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권능으로 무림최강-100화 (100/185)

소림십관(2)

쿠웅!

소림십관의 문이 닫히자 주변은 순식간에 어둠으로 물들었다.

미세한 틈새도 없이 꼭 들어맞은 문은 단 한 점의 빛도 통과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여기서 빠져나갈 방법은···지금 당장은 없는 것 같네.

[말 그대로 완벽한 입구(入口)로군. 출구로 쓸 방법이 전혀 없어.]

화순의 말대로 안에서 문을 열 방법은 전혀 없었다. 문을 열 손잡이가 없는 건 물론, 도대체 무엇으로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웬만한 고수들은 부술 엄두도 내지 못할 단단함을 자랑하고 있었다.

억지로 부숴보라면야 부수지 못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렇다면 나야 좋지.]

뭐가?

[소림사고 뭐고 다 때려 부수고 받아야 했을 정보를 가져갈 거 아냐? 아주 그냥 십오대 전 천마의 전설이 다시 강림하는 거지.]

십오대 전 천마라면···이 미친, 정마대전을 일으켰던 천마잖아!

보통 마교의 옛 역사는 이런저런 이유로 금방금방 소실되지만, 마교 외부에서 들어오는 마교의 정보는 어렵지 않게 입수하여 보관할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제일 편했던 게 바로 십오대 전 천마였다. 사방팔방 가리지 않고 깽판을 쳐놨던지라 중원은 물론이고 세외에까지 그에 관해 상세한 역사가 그대로 보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당연하지. 소림사의 제일 금지라는 소림십관을 부숴버렸는데 정마대전이 대수냐. 심지어 신승의 뼈랑 발우도 네가 죽이고 가져왔다고 생각할 텐데 얼마나 좋겠냐.]

···그래, 부수는 건 그냥 포기하자.

어차피 부술 생각도 없었지만, 화순의 말을 듣고선 완벽하게 그쪽으로는 생각을 접었다.

치익.

화르륵.

기름을 잔뜩 머금은 홰에 삼매진화를 일으킨 손끝을 가까이 가져가자, 순식간에 훌륭한 횃불이 완성되었다.

불빛이 생기자, 그제야 안쪽의 전경도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

마치 자로 재서 만든 듯 조금의 오차도 없이 똑같은 정사각형의 방과 거기서 유일한 출입구인 네모난 통로 하나.

저기가 일관으로 향하는 길목인가.

밖에 있던 다른 고승들도 소림십관에 들어온 적 있는 사람은 없었던 모양인지, 정확한 내부 전경을 파악하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나마 자신을 장경각주라 소개한 고승이 자신도 어딘가에서 읽은 내용이라며 몇 가지 조언만 해줬을 뿐이었다.

“들어가 보면 바로 알 거라고 하더니, 말 그대로네.”

물론 그 조언이라는 것도 제대로 된 건 아니었지만.

유일한 통로로 발을 옮기자, 그 안에서 뭐라 형언할 수 없는 지독한 쇠의 냄새가 풍겨오기 시작했다.

제대로 관리 못 한 금속에서 풍기는 특유의 냄새.

수십 년 동안 관리하지 못한 무기가 가득한 군대의 창고. 혹은 쓰레기장에서조차 이렇게 지독한 냄새는 맡아본 적 없었다.

···그래도 명색이 소림의 제일 금지라는데 관리도 안 한 건가?

내 중얼거림에 옆에서 둥둥 떠다니고 있던 화순이 입을 열었다.

[보통 이런 경우는 크게 두 가지지. 그냥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잊혔거나. 그게 아니라면.]

한참을 걷고 나서야 나타난 거대한 공동.

그리고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그것’을 보고 나서야 지금 풍겨오는 쇠 냄새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들어오면 자기도 죽어서 들어갈 엄두도 못 낼 정도로 최악의 공간이거나.]

수십, 아니. 가볍게 백은 넘길 숫자의 금인(金人).

옅게 바른 금칠이 벗겨진 금인의 노출된 속살에는 지금껏 이곳에 들어왔던 사람들의 피로 인해 잔뜩 녹이 슬어 있었다.

내가 느꼈던 그 지독한 쇠 냄새에는 사람의 피 냄새도 진하게 서려 있었다.

끼긱.

그리고 그 안으로 한 걸음 들어서자, 그곳에 있던 백여 개의 금인의 시선이 동시에 나를 향했다.

물론 그것들의 눈에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나는 분명히 느꼈다.

그것이 나를 바라보고 있음을.

“이게 바로 소림십관···.”

그리고 내 중얼거림과 함께, 그것들이 동시에 질서정연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소림의 무공을 수련한 무승과 하나 다를 바 없는 움직임을 보여주는 금인과 그 건너편에 있는 두 번째 출입구까지.

마치 올 수 있으면 와보라는 듯 보란 듯이 뻥 뚫려있는 그 구멍을 보며, 나는 씩 미소를 지었다.

“···누가 만들었는진 몰라도, 아주 악취미 가득한 물건이구만.”

흉흉한 기세로 나를 노리는 백여 개의 금인의 진 안으로 첫 발걸음을 옮겼다.

*****

쿵!

“시작이로군.”

깊은 지하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진동에 대각이 입을 열자, 주변에 있던 다른 대자 배 승려들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들어간 그 시주는 얼마까지 갈 수 있을까요?”

“다른 초절정 경지의 고수가 육관까지 진입했다는 이야기는 있었으니···최소한 그 이상은 진입하겠지.”

여기 모인 대자 배 승려 중 저 안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 안으로 들어가는 유현에게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은 이유는 두 가지.

하나는 딱히 그에게 설명할 필요성 자체를 느끼지 못했을 뿐이고, 다른 이유는···.

“최근 소림십관에 들어가서 살아 돌아온 사람이···사조님 말고 다른 분이 있었습니까?”

안에 들어가서 살아 돌아온 사람이 지금껏 얼마 없었기 때문이다.

“제일 최근은 사조님뿐이고, 그전에는 사조님의 스승님께서 진입했다가 살아 돌아오셨지.”

“심지어 두 분도 십관은 통과하지 못하시지 않았습니까?”

“사조님은 구관. 사조님의 스승님께선 팔관에 그치셨던 거로 압니다만.”

“한 관, 한 관 넘어갈수록 배로 강해지는 동인이니까. 어쩔 수 없지.”

소림십관에 얽힌 역사에 대해 유일하게 제대로 알고 있는 대각은 끝없이 쏟아지는 사제들의 질문에 하나하나 모두 대답해줬다.

물론 본인이 직접 들어간 건 아니고, 어디까지나 장경각 내에 보관된 소림십관의 정보를 읽고 대답해주는 것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 시주는···나오는 방법을 모르지 않습니까?”

“모르지. 들어가기 전에 설명해 준 것 중에 탈출 방법은 없었으니까.”

지금 유현이 통과 중인 일관부터 오관까지는 정말로 탈출할 방법이 하나도 없었다.

입구는 한 번 닫히면 위쪽에서 열지 않는 한 절대로 열리지 않았고, 이관에서 오관까지는 애초에 출구를 만들어 놓지도 않았다.

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오관까지의 이야기.

“육관부터는 방법만 알면 탈출할 방법이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아는 사람들이나 가능한 이야기. 지금 들어간 시주가 알 수 있는 방도는 없지.”

“그런···괜찮은 겁니까? 아무리 그래도···.”

“···솔직히 말하지.”

스윽.

유현의 생존을 걱정하는 방장 대사의 말에 대각은 사제들을 향해 딱딱하게 굳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나는 그를 믿지 못하겠네.”

“네? 그게 무슨···.”

“그는 분명 사조님께 무언가를 받았네. 무공이건, 내공이건, 우리는 알 수 없는 다른 무언가건···분명, 분명 사조님이 그에게 남긴 것이 있어.”

대각의 갑작스러운 발언에 대자 배 승려들 모두가 당황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혹시···대각 사형께서 그 시주에게서 뭔가를 느끼셨습니까?”

“자네들은 뭔가를 느꼈나?”

사제들의 질문에 오히려 역으로 질문을 던지는 대각.

하지만 뭔가를 느낄 수 있을 리가 있나.

당장 대자 배 승려 중 제일 경지가 높은 백팔나한의 수장. 대선(大禪)도 겨우 초절정 중에서나 손꼽히는 경지다.

이미 화경 중에서도 완숙의 경지에 이른 유현의 무공을 알아보기엔 한참 모자라다.

대선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자, 그를 향해 있던 승려들의 시선이 다시 대각에게로 향했다.

“아뇨,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자네들도 못 느낀 걸, 우리 중 무공이 제일 낮은 내가 어떻게 느끼겠나?”

너무나 당연한 일인양 대답하는 대각의 모습에 오히려 황당해지는 건 다른 대자 배 승려들이었다.

혹시 언제나 진지하던 저 사형이 처음으로 농담을 하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 사제까지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다를 바 없이 정색한 표정이었고, 말투에도 농담 끼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럼···.”

“사조님은 분명히 약조하셨다.”

어째서 유현이 신승에게서 무언가를 얻었다고 확신하느냐.

그 이유를 물으려던 사제들을 향해 대각은 한없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만약 본인이 돌아오지 못한 채, 자신과 동행했다는 사람이 찾아오면, 그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맡겨놓았다고.”

“하지만···갑작스레 죽음을 맞이하셨다면 사조님께서도···.”

“자네들은 그리 생각할지 몰라도, 나는 아니야. 나는 사조님을 믿네. 분명 당신께선 그에게 뭔가를 남겼어.”

그것은 무엇으로도 흔들리지 않을 굳건한 믿음이었다.

마치 그들이 믿고 따르는 부처의 말씀처럼, 그는 누구보다도 신승의 말을 열렬히 믿고 있었다.

“나는 정체도 알 수 없는 젊은 시주의 말이 아니라, 내가 믿고 따르는 사조님의 마지막 약속을 믿을걸세.”

“·········.”

대각의 말에 다른 이들은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한 채 서로의 얼굴만을 멍하니 바라봤다.

“하지만···.”

그의 말에 가장 먼저 입을 연 건 대자 배 승려 중 제일 성격이 불과도 같은 대수였다.

평상시의 그답지 않게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연 그는 꿀꺽, 입에 고인 침을 삼키고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정말로 저 안의 시주가 사조님께 아무것도 받지 못했다면···.”

“죽겠지.”

불가의 제자들이 가장 멀리해야 할 죽음을 입에 올리는 그 순간까지도 대각의 목소리는 너무나 담담했다.

“아니!”

“그 무슨!”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그의 말에 경악하다 못해 비명을 내지르는 사제들과는 달리 말이다.

“칠관까지는 어찌어찌 통과한다 해도, 팔관 이후는 금강부동신법을 익히지 못한 자가 통과한 전적이 없었지.”

“그렇다면 정말로 큰일 아닙니까! 다시 십관의 문을···!”

“한 번 열린 십관의 문은 보름이 지나기 전에는 열리지 않는다는 건 이미 여기 오기 전에 말하지 않았나?”

부산스러운 사제들의 몸짓을 단 한 마디로 멈춘 대각.

그런 그를 향해 방장 대사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만약 그 시주가 죽음을 마주하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나도 죽지.”

짧고 단호한 대각의 말.

···거짓이 아니다.

대자 배 승려 간에 투표로 뽑힌 방장이긴 하지만, 그래도 십 년 넘게 소림을 이끌어 온 방장이다.

거짓과 진실을 파악하는 눈은 어느 정도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지금 대각의 태도는 그런 선구안이 없다 해도 한순간에 알 수 있을 만큼 일목요연했다.

정말로 유현이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하면, 그도 스스로 자신의 목을 바로 그어 버릴, 그런 다짐이 그의 눈에는 분명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것을 느낀 건 다른 승려들도 마찬가지였는지, 모두 이마에 식은땀을 흘리며 대각을 바라봤다.

“내 말에 더 반박하는 사람은 없나?”

“·········.”

누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이미 자신의 목숨까지 걸었다는 사람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하는가.

주변에 있던 모두가 자신의 말에 반박 없이 침묵을 고수하자, 대각은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돌려 어딘가로 향했다.

“···모두 십관의 출구로 가지. 그가 살아서 나올지, 아니면 죽어서 나올지 봐야 하니까.”

*****

쿵!

“이걸로 마지막인가?”

[응, 그런 것 같은데.]

화순의 대답을 들으며 나는 주변을 다시 한번 둘러봤다.

내가 지나온 길에는 백여 개의 강철 동인이 마치 시체인 양 쓰러진 채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거지만, 부순 건 아니다. 제일 앞에 있던 놈의 머리를 후려치자마자 쓰러지길래 깜짝 놀라서 확인해봐서 안다.

알고 보니 애초에 그렇게 만들어진 거더라.

지금 내가 쓰러뜨린 이놈들도 내가 지나가면 언제 쓰러졌다는 듯 다시 일어서리라.

말만 소림 제일의 금지니, 소림의 전설이니 하더니, 그냥 평범한 수련동과 다를 바 없었다.

[진짜 쓸데없는 돈지랄 그 자체지.]

야, 아무리 그래도 소림 제일의 금지인데···.

···사실 이렇게 말하긴 했지만 반박은 못 하겠다.

물론 처음 만났을 때 뿜어내던 기세도 살벌하고, 움직임 자체는 단순할지언정 강철로 이루어진 만큼 공격 하나하나도 꽤 무겁게 다가오지 하지만, 그래 봐야 그뿐.

차라리 일류 무인 두 사람이 서로 싸우는 게 더 좋은 수련일 것이다.

그런데 그걸 이만큼 많은 수의 동인과, 그것을 이류 무인 수준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정밀한 기계로 만들었을 정도니···.

뭐···옛날부터 남겨놓은 유산 같은 거라면 어쩔 수 없겠지만.

들어오기 전 십관에 대해 알려줬던 그 스님도 그저 간단한 통과 의례라고 했을 정도니까.

끼기기긱.

출구로 쭉 나아가자, 다시 한번 내 앞에 나타난 백여 개의 동인.

이거랑 열 번 싸우면 끝인가.

이 정도야 어렵지 않게···웃!

쿵!

당연히 아까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생각하고 뻗어오는 동인의 주먹을 막아서자, 아까보다 훨씬 묵직한 충격이 내 팔을 덮쳤다.

무, 뭐야, 이놈?!

움직임이 조금 더 빠르긴 했지만, 그래도 강철 정도로 이만한 충격이 나올 리는 없다.

그러고 보니 아까 이관으로 향하며 일관에서 풍겨오던 쇠 냄새가···.

···안 났지, 젠장.

“미친, 진짜 시주들이 낸 돈을 다 이거 만드는 데만 썼나?”

일관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적게 벗겨진 금칠 사이로 보이는 동인의 먹색 몸체.

강철만으로는 절대 나오지 않는 색깔.

이 동인에 묵철이 섞여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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