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권능으로 무림최강-102화 (102/185)

소림십관(4)

천하제일 사찰 소림.

불가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니, 설사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온갖 수많은 이유로 매년 수십만이 넘는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이다.

그런 소림에서도 극히 일부의 인원만 출입을 허하는 심처 중의 심처.

거기에는 그런 명성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허름한 움막이 한 채 자리하고 있었다.

헤지고 구멍 뚫린 천에 다 썩어가는 나무로 얼기설기 지어낸 움막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위태롭기 그지없었지만, 만든 사람의 손재주가 썩 괜찮았던 모양인지 용케 쓰러지지 않고 서 있었다.

하지만 그런 움막보다 더욱 기이한 점은 바로 움막이 세워진 땅 그 자체였다.

몇백. 혹은 몇천 년은 묵은 듯한 보리수나무와 울창한 풀숲이 자리한 주변 땅과 달리, 그 움막이 지어진 주변 십여 장은 풀 한 포기 자라지 않고 있었다.

혹시 이 움막을 지은 사람이 풀을 모두 정리한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기엔 그 땅엔 여전히 수상한 부분이 많았다.

심겨 있던 뭔가를 뽑았다 하기엔 땅 자체가 너무나 밋밋했고, 수풀을 죽이는 뭔가를 뿌렸다 하기엔 땅 자체에는 분명 생기가 가득했다.

이상한 점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주변의 울창한 풀숲에서 살아가는 벌레들이 하나둘 그쪽으로 갈 법도 했건만, 그곳에는 그런 벌레도 없었다.

애초부터 뭔가가 존재하는 것 그 자체를 막아놓은 것처럼 보였다.

저벅, 저벅, 저벅.

그리고 그런 기이한 땅에 세 사람이 찾아왔다.

죄를 지은 소림 제자들을 벌하는 집법부의 수좌인 대수.

백팔나한의 수좌이자 현재 강호에서 활동하는 소림 제자 중 최고수인 대선.

그리고 그들을 이끄는 소림의 방장 대현이었다.

기이한 땅의 경계선에 멈춰선 대현 일행은 그곳에 서서 잠깐 동안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마치 움막 안에 있는 누군가가 행동을 취하기라도 할 것 마냥.

“·········.”

하지만 그들의 기대가 현실로 일어나는 일은 없었다.

싸구려 움막은 조금의 움직임도 없었고, 어떠한 소리도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애초에 아무도 없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겠지만, 그들은 달랐다.

“사형.”

대현은 낮고 고요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대답은 없었다.

“대각 사형.”

다시 한번 부른다.

역시나 마찬가지로 대답은 없었다.

“대각 사형, 중요한 소식을 가지고 왔습니다.”

“떠나게.”

세 번의 부름이 반복되고 나서야 움막에선 겨우 누군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이미 약조했네. 그가 나오기 전까진 여기서 절대 움직이지 않겠네.”

“바로 그 시주 때문에 온 겁니다.”

펄럭.

그제야 겨우 움막의 문···이라고 할만한 부분이 있다는 전제 하의 이야기지만···이 열리고, 그 안에서 세 사람보다 훨씬 추레한 대각이 모습을 보였다.

유현이 소림십관에 들어선 이후 만든 움막에 박힌 채 몸을 씻는 건 물론, 식사조차 모두 금하고 있던 그는 단 사흘 만에 비쩍 말라 있었다.

만약 사제들의 간곡한 요청조차 없었다면 물조차 입에 대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대각이 사제들의 이야기를 들어준 건 딱 거기까지였다.

그 이후로는 귀와 눈을 모두 막은 듯 움막에 처박힌 채 유현이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시주가 다른 곳으로 나오기라도 했는가?”

“아닙니다.”

“그의 죽음을 확인하기라도 했나?”

“그것도 아닙니다.”

“···그럼 아직 십관에 도전 중이라는 말이군.”

“네, 아마 그렇겠지요.”

“그렇다면 사제들은 왜 나를 찾아온 건가.”

대각의 질문에 대현은 잠깐 숨을 돌리더니, 풀 한 포기 자라지 않은 그 땅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싹!

그 순간 발에서부터 시작해 전신을 타고 올라오는 싸늘한 냉기!

이 땅 위에 어떤 풀도 자라지 않고, 어떤 벌레도 침범하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초절정 고수인 그가 미리 각오하고, 단전에서 내공을 끌어올려 전신을 막은 상태에서 다가갔는데도 이만한 냉기다.

다른 것들은 그저 다가오는 것만으로도 얼어버리리라.

하지만 그 냉기가 전신을 잠식한 건 아주 잠깐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진 냉기에 대현은 도저히 적응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이런 이상한 땅 말고 좀 더 편안한 곳에서 기다리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시주가 제일 먼저 나오는 걸 보려면 여기가 최선일세. 이미 이야기는 끝낸 거로 안다만.”

소림십관의 최종 관문. 십관의 출구와 이어진 이곳은 수백 년 넘게 이런 황량한 공터로 남아있었다.

물론 그 이유가 십관의 동인들이 만년한철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알았다면? 지금쯤 벌써 다 부숴서 뭐로든 만들어 쓰던가, 아니면 팔아먹었겠지.

어찌 됐건, 그 사실을 모르는 두 사람은 그것관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이걸 읽어보시지요.”

“이건 뭔가?”

“어제 무림맹에서 온 서찰입니다.”

무림맹?

대각은 대현의 입에서 갑작스레 튀어나온 그 이름에 인상을 썼다.

“네. 한 번 읽어보시지요.”

대현의 제안에 대각은 여전히 인상을 쓴 채로 손을 뻗어 대현이 들고 있던 서찰을 받았다.

그도 강호를 살아가는 한 사람의 무인으로서 무림맹은 당연히 알고 있었다.

무림을 양분하는 대집단. 소림 또한 그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정파의 집합체.

하지만 지금 그의 머릿속을 스치는 건, 소림을 떠나기 전, 장경각 안에서 뭔가를 연구하고 있던 신승의 모습이었다.

무엇을 연구하고 있는지는 신승이 입도 뻥긋하지 않았던 터라 알 수 없었지만, 그가 버린 종이나 그의 입에서 나온 이런저런 이야기로 어느 정도 예상은 할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나온 말이 바로 무림맹.

···그리고 두 번째로 나온 말이, 타락이었다.

물론 이 두 가지가 꼭 붙어 있는 사이라는 걸 확신할 순 없었지만, 대각의 마음은 영 편치 않았다.

하지만 어찌 됐건 사제가 지금 그와 연관된 일이라며 전해준 서찰이다. 읽어보지 않는다는 선택은 애초에 없었다.

그리고 거기에 적힌 건.

“···이게 사실인가?”

“네, 맹에서 보내온 사안이니, 분명한 사실이라 봐야겠지요.”

지금 소림십관에 진입한 유현.

그가 위선타파라는 이름으로 지은 죄의 나열과, 그 증거였다.

당시 상황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관련된 사람에게서 캐낸 정보까지.

관에서 직접 조사한 것보다 훨씬 체계적으로 모아온 것처럼 보이는 증거가 서찰 내에 빼곡했다.

“그 외에 물질적 증거도 이미 맹 내부에서 보관 중이랍니다. 해당 사건에서 사망한 맹 내부 인원의 시체에서 그가 용봉대회에서 선보였던 무공의 흔적 또한 발견됐다고 합니다. 전혀 반박도, 부인도 불가능한 분명한 증거입니다.”

“그래, 그런 것 같군.”

그 사실은 대각 또한 인정했다.

설사 유현이 직접 봤다 해도 부인 못 할만한 증거였다.

지금 강호 무림을 떠들썩하게 하는 자칭 위선타파, 타칭 정혈탐마의 정체가 유현이라는 그 무엇보다 확실히 거기에 적혀 있었다.

하지만.

“그 시주가 십관에서 죽음을 맞이하면 그 시체를 맹에 양도하게. 나는 약조에 따라 내 목숨을 버릴 테니.”

그런 사실조차, 대각의 마음을 돌릴 순 없었다.

“사형!”

당연히 서찰을 보면 마음을 돌리리라 생각했던 대현에게는 청천벽력같은 말이 아닐 수 없었다.

“지금 서찰을 보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는 극악무도한 죄인, 그것도 수십의 정파 무인을 참살한 악인입니다! 어찌 그런 자가 죽었다 해서 사형이 죽음을 맞이해야 합니까!”

“나는 분명히 약조했네. 그가 거기서 목숨을 잃으면 내 목숨도 포기하겠노라고. 그가 무슨 짓을 했건, 이 약조는 여전히 유효해.”

“어찌 그 약조가 유효하단 말입니까. 그가 가져왔다는 그 발우도, 사조님의 것이라 말했던 뼛가루도 모두 출처조차 알 수 없단 말입니다! 그것이 애초부터 거짓이라면!”

쿵!

대현은 자신도 모르고 크게 발을 굴렀다.

자신들을 속였을지도 모른다는 유현에 대한 분노와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 사형에 대한 답답함.

그런 복합적인 감정에서 나온 우발적인 행동이었다.

불법을 닦아온 승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었지만, 지금 그런 것까지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사형이 목숨을 걸 이유가 없단 말입니다!”

지금 그에겐 사형의 설득이 무엇보다 중요했으니까.

“·········.”

사제의 진심 어린 설득에 대각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어찌 사제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까.

만약 자신도 정반대의 상황이었다면 필사적으로 사제를 말렸으리라.

“그렇지 않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조차 대각의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설사 그가 거짓을 말했더라도 상관없네. 그는 사조님의 물건을 가지고 왔고, 나는 그에 대해 약조했네. 우리는 그에 따라 소림십관에 그를 들였고. 그가 소림에 와서 약조를 지켰다면, 나도 그에 따라 약조를 지켜야지.”

너무나 정론인 이야기이자, 대현이 이곳을 찾아오기 전부터 부디 대각이 말하지 않기 바랐던 이야기기도 했다.

같은 사형제로써 그는 대각의 대쪽같은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가 십관에 들어서면 말해주겠네. 대현이 자네는 그 전의 관에 진동이 느껴지지 않는지 알아보게. 아마 그는 거기서 목숨을 잃었을 테니 말이야.”

“·········.”

대현은 대각의 말에 어떠한 대답도 없이, 그저 몸을 뒤로 돌려 조용히 거기서 벗어났다.

대현과 함께 왔던 대선과 대수가 놀란 표정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다 바로 대현의 뒤로 따라붙었다.

“대선 사제. 어제 부탁했던 일은 쭉 진행하게.”

“아,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대수 사제.”

“네, 사형.”

“제자 중 무공이 일류 이상인 자들로만 몇 사람을 준비시켜놓게. 동인의 움직임이 멈추면 관에서 그를 데려와야 할 테니 말일세.”

“네, 알겠습니다.”

단호한 대현의 목소리에 두 사제는 어떠한 반박도 꺼내지 못했다.

지금 그들의 행동이 저기 움막에 자리잡고 있는 대각 사형의 의지를 완전히 반하는 일임을 분명히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렇게 한 사람으로 인해 만들어진 대자 배분 간의 흠집이 조용히, 또 조용히 커지고 있었다.

그리고 같은 시각. 소림 십관 내에선.

“으아아아아악!!!”

[으아아아아악!!!]

묵철과 만년한철의 합금으로 만든 백여 개의 동인 사이에서 유현이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

불파를 두른 팔을 크게 휘둘러 동인의 머리를 후려쳤다.

웬만한 무인이라면 머리가 터져나가고,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뇌에 전해진 충격 때문에 살짝 멈칫할 만한 일격.

하지만, 지금 이 빌어먹을 동인은.

우웅-

마치 ‘너 나 쳤냐?’라는 듯 돌아간 고개를 다시 앞으로 향할 뿐, 자신이 서 있던 그 자리에서 조금의 변화도 없었다.

후웅!

그리고 그 뒤로 이어지는 공격!

이제는 일류 고수를 뛰어넘어, 절정과도 같은 속도.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모르는 속도로 주먹을 휘두른다!

막는다? 어디 어깨 나갈 일 있냐!

만년한철로 만들어졌다는 걸 자랑이라도 할 속셈인지, 막는 순간 손에서 느껴지는 충격은 지금껏 지나온 다른 관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한 방, 한 방이 불패를 넘어 어깨와 가슴까지 저릿하게 만들었다.

물론 그 정도 피해야 순식간에 회복되긴 하지만···.

후웅!

후웅!

후웅!

그것도 한두 번의 이야기지!

이젠 내 차례라는 듯 끊임없이 이어지는 연계 공격!

지금껏 진법이라곤 전장에서 군대가 군대를 대할 때에만 사용했던 것 외엔 경험해 본 적 없던 내게 이렇게 다수가 한 사람을 체계적으로 노리는 진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정말로 조금의 틈도 없다.

연계 사이에 생긴 틈을 노리거나, 혹은 그 틈을 만들어 비집고 들어가던 내 싸움법이 이놈들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유현아! 이쪽이다!]

국경부대 이후로 정말로 오랜만에 화순의 도움까지 바랄 정도로 다급한 싸움이었으니 말이다.

그나마 화순이 위에서 진을 살펴보고 틈을 발견한 게 다행이지, 그게 아니었더라면 이렇게 팔 관까지 오는 것도 무리였으리라.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찾아온다.

[이젠 틈새도 찾기 힘들어.]

힘겹게 팔 관을 탈출한 직후, 화순이 인상을 쓴 채 내게 말했다.

[육 관이랑 칠 관에서 어느 정도 봐놓은 덕분에 눈에 익어서 그나마 이번 팔 관도 알아봤지, 구 관은 이제 나도 그 틈을 찾기 힘들 만큼 완벽한 진을 구사할 거야.]

···결국 그 말은 그거네.

[그렇지.]

소림십관을 통과하며 몇 번 꺼낸 적 없던 두 자루의 창.

그것을 양손에 꽉 쥔 채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가며, 내가 들어가기도 전부터 모두 일어선 채 기다리고 있는 저 백 팔 개의 만년한철 동인들을 향해 휘두른다!

“너희가 미쳤는지, 내가 미쳤는지 한 번 겨뤄보자!”

콰과과과과광!!!!

소림의 지하에서 누구도 멈출 수 없는 폭풍. 와류가 휘몰아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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