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권능으로 무림최강-96화 (96/185)

소림사(1)

싸악, 싸악, 싸악.

산문 아래서 빗질을 반복하는 동자승 하나.

다른 사람들이 아직 숙면할 시간에 빗질이란 노동을 하는 동자승의 표정은 퍽 어두울 만도 했건만, 그는 오히려 이 일이 영광이라는 듯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열심히 빗질하고 있었다.

언제부터 한 것일까. 산문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나가 빗질을 하던 동자승 주변의 낙엽이 어느 정도 정리된 듯 하자, 짧은 한숨을 내쉬며 들고 있던 빗을 옆에 있던 거목에 기대 놓았다.

자신의 솜씨에 만족한 듯 주변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던 동자승의 위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하하! 이제 빗질이 경지에 올랐구나.”

“앗! 사형, 나오셨습니까.”

산문 너머에서 나타난 훤칠하고 건장한 승려가 웃으며 이야기하자, 방금 빗질을 끝마친 동자승은 빠르게 발을 놀려 그에게 다가갔다.

“아침 수련은 다 끝나신 겁니까?”

“그래, 방금 다 끝났다. 너랑 같이 아침 공양을 하러 가려고 여기 왔지.”

“헤헤, 감사합니다!”

힘찬 대답과 함께 꾸벅 고개를 숙이는 동자승의 모습을 승려는 퍽 귀엽다는 듯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나이 차는 적어도 스물 이상. 연배로만 따지면 사형제 관계가 아니라 사숙조 관계에 가까운 사이였지만, 동자승의 재능을 눈여겨본 고승이 동자승을 직전 제자로 삼았기에 연배와 상관없이 사형제 관계로 남아 있었다.

명문 정파에서는 의외로 흔한 일이었다.

상승의 무공은 뛰어난 오성과 재능이 있어야 극성에 이를 수 있는 법이라 하여 제자를 구하는 것을 깐깐히 하는 고수들이 많았으니 말이다.

심하면 고희(古稀; 일흔 살)에 이른 노고수가 다섯 살짜리 아이를 데려오는 일도 있었으니, 오히려 지금 동자승의 경우는 오히려 나은 편이었다.

“그래, 일찍 일어나는 건 좀 익숙해졌느냐?”

“아직 눈이 자주 감기지만, 그래도 이제는 그럭저럭 버틸 수 있습니다.”

“하하하, 그거 다행이구나. 나도 처음 사문에 들어왔을 때는 아침 수련마다 눈이 감겨서 혼났지.”

“와아, 정말인가요?”

“아무렴. 스승님께선 내가 잠보라면서 혼내기도 하셨지.”

산문 멀리까지 나온 덕분에 두 사람은 천천히 올라가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걷는다기보단 한 걸음 나갔다 멈췄고, 한 걸음 나갔다 멈추고를 반복하는 두 사람의 발걸음.

아직 일찍 일어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동자승이 새벽 내내 빗질하느라 생긴 피로와, 그런 동자승의 발걸음을 맞춰주는 승려 덕분에 생겨난 긴 여정이었다.

그만큼 사형인 승려는 사제인 동자승을 많은 부분에서 염려해주었다.

거의 아들뻘에 가까운 아이가 일찍 일어난다는 게 썩 대견하기도 하고, 자신이 아직 동자승인 시절도 기억났기 때문이다.

“아, 그러고 보니 최근 강호에 큰일이 일어났다 하였는데 들으셨습니까?”

하지만 푸근한 승려의 미소도 뒤이어 들려오는 동자승의 목소리에 조금 굳을 수밖에 없었다.

“최근 몇 년 간 여러 정파를 멸문시킨 사내의 정체가 밝혀졌다고 하던데, 혹시 사형께선 아십니까?”

“·········.”

동자승의 순수한 질문에 승려는 잠깐 입을 열었다 바로 다시 닫았다.

그리고 뒤이어 나오는 말은 생각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말이었다.

“···아니, 나는 들어본 적 없구나.”

물론 거짓말이었다.

애초에 동자승의 귀에까지 들어간 이야기가, 사문 내에서도 강호에 대해 빠삭하기로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승려가 모를 리가 없지 않은가.

승려가 그것을 모른다고 말한 이유는 딱 하나.

“·········.”

그는 지금 퍼져있는 소문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도 믿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말 전부가 거짓이라는 건 아니다.

정도 문파 여러 곳이 누군가의 습격으로 멸문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당장 사내도 다른 급한 일이 없었다면, 당장 그곳으로 달려가서 사건의 진상을 파악했을 테니까.

하지만 대신 승려는 다른 임무를 행했고, 거기서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을 얻었다.

자신의 무와 마음가짐에 대한 깨달음과 귀한 인연을.

···그리고 어떠한 우연인지 몰라도, 지금 강호에서 퍼지는 이야기 또한 지금 그때의 인연과 작지 않은 관계가 있었다.

물론 그 범인이 그라고 딱 확정된 건 아니지만, 가능성이 큰 범인 중 하나로 그가 찍힌 건 분명한 사실.

그렇기에 지금 승려는 그 이야기를 믿을 수 없었다.

최소한 승려가 기억하는 그 사내는 절대 그런 일을 벌일 사내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승려의 대답에 동자승은 조금 기쁜 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최근 사형들 사이에서는 그 이야기뿐이에요. 제가 물어봐도 저같이 어린아이랑은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끼워주질 않으셔서···.”

자신만 모른다면 부끄러운 일이지만, 사형도 모른다면 부끄럽지 않다.

아니, 오히려 둘 사이만의 공통점을 찾은 것 같아서 기쁘다.

“어차피 우리랑 관계도 없는 일을 부끄러워하지 말거라. 우리가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알아야 하는 것을 모른다고 할 때이니.”

“아, 네!”

아직 사형의 말을 전부 이해할 순 없었지만, 종종 이렇게 현기(玄機)가 느껴지는 말을 해주면 동자승은 그것을 몇 번이나 되뇌며 외우려 애를 썼다.

승려는 또 그러면 그런 동자승의 행동이 퍽 귀여워 다른 이야기를 해주곤 했고, 거기서 또 자신이 깨달음을 얻곤 했다.

저벅, 저벅, 저벅.

그렇게 한창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던 그때, 뒤에서부터 들려오는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에 두 사람은 고개를 뒤로 돌렸다.

본디 오가는 사람이 많은 사문이지만, 이런 이른 아침에, 그것도 단 한 사람만 오는 일은 거의 없었다.

무공을 익히지 않은 양민들은 가족 모두의 안녕을 빈다는 이유로 가족 모두가 함께 오곤 했고, 어쩌다 들리는 무인들도 동료와 함께 오거나, 제자가 스승을 모시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혼자 오는 경우라면 홀로 수행 중인 승려가 잠시 몸을 의탁하는 정도지만···.

···지금 눈앞의 이 사내는 절대 승려로 보이지는 않는다.

품 안에 천으로 감싼 무언가를 귀중한 듯 감싼 채 산문을 천천히 올라오고 있는 더벅머리의 사내.

공짜 공양을 바라고 온 것일까?

다른 사찰에도 흔한 일이요, 특히 두 사람의 사문에는 더더욱 흔한 일이다.

두 사람의 사문만큼 이름난 서찰은 전 중원을 뒤져도 몇 없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승려는 곧 그 생각을 바꾸었다.

지금 눈앞의 사내가 은연중에 풍기고 있는 기세.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그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전도유망한 고수인 그조차 가히 감당하기 힘들 정도였으니까.

그가 아는 사람 중 이만한 기운을 뿜어내는 이는 오직 딱 하나.

사문의 큰 어른인 그분 말곤 없었다.

이런 사내가 절대 음식 구걸이나 하러 다닐 리는 없다.

그런 심정을 담아 사내를 가만히 바라보던 승려는, 곧 그가 자신이 아는 그 남자.

“유현···대협?”

그리고 조금 전까지 동자승이 꺼낸 그 이야기의 주인공임을 깨달았다.

“오랜만이군요, 고설 스님. 그 말인즉슨···.”

스윽. 그렇게 한참 고개를 숙이고 있던 사내. 유현은 고개를 들어 위에 있는 산문에 붙어 있는 그 이름을 가만히 바라봤다.

소림사(小林寺).

“···제가 제대로 찾아왔다는 소리겠지요.”

신승이 목숨을 잃은 지 약 보름.

드디어 유현이 소림사에 도착한 것이다.

*****

신승의 유해를 챙긴 그 날.

나는 그 이후 한시도 쉬지 않고 소림사로 향했다.

남만의 바로 앞인 묘강과 숭산이 있는 하남은 거의 중원 반대편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지만, 천마의 권능과 영물과 다름없는 명마 덕분에 그만한 거리도 겨우 보름 남짓밖에 안 되는 시간 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천하에 이만한 일을 이뤄낸 사람이 또 있을까.

···하지만 그만한 위엄조차 지금부터 내가 할 일에 비하면 쉬운 일이 아닐까.

“방장 대사께 꼭 전해드릴 말이 있습니다. 부디 그분을 만날 수 있게 해주십시오.”

“으음, 그건···.”

“혹시 만남을 허락하지 않으시겠다고 하신다면, 이 쪽지라도 건네주십시오. 그러면 됩니다.”

“···일단 알겠습니다.”

내 말에 고설은 난색을 보이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듯 내가 건넨 쪽지를 받아들였다.

“두 분간의 만남까지 제가 성사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쪽지 한 장 정도는 어떻게든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마침 산문에 밖에 나와 있던 것이 고설이었던 것도 천운이었다.

전에 무림맹에서 있었던 일전 덕분에 안면도 익히고 있었거니와, 그의 이름값이라면 직접 만나는 건 무리더라도, 쪽지 한 장 정도는 건네주는 게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테니까.

미래에 강호 무림에 크게 이름이 알려진 사람은 아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가 신승과 함께 남만으로 떠나 허무하게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신승이 험난한 여정에 일부러 데리고 갈만한 인물인 만큼 소림사 내에서도 어느 정도 기대를 받는 사람이라 생각해도 문제는 없을 터.

더군다나 난색을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쪽지를 받아갔다.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면 저렇게 난감할 이유도 없다. 실제로 가능하니까 저런 표정을 짓는 거겠지.

“이, 이쪽입니다.”

그가 급하게 자리를 떠나고, 홀로 남은 동자승은 내 눈치만 살피다 소림사 안쪽으로 나를 안내했다.

자기가 어찌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고맙소, 소형제.”

“소, 소형제요?”

“아, 소형제도 이제 소림의 제자이니, 같은 강호 동도란 생각에 그리 부른 것이오. 혹시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아뇨! 괜찮아요! 완전 마음에 들어요!”

···그나마 내 말발이 녹슨 거 아니구나.

보통 이런 어린 나이의 제자들은 보통 무림이나 강호에 대해 환상을 갖기 마련이다.

그런 아이들에게 이렇게 강호에서 주로 쓰는 호칭으로 부르거나, 무림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 해주면 껌뻑 죽지, 죽어.

물론 대단한 정보를 캐내거나 인맥을 만들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내게 부정적인 감정을 보이는 건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었다.

어쨌든 이 동자승 소형제 덕분에 접객당에 가는 동안은 지루하진 않았다.

“현재 당 사찰에 큰 행사가 없어 방을 빌려드리는 건 어렵지 않지만, 신분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은 손님은 높은 수준의 객실에는 모실 수 없습니다.”

접객당에 찾아가자마자 깐깐해 보이는 승려가 내게 가장 먼저 한 말이었다.

어찌 절이 사람의 수준을 따지나, 할 수 있지만, 소림사는 사찰인 동시에 수많은 이권과 엮인 무림 문파.

이런 대우쯤이야 얼마든지 예상한 바였다.

“상관없습니다. 침상과 간단한 탁상만 있다면 앉을 곳 하나 없다 해도 괜찮습니다.”

“크흠, 알겠습니다. 그럼···.”

그는 뒤쪽에 걸려 있던 문패 중 하나를 꺼내오더니, 내가 아니라 옆의 동자승에게 건네며 말했다.

“이 아이의 뒤를 따라가시지요. 당 사찰에 묶는 동안 지내실 숙소로 모셔드릴 겁니다. 고순(苦純).”

“네, 넵! 고절(苦節) 사형!”

“손님을 숙소에 모셔다드려라. 숙소의 위치 정도는 알고 있겠지?”

“아, 네. 기억하고 있습니다.”

“좋아.”

그는 그걸로 할 말은 다 끝냈다는 듯 잠깐 옆에 밀어놨던 서류를 다시 끌고 오더니, 그쪽에 시선을 고정했다.

···지금 내 수준은 딱 그 정도밖에 안 된다, 그 소리겠지.

하긴, 내가 무림에 이름난 고수도 아니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어차피 소림에 대우를 받을 생각은 없었다.

제대로 신승의 유해를 전달하고, 그가 남긴 정보를 얻으면···.

···내 전생에 대한 복수와 신승에 대한 복수를 즉시 시작할 생각이었으니까.

오히려 지금 이 정도밖에 안 되는 대우가, 딱 내가 바라는 수준의 대우였다.

동자승이 나를 전송한 숙소는, 정말 내가 아까 말한 대로 침상과 의자. 그리고 탁자 밖에 없엇다.

그 외에는 짐을 둘 수 있는 장소 조금일까. 그것도 내 등에 있는 창 두 자루를 놔두면 다 차버릴 것 같지만.

“아, 그, 저···.”

나를 여기까지 데리고 온 동자승도 이런 꼬락서니일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는지, 떨리는 눈으로 나와 방을 번갈아 보며 무어라 말하려 입을 우물거렸다.

“···나는 괜찮네, 소형제.”

“그, 정말입니까?”

“어차피 길게 있을 생각도 아니었으니 말이야. 오히려 소형제가 이리 빨리 데리고 와준 덕분에 한시라도 빨리 쉴 수 있게 됐네. 고맙네.”

“아뇨, 아닙니다. 그러시다면 다행입니다.”

그럼 편히 쉬십시오. 동자승은 그리 말하며 고개를 꾸벅 숙이며 문을 닫고 나갔다.

역시 중원 제일의 사찰에서 가르치는 제자인가. 어린 나이인데도 온몸에 예의가 고루 배 있었다.

털썩.

동자승이 문을 닫고 나가자마자 나는 바로 침상에 몸을 뉘었다. 천마의 권능은 육체의 회복은 그 무엇보다 빠르지만, 정신의 회복은 큰 도움을 주지 못했다.

하물며, 그만한 사건이 일어난 이후에야···.

···아니, 일부러 떠올리지 말자.

지금은 조금이라도 더 기분이 좋아지는 걸 봐야지.

“그럼···.”

스윽. 나는 누운 채로 그대로 왼쪽 팔을 들어 눈앞에 보였다.

보름 전 있었던 싸움 이후, 한 번도 확인하지 못한 내공과 무공.

소림사의 방장과 만나기 전에 조금이라도 빨리 그것을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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