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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능으로 무림최강-79화 (79/185)

독기의 근원(2)

“살인멸구(殺人滅口)라도 하시려고 부르신 겁니까?”

“살인멸구라···정확히 말하자면 그 정반대···그래, 시험이라 해두지.”

“시험 말입니까?”

“내게 독기의 근원을 묻는다는 건, 달리 말하자면 독기의 근원으로 갈 수 있는 허락을 받고 싶다는 뜻이겠지?”

거기까지 읽어내고 있었나.

처음 이야기를 꺼냈을 때 보인 담담한 반응에 당연히 예상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완전 반대였다.

그녀는 이미 내가 남만에 온 이유까지 예상하였다.

그녀는 그녀 주변에 넘실거리는 보랏빛 독의 정화를 어린아이가 실을 가지고 놀 듯 뱅글뱅글 돌리기 시작했다.

“자네들이 찾아 헤매는 독의 근원은 인세에 강림한 지옥. 평범한 인간은 물론, 자네 같은 초절정의 고수조차 조금만 방심해도 한 줌의 혈수(血髓)로 변해버리는 끔찍한 곳이지.”

콰직.

그리고 그런 독의 정화를 낚아채더니, 나를 향해 날카로운 시선을 보냈다.

“지금 정원에 퍼져 있는 독기 따위는 입구 수준 따위밖에 되지 않아.”

“이 정도가···.”

양팔로 다 감쌀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아름드리나무가 삭고, 웬만한 독에는 면역일 독충조차 도망가는 독이 아직 가까이 다가가지도 않은 수준이라.

하긴···그 정도는 되야 이 넓은 남만 땅 전역에 독이 퍼지겠지.

“만약 이 정도도 버티지 못한다고 도망친다면, 독기의 근원을 알려줘 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지.”

“그렇다면 저는 그 시험에 통과한 겁니까?”

“그렇지. 일 단계는.”

일 단계는···이라.

이 정도로는 가르쳐줄 수 없다는 뜻인가.

“그렇다면 이 단계는 뭡니까?”

“간단해.”

챙.

“내게서 승리를 거둬라.”

“황제 폐하께 승리하라···그것뿐입니까?”

자타가 공인하는 남만 제일의 고수, 카이탕을 쓰러뜨린 게 조금 전의 일이다.

그렇다고 내가 아슬아슬하게 겨우 승리를 거뒀는가? 절대로 아니다.

시종일관 그를 압도한 건 물론, 연회장에 있던 이들 중 알아본 사람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부러 가장 힘들고 어려운 수단으로 싸워 이기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런 결투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봤던 황제가 나와 싸우자고 하는 건가?

진심이냐는 의미를 담아 질문을 던져봤지만, 오히려 그녀는 그걸로도 부족하다는 듯 턱을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흐음, 가능하면 압도적으로 승리를 거뒀으면 좋겠군. 다른 관객들도 확실히 알 수 있을 만큼 확실하게 말이야.”

“···알겠습니다.”

여기까지 말하면 나도 더 그녀를 말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원하면 원하는 대로.

“당신의 뜻대로 해드리죠.”

“후후후, 좋아, 좋아. 피가 끓어오르는 기분이군.”

내 대답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를 바라보며, 나도 진지한 표정으로 기수식을 취했다.

내 양손에 창은 없었다.

황제와 독대할 때 날붙이를 가져오지 않는 건 기본 중의 기본.

남만의 황제라면 그런 예절에 크게 신경 쓰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만약을 대비해서 창은 두 자루 모두 숙소에 놔두고 왔다.

허나 그렇다 해도 내 전투력이 약해진 건 절대 아니다.

무기가 없다 해도 내 육신에는 어마어마한 내공과 천마의 무공이 고스란히 존재했으니까.

···황제의 무공은 절정. 높게 쳐줘도 절정 완숙의 경지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나보다 대여섯 살 정도 많을까.

그만한 나이에 그만한 성취라면, 분명 놀라운 일이다.

물론 그녀보다도 어린 나이에 더 높은 경지에 오른 사람들을 알고 있긴 하지만, 그런 인간들은 천하의 둘도 없는 재능과 함께 뼈를 깎는 노력. 그리고 그가 속한 문파와 가문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었던 덕분에 가능한 기적이었다.

그렇다면 그녀는 어떨까?

남만의 황제라는 직위라는 건 분명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는 자리지만, 그만한 자리에 걸맞은 책임도 있는 법.

아까 연회에서의 반응을 보면 그녀가 천하의 명군은 아닐지라도 할 일을 모두 잊고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폭군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둘 중 하나군.

그냥 영약으로 만든 가짜 고수거나···.

···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엄청난 노력의 결실이거나.

쿵!

먼저 움직인 건 그녀였다.

몸 주변에 보랏빛 기파를 두른 채 날아오는 그녀의 기세는 놀라우리만치 사나웠다.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 외적을 노리는 말벌처럼 나를 향한 적대감을 잔뜩 품은 채 날아오는 그녀.

하지만 아무리 사납게 날아온다 해도 거기에 담긴 힘은 한계가 있는 법.

천마금나수 오의 불파.

무엇으로도 부술 수 없는 방패를 팔에 끼워 앞으로 뻗었다.

저번에 깔린 독기가 침범하지 못하도록 내공을 운용하고 있어서 전력을 다할 수는 없지만, 이 정도라면 그녀의 공격 정도는 간단히 막을 수 있을 터.

하지만.

쩡-!

“우웃?!”

“크윽!”

그녀를 막는 순간 눈에는 보이지 않는 강렬한 기파가 숲을 관통했다.

세찬 바람이 불어오는 것처럼 크게 흔들리는 숲.

하지만 그 중심지에 있는 우리 두 사람은 거기서 완전히 멈춘 채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일격을 한쪽 팔로 막은 나를 놀라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지만, 나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어깨와 팔뚝에 느껴지는 아릿한 고통.

그것은 곧 불파로도 그녀의 힘 전부를 막아내지 못했다는 뜻이었다.

절정의 경지로는 절대 불가능한 일.

하지만 지금 그녀의 주변에서 흐르는 기운으로 추정했을 때, 그녀는 분명 절정 이상은 아니었다.

대체 어떻게 불파를 넘어서서 피해를 준 것인가?

내가 그 답을 찾기도 전에 황제의 다음 공격이 이어졌다.

퍽! 퍽! 퍽!

내게 가까이 달라붙은 그녀는 공격의 끈을 놓지 않았다.

왼손으로 수도를 세워 내려찍고, 오른손으로 주먹을 쥐고 머리를 향해 뻗는다.

왼발의 발끝으로 내 명치를 찔러오고, 오른발을 높이 올려 가슴께 부분을 후려친다.

연계, 연계, 멈추지 않는 연계!

속도도 속도지만, 거기에 담긴 기세와 힘 또한 무시무시했다.

더군다나 그녀의 공격은 그저 평범한 박투술(搏鬪術)이 아니었다.

그녀의 몸을 감싸고 있는 보랏빛 독기.

그것을 효율적으로 상대의 몸에 침투시키기 위한 전달책이기도 했다.

보통의 박투술과 달리 찌르는 공격이 많은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평상시였다면 어렵지 않게 뿌리칠 공격에 내가 애먹는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저변에서 끊임없이 내 전신을 노리는 음습한 독기와 그녀의 공격에 서린 날카로운 독기.

이 두 독기를 막아내는 것에 내공을 써야 했으니까.

하지만 기회는 곧 찾아왔다.

공격과 공격 사이에 만들어진 잠깐의 틈.

그 틈을 파고들어 나를 찔러오는 그녀의 공격을 불파를 두른 손으로 막았다.

쩡!

피륙과 피륙이 부딪혔다고는 도저히 믿기 힘든 소리가 그녀의 손끝과 내 손바닥에서 울려 퍼졌다.

만약 불파를 두르지 않았다면 내 장심을 찢고 들어와 그 끝에 서린 독기를 잔뜩 뿌려놓고 갔을 터.

으득.

최악의 상황을 상상한 나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활력과 힘에 대해 조금 더 파악하고 싶긴 했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지금 그녀를 제압하는 것.

여전히 내 손바닥과 힘겨루기를 하는 그녀의 손을 잡아채.

“흐아압!”

그대로 땅으로 내려찍는다!

쾅!

아슬아슬하게 낙법을 취한 그녀가 반쯤 주저앉은 채 나를 매섭게 노려보지만.

쿵!

나는 여전히 그녀의 손을 잡고 있었다.

쿵! 쿵! 쿵!

어린아이가 땅에 질질 끌고 다니는 연처럼 마구 패대기쳐지는 그녀의 육신.

살이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뼈가 부서지는 소리도 어렴풋이 들려온다.

거기에 맞춰 피어오른 흙먼지가 그녀 주변의 보랏빛 독기와 섞여 기괴한 색감을 선보였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독의 먼지 속.

허나 그녀의 손에는 여전히 무시하지 못할 거력이 담겨 있었다.

그녀가 아직 싸움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촤악!

“큭?!”

어깨에서 느껴지는 화끈한 통증에 나는 그녀의 손을 결국 놓치고 말았다.

“···예상 이상이군.”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독무 안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아련히 울려 퍼졌다.

“내게 무기까지 쓰게 할 줄이야.”

무기? 나는 그녀의 말에 방금 통증이 느껴진 왼쪽 어깨를 살폈다.

두껍다.

내가 상처를 보고 먼저 떠올린 건 바로 이 단어였다.

칼이나 창이라고 생각하기엔 그 상처의 두께가 너무나 두꺼웠다.

찌르거나 벤 상처가 아니라 깎아낸 것만 같은 상처.

그것은 마치 짐승의 발톱과도 같은···짐승의 발톱?!

휙!

오른쪽 소매를 휘둘러 주변에 낀 보라색 흙먼지를 모두 저편으로 날려버리자, 그제야 그 속에 숨어있던 황제의 모습이 보였다.

아까의 공격으로 인해 잔뜩 해진 옷과 찢어진 피부 사이로 흐르는 피.

가히 만신창이라 불러도 될 정도로 엉망진창인 그녀였지만, 그녀의 입가에는 그런 모습에 어울리지 않는···웃음이 떠올라 있었다.

하지만 내가 시선을 향한 건 그쪽이 아니었다. 그녀의 양손. 꽉 쥔 주먹 사이로 튀어나온 뾰족한 무언가.

쇠로 만든 짐승의 발톱.

“그걸로 제 살을 ‘깎아낸’ 겁니까?”

“황실에 대대로 전해져오는 무기지. 직접 사용해 보기는 나도 처음이지만.”

“참으로 무시무시한 무기로군요.”

주변의 독기로 인해 검게 변색하기 시작한 어깨에 내공을 불어넣으며 말을 건넸다.

이 정도 상처, 평상시였다면 금방 회복됐겠지만, 지금 저변에 깔린 독기는 상처의 회복조차 무척 느리게 만들었다.

아니, 회복이라도 되는 게 오히려 기적이라고 봐야 하나.

“원한다면 비슷한 걸 하나 구해주지. 어떤가?”

“아뇨, 괜찮습니다. 저는 창 두 자루를 다루는 것만으로도 벅차니까요. 저는 그것보단 폐하가 휘두르는 정체불명의 힘이 더 탐이 나는데요?”

이 한 마디로 그 힘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을 거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이 말에 대한 그녀의 반응을 보기 위함일 뿐.

얼굴 근육의 움직임과 호흡의 변화. 손과 발의 위치.

다른 사람이 보면 의미 없는 행위일지 몰라도, 정보 요원으로서 십수 년을 넘게 살아온 내게는 그 하나하나가 증거가 되고, 답이 되었다.

하지만.

“미안하지만 이건 힘들겠네. 아이와 내 합작품이라서 말이야.”

그녀는 그런 내 예상을 아득히 초월해, 그냥 순순히 답을 꺼냈다.

“···뭐라고요?”

“아이의 가문은 황실의 먼 친척이지. 그리고 그 무공 또한 근본은 똑같아. 다른 무공이라면 위험이 큰 격체진기(隔體進氣)도 별다른 위험 없이, 손쉽게 가능하다는 뜻이지.”

“그럼 방금의 힘도···.”

“아이와 내 합작품이라는 소리지. 어때, 궁금증은 풀렸나?”

싸우는 내내 머릿속을 어지럽히던 답이 튀어나왔음에도 나는 기쁜 기색을 보일 수 없었다.

“···그걸 순순히 말씀해주셔도 됩니까?”

도저히 내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그녀의 모습에 내가 어이없는 목소리로 묻자, 그녀는 오히려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말했잖아? 시험이라고. 어느 정도 공부는 시켜줘야지. 그리고.”

그녀는 아까와 똑같은 기수식을 취하며 나를 노려봤다.

상처도 많고, 피로한 기색도 역력했지만, 그 사나움 하나만큼은 오히려 아까보다도 더욱 매서웠다.

“어차피 아이를 먼저 노린다고 해도 시험은 통과할 수 없다는 거, 알지?”

“···네, 압니다.”

···이해할 수 없는 점이 많은 그녀의 행동이었지만, 이 부분만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의 시험은 어디까지나 내가 독기의 근원에 가고도 살아남을 수 있는지 알아보는 것.

아이 옌을 먼저 제압한 뒤, 절정의 무공밖에 쓰지 못하는 황제를 이겨봐야 시험은 탈락.

독기의 근원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결국 그녀가 원하는 대답은 단순하다.

“그럼.”

내 눈앞에 있는 그녀를 정공법으로, 당당하게 쓰러뜨려라.

“갑니다.”

쿵!

천마보법 오의. 군림(君臨).

내 발끝에서 일어난 강력한 기파로 인해 주변에 퍼져 있던 독기가 한순간에 사라졌다.

물론 숲 저변과 그녀 주변에서 흘러나오는 독기 때문에 다시 아까와 같은 상태로 돌아오기야 할 테지만.

끼기긱!

그것은 달리 말하자면 지금은 괜찮다는 것.

본디 독기로 몸을 방어하고 있는 내공조차 모두 팔과 다리에 모두 부여한 채.

쾅!

그대로 그녀에게 달려든다.

아까와는 완전히 정반대의 상황.

황제가 달려들고 내가 막아낸 것과 달리, 이번에는 내가 달려들고 황제가 막아선다.

“하압!”

날카로운 발톱을 내놓은 주먹을 하나로 합친 채 기합성을 내지르는 그녀.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내 공격을 막아내겠다는 진심이 두 눈에 서려 있었다.

하지만.

쾅!

아무리 전심전력을 다 했다 하더라도, 군림으로 발생한 속도에 불파의 단단함을 더한 일격을 막아내는 것은 무리.

그녀의 주먹과 내 주먹이 부딪히는 순간, 날카롭게 벼려져 있던 짐승의 발톱이 산산이 조각났다.

자신의 무기가 부서진 최악의 상황.

“아직···”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그녀는.

“···아직이야!”

자신의 패배를 용납하지 않았다.

빠악!

뒤로 머리를 쭉 빼더니, 그래도 내 머리에 부딪힌다.

최후, 최종의 일격은 박치기인가.

그녀답다. 아주 그녀다운 공격이다.

하지만, 나는 지지 않는다.

이마를 타고 흐르는 한 줄기의 뜨끈한 피를 느끼며.

“흐아아압!!!”

나의 최후의 일격을 날린다!

팡!

남은 한 손을 휘둘러, 그대로 그녀를 날려버린다!

쿵, 쿵, 쿵!

호수 위에 던져진 납작한 조약돌처럼 땅에서 몇 번 튕겨 나간 그녀는 곧 나무에 부딪혔고.

후두두둑.

이미 독기에 쇠약해져 있던 나무에 달린 나뭇잎이 그녀의 몸 위로 우수수 쏟아졌다.

조금의 움직임도 없는 나뭇잎 더미.

···끝났나?

힐끔, 혹시나싶어 지금껏 조금의 움직임도 보이지 않던 아이 옌쪽으로 시선을 돌려봤지만, 그녀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 거기에 가만히 서 있었다.

꿈틀.

휙!

그것도 잠시.

황제가 들어 있는 나뭇잎 더미가 살짝 움직이더니.

“우후···.”

거기서 미약한 숨소리와 함께.

“우하하하!!!”

우렁차고 호쾌한 웃음소리가 퍼져 나왔다.

펑!

마치 알에서 깨어나는 새끼 새마냥 나뭇잎 더미를 박차고 일어난 그녀는 하늘을 향해 호탕한 웃음을 내뱉었다.

“하하하-쿨럭, 쿨럭, 쿨럭.”

하지만 계속 웃음을 내뱉기엔 몸 상태가 그리 좋지만은 않았던 모양이다.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젖은기침을 내뱉던 그녀의 입가에 한 줄기의 붉은 액체가 흘러내렸다.

하긴, 그토록 사납게 부딪혀서 몇 번이나 구르면서 튕겨 나갔는데 내상 하나 없으면 그게 더 이상할 지경이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입에서 피가 흐르든 말든, 밝은 미소를 지으며 여전히 가만히 서 있는 아이 옌을 향해 말을 건넸다.

“아! 재밌었다, 재밌었어! 오랜만에 이렇게 치고받고 하니까 좋구나! 안 그러냐, 아이 옌?”

“·········.”

“아, 맞다. 격체진기를 하는 동안에는 말하면 안 되지. 깜빡했다.”

머쓱한 듯 뒤통수를 벅벅 긁적이는 그녀는 황제라기보단 밖에서 뛰어놀기 좋아하는 말괄량이.

그것도 심술쟁이 남자아이 두셋이랑 거하게 싸우고 난 후의 사나운 여자아이와 같았다.

···잠깐, 이 감상대로면 내가 그 심술쟁이 남자아이인가?

[황제고 뭐고 신경 안 쓰고 마구 때려 재꼈으니 심술쟁이 수준이 아니지. 그냥 역적 죄인으로 해.]

나야 부탁한 대로 했을 뿐이라고.

“카이탕과 싸우는 걸 봤을 때부터 강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직접 맞상대해보니까 그 수준을 넘어섰다는 걸 알겠네.”

놀리듯 말하는 화순에게 툴툴거리고 있자니, 어느새 옷에 붙어 있던 나뭇잎을 다 떼어낸 황제가 내게 다가와 말을 건넸다.

물론 나뭇잎만 떼어놨을 뿐, 반쯤 찢어진 옷과 그 사이로 흐르는 피는 어쩌지 못했지만 말이다.

“거기에다가 그대는 그대의 주무기도 사용하지 않았으니, 그 격차도 본래라면 훨씬 심할 터. 그대의 강함, 감탄했네.”

“과찬이십니다, 전하.”

머리에 커다란 혹을 매고, 입가에는 한줄기의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나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고도 입가를 최대한 일자로 고정시킨 채 고개를 숙였다.

내 대답에 기뻐하던 그녀는 다시 아까처럼 진지하고 근엄한 표정으로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시험은 이걸로 통과했네. 자네라면 독기의 근원에 다가가더라도 금방 죽지는 않겠지.”

“그렇단 말씀은···?”

“그래, 알려주지.”

스윽.

그녀는 자신의 입가에 흐르던 피를 손가락으로 훔치며 입을 열었다.

“삼십 년 전부터 우리의 땅을 더럽히기 시작한 독기의 근원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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