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림십관(1)
섬서성에서 가장 발달한 도시는 어디인가.
보통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받으면 으레 섬서성의 성도인 서안을 입에 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최근 이십 년간 점점 사람들의 입에 오르락내리락하는 도시가 두곳이 있었으니.
하나는 최근 급속도로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현정표국이 자리한 상락(商洛)이요.
또 다른 하나는 최근 세를 불리고 있는 화산시가 자리한 위남(渭南)의 화음현(華陰縣)이었다.
특히 회음현은 기이하게도 도사들의 문파인 화산파가 바로 옆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상계(商界)가 발달한 상락보다도 주도(酒道)나 화류계(花柳界)가 크게 발달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최근 화산파로 예와 덕을 찾으러 온 사람들이 오히려 술과 색에 빠지는 일이 자주 일어나고 있었다.
위남의 수많은 무림 명사가 이런 상황을 탐탁지 않게 여겼으나, 화산파의 영역에서 화산파보다 먼저 움직이는 건 화산파의 체면 문제도 있으며, 무엇보다 화산파에서 이런 분위기를 일부러 조성한 건 아닌가, 하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던 지라 쉬이 움직일 수도 없었다.
그리고 지금, 그런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화음현에서도 제일 크고 화려한 주루의 최상층.
하룻밤에 금자 백 냥은 써야 있을 수 있다는 그곳에서는 오늘도 사내와 여인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으하하하! 마음껏 먹고 마셔라!”
열 명이 넘는 아름다운 여인들 사이에서 딱 한 명밖에 없는 사내가 자신의 앞에 있는 병을 통째로 들어 올리며 외쳤다.
훤칠한 외모에 화려한 보라색 비단옷. 거기에 허리까지 기른 기다란 머리까지.
다만 허리춤에 달린 검은 그 화려한 차림새와는 반대로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을 만큼 밋밋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그런 검으로도 사내의 외모를 깎을 수는 없었다.
길거리를 걷다 보면 여인들이 뒤돌아볼 정도의 미청년은 술에 취해 벌겋게 물든 얼굴로 옆에 있는 여인을 향해 손을 뻗었다.
“아이고, 어찌 이리도 아름다우냐. 뭐 가지고 싶은 것이 있느냐?”
“어머나, 그리 말씀해주신다면···저쪽 동쪽에 있는 의방에 주안에 좋다는 약초가 들어왔다던데···혹시 사주실 수 있겠습니까?”
“얼마든지, 얼마든지! 그거 사 오는 김에 내 것도 좀 사 오거라!”
미청년은 그리 말하며 반쯤 벗겨진 자신의 옷 안쪽을 뒤적이더니, 아이 머리만큼 커다란 빨간색 비단 주머니를 꺼내 뒤집었다.
좌르륵!
그러자 거기서부터 쏟아지는 어마어마한 양의 금자들!
한 냥이면 양민 하나가 석 달은 놀고먹을 수 있는 금자가 마치 작은 봉우리처럼 쌓였다.
꿀꺽, 꿀꺽.
산처럼 쌓인 금자의 모습에 조금 전까지만 해도 시끌벅적하던 주안상은 침 삼키는 소리만이 가득해졌다.
자신의 욕망은 얼마든지 숨길 수 있는 최상급의 기녀들조차 그만한 금화에는 본심을 숨길 수 없었다.
“호, 호호호! 도련님 것도 꼭 사 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제일 먼저 이야기를 꺼낸 기녀의 행동은 가히 초인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당장이라도 자신의 품 안에 금화를 넣고 싶은 마음을 숨긴 채, 그가 땅에 던진 비단 주머니에 다시 금자를 넣었으니 말이다.
‘호호호! 이만한 금자라면 금가놈 의방에서 꽤나 떼먹을 수 있겠구나!’
물론 그만큼 나중에 욕망을 풀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지만 말이다.
괜히 쓰지도 않을 약초를 사달라 하는데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게 아니다.
약초의 가격을 아는 사람이 얼마 없는 만큼 원하는 대로 가격을 속이기도 쉽고, 다시 돈으로 바꾸기도 쉬우며, 보석을 사달라 하는 것보다 쉽게 지갑을 열었기 때문이다.
‘주안용 약초에 대해선 금가놈한테 금자 한 냥 던져주면 어련히 구해놓겠지. 호호호, 이 정도면 대체 얼마를 남겨 먹는 거야?’
소름 끼칠 정도로 번들거리는 그녀의 모습에 주변의 다른 기녀들은 질투 반, 시샘 반의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바로 사내의 옆에 달라붙었다.
겨우 약초 하나 사달라는 말에 이만한 돈을 내는 사내다. 다른 물건에도 분명히 이만한 돈을 내놓을 터.
그리고 그녀들의 그런 생각은 들어맞아 사내는 마치 금자가 쏟아져 나오는 화수분(하수분; 河水盆)처럼 품 안에서 금자가 담긴 비단 주머니를 마구 뿌렸다.
퇴폐의 지옥이 이러할까.
욕망에 미친 여인들과, 그런 여인들의 중심에서 욕망을 마구 뿌리고 있는 한 사내.
이곳이 과연 도사들의 문파라는 화산파의 앞마당에서, 아니, 현세에서 벌어지는 일이 맞는가.
평상시 화산파를 존경하던 강호 무림의 무인들이 이 모습을 보았다면 이 광경에 통탄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특히나 화산과 인연이 깊은 무림의 명사라면, 그 모습을 보고 경악하다 못해 비명을 내질렀으리라.
지금 이 광경 때문이 아니라, 저 중앙에서 부어라 마셔라 하고 있는 그 미청년의 모습에 말이다.
덜컹!
한참 연회가 진행되고 있는 그 방으로 검은 옷의 사내가 들어온 건, 한창 모두가 자신이 받은 금화에 미쳐 있던 그때였다.
방 안에 있던 기녀들의 신경은 오직 자신이 받은 금화에만 집중되어 있던지라, 그의 등장을 알아챈 건 딱 한 사람.
“당신이 웬일이오?”
모두가 금화에 미친 모습을 바라보며 기분 좋게 술을 마시고 있던 중앙의 미청년밖에 없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기분 좋게 웃으며 술을 마시던 그 청년은 사내의 등장에 모든 흥이 싹 식은 듯, 얼음장 같은 차가운 표정으로 술잔을 내려놓았다.
청년의 질문에도 사내는 대답 없이 주변만 둘러보더니,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화산의 장문인이라는 놈이 아주 잘하는 짓이로구나. 술에, 여자에, 돈에. 멀리하라는 것으로만 골라서 하고 있군.”
촤악!
사내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청년이 몸을 움직였다.
순식간에 검집에서 빠져나온 검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방 전체를 헤집어 놓은 것이다.
하지만 그런 광경에도 놀라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가 자신의 손에 있는 금화에 취해 청년의 그런 모습을 보지 못한 탓도 있지만.
툭, 툭, 툭.
···청년의 그 검격에 기녀들의 목이 아래로 떨어진 것이 가장 큰 이유이리라.
금화에 취해 웃는 낯 그대로 목이 떨어진 여인들을 한 번 둘러본 청년은 자신이 벌인 살육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다시 자리에 앉아 방금 내려놨던 술잔을 들어 올렸다.
“내가 장문인이라는 거 말하지 말라니까. 또 이것들을 다 죽여야 하잖아.”
자신을 탓하는 청년의 말에 사내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어차피 다 죽일 기녀 아니었나? 네놈이 돈을 남한테 이렇게 막 뿌릴 리가 없지. 욕망으로는 이곳 중원에서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인간이.”
청년은 사내의 말에 반박하지 않았다. 그 발언 모두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청년이 돈을 아끼지 않고 뿌린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지금 이 자리에서 가장 욕망에 미쳐 있는 인간은 다름 아닌 눈앞의 이 청년이었다.
“그래서, 또 무슨 일로 찾아왔지? 네 쪽에서 요청한 일은 다 처리한 줄 알았는데?”
청년은 자신이 벌인 살육판 위에서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양 술을 마시며 사내에게 물었다.
청년의 그런 모습에 사내는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애초에 이십 년 전 화산파의 장문인이었던 이렇게 만든 게 바로 사내였기 때문이다.
마치 천천히 몸을 잠식하는 독처럼 사내는 화산파의 장문인을 욕망으로 잠식시키기 시작했다.
어떤 때는 돈으로.
어떤 때는 여자로.
어떤 때는 술로.
그리고 제일 최후에는 피로.
그렇게 도사의 표본이라 불리던 화산파의 장문인도 지금은 완벽한 욕망의 화신.
자신의 욕망을 충당시키기 위해서라면 수십, 수백의 목숨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버릴 수 있는 인간이 되어 있었다.
“아직 마무리를 짓지 못했으니 다시 온 거다.”
사내의 말에 청년. 정확히는 사내가 전해준 주안술(駐顔術)을 익힌 화산파의 장문인은 인상을 쓰며 되물었다.
“마무리?”
“이번 무림맹 회의에서 이놈이 확실한 범인인 증거를 찾았다고 말하면 된다.”
사내는 그렇게 말하며 품 안에서 한 첩의 종이 뭉치를 꺼내 장문인에게 내밀었다.
아무리 이런 모습으로 쇠락했다곤 하나 화산이라는 대문파의 장문인이었던 남자. 그저 슬쩍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그것의 정체를 파악한 장문인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 정도면 증거로는 충분하겠지. 그거면 끝인가?”
“아니, 하나 더.”
“하나 더?”
사내의 말에 청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겉으로 보면 그 정도 일은 들어줄 수 없다, 이런 모습으로 보였지만, 그 음습한 속내를 이미 사내는 알고 있었다.
툭.
사내는 품을 뒤적여 이번에는 다른 물건을 꺼내 장문인 앞에 던졌다.
조금 전 장문인이 기녀들에게 뿌렸던 그 주머니와 똑같지만, 그 크기는 세 배는 큰 주머니였다.
그 모습에 장문인의 눈이 욕망으로 번들거리기 시작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살아있던 그 기녀들과도 비교할 수 없는 어둡고, 추악한 욕망의 눈빛.
빛조차 탐욕스럽게 삼켜버릴 듯한 칠흑의 눈동자에 사내조차도 인상을 쓰며 입을 열었다.
“놈을 잡기 위한 추격대도 최대한 빨리 편성해라. 가능한 한 크고, 화려하게. 최대한 많은 숫자로.”
“그 정도라면야 이만한 증거가 있다면 어려운 부탁은 아니지만···대체 왜?”
장문인은 앞에 있던 비단 주머니를 품 안에 집어넣으며 사내에게 물었다.
“대체 왜 너희만 한 힘과 능력이 있는 곳에서 직접 놈을 죽이지 않고 우리에게 이렇게 요청하는 것이지?”
지금껏 항상 그들의 속셈에 의문을 품고 있던 장문인이었지만, 이런 질문을 올린 적은 없었다.
지금껏 장문인에게 의문을 푸는 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자신의 욕망을 충당시킬 수 있는 것만 내려준다면 이들이 명나라의 전복을 꿈꾼다 해도 아무런 상관없었다.
하지만 이번 일은 다르다.
겨우 약관의 청년 하나.
물론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른 놈이라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래봤자 한 명이다.
지금껏 장문인조차 보지 못했던 경지에 이른 눈앞의 사내나, 그가 평상시 두려움을 내비치는 그들의 주인에 비하면 조금도 강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런데 어째서.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토록 귀찮은 일을 벌이면서 놈을 죽이려 드느냔 말이다.
이젠 자신의 욕망을 푸는 법 외에는 의문이라곤 없던 장문인조차 자연스레 궁금할 수밖에 없는 주제였다.
하지만 그런 의문조차도.
“네가 알아야 하는 영역을 벗어나는 이야기다.”
눈앞의 사내가 내뿜는 그 압도적인 기운 앞에선 자연스레 사라졌다.
“같잖은 질문으로 네 목숨이 사라지는 건 네놈도 원하는 바가 아니겠지.”
“···좋아, 어차피 별로 궁금한 것도 아니었으니까.”
자존심에서 나온 거짓말, 같은 건 아니었다. 실제로 장문인에게 그런 의문 따위 어떻게 돼도 상관없었다.
지금 그의 마음에는 호기심보다는 욕망이 훨씬 크게 자리 잡고 있었으니까.
“일단 알겠다. 너희가 요청한 건 내 쪽에서 어련히 처리하지. 아마도···.”
하나, 둘, 셋. 손가락으로 뭔가를 셈하던 장문인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삼 개월. 그 정도면 대충 일이 끝날 것 같군.”
“좋아.”
그의 대답에 사내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몸을 돌려 방 밖을 나섰다.
그렇게 밖으로 나온 사내의 얼굴은 영 밝지 못했다.
“일 가주님···대체 왜···.”
방금 장문인이 꺼냈던 그 질문.
“왜 그놈에게 그토록 큰 신경을 쓰시는 겁니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모르는 건 이 사내.
삼 가주라 불리는 그조차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
소림사에 당도한 지 정확히 일주일째.
이른 아침부터 찾아온 고설의 안내에 따라 나는 소림사의 심처(深處)로 향했다.
“이쪽부터는 시주들은 물론, 일반 제자들도 다가오는 걸 허용하지 않는 금지(禁地)입니다. 제가 알기론 외부인 중에선 유일하게 유현 대협만 출입을 허락받으신 곳이죠.”
“그렇군요. 확실히···.”
힐끔, 나는 고설의 말에 주변을 살펴보고선 다시 입을 열었다.
“···금지라 불린 이유를 알겠습니다.”
사방에서 느껴지는 이 시선들.
전에 만났던 방장 대사보다 한두 단계는 높은 경지에 있는 무인들이나 뿜어낼 수 있는 기운이었다.
구파일방 같은 대문파의 진짜 힘은 앞이 아니라 뒤에 있다더니, 그게 이런 걸 말하는 것일까.
만약 모두가 진심으로 덤빈다면, 나도 쉽게 쓰러뜨리지는 못할만한 고수들이 이곳에는 즐비했다.
[마교에선 쉽게 보기 힘든 모습이지. 그 인간들은 이만한 경지에 오르기도 전에 다 서로 싸움을 벌이다가 죽어버리니까.]
하긴, 마교에서 이런 곳이 있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 없었다.
애초에 이런 것 없이도 강한 게 마교의 두려운 점이지만.
“다 왔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앞서가던 고설이 내게 대답했다.
그곳에는 이미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던 십수 명의 대자 배 승려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겉으로 봤을 땐 아무것도 없는 평평한 땅.
···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이곳 지하에, 가히 소림사에도 맞먹을만한 거대한 공동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내가 다가가자, 미리 기다리고 있던 대자 배 승려 여럿이 땅과 연결된 끈을 잡고 들어 올리기 시작했다.
끼기기기긱.
그러자 엄청난 굉음과 함께 열리는 땅의 아가리.
아무리 안력을 키워도 그 끝이 보이지 않는 심연의 입구 옆에서 방장 대사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곳이 바로 소림 제일금지 소림십관(小林 第一禁地 小林十館).”
분명 그 말은 방장 대사의 입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것일 텐데도, 왠지 심연 속에서 흘러나오는 것처럼도 들렸다.
아니.
“네가 원하는 걸 얻고 싶다면, 들어와라.”
내 착각이 아니었다.
“이곳을 이겨내면, 네가 원하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은 분명 저 안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이겨내지 못하면 목숨을 잃을지니.”
그것은 아가리를 크게 연 채 새로운 먹이를 갈구하고 있었다.
“들어올 수 있다면 들어오라. 소림십관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