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림사(2)
[사용 가능 무공 :
천마창법 10성
-오의 : 와류(渦流) 개방
-극의 : 폭우(暴雨) 개방
천마금나수 6성
-오의 : 불파(不破) 개방
-극의 : 미개방
천마보법 5성
-오의 : 군림(君臨) 개방
-극의 : 미개방
강화 가능 무공 : 옥음독기공 5성.]
왼팔에 있던 무공에 관해선 전에 본것과 바뀐 것이 없었다.
남만에서의 일을 끝내고 이곳 소림사까지 오기까지 한 달도 안 되는 시간밖에 걸리지 않긴 했지만, 그간 일어났던 일을 생각하면 기이한 일이었다.
내가 보름 전 쓰러뜨린 아홉의 초절정급 고수와 한 명의 화경급 고수.
분명 나는 그들과 목숨을 건 사투를 벌였고, 당당히 승리했다.
하지만 내가 얻은 무공은?
없다.
하나도 없다.
차라리 하나라도 생겼다면 이해는 할 수 있다. 이들 모두가 똑같은 무공을 익히고, 똑같은 경지에 올랐다면 무공이 하나밖에 생기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지금 왼팔에 적힌 무공은 아무것도 없었다.
혹시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던 적 있어?
옆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내 왼팔을 지켜보고 있던 화순은 내 질문에 빠르게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이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어. 차라리 심기체의 균형이 완전히 깨져서 무공을 얻지 못했던 적은 있었지만···만약 그랬다면 초절정이나 화경의 경지에 오르는 건 꿈도 못 꾸지.]
화순의 말대로였다.
고대의 무공에 비하면 현대의 무공은 확실히 심기체의 균형보단 내공이나 육체의 단련만 중요시하긴 하지만, 결국 높은 경지에 오르기 위해선 이 세 가지의 적절한 균형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하물며 현 무림에서 절대 고수 취급을 받는 화경의 고수야 말이 필요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이 죽었음이 확실한 증거 또한 있었다.
나는 왼팔을 내리고 이번에는 오른팔을 들어 거기에 적힌 글자를 확인했다.
[임무 조건 : 총 6명의 초절정의 고수와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일 것임무 보상 : 한 명당 10년 내공. 임무 달성 시 총 60년 내공 획득.
현재 60년 내공 획득.]
[임무 조건 : 총 2명의 화경의 경지에 이른 고수와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일 것임무 보상 : 한 명당 40년 내공. 임무 달성 시 총 80년 내공 획득.
현재 80년 내공 획득.]
아무런 변화도 없던 왼팔과 달리 오른팔은 내가 쓰러뜨린 적에 대한 보상을 톡톡히 내려줬다.
초절정 고수 두 명분의 이십 년 내공과 화경의 고수 한 명의 내공인 사십 년.
총합 일갑자의 내공을 단전에 차곡차곡 쌓아준 것이다.
즉, 내가 그들을 죽였다는 것을 권능은 확실히 이해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설마 무공의 획득만 망가진 거 아닐까?
[헛소리하지마. 지금껏 수천 년 넘게 잘 이어지던 권능이 왜 갑자기 그 부분만 고장 나냐?]
권능에 대해서는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화순은 권능에 흠이 있다는 말이 나오자마자 바로 발끈한 목소리로 내게 대답했다.
하긴, 나도 권능이 갑자기, 그것도 딱 저 부분에서만 맛이 갔으리라곤 믿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면 왜 그들의 무공을 얻지 못한 걸까.
어쩌면 이 부분이 그들의 정체에 대한 단서가 되지 않을까?
“후우···.”
그리고 그런 복잡한 마음을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 있었으니···.
“···내게 그 어르신의 흔적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걸까.”
보름 전, 신승이 목숨을 잃었던 그때 내게 전수해준 무공, 금강부동신공.
처음 그 무공을 얻었을 때, 나는 그것이 강화 가능한 무공 중 하나로 영락할까 두려웠다.
하지만 그 결과는 예상보다도 최악.
지금 권능은 물론, 내 육신에도 그의 흔적은 조금도 찾을 수 없었다.
분명 그는 내게 기와 깨달음을 건네줬거늘, 나는 그 무엇도 쓸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을 처음 깨달은 순간만큼은···물론 그래선 안 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권능을 얻었던 것을 후회했던 적도 있었다.
지금은 그런 생각은 없어졌지만, 신승의 마지막 흔적을 남겨놓지 못했다는 죄악감은 여전히 나를 무겁게 짓눌렀다.
만약 소림에서 신승이 마지막으로 남긴 게 없냐고 묻는다면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똑똑똑.
내가 생각을 다 끝마치기도 전에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내가 인기척을 내자, 문 너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현 대협. 방장 대사께서 만남을 허락하셨습니다.”
여기까지 오는 보름간 그토록 원하던 만남이었지만, 아직 신승의 유언에 대한 대책을 구하기 전이라 그런지 여러모로 싱숭생숭한 마음이다.
하지만 내가 먼저 요청한 걸 거절할 순 없는 법.
“네, 알겠습니다. 바로 나가겠습니다.”
무림 제일의 문파. 소림사의 방장을 만나러 간다.
*****
유현이 숙소로 안내받던 바로 그때.
방장의 집무실에선 고설이 소림사의 방장과 만남을 가지고 있었다.
“이 쪽지를 가져다 달라 했다···이 말이냐?”
“예. 그렇습니다.”
자신의 사질이자, 현 소림에서 제일 기대하고 있는 고수인 고설이 가지고 온 전언에 현 소림사의 방장, 대현(大賢) 대사는 아미에 주름을 새겼다.
사실 이렇게 자신에게 전언을 전해주라 했던 경험이 한 번만 있었던 건 아니다.
강호 제일의 문파이자 중원 제일의 사찰인 소림사의 방장에게 어디 서찰이 적게 오겠는가.
하루에도 수십 장의 서찰이 꼬박꼬박 소림사로 보내지고 있었다.
물론 어중이떠중이의 서찰은 방장의 책상에 올라오기도 전에 이미 공양간의 아궁이에 들어가겠지만.
하지만 지금 방장이 유현이 건네준 쪽지를 보고 인상을 쓰고 있는 이유는 그것이 한낱 어중이떠중이의 쪽지가 자신에게 왔기 때문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반대.
유현 스스로는 모르지만, 지금 유현의 이름은 무림에서 제일 널리 알려진 이름 중 하나였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정혈탐마(正血貪魔)로 예상되는 인물 중 첫째로 손꼽히는 자가 찾아와서 내게 쪽지를 보냈다···이 말인가?”
···어마어마한 악인으로 알려져 있긴 하지만 말이다.
대현 대사의 말에 고설은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습니다.”
“허어···대체 그자가 왜 본 문파로 온 것인가.”
대현 대사의 어두운 얼굴에 고설은 그는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입을 열려다 다시 다물었다.
정도 문파 아홉 개를 멸문시키고, 본인을 위선타파라 칭한 그 사내는 지금 정파인들 사이에서 정혈탐마로 불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정혈탐마라 예상되는 여러 범인 중에서도 가장 가능성이 큰 자가 바로 지금 소림사에 찾아온 그 사내. 유현이었다.
“그분···아니, 그가 말하기론 쪽지에 모든 일이 적혀 있다, 그리 말했습니다.”
“자네의 부탁이라 본사에 들이긴 했지만, 본디 이런 행위조차 강호의 동도에겐 좋은 모습으로 보이지 않을 수 있다는 건 항상 생각하고 움직이게.”
“죄송합니다, 방장 사숙. 허나 아직 밝혀지지도 않은 죄로 인해 그가 그런 대우를 받는 건 옳지 못하다 생각합니다.”
“불가의 제자로선 옳은 생각이나, 우리 소림이 사찰과 동시에 무림 문파이기도 하며, 정도의 큰 기둥이라는 건 잊지 말게. 우리가 범인으로 예상되는 자를 받아들이면 그것만으로도 큰 혼란이 생길 수도 있네.”
고설의 독단적인 행동에도 대현 대사는 큰 나무람 없이 조곤조곤 고설이 잘못한 점을 집어주었다.
다정불(多情佛)이라는 명호로 유명한 대현 대사 다운 말투였다.
“···죄송합니다, 방장 사숙.”
“설사 그가 정말로 그만한 죄를 행했을지 몰라도, 그랬던 이유와 할 말 정도는 있겠지.”
팔락.
그렇게 말하며 고설이 건네준 쪽지를 펼친 대현 대사.
그 쪽지를 천천히 읽어내려가던 대현 대사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가더니.
쿵!
책상을 내려치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게 아닌가!
갑작스러운 대현 대사의 행동에 책상 위에 있던 물건이 넘어지고, 흩어지며 책상과 집무실을 어지럽혀졌지만, 그보다 고설을 놀라게 한 건 그가 책상을 내려쳤다는 상황 그 자체였다.
‘어떠한 일에도 흔들리지 않는 부동심(不動心)을 완성한 방장 사숙이 이토록 격정을 일으키다니!’
도대체 쪽지에 적힌 내용이 무엇이길래 이토록 그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인가.
고설의 의문이 풀어질 새도 없이 대현 대사는 쪽지를 뒤집어 놓은 뒤 고설에게 말했다.
“···당장 이 자를 불러오게.”
“네?”
“지금, 당장!”
“아, 네! 알겠습니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대현 대사의 고함에 고설은 그 이유조차 묻지 못하고 바로 집무실 밖을 뛰쳐나갔다.
고설이 집무실에서 충분히 멀어진 걸 확인한 대현 대사는 뒤집어뒀던 쪽지를 돌려 다시 한번 그것을 확인했다.
부디 자신이 읽었던 그것이 진실이 아니었기만을 빌며.
하지만 그런 기대는 무정하게도 산산이 부서졌다.
[신승께서 정체불명의 집단에게 목숨을 잃고, 그분의 유해와 유품을 제가 챙겨놨습니다. 정확한 사정을 듣고 싶으시다면 부디 저와 독대 해주십시오.]
보통이었다면 헛소문이라 치부하며 무시하겠지만, 문제는 제일 마지막에 첨부된 한 줄의 문장.
[저는 신승 어르신과 함께 남만으로 갔던 일행입니다.]
남만.
그 단어 하나에 대현 대사는 이 쪽지가 진실이거나, 적어도 신승과 어느 정도 연관이 있다는 말이 사실임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본디 바람처럼, 물처럼 전 대륙을 떠돌던 신승.
그런 그가 처음으로 본인의 행선지를 알려주기 위해 자신을 찾아왔을 때, 대현 대사는 크나큰 감동을 느꼈다.
소림에서 존경하지 않는 이가 없다는 신승.
그 명성답게 방장 본인도 신승을 무척 존경했다.
아니, 그냥 존경하는 정도가 아니라, 소림 내에서도 그를 제일 떠받든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그런 그분이 다름 아닌 자신을 위해 직접 찾아와주시다니,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을까!
대문파 소림의 방장이라는 감당키 어려운 자리에 오르며 받았던 여러 심란이 그 순간 싹 지워지는 느낌이었다.
그 정보를 아는 건 소림에서도 극소수.
중원 전체를 뒤져봐도 열 사람은 넘지 않으리라.
최소한 고설에게 들었던 설명처럼 젊은 청년이 알 수 있는 정보는 아니다.
그렇다면 결론은 딱 하나.
그가 그만큼 신승과 가까운 사이거나, 그것이 아니라면,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이야기지만···.
···이 쪽지에 적힌 내용이 사실이거나.
“방장 사숙. 말씀하신 분을 데려왔습니다.”
흠칫.
문 너머에서 들려온 고설의 목소리에 방장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가장 최악의 상태를 떠올리고 있던 순간 그 이야기를 가지고 온 사내가 등장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탓이다.
“어흠, 으흠. 그래, 들여보내게.”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기 위해 억지로 헛기침을 몇 번 내뱉은 대현 대사는 말에 떨림이 사라지자 바로 고설에게 대답했다.
끼이이익.
감각을 극도로 높이고 있던 대현 대사의 귀에 집무실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마치 천둥이 치는 것처럼 크게 다가왔다.
그렇게 열린 문 너머에서, 그가 모습을 보였다.
“안녕하십니까, 방장 대사님.”
그의 인상착의는 무림맹에서 보내온 전단과 큰 차이가 없었다.
기껏 해봐야 머리가 좀 더 더벅머리라는 걸까. 하지만 그것도 간단히 정리만 한다면 초상화라 믿을 만큼 똑 닮아 있었다.
하지만 그의 내면.
그 안에서 느껴지는 심대한 기운 만큼은 그림으로 조금도 흉내 내지 못했다.
자신의 반···아니, 삼분지 일밖에 되지 않는 삶을 겨우 산 것 같은 이 약관의 청년이 자신조차 감히 감당할 수 없는 고수라니.
···이건 좋지 않구나.
지금 이 남자를 둘러싼 두 가지 의혹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대현 대사의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중원에서 작게나마 표국을 운영하는 유현이라 합니다.”
“···그래, 반갑네.”
이만한 기운을 가지고 있음에도 자신을 무인이라 칭하지 않는 것인가.
어딘가 찝찝한 유현의 인사를 받아들인 대현 대사는 바로 고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고생했네, 고설. 이제 그만 나가보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둘 사이에 나올 이야기가 궁금하긴 했지만, 그런 호기심도 방장의 명령에 이길 정도는 아니었다.
잠깐 주저하긴 했지만, 명령 불복종 정도는 아닐 정도로 빠르게 대답한 고설이 밖으로 나가자, 대현 대사는 유현을 똑바로 응시하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금 자네가 가지고 온 이 쪽지.”
“네.”
“이게 정말로···.”
꿀꺽.
“···사실인가?”
“네.”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주저하며 입을 연 대현 대사와 달리, 유현은 스스로가 생각해도 놀라우리만치 담담하게 대답했다.
“신승 어르신의 최후를 제가 바로 그 옆에서 지켰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