 것들은 왜 이리 분노할 줄을 모르는지···쯧쯧.”

씨익.

누렇게 변색한 이빨을 자랑하듯 만면에 웃음을 띠며 말하는 개방 장로. 주옥의 모습에 역시나 마찬가지로 웃으며 대답하는 화산파의 장로.

“그러게나 말입니다. 그래도 주옥 장로같이 정도를 아시는 분이 있어서 다행이지요.”

“컬컬컬. 칭찬 감사합니다. 그럼, 전 이만.”

스윽. 신법의 고수답게 순식간에 자리에서 사라지는 주옥.

그의 인기척이 완전히 사라진 걸 알아챈 화산파 대표의 얼굴이 점점 변한다.

조금 전만 해도 기쁨의 미소를 짓고 있던 얼굴에서, 마치 끔찍하게 더러운 벌레를 보는 듯한 눈빛으로.

“! 더러운 거지새끼! 숨을 멈춰도 냄새가 풍길 정도라니, 도대체 몇 년을 씻질 않아야 저따위 냄새를 풍기는 거지?”

주옥을 향해 온갖 욕설을 내뱉으며 몸서리치는 그 모습은 조금 전 공명정대를 부르짖던 정파 고수의 모습도, 자신의 의견을 찬성해준 동지에 대해 감사를 표하던 모습도 아니었다.

오직 자신만을 제일로 아는, 악독하고 추악한 괴물의 모습이었다.

“저런 더러운 몸에 안기는 기녀가 불쌍하군. 쯧쯧, 돈이 아무리 좋다지만 저런 더러운 새끼한테 안기고 싶을까.”

! 마치 입가에 그 냄새가 남아있는 것마냥 다시 한번 바닥에 침을 내뱉은 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같은 아군이라 그의 앞에선 어떻게든 웃음을 짓긴 했지만, 딱 그게 그의 한계였다.

그는 마치 구겨진 종이 마냥 인상을 잔뜩 쓴 채 자신의 숙소로 돌아갔다.

끼익.

“어, 왔냐?”

“엇? 무슨···아! 장문인!”

“그놈의 회의는 뭐 그렇게 오래 걸리냐? 어차피 별 할 말도 없는 새끼들끼리 궁둥이 붙이고 있는 것 말곤 할 짓도 없으면서. 심심해서 네 방에 있는 술이나 좀 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기다리고 있는 한 사람의 노도사.

선풍도골이라는 말이 무엇보다 잘 어울리는 겉모습과 달리,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투는 길거리의 왈패보다도 더 천박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그런 그의 말투에도 대표는 별 놀라는 기색도 없이, 오히려 웃으며 장문인에게 다가갔다.

“헤헤, 죄송합니다. 그 멍청한 것들이 감히 제 말에 반박하려 들어서···.”

“흥, 아직 대세를 모르는 멍청이가 남아있나 보네.”

“하지만 극소수입니다. 곧 진짜 정파 무림을 지키는 사람이 누군지 그 멍청한 놈들도 금방 알겠지요.”

“그래, 그 멍청한 놈들 사이에서 고생했다. 그러니···.”

대표의 말에 웃음을 짓던 장문인이 품을 뒤적이더니, 하얀 천을 꺼내 들었다.

“헉! 이, 이건 설마?!”

“한동안 고생했으니, 너도 상을 받아야지. 이거 바라고 있었지?”

꿀을 든 벌레의 모습이 이러할까.

장문인이 천을 잡고 이리저리 손을 흔들자, 대표의 눈이 그에 맞춰 사방팔방 흔들렸다.

“자, 받아라.”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잔뜩 충혈된 눈으로 장문인의 손에서 천을 받아든 그는 바로 그것을 풀어헤쳤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온 건···.

“오오오!”

아주 곱게 갈린 하얀 가루였다.

소금과 크게 다를 바도 없어 보이는 그것이 모습을 드러내자, 대표의 눈이 마치 취한 듯 몽롱해지더니.

푹!

누가 말릴새도 없이 바로 그 가루에 코를 박아넣었다.

“웁! 웁! 웁!”

스스로 질식이라도 하려는 속셈일까 코와 입에 그 천을 꽉 밀착하고 있던 대표의 육신에는 곧 해괴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주르륵.

딱 봐도 고급스러운 비단으로 만든 도사복 아래에서 흘러내리는 지독한 냄새의 액체.

그것은 조금 전 그가 그토록 혐오하던 주옥에게서 풍기는 냄새보다도 오히려 더욱 역겨운 냄새가 풍겨나왔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그것도 알지 못하는지, 전력을 다해 천에 머리를 박아넣고만 있을 뿐이었다.

“캬, 역시 이놈이 이건 제일 잘 즐긴다니까.”

그리고 그에게 천과 그 안에 담긴 마약을 건네준 장문인은 즐거운 듯 미소를 띠며 바라보았다.

“자, 그럼 여기 일은 이걸로 끝났으니.”

우득, 우득, 우드득.

대표가 마약에 빠져 정신을 차리지도 못하는 새, 장문인의 몸에는 온갖 기괴한 소리가 들려오더니, 잠시 뒤.

“오랜만에 맹의 여자들이나 즐겨볼까?”

지금의 그 모습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젊은이로 변하는 게 아닌가!

소름 끼치리만큼 차가운 미소를 짓던 장문인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남은 건 마약에 취해 똥오줌도 가리지 못하는 대표뿐.

그 광경은 지금 화산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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