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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능으로 무림최강-92화 (92/185)

천라지망(2)

푹!

놈의 목에 창을 찔러넣자, 눈에서 빠르게 빛이 사라졌다.

창을 뽑아도 피는 나오지 않았다.

만년한철로 만든 철혼에 빙정의 기운까지 더하니 피가 나올 새도 없이 몸의 피가 모두 얼어붙은 탓이다.

창날에 붙은 붉은색 살얼음을 털어내며 뒤쪽을 향해 질문했다.

“그쪽은 어떻습니까?”

“방금 다 끝냈네.”

그렇게 대답하는 신승의 주변에는 다섯 사내가 쓰러져 있었다.

누구 하나 겉으로 보이는 상처는 없었지만, 심대한 내상을 입은 상태이리라.

물론 치료만 받을 수 있다면 금방 치료될 만큼 손대중을 해놓긴 했겠지만.

내가 마지막 적의 목숨을 거둔 걸 확인한 신승이 한쪽으로 몸을 날리자, 나도 바로 그의 뒤에 따라붙었다.

싸움이 벌어질 때만 해도 멀리 도망쳤던 녀석은 싸움이 끝나자마자 바로 다시 내게 다가왔고, 그 때문에 잠깐의 틈도 없이 신승을 따라갈 수 있었다.

앞에서 한창 달려가고 있던 신승이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질문을 던졌다.

“지금까지 얼마나 쓰러뜨렸나?”

“백을 넘어간 이후로는 세지도 않았습니다. 어르신은 다 기억하십니까?”

“나보다 기억력 좋은 자네도 못 하는데 내가 어찌 다 기억하겠나? 나는 열을 넘기고 나선 생각 안 했네.”

신승의 답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급박한 상황에서 그의 농담은 잠깐의 힘든 상황도 잊게 만들어 줬다.

물론 그것도 아직 한계가 아니라 가능한 일이겠지만.

[지금 둘 다 백 쉰다섯 놈 째야. 열댓 놈 오차가 있을 수도 있긴 하지만, 얼추 맞을걸.]

너는 그걸 다 기억하고 있었냐?

[내가 지금 해줄 거라곤 그것 뿐이니까.]

스리 말하는 화순의 표정은 진지했다. 권능에 관한 일 외에는 진지한 척도 하지 않는 화순으로서는 놀라운 일이었다.

아니, 이것도 어찌 보면 권능에 관련된 일이라 할 수 있으려나.

[···그리고 방금 하늘에서 보고 왔는데, 아직 그 열 배는 넘게 남았어.]

그래···조언 고맙다.

까딱 잘못하면 죽는다. 이것이 농담이 아닌 순간이었으니까.

일정 시간마다 하늘로 떠올라 우리가 탈출할 수 있을 방법을 열심히 찾는 화순이었지만, 아직 구체적인 방도는 나오지 않았다.

물론 어마어마한 숫자의 물량도 문제였지만, 그보다도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으니···.

[그리고 북쪽에서···.]

적의 주력이 몰려오고 있다, 이거지?

그것은 바로 적의 주력.

최소 초절정 이상의 고수가 스무 명 넘게 우리를 쫓아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최소 일류 이상의 무인으로만 천라지망을 펼쳤다는 것도 놀라 나자빠질 일이었지만, 놈들의 주력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던 때에 비하면 그것도 담담한 수준에 불과했다.

초절정 고수를 스무 명 넘게 끌어모을 수 있는 집단.

그만한 고수는 설사 정파 전부를 뒤지더라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이미 문파나 집단의 수준은 아득히 뛰어넘었고, 한 국가와 비견될만한 정도였다.

···아니지. 그 정도도 아니야.

국경 부대 근처의 부대긴 하지만, 그래도 군에 소속되어 있던 군인으로서 알고 있는 명나라의 병력은 그정도는 아니다.

물론 숫자야 훨씬 많지만, 문제는 질.

아무리 황제를 수호하는 금군이라고 해도 이만한 숫자의 고수를 갖추는 건 불가능하다.

하물며 초절정의 고수는 금군 중에서도 한 손가락에 꼽히는 고수.

그런데 그런 고수가 스무 명이나 된다?

···내 머리로는 아무리 뒤져봐도 그만한 힘을 가진 집단은 없었다.

“어르신. 북쪽입니다.”

“음, 알고 있네.”

나야 화순에게서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알았지만, 신승은 달랐다.

나보다 훨씬 기감이 발달한 그는 진작에 적의 주력 집단의 위치를 알고 반대 방향으로 내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놈들의 위치가 조금씩 더 가까워지고 있어. 아직 접촉하려면 한참 걸리긴 하겠지만, 지금 이대로라면···.]

화순이 하던 말을 중간에 끊었지만, 이미 그 뒤에 나올 답이 무엇인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우리 두 사람이 초절정 고수 스무 명을 상대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소리다.

아니, 이것도 어디까지나 희망적인 전망일 뿐.

저 중에 화경의 고수가 단 하나도 없다고 확신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미 삼천의 무인과 초절정 고수 스무 명을 끌고 온 놈들이다.

만약 기감을 숨기는 데 능숙한 고수가 섞여 있다면, 우리는 초절정 고수 스무 명에 더해 화경의 고수와 맞상대 해야 할지도 모른다.

신승도 그걸 알고 도망치고 있는 거겠지만···.

“저쪽이다! 저쪽이야!”

“모두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쫓아가! 놈들은 이미 다섯 시진 째 움직이고 있다! 이미 많이 지쳤어!”

“놈의 목을 가져오면 황금 백 냥에 상승의 무공도 얻을 수 있다! 목숨을 걸어서라도 잡아!”

천라지망이라는 말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하기라도 할 생각인지, 놈들은 우리가 적을 처리하고 나면 늦어도 한 식경(食頃) 내에 다시금 우리를 추적해왔다.

자신의 위치를 알리는 걸 막으려고 소리도 내지 못하게 처리해도 소용없다.

고독이라도 사용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일정 시간마다 무슨 보고를 날리기로 한 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일정 시간만 되면 우리의 방향을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쫓아왔다.

제일 큰 문제는 신승의 체력이었다.

아무리 순식간에 결판이 나는 싸움이라 해도 싸움은 싸움.

나야 권능 덕분에 반 식경만 있어도 금방 쌩쌩하게 체력과 내공이 회복되었지만, 신승은 권능도 없고, 육체까지 노쇠한 상태다.

더군다나 싸움이 끝나도 조금도 쉬지 못하고 다시 도망치기까지 해야 했으니, 피로는 더욱 가중될 수밖에 없었다.

말 그대로 진퇴양난.

적들은 끊임없이 몰려오고, 적들의 본 전력은 계속해서 우리를 추적하고, 우리의, 정확히 말하자면 신승의 체력은 바닥을 보인다.

이제 남은 수단이라고는 단 두 가지.

놈들의 천라지망에 벗어날 때까지 계속해서 싸움과 도망을 반복하거나, 그게 아니라면···.

힐끔.

머릿속에 떠오른 최후의 수단.

그것을 머릿속에 상기한 채 나는 앞을 향해 뛰어가고 있는 신승의 등을 바라보았다.

그도 과연 나와 똑같은 결론을 냈을까?

여전히 나는 맨몸으로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달리고 있었지만, 아까와 비교하면 확실히 느리다.

속도 저하는 대충 일 할쯤일까? 아직은 그 정도 속도로도 어렵지 않게 적을 피하고 있긴 하지만···.

만약 나와 똑같은 결론이 나왔다면, 이제 중요한 건 그 선택을 확정하는 시간.

조금이라도 그의 체력이 더 떨어지기 전에 선택해야 한다.

“어르신.”

주변에서 떠드는 소리에 반비례하기라도 하듯, 우리 주변은 발소리 하나 없이 고요했고, 덕분에 내가 그를 부르는 소리도 아주 잘 들렸다.

“지금 이대로 계속 갔다간, 결국엔···.”

“알고 있네.”

내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바로 고개를 끄덕이는 신승.

“지금 이대로 가면 결국 놈들이 원하는 대로 될 거라는 것 정도는 말이야.”

“그렇다면···.”

“나는 이미 아까 전 싸움에서 마음을 정했네. 지금까지 자네의 대답만 기다리고 있었지.”

“···그렇다면 말을 좀 해주시죠. 여행 동안 몇 번이나 말씀드렸잖습니까.”

아무래도 또 할 말을 입 밖으로 안 꺼내고 마음속에서만 끝내는 신승의 나쁜 버릇이 또 튀어나온 모양이다.

“흘흘흘, 미안하군. 평생 떨어지지 않는 버릇이라 말이야. 스승님이 아무리 고치라고 패고, 또 패도 고쳐지지 않는 걸 어쩌겠나.”

···하긴, 스승도, 친우인 검성도 고치지 못한 버릇을 내 말 한마디로 고쳐질 리가 있나.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가.

“그렇다면 마음을 정하셨다고 생각해도 되겠습니까?”

“자네야말로 확실히 준비되어 있겠지?”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조차 그의 미소는 여전했다.

상황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미소로 대답이 필요 없는 질문을 던지는 그에게 나도 똑같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이런 귀찮은 짓거리를 만든 놈들에게 잊혀지지 않을 선물을 선사해주죠. 조금 묵직하고, 뾰족한 거로요.”

*****

까득.

손 위에서 굴리고 있던 호두의 껍데기를 힘주지 않고 부서뜨린 흑의의 사내가 그 속살을 혀 위로 올리며 입을 열었다.

“보고가 늦군.”

주위에서 그의 명령만 기다리고 있던 부하들이 흠칫, 몸을 떨었지만, 누구 하나 입을 여는 사람은 없었다.

사내의 한계까지 시간을 끌면 모두 죽는다. 하지만 먼저 입을 열면 보고를 한 그 인간이 죽는다.

여기 모인 이들 모두가 초절정 고수였지만, 사내에게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그것은 이 사내가 한 가문의 가주라는 것도, ‘그분’의 최측근이라는 것도 전혀 상관없었다.

순수한 무력.

그 압도적인 힘 앞에서 지금 초절정 고수 열아홉 명이 두려움을 품고 있었다.

딱 한 사람만을 제외하고.

“현재 반 시진째 사망한 고독이 없습니다.”

그 말은 사내에게서 가장 가까운 곳. 바로 뒤에 있는 긴 흑발의 여인에게서 튀어나왔다.

흡! 주변에 다른 부하들이 갑작스러운 여인의 말에 뭐라고 숨을 들이켜는 동시에, 다시 한번 여인의 입이 열렸다.

“추적자에게서 확실히 도망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수단을 마련하고 있는 것인지 파악하고 있습니다.”

“흐음···.”

그녀의 보고에 다른 부하들은 곧 사내가 폭발하듯 화를 내리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반대.

사내는 호두 속살을 한 조각을 다시 꺼내며 한 마디만 내뱉고선.

“그래?”

그것을 또 입안으로 넣을 뿐, 사내들이 예상하던 불같은 분노도, 곧 휘몰아칠 줄 알았던 피보라도 거기에는 없었다.

자신의 계획이 조금이라도 틀어지는 걸 혐오하는 사내의 성격을 생각하면 믿기 힘들 만큼 미적지근한 반응에 부하들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주저하는 사이, 사내는 다 먹은 호두 껍데기를 땅에다가 흩뿌렸다.

“이제 신승도 슬슬 알아차린 모양이군.”

“네, 그런 듯합니다.”

도저히 그 뜻을 알 수 없는 두 사람의 대화에 부하들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너는 알겠냐? 아니, 너는 몰라? 내가 어찌 아냐?

입을 열진 않았지만, 그 눈빛에 담긴 속뜻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사내도 마찬가지.

“쯧, 바보 같은 놈들.”

부하들의 눈빛을 알아챈 사내는 이마를 찌푸리며 그들에게 경멸 어린 어조로 말했다.

“내가 뭣 하러 저 덜떨어진 놈들한테 고독을 먹였는지 아는 놈들이 단 하나도 없단 말이냐?”

“·········.”

사내의 말에 뭐라 입을 여는 이는 없었다. 아니, 입을 열기는커녕 고개를 드는 사람도 없었다.

“흥! 멍청한 놈들!”

콧방귀를 강하게 뀐 사내는 설명해 줄 생각도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렸고, 원래 사내의 명이 없다면 입을 여는 일이 없던 여인 또한 당연히 입을 닫았다.

좌불안석.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에 빠진 부하들을 무시한 채, 사내는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놈들이 이 천라지망에서 벗어났을 리는 없다.

이번 천라지망에 사용한 놈들의 수는 무려 삼천.

심지어 그 모두가 최소 일류. 칠할 이상이 절정이라는, 역대 무림에 모였던 전력 중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물며 추적술에 능한 부하들도 한 집단에 하나씩은 꼭 섞어 넣었으니, 아무리 신승이 정파 제일의 고수라 해도 도망치는 건 요원한 일이다.

하지만 지금 반 시진째 놈과 마주한 부하가 없다.

물론 죽이는 게 아니라 아혈이나 마혈을 짚었을 수도 있지만, 사내가 놈들에게 먹힌 고독은 그런 간단한 점혈법으로도 금방 목숨을 잃는다.

그렇게 되면 지금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암놈도 목숨을 잃으면서 금방 그 위치를 알 수 있게 된다.

반 시진째 고독이 목숨을 잃지 않았다는 건 곧 신승이 지금 사내의 부하들과 마주치지 않은 지 반 시진이 지났다는 것과 일맥상통.

결국 사내의 머리에서 나온 결론은 딱 하나.

‘이 천라지망의 중심. 즉, 나를 노리겠다는 소리지.’

그렇게 결론 지은 사내의 복면 뒤편에는 소름 돋을 만큼 차가운 미소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것은 사내 또한 원하던 대답.

처음 천라지망을 펼칠 때부터 사내는 이 순간만을 노리고 있었다.

‘그분’의 계획을 어지럽힌 자의 목숨을 거두는 건 오직 나만이 가능하다.

다른 어느 누구에게도 그런 영광을 차지할 기회를 건네주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러 스무명이나 되는 초절정 고수를 거기에 섞지 않고 자신의 옆에만 집중하도록 만들었다.

만약 이들을 반절만 투입해도 신승을 잡는 속도가 훨씬 빨라질 걸 알면서도 말이다.

그리고 사내의 그런 결심은.

쿵!

곧 결실을 볼 수 있었다.

대지를 울리는 묵중한 진동에 고개를 숙이고 있던 부하들도, 침묵하고 있던 여인도, 그리고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있던 사내도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거기엔.

“흘흘흘. 오래 기다렸나?”

그들의 목표.

“내가 좀 늦었구먼. 미안허이. 늙은이가 되면 시간 가는 줄을 몰라서 약속 시간을 까먹곤 하거든. 그래서···.”

신승이 천연한 미소를 띤 채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만히 보고만 있을 건가, 아니면 한꺼번에 덤빌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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