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부동신법(1)
쿠구구구구궁!!!
지하에서 일어난 와류의 충격이 덮친 부위는 지하만이 아니었다.
유현은 최대한 동인들을 향해서만 와류를 뿜어냈으나, 만년한철로 만들어 튼튼할지는 몰라도 그 얇기는 터무니없이 얇았던 구 관의 천장은 그 작은 와류의 충격도 버틸 겨를이 없었다.
결국 천장에 부딪힌 와류의 기세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고 지하의 천장. 즉, 지상을 크게 흔든 것이다.
“뭐, 뭐냐!”
“지진이다! 모두 충격에 대비해!”
점심나절이라 소림사의 제자는 물론, 부처님께 기도하러 온 시주들도 많았던 이때, 갑자기 소림사를 뒤흔드는 거대한 지진에 수많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 지진이 그저 천재지변이라 생각했지만, 진실을 아는 사람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구 관이 있는 곳부터 충격이 시작되었다고?!”
“설마, 그 말은···?!”
그리고 그런 진실을 아는 사람들은 누구보다도 현재 십관의 상황에 예의주시하고 있는 방장과 그 사제들.
순식간에 지진의 정체를 파악한 그들은 이미 충격이 전해진 구 관 이후의 방.
즉, 십관의 출입구로 향했다.
*****
한바탕 거대한 와류가 지나가고 난 이후의 구 관은 완전히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천장에서는 오랫동안 묵어있던 먼지가 눈처럼 쏟아져 내렸고, 빛만 있었다면 금빛으로 번쩍이고 있었을 동인들은 쓰러진 채 일어나질 못했다.
다만 그렇게 쓰러진 놈들도 부웅, 거리는 소리를 내며 금방이라도 일어날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러니까···.
“화순! 따라와!”
최대한 빨리 튀어야지!
시야가 밝아지자마자 바로 동인들이 잔뜩 쓰러진 구관을 빠져나가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달렸다.
하지만.
쿠구궁!
초반에만 해도 쓰러지면 한참은 걸려야 본래의 자리로 되돌아오던 동인들은 관을 지나갈수록 점점 다시 돌아오는 속도가 빨라졌다.
그리고 그것이 구관쯤 이르자, 정말 순식간이라는 말이 부족하지 않게 빨라졌고, 내가 아무리 발에 땀이 나도록 달려왔지만 그것도 한계는 있었다.
결국 구관의 중간.
쿠구구궁.
“젠장.”
다시 몸을 일으킨 동인들은 자신의 영역을 침입한 외부인.
즉 나를 향해 맹렬한 살기를 뿜어냈다.
물론 통짜 철로 만든 놈들이 무슨 살기를 뿜어내냐, 라고 묻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가 그렇게 느껴진다고!”
쾅!
일어나자마자 잠깐의 틈도 없이 나를 향해 주먹을 휘두르는 세 개의 동인들에게 나 또한 창을 휘둘렀다.
끼기긱!
아무리 만년한철이 잔뜩 섞인 동인이라도 와류의 힘을 견디지는 못했다.
아까보다도 훨씬 수월하게 뒤로 밀려 나가는 세 개의 동인들.
조금의 시간만 더 있다면 이놈들을 완전히 쓰러뜨리고 바로 뛰어갈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 조금의 틈도 없이 옆에서 휘몰아치는 동인의 주먹.
쾅! 쾅!
한창 힘겨루기하고 있던 세 동인의 주먹을 튕겨낸 뒤, 다시 내 쪽으로 날아오고 있던 두 동인의 주먹을 막아선다.
그리고 그 틈을 절묘하게 노리며 날아드는 뒷발꿈치와 팔꿈치.
옆구리와 명치를 노리는 그 일격은 한 번 맞으면 단숨에 숨이 멈출 필살의 일격!
잠깐의 틈도, 휴식도 없다.
백팔나한진은 진 안으로 들어온 상대에게 조금의 관용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적을 앞에 둔 신승과 똑같이.
‘큭!’
왜 하필 지금 그가 떠올랐지?
소림사의 안이라서 그런 걸까, 아니면 그와 약조했던 그 일 때문에 이곳으로 들어와서일까.
어느 쪽이건 답은 낼 수 없었지만, 지금 내 머릿속에 들어찬 건 그의 얼굴, 몸짓, 행동이었다.
그라면 지금 이 상황을 어찌했을까.
스승다운 스승도 없이 그저 강한 육신과 무한한 내공. 그리고 천마의 무공이라는 희대의 신공절학만 믿고 싸워나간 내게 신승은 내게 또 다른 길을 보여주었다.
물론 그 또한 엄청난 내공과 고절한 무공을 보여줬지만, 어느 쪽이건 나보다 뛰어나지는 못할뿐더러, 노쇠한 육신 때문에 그것을 십 할 발휘할 수도 없었다.
만약 각자의 힘을 정확히 수치로 나눌 수 있었다면, 분명 그는 나보다 아래였으리라.
하지만 내가 그를 이길 수 있느냐? 라고 묻는다면 나는 확실한 답을 꺼낼 수 없었다.
분명 어느 모로 보나 싸움을 벌인다면 내가 훨씬 더 유리한데, 그에게서 내가 승리한다는 미래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째서? 왜? 무엇 때문에?
그리고 그런 생각은 심상 수련 속에서도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뚜렷한 승기를 얻었다 믿고 그에게 최후의 일격을 날린 그 순간.
그 결과는 기이하게도 땅에 쓰러진 나였다.
내 일격을 그가 멋들어진 기술로 반격했느냐면, 그것도 아니다.
발가락으로 발등 누르기.
손등으로 허리 후려치기.
손톱 세워서 가슴 찌르기.
기술이라고도 말하기 힘든, 아이들끼리의 장난에서도 볼 수 있는 하찮고 시시한 공격들.
그 공격이 내 흐름을 끊어내고, 그의 반격을 확실히 성공시켰다.
전생과 현생. 그동안 수많은 전장과 끝없는 실전을 경험하며 쌓아온 경험들도 그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며 그 격차가 줄어들었느냐? 그것도 아니다.
신승과 더 긴 시간 함께하면 함께할수록, 심상 수련 속에 등장하는 신승도 더욱 사실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물론 그만큼 나도 점점 더 강해졌지만, 여전히 신승의 벽을 넘어설 순 없었다.
그래서 지금처럼 힘든 이때 그의 얼굴이 떠올랐던 걸지도 모르겠다.
제일 최근 내가 패배를 경험했던 신승의 모습이.
···만약 지금 그라면 어찌했을까.
신승의 무공을 하나도 빠짐없이 샅샅이 다 알고 기억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의 움직임을 그려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
그가 이곳을 통과하는 모습을 떠올리자, 이런 순간에서조차 웃음이 튀어나왔다.
마치 집 앞 정원을 산책하는 것처럼 앞으로 나아가는 그의 모습이 눈앞에 선했다.
아무리 수많은 적이 공격하더라도 스스로는 움직이지 않은 채 그들의 공격을 모두 반사하며 나아가는 그.
내게 전해주겠다 말하던 금강부동신법은 참모습이었다.
···참모습?
그게 정말로 금강부동신법의 참모습인가?
두근!
피하지 않고도 적의 공격을 피한다.
마치 불가의 선문답같은 이야기지만, 그는 그것을 실제로 해냈다.
피하지 않은 채 적의 공격을 모두 반사해냄으로써 말이다.
그런데 그것이 정말로 금강부동신법의 완성형인가?
신승은 말했다. 자신의 스승은 금강부동신법을 참선한 끝에 피하지 않고 모든 공격을 받아들이는 대신, 어떠한 공격에도 피해를 입지 않도록 금강불괴를 익혔다고.
그렇다면 그의 선택이 옳은 것인가?
무엇도 옳지 않다.
두 사람의 금강부동신법은 결국 누군가에 의해 파훼 당하고 말았으니까.
신승의 스승은 금강불괴가 깨지며 패배했고, 신승은 자신이 반사할 수 있는 것 이상의 공격을 받음으로써 패배했다.
하지만 두 사람이 누군가에게 패배했다 하여서 두 사람이 내놓은 답이 다 틀린 것인가?
무엇도 틀리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다른 방식을 택한 것뿐이다.
두근! 두근!
그렇다면 나라면?
나는 어떤 방식을 선택할 것인가.
움직이지 않고도 적의 공격을 피하려면, 어떠한 공격도 받지 않으려면, 어떠한 피해도 입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두근! 두근! 두근! 두근!
아무런 생각 없이 창을 휘두르고, 걸어서 위치를 선점하며, 머리를 돌려 놈들의 움직임을 파악한다.
모든 것이 마치 물 흐르듯, 당연한 일인 양 저절로 진행된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내 머릿속은 여전히 다른 것을 떠올렸다.
나라면 그 질문 앞에서 뭐라고 대답해야 하는가!
그들의 답은 옳지도, 틀리지도 않았다. 그저 다를 뿐이다!
나와는 다른 대답이다!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것과는 다르다!
만약 나라면 어떠한 대답을 꺼낼 것인가!
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
점점 세차게 뛰기 시작하는 심장과 가빠지는 호흡.
동인들과 싸움 때문이 아니라, 지금 머릿속에 가득한 생각들을 감당할 수 없어서 고통스럽다.
지금껏 내게는 한 번도 없었던 일.
이것이 심마라는 것인가?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것을 떠올리려 해서 나 스스로 나를 막아서는 것인가?
‘아닐세.’
아!
‘새끼 새가 태어나기 위해선 알을 깨는 일이 반드시 필요한 법이네.’
아아아!
‘그것은 분명 슬프고, 고통스러우며, 힘든 일이지. 평생 살아왔던 자신의 집을 부수고 나와야 하니 말일세.’
그가 내 눈앞에 있었다!
그는 내 마음속에 있었다!
‘하지만 기억하게. 그런 시련이 있어야만 그 작은 새는 자신의 좁은 집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게 되는 법이니까.’
우득.
우드득.
몸이 부서지고, 내공이 흩어지며, 마음이 사라진다.
그리고 그것이 다시 하나로 합쳐진다.
지금껏 내게 없던, 부족한지도 몰랐던 무언가가 내 몸 가득 차오르는 그 느낌.
그것은 충족감이었다.
텅 비어있던 마음에 가득한 그것.
그것은 깨달음이었다!
고오오오오!
[유현···아···?]
내 주변에서 나를 노리며 주먹을 휘두르는 동인들의 소리도.
놀란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는 화순의 목소리도.
이 세상에 가득한 온갖 소음도.
모든 것이 사라진다.
그리고 거기에 남은 건 오직 나 하나.
···오직 나만이 남았다.
세상의 저편, 세계의 이면.
그리고 세상이 나를 다시 받아들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이것이 바로 금강부동신법.
한점의 움직임도 없이 천하제일이라 불리는 신법.
[야, 유현아!]
깨달음에 취해 멍하니 서 있던 내 귀로 화순의 다급한 목소리가 화살처럼 꽂혀왔다.
[왜 창을 내려···야! 야야! 동인이 또 공격을···!]
···알고 있어.
이미 화순이 말하기 전부터 나는 동인의 공격이 나를 향해 날아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아까처럼 막을 생각은 추호도 떠오르지 않는다.
[···어?]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막을 필요도 없다는 게 좀 더 맞는 말이겠지만.
[너···설마?!]
“화순아.”
씩.
나를 경악에 가득 찬 얼굴로 바라보는 화순을 향해 씩 웃으며 말했다.
“새로운 걸 익힌다는 건 참 좋아. 그렇지?”
*****
“이들은 다 무엇인가.”
소림십관의 출구.
소림 제일의 금지로 유명한 이곳도 오늘만큼은 그 이름이 무색할 수밖에 없었다.
많아 봐야 다섯 명이 넘지 않았던 금지의 출입자들이 오늘은 그냥 세어봐도 백 여명 이상의 사람들이 모여있었으니 말이다.
“지금 이들은 다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등장에 분노하고 있는 건 바로 대각.
유현이 소림 십관에서 나오거나, 그게 아니라면 죽음을 기다리고 있던 그 고승은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는 자신의 사제들과 그 뒤에 서 있는 백여 명의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분노하고 있었다.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 금지로 들어와서 화내느냐? 그건 아니다.
오히려 반대.
대각은 지금 사제들의 뒤에 있는 백여 명의 사람들이 누군지 똑똑히 알고 있었다.
아니, 모를 수가 없었다.
장경각에서 두문불출하여 소림 내에서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대각조차 그들은 알 수밖에 없었으니까.
“어째서 백팔 나한들을 모두 이곳에 끌고 온 것이냐!”
소림. 아니, 전 중원에서도 손꼽히는 최강의 무력집단.
중원에 대사건이 벌어져도 하나로 뭉치는 일은 거의 없이, 십팔 나한이나 삼십육 나한으로 따로 떨어져 다닌다는 그들이 모두 이곳에 모인 것이다.
“방금 땅을 울리는 진동, 사형께서도 느끼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리고 그런 그들을 모두 총괄하는 수장. 제 일 번 나한이자 대각의 사제인 대선이 앞으로 나와 대각을 향해 말했다.
“그 진동의 발생지는 분명 구관의 지하. 지금 현재 그 죄인이 구관에 있다는 증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백팔 나한들을 모두 이끌고 왔다는 말이더냐!”
“물론 그가 십 관을 통과할 확률은 일 할도 되지 않겠지요. 하지만 저희는 만약을 대비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리석구나, 어리석어! 어찌 하나만 보고 둘은 보지 못하더냐! 만약 그가 정말로 구관까지 나아갔다면 그가 사조님의 최후를 옆에서 지켰다는 그 무엇보다 확실한 증거이거늘! 사조님이 그가 죄인인지 아닌지도 몰랐다는 것이냐!”
“그자는 이미 우리에게 거짓을 말했습니다! 사조님의 심득을 얻었음에도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말한 그 속셈! 그것을 어찌 설명할 수 있단 말입니까!”
한 치도 물러섬 없는 두 사람의 대립에 난감해진 건 갑작스레 부름을 받고 모여든 백팔 나한들이었다.
배분으로 치자면 현역 소림사의 승려 중 제일 높다 할 수 있는 두 사람이 말싸움을 벌이는데, 그보다 낮은 사람들이 무슨 말을 꺼낼 수 있을까.
하지만 그렇다 해서 두 사람의 말싸움이 끝날 기미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자신이 할 말은 반드시 지키는 대각과, 소림을 지키는 데 누구보다 앞장서는 대선.
본인들부터가 자신의 말과 행동이 옳다고 생각했기에 두 사람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렇게 영원히 이어질 것만 같았던 두 사람의 대화가 멈추게 된 계기는 전혀 의외의 것이었으니.
끼긱···.
“엇!”
그것을 가장 먼저 알아챈 이는 백팔나한의 막내였다.
한참 동안 이어지던 두 사람의 지루한 대화를 더 듣지 않고 한 번도 들어온 적 없던 금지를 구경하던 그는 자신이 본 것이 정말로 현실인지 눈을 한 번 비빈 뒤, 다시 그것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었다.
“대, 대지가···!”
두 사람이 말싸움을 벌이고 있는 바로 그곳.
풀 한 점 자라지 않은 황량한 대지가 점점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끼기기긱!
그 소리가 점점 커지고, 흔들림도 점점 거세짐에 따라 그것을 알아차리는 사람도 점점 더 많아졌다.
“···음?!”
“···이건?!”
그리고 한창 말싸움을 벌이던 두 사람까지 알아챈 끝에.
쿵!
완전히 열린 대지, 소림십관의 출구 사이로 그가 나타났다.
“어라? 여기 왜 다 모여있으십니까?”
후줄근한 옷에 칠 주 야간 관리하지도 못해 길게 자란 수염. 그리고 봉두난발이라는 말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머리카락.
그리고 그 전부와 어울리지 않는 듯하면서도, 너무나 절묘하게 어울리는 웃는 얼굴까지.
“설마···제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으셨던 겁니까?”
여기에 이만한 사람들이 모인 이유인 그 사내.
유현이 소림십관을 모두 통과하고 이 자리에 나타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