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림사(3)
그 말을 듣는 순간, 방장 대사의 몸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니다. 아무리 오랜 세월 동안 수련에 수련을 거듭한 수행자라 해도 이런 소식을 듣는 건 감당키 어려웠으리라.
“자네의···.”
흐읍.
“···그 말을. 내가 어떻게 믿나?”
세차게 떨리는 입으로 겨우 말문을 튼 그였지만, 그렇게 힘겹게 꺼낸 말조차 중간에 한 번 쉬고 나서야 겨우 완성할 수 있었다.
“그분은 우리 소림. 아니, 전 중원에서도 한 손가락 안에 드는 고수! 아니, 현재 천마 독고삭이 행방불명된 이 시점에는 제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분!”
그렇게 트인 말문은 마치 홍수에 무너져내린 보처럼 나를 향해 마구 쏟아내기 시작했다.
조금 전 떨리던 모습이 거짓인 양 경악하여 빨갛게 물든 방장의 얼굴.
거기에는 차라리 내가 거짓을 말했기를 바라는 기대가 담겨 있었다.
그 심정을, 그 마음을 어찌 모를까.
이렇게 방장실까지 불러서 직접 물어볼 정도로, 그는 진심으로 신승의 생존을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죄송합니다.”
비록 끔찍하고, 잔혹한 현실이라 해도 나는 그에게 진실을 말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신승 어르신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집단의 기습에 목숨을 잃으셨습니다.”
달칵.
그 말과 함께 나는 보름 동안 품 안에 넣어둔 채 한 번도 꺼내지 않았던 그것을 꺼내 책상 위에 올렸다.
“이건···설마!”
“짐작하시는 대로 신승 어르신의 유품과.”
혹시나 부서질까 천으로 감싸놨던 발우.
“그분의 유해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가득 담긴 하얀 뼛가루까지.
털썩.
“아···아아···.”
그것을 확인한 방장 대사는 다리에 힘이 빠진 듯 털썩 주저앉았다.
“이 발우는···.”
그 발우를 향해 조심스레 손을 뻗은 방장 대사는 양손으로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정말로···사조님의 발우로군.”
군데군데 이가 빠지고, 빛이 바랜 발우는 누군가 원한다고 만들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수십 년. 아니, 백수십 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꾸준히 사용해야 만들어낼 수 있는 기품과 색깔.
긴 세월 동안 중원 제일의 사찰이라는 자리를 지키고 있던 소림사에서조차 쉽게 볼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방장 대사가 이것이 신승의 발우라는 걸 한눈에 알아본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이런 발우를 가지고 있을 만한 사람은 그분밖에 없었던 탓이다.
“그분의 유해를 직접 모셔오고 싶었지만, 혹시나 있을 적의 습격을 대비해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유골만 가져왔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 사조님에게 해를 끼칠만한 집단이라면 여기까지 오는 일도 쉽지 않았을 터. 그분의 유해를 거기 버려두지 않고 가지고 와준 것만으로도 고맙네. 물론···.”
발우를 다시 천으로 감싼 채 옆으로 밀어놓은 방장 대사가 나를 날카로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자네의 말이 전부 사실이라는 전제 하의 이야기지만.”
“·········.”
하긴, 이 두 가지로 어찌 신승의 죽음을 그토록 쉬이 믿을 수 있을까.
지금 발우 안에 담긴 이 뼛가루에 이름이 적힌 것도 아니고, 신승의 것이라 어찌 확언할 수 있겠느냔 말이다.
신승이 내게 다른 증표를 남겼다면 모를까.
···내가 만약 신승의 무공을 그대로 받았다면, 이런 걱정을 할 필요조차 없었을 텐데.
하지만 내 몸 안의 권능은 그것을 허용치 않았고, 결국 내가 낼 수 있는 증거는 지금 눈앞의 이 오래된 발우와 정체불명의 뼛가루뿐.
이걸로 온전한 믿음을 얻기에는 한참 부족했다.
“정말로 사조의 옆을 지켰으면서 이것밖에 없는 건가?”
방장 대사의 질문에 담긴 본질은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숨기는 게 있다면 다 꺼내놔라. 나는 네가 다른 걸 얻었으리라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런 그의 추궁에도 나는 똑같은 태도, 똑같은 말투로 입을 열었다.
“이미 제가 그분에게 도착했을 땐 이미 목숨이 경각에 다다랐던지라 그분의 옆을 지킨 것만이 전부였습니다.”
“그래···그렇단 말이지···.”
회귀 전의 삼류였던 나라면 금방 들킬 시시한 거짓말이지만, 지금 나는 화경의 경지에 이른 절대 고수.
몸의 반응을 완전히 마음대로 조종하여 거짓을 말할 때도 진실인 것처럼 보이거나, 혹은 그 반대로 보일 수 있었다.
그가 나보다 고수라하여도 쉽게 알아보지는 못할 연기.
하물며 나보다 그 경지가 훨씬 낮은 그라면 당연히 진실을 파악하기 힘들 터.
“·········.”
나를 의심스럽다는 듯 바라보면서도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방장 대사.
“그렇다면 알겠네. 자네가 그렇다는 데 더 물을 건 없겠지. 그런데···.”
일단 내가 신승에게서 무언가를 물려받았다는 사실은 숨길 수 있었지만, 내게는 아직 언덕이 하나 남아 있었다.
“내가 고설에게 듣기론 자네가 우리 소림으로 찾아온 데 다른 이유가 있다 들었는데, 그게 뭔지 알 수 있겠나?”
그리고 그 언덕은 아마 제일 가파르고, 어려운 언덕.
“신승 어르신에게 약조 받은 게 있습니다. 제가 그분의 일을 도우면 제가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도록 해주신다고요.”
“자네가 원하는 것?”
“네.”
장담컨대, 소림 제일의 금지(禁止)인 그곳.
“장경각의 출입을 허하신다고 하셨습니다.”
*****
깊은 밤중.
소림사 수뇌부의 회동이 열릴 때만 불이 켜지는 수라대전 안에서는 미약한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쿵!
“그놈이 장경각의 출입을 요청했단 말입니까?!”
마치 삼국지의 장비처럼 장대한 기골과 삐죽한 수염을 가진 승려는 그 성격마저 그와 닮았는지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상석의 방장 대사를 향해 소리쳤다.
“그래, 사조님의 허락을 받았다 하더군.”
“흥! 그 사기꾼 놈의 말을 어찌 믿는답니까? 그놈이 가지고 온 그 발우랑 뼛가루가 누구의 것인지 어찌 안다는 겁니까!”
“일단 발우는 사조님의 것이 맞네. 대수(大隧) 사제”
이번에 입을 연 건 조금 전 흥분한 목소리로 말하고 있던 건장한 승려의 옆, 그의 반의반 정도밖에 안 되는 비쩍 마른 승려였다.
“사조님이 공양간에 오실 때마다 가져왔던 그 발우야.”
“정말입니까?”
“우리 소림의 승려는 물론 찾아오는 시주들의 그릇까지 기억하는 대허(大虛) 사제가 그리 확언하는 걸 보면 맞겠지. 그만한 증거도 없다면 애초에 우릴 소집했을 리도 없을 거고.”
부처를 수호한다는 비사문천의 모습이 이러할까.
수라대전에 모인 여러 고승들 사이에서도 강한 기세를 뿜어내고 있는 한 승려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승려라기보단 전장을 휘젓는 장군의 그것처럼 보이는 매서운 인상의 승려는 뾰족한 칼날 끝과 같은 눈빛을 방장에게로 향했다.
“안 그렇소, 대현 사형?”
“···그래, 맞네. 나도 대허 사제만큼은 아니지만 사조님의 발우를 몇 번 본 적 있네. 그 발우는 사조님의 것이 분명하네.”
“그렇다면 거기에 담긴 뼛가루도···.”
“···그건 나도 알 수 없네.”
솔직히 말하자면, 아니길 바란다는 게 좀 더 옳은 말이리라.
하지만 그의 태도와 말투에서부터 희미하게 그것이 사실이라는 걸 읽어낼 수는 있었다.
물론 의문점은 여전히 많았다.
“그 시주가 사조님까지 목숨을 잃을 정도의 괴집단에게서 도망칠만한 고수로 보였습니까?”
“나조차 그 경지를 쉬이 파악할 수 없었네. 물론 그 정도로 모두 다 알 수는 없지만···.”
“···초절정의 경지인 방장 사형이 알아볼 수 없는 경지면 최소 같은 초절정···그게 아니라면 화경의 경지에 이른 고수란 말이군요.”
“그게 말이 됩니까? 아직 이립도 안된 어린놈이 어떻게 화경의 경지에 오른단 말입니까! 아마 내공을 숨기는 특수한 무공을 익힌 것이겠지요!”
“어느 쪽이건 나이대에 어울리지 않는 경지에 오른 이라는 건 분명하네. 사조님께서 남만에 데리고 갔으리라는 가능성도 아주 없는 건 아니란 말이야.”
“도대체 가서 무엇을 했길래 사조님께서 장경각의 출입을 허락하셨단 말입니까? 그곳이 어떤 곳인지 모르실만한 분도 아닌데···.”
“모르지. 사조님이면 그런 건 신경도 안 쓰고 허락해주셨을지도.”
밖에서는 시주나 제자들에게 위엄을 보이기 위해 쉬이 입을 열지 않는 고승들도 이곳 수라대전에서는 주정뱅이들이 모인 술자리처럼 입을 쉬지 않았다.
그만큼 지금 이 안건이 중하다는 방증이자, 그들이 진지하게 이 제안을 받아들일지 말지 이야기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이미 유현이 신승의 발우를 가지고 왔다는 것만으로도 소림은 작지 않은 은혜를 입었기 때문이다.
그 자체만으로 엄청난 가치를 가진 물건은 아니지만, 신승의 유일한 소지품이라는 것만으로도 소림에서는 보물과 다를 바 없는 물건이다.
경위야 어찌 됐든, 그만한 물건을 가지고 왔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소림에게 큰 선물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
만약 유현이 다른 말 없이 발우만 가지고 왔다면 웬만한 요청은 소림에서도 어렵지 않게 들어줬으리라.
하지만 지금 그가 가져온 전언과 요청한 부탁은 그 선을 아득히 넘어섰다.
현 소림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방장이 괜히 자신의 사형과 사제들을 모은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독단으로 그가 모든 걸 결정하기엔 위험한 안건이었으니까.
바로 그때.
“혹시···.”
미약한 불빛밖에 없는 수라대전에서도 거의 빛이 비치지 않는 곳에서 미약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시주가 사조님께 받은 전언이나 물건···혹은 무공은 없었나?”
그는 여기에 모인 가지각색의 승려 중에서도 특히나 평범. 말하자면 아무런 특징도 없는 사람이었다.
지금껏 한 번도 입을 열지 않은 그가 입을 열자,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던 방장 대사는 조심스레 대답했다.
“네, 대각(大角) 사형···사조님께 발우 외에 무언가를 받았다는 말은 없었습니다.”
“흐음···그렇다는 말이지···.”
뭔가를 곰곰이 고민하는 그의 태도에 조금 전까지만 해도 떠들썩하던 수라대전에는 침묵이 내려앉았다.
어찌 그러지 않을 수 있을까.
대자 배의 대사형이자, 현 장경각주.
그가 원한다면 이 이야기도 당장 끝낼 수 있었다.
그가 허락하면 유현은 장경각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고, 허락하지 않는다면 절대 들어갈 수 없을 테니까.
“사조님께서 남만으로 떠나시기 얼마 전, 나는 사조님과 비밀 회동을 했네.”
“네? 저, 정말입니까?”
“정확히는 아무도 오지 않는 장경각에서 이야기를 것뿐이지만, 뭐, 어쨌건 남들에게 말한 적은 없으니 말일세.”
주름이 가득 얼굴과 달리 수염 한 점 없이 매끈한 턱을 매만지던 대각은 과거를 회상하듯 아련한 눈길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한동안 장경각에 살고 계시던 사조님께선 그리 말씀하셨네. 만약 내 이름을 가지고 장경각에 들어오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들여보내 달라고.”
“그, 그렇다면!”
“하지만 내가 함께하지 않았다면 그는 내게서 무언가를 받아갔을 테니, 그것을 한 번 시험해보라고.”
우뚝.
‘시험’이라는 말에 유현을 장경각에 들여보낼 줄 알았던 다른 승려들의 움직임이 모두 멈췄다.
“한 번 시험해보지. 그가 정말로 사조님께 무엇 하나 받은 것이 없는지 말이야.”
대각의 마지막 발언과 함께 수라대전에서 벌어졌던 회동은 끝났다.
하지만 확실한 해답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수라대전을 벗어나 각자의 숙소로 돌아가는 고승들의 표정은 그리 밝지만은 않았다.
그것은 그 답이 그들의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지금부터 유현이 치러야 할 시험 때문일까.
그렇게 언제나와는 조금 다른 소림의 밤이 점점 깊어져만 갔다.
*****
신승의 발우와 유골을 소림에 반납한 다음 날.
나는 새벽 나절부터 방장 대사의 집무실로 향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유는 말씀해주시지 않으셨다···이거군요?”
“네. 보통 시주분들을 배려해 주로 낮에 만나시는 분이신데···기이하게도 유현 대협의 경우에는 일찍부터 만나기를 바라시더군요.”
흐음, 그렇단 말이지.
어제 그 이야기에 대한 대답을 이토록 빨리 이뤄냈다···이건가?
내가 가져온 이야기의 중함을 생각해 봤을 때 며칠은 회의를 거친 후에 이야기를 전해주리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이야기가 빨리 끝난 모양이다.
문제는 이것이 내게 좋은 소식인가, 아니면 나쁜 소식인가냐는 것.
내 말을 믿고 내 요청을 순순히 받아준다면 분명 최고의 소식이겠지만···.
과연 그럴 가능성이 몇이나 있을까.
일할···아니, 한 푼은 되려나.
“다 왔습니다. 어제처럼 저는 들어가지 못하니, 두 분의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여기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고설 스님.”
고설을 뒤로 한 채 어제처럼 방장의 집무실의 문을 열었다.
“어서오시게, 유현 시주.”
“부르셨다 들었습니다.”
“그래, 거기 앉게.”
어제보다 좀 더 평온한 모습으로 나를 부르는 방장 대사는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바로 한 잔의 차를 부어 내게 내밀었다.
“마시게. 우리 같은 승려들이 수행할 때 자주 마시는 차네. 마음을 좀 안정시켜 줄게야.”
“감사합니다.”
차는 받았지만, 그것을 입에 가져다대진 못했다.
한 잔의 따뜻한 찻물보다, 내가 원하는 이야기를 듣는 게 마음이 훨씬 편해질테니까.
“어제의 이야기는 수뇌부들과 이야기를 해봤네. 여러 이야기가 나왔지만···일단 자네의 장경각행을 허락하기로 했네.”
“저, 정말입니까?”
아니, 진짜로? 정말로?
생각보다 너무나 쉽게 떨어진 허락에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그에게 되물었다.
설마 신승의 발우와 유해를 가져왔다는 게 받아들여진 것인가?
그렇다면 생각보다 훨씬 빠르고, 또 편하게 그들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터.
최대한 빨리 끝내고, 바로 내 과거와 신승의 복수를···!
“하지만.”
움찔.
뒤이어 들려오는 방장 대사의 말에 나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하긴···이렇게 좋은 건수가 쉽게 들어올 리가 없지.
“한 가지 조건이 있네.”
“조건···이 뭡니까?”
“간단하네. 시험이야.”
“시험이요?”
“소림에 뭔가를 요청한 이들이 있을 때, 그들의 요청이 얼마나 정당한지 알아보기 위한 시험이지.”
방장 대사의 설명에 순간 내 머릿속에서 무림에서 흔히 떠도는 소림에 관한 여러 이야기 중 하나가 떠올랐다.
마교 정보부에서도 터무니없는 이야기라 전설 수준으로 취급하던 그 이야기.
“설마···그 전설이 사실이었습니까?”
“그래, 자네의 그 생각이 맞네.”
번뜩.
“소림십관(小林十館). 만약 자네가 그곳을 끝까지 통과한다면···자네의 장경각행을 허락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