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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능으로 무림최강-82화 (82/185)

독기의 근원(5)

그 뒤로는 모든 일이 일사천리···라고 말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무탈하게 이어졌다.

내가 동의의 말을 꺼내자마자 전혀 예상 못 했다는 듯 바로 놀라움과 기쁨이 섞인 표정으로 내 팔을 잡고 마구 흔드는 황제와 아이 옌이나, 말없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신승까지.

이야기를 마친 우리는 다시 황궁으로 돌아갔다.

물론 남겨뒀던 서찰을 모두 없애고, 다시 카이탕과 휘하의 귀족들에게 독기의 근원으로 간다는 걸 이야기한다는 약속을 맺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런 계획을 짠 이유도 둘만 간다는 이야기에 카이탕은 물론이거니와 다른 귀족들도 반대하리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절정과 화경의 경지에 이른 고수가 함께한다면 누가 반대할까?

물론 황제와 아이 옌 대신 자신이 가겠다는 카이탕을 설득해야겠지만, 그 부분은 자신이 알아서 하겠다며 황제가 당당히 말했으니, 그건 그녀만 믿어야겠지.

긴 대화 없이 나와 신승만 향했던 전과 달리, 귀갓길은 시끌벅적했다.

“불가의 가르침은 누구나 익힐 수 있는가?”

“허허, 물론이지. 깨달음에는 귀함도, 천함도 상관없으니 말이야.”

“만약 가르침을 받으려면 무조건 그렇게 머리를 빡빡 밀어야 하는 건가?”

“아니, 꼭 그럴 필요는 없단다. 중이 머리를 미는 이유는 본디···.”

중원에서도 손꼽히는 절대 고수 신승과 남만에는 없는 종교인 불교.

이 두 가지에 흥미를 느낀 황제가 신승에게 이것저것 물어봤기 때문이다.

다행히 둘 다 한어를 할 줄 아는 덕분에 내가 중간에 끼여서 번역을 해야 하는 대참사는 피할 수 있었다.

···그건 그렇고 저 어르신도 참 대단하네.

아무리 속세에서 멀어진 스님이라도 설마 한 국가의 황제에게 저런 말투로 말하다니.

하긴, 무공으로나 불가의 가르침으로나 남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경지에 오른 그로선 눈앞의 사람이 다 거기서 거기로 보일 수밖에 없긴 하겠지.

모르는 사람이 보면 마치 오랜만에 만난 조손처럼 보이는 두 사람의 대화 덕분에 지루한지도 모르고 황궁에 도착한 우리는 바로 각자의 숙소로 향했다.

제일 먼저 황제가 커다랗게 하품하며 손을 흔들고 떠나고, 따닥따닥 붙어있는 우리 일행의 숙소 중 제일 가까운 곳에 있는 신승 역시 방으로 떠난 뒤.

나도 그만 침상에 몸을 뉘기 위해 방의 문을 열려는 찰나.

“고마워요.”

미약한. 가히 속삭임에 가까운 아이 옌의 목소리가 고요히 깔린 침묵을 찢고 내게 당도했다.

여러 감정이 섞인 그녀의 목소리에 내 대답이 늦춰진 사이, 그녀는 빠르게 발을 움직여 자신의 숙소 안으로 냉큼 들어갔다.

그녀를 막아보려 손을 들었다가, 뒷모습만 멍하니 본 채 다시 손을 내렸다.

방금 그 감사는 무슨 뜻일까.

남만을 구해준다고 하는 것이 고맙다는 의미일까.

들어가면 반드시 죽을 만큼 위험한 곳에 함께 가준다는 것이 고맙다고 하는 것일까.

아니면···황제를 멈춰준 것에 고맙다고 하는 것일까.

그 이유도, 목적도 알 수 없는 감사는 오히려 내게 많은 생각을 안겨줬다.

털썩.

문을 열고 들어가 침상에 눕는다.

잠을 자려는 건 아니다.

초절정 고수 두 명과 전력을 다한 싸움을 벌였음에도 피곤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천마의 권능은 전투 동안 소모된 내공은 물론, 체력까지 순식간에 회복시켜줬으니까.

천마의 권능을 얻은 이후로 침상에 누워 잠을 잔 적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대부분 심상 속에서 무공을 수련하거나, 화순에게 가르침을 받거나, 하다못해 내 회귀 전 삶의 기억들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지, 잠을 잔 적은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도 마찬가지.

침상에 몸을 누이긴 했지만, 잠이 오진 않았다. 눈도 감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원래 하던 것들을 한 건 아니다.

지금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딱 하나.

[저 사람들의 운명을 네가 바꿀 수 있는가. 이런 생각 하고 있지?]

···그러니까 마음 읽지 말라니까, 이 자식아.

뭐···틀린 말은 아니지만.

물론, 내가 너무 약해서 걱정이다···라는 건 당연히 아니다.

흔히들 초절정의 선이라 하는 삼갑자를 넘어서 거기에 십 년의 내공···아니, 이번에 카이탕과 황제와 맞붙으면서 이 십 년의 내공을 더 얻었으니, 이젠 삼십 년이지.

그만한 내공에, 천하에 다시 없는 무공인 천마의 무공까지.

지금까지 내가 약하다는 생각은 한 적 없었고, 어떤 위험도 돌파할 수 없다는 생각도 해본 적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둘이서 힘을 합쳐야 하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초절정의 무공을 사용할 수 있는 한 사람.

그리고 흔히들 절대 고수라 부르는 화경의 무인.

그리고 내가 전에 무림맹에서 싸웠던 절정의 경지에 이른 무승. 고설까지.

이 세 사람이 함께 갔음에도, 누구 하나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목숨까지 잃었다.

그런데 거기서 고설을 대체해 나 한 사람 더해졌다고 해서 과연 얼마나 달라질까?

과연 한 명이 달라진다고 많은 것이 바뀔까?

[아까 나와 마주쳤던 아이 옌의 그 ‘살았다’라는 눈빛.

과연 그 눈빛이 절망에 물들이지 않도록 내가 그녀를 도울 수 있을까?]

···또 뭐야.

[라고 확답할 수 없는 거 아냐?]

아주 네가 다 말해라, 다 말해.

싱글싱글 웃으면서 내 말투까지 따라 하는 화순에게 침 뱉듯 말을 내뱉어주고 상체를 일으켰다.

지금 이 걱정을 줄여줄 수 있는 건 화순의 말도 안 되는 헛소리가 아니라, 눈에 보이는 확실한 증거.

왼팔에 적힌 무공이었다.

[사용 가능 무공 :

천마창법 8성

-오의 : 와류(渦流) 개방

-극의 : 미개방

천마금나수 6성

-오의 : 불파(不破) 개방

-극의 : 미개방

천마보법 5성

-오의 : 군림(君臨) 개방

-극의 : 미개방

강화 가능 무공 : 현현열기공 8성, 옥양열기공 5성, 옥음독기공 5성.]

거기에 적힌 내용은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보통 절정 고수를 쓰러뜨려도 삼성을 겨우 얻고, 초절정 고수를 쓰러뜨려도 제일 높은 성취가 육성밖에 되지 않았다.

지금껏 천마의 옆에서 그들이 무공을 얻는 걸 봐왔던 화순조차 그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하지만 남만에서 겨룬 두 번의 결투 동안 얻은 무공은 그런 우리의 상식을 완전히 뒤엎었다.

[설마 카이탕 그 인간이 팔 성짜리 무공을 줄 줄은 진짜 몰랐네.]

그러게 말이야. 그리고 황제와 아이 옌 두 사람도 무려 오 성이나 무공을 주고···.

천마의 권능이 처음 만들어졌던 때의 무공은 지금의 무공과 아주 많은 차이가 있었다.

내공의 양을 중시했던 지금의 무공과 달리, 심기체. 육체의 단련과 내공의 양. 그리고 그 깨달음을 중시하는 고대의 무공.

그리고 그런 고대의 무공만이 존재했던 때에 만들어진 천마의 권능은 그런 심기체가 모두 고르게 성장한 무공만을 권능의 성취로 인정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껏 북해와 중원에서 내가 겨룬 무인에게 얻은 무공은 본디 그 사람이 가진 성취에 일부분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남만은 다르다.

마치 고대의 무공이 현대에 강림한듯한 그 모습.

무엇 하나 균형을 깨지 않고, 육체, 내공, 정신. 이 세 가지를 고루 수련한다.

그리고 그렇게 단련한 무공은 현 강호의 중원 무림에선 볼 수 없는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절정 때부터 초절정의 고수를 쓰러뜨렸던 나와 제대로 대적할 수 있었던 카이탕.

겨우 절정 고수 두 사람으로 초절정 고수 한 명과 백중지세를 겨룰 수 있던 황제와 아이 옌.

어느 쪽이건, 중원 무림에선 보기 힘든 기예. 만약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사술이라고 부를 만큼 독특한 능력이 거기에 있었다.

그리고 그런 능력과 겨룬 성과가 지금 내 왼팔에 있었고.

생전 처음. 아니···만들어진 뒤 처음이라고 해야 하나?

셀 수 없는 시간 동안 천마의 옆에 붙어있던 화순도 수천 년 전 이후로 이런 일은 없었다 할 정도니, 사실상 기적이라 불러도 모자람이 없었다.

[어떻게 분배할 거냐?]

공중에 뜬 상태로 엎드려서 내 팔을 보던 화순이 고개를 돌려 내게 물었다.

[팔 성짜리는 역시 천마창법에 넣을 테고···오성짜리 두 개 합쳐서 육성으로 만든 다음 천마금나수에 넣을래? 아니면 금나수 말고 천마보법에 하나 넣고 하나 남겨놓을 거냐?]

일단 팔성짜리는 확정이지.

이건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팔 성의 천마창법에 팔 성의 현현열기공을 더하면 구성.

거기에 구성의 무공을 하나만 더 얻으면 드디어 개방할 수 있는 것이다.

극의(極意).

역대 천마 중에서도 극히 소수만이 얻은 천마의 무공이 가진 진짜 능력!

단 하나만으로도 천하를 위시할 수 있는 천마의 무공이 가진 진의!

십수 개의 천마의 무공을 보유했던 전대 천마, 독고삭.

하지만 화순이 그런 그를 역대 천마 중에서도 다섯 손가락에 들어가는 고수라 인정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가 가진 극의.

천마도법 극의. 천참(天斬)

한 번의 일격으로 하늘을 베고, 땅을 가른다.

흔히 무공이 강한 자를 그렇게 이야기하지만, 나는 실제로 보았다.

정말로 한 번의 일격으로 하늘에 상흔을 남기는 무인을.

한 번의 일격으로 땅을 두 쪽으로 나누는 괴물을.

그런 그의 모습은 정말로 천마(天魔).

세상을 지배하는 천상을 상제(上帝)와 대적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고밖에 말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나도 그런 ‘진짜 천마’의 경지에 오를 수 있었다.

딱 하나.

구성의 무공만 하나 더 얻는다면 말이다.

···물론 지금껏 구성의 경지까지 오르는 데 걸린 시간과 싸워왔던 무인을 생각하면, 아마 어마어마한 시간이 걸리긴 하겠지만.

아니, 가능은 할까?

초절정 고수와 겨뤄도 오성이나 육성 무공만 겨우 얻을 수 있으니, 단순 계산으로만 초절정 고수 열 명 이상은 쓰러뜨려야 한다.

한 성에 세 명 이상 찾기 힘든 초절정 고수를 열 명 이상···.

···진짜 가능하긴 한가?

아니, 보통 무인들은 위의 경지가 눈앞에 보이면 아등바등 어떻게든 올라가려고 한다던데, 나는 왜 막막하기만 하냐.

[뭐, 어쩔 수 없지. 독고삭 그 인간도 극의의 경지에 오르는 데 그렇게 어린 시절부터 싸우고 다녀도 다 늙어서 됐는데, 너는 그리 쉽겠냐?]

하긴···천마의 자리에 있는 그 사람도 그리 오래 걸렸는데, 나라고 금방 가능할까.

···그래도 나 정도면 빠른 건가?

[빠르지, 엄청 빠르지. 그렇게 죽을 곳만 찾아다녔는데 느리면 그게 말이 안 되지.]

칭찬이야, 아니면 욕이야?

싱글싱글 웃으며 말하는 화순에게 쳇, 혀를 찬다.

[남은 오성 두 개는?]

나중에, 나중에. 이게 어쩌면 초절정 무인 둘이랑 덜 싸울 수도 있잖아?

다른 두 개의 무공의 경지를 올리는 게 나쁘진 않지만, 둘 다 오의를 얻었으니 급할 건 없다.

그리고 지금 급한 건···.

몸을 일으켜 침상 옆, 동그란 모양의 창으로 향했다.

본래의 색을 잃고 대기에 떠도는 독기로 인해 검게 물든 창호지는 말로 하지 못할 불길함이 있었다.

끼이익.

손을 대고 싶지 않은 건 누구나 마찬가지일까.

오랫동안 열리지 않은 듯한 창에서 나는 기괴한 소리를 무시하고 창문 너머를 바라본다.

아까 황제에게 들었던 독기의 근원.

이제는 눈에 띌 만큼 독기가 피어오르지도 않고, 설사 피어오른다 해도 달빛 한점 없는 어두컴컴한 밤에 보일 리는 없었지만.

내 눈에는 그것이 보였다.

남만 전체를 넘어, 이 대륙 전역을 뒤덮으려 하는 검은 기운을.

그것은 독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죽음의 기운.

모든 생명을 집어삼키려 드는 괴물이었다.

딸칵.

그것을 애써 외면하며 창문을 닫고, 그것을 막기 위해 걸지 않았던 걸쇠까지 건다.

···일단 살아남는 거니까.

침상에 몸을 뉘고, 억지로 눈을 감는다.

오랜만에 잠에 빠지고 싶었다.

*****

“모두 나와줘서 고맙네.”

수십 명의 사람이 모인 그곳에서 황제는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내 무모한 선택에 반발 없이 따라줘서 그대들에게 감사할 뿐이야.”

그 가장 앞에서 듣고 있던 카이탕은 한마디 하려다가, 다시 입을 다물고 주먹을 꽉 물었다.

마치 속에 받친 악을, 부정을 막듯, 손에 상처가 날 정도로 꽉.

“물론 지금 내 선택을 말리고 싶은 사람도 많을 것이야.”

그녀의 말은 사실이었다.

지금 가장 티 나게 행동하는 건 카이탕이었지만, 다른 사람들도 표정이 영 밝지만은 않았다.

그들의 눈에 보이는 감정은 딱 하나. 지금 당장이라도 그녀를 말리고 싶다는 생각 뿐.

하지만 그만큼 그녀를 아끼는 이들이기에 알고 있었다.

지금 그들이 아무리 그녀를 말려도 그녀는 멈추지 않는다는 걸.

“허나.”

그리고 그런 굳건한 의지가 담긴 목소리가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이 일이 우리의 땅에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 생각하기에 나는 이렇게 행동하는 걸세.”

“폐하!”

“우리가 다시 돌아오는 날, 우리는 이 독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야. 그러니 기다리게.”

펄럭.

그녀가 몸을 돌리자, 독기를 막기 위한 도포가 크게 흔들렸다.

“앞으로 이어질 우리의 삶을 위해서.”

그리고 그런 그녀의 뒤를 따라, 아이 옌, 신승, 그리고 나도 함께했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울창한 숲.

독기의 근원이 바로 앞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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