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락한 묘강(2)
드르렁~ 드르렁~
자신이 방금 뱉어낸 토사물 위에서 이제는 코까지 고는 사내의 모습에 나는 신승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제 어떻게 하죠?”
이 말에는 이 남자를 어떻게 할까, 라는 뜻도 담겨 있었지만, 정말로 이런 인간을 믿고 남만으로 가야 하냐는 뜻도 담겨 있었다.
신승 본인도 이런 상황은 예상외인지 당황스러운 얼굴로 바짝 마른 입술을 혀로 핥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 이 사람 맞습니까? 삼십 년 인연치고는 많이···젊어 보이는데요.”
지금은 토사물에 얼굴을 박아 넣고 있어서 얼굴을 볼 수 없었지만, 분명 아까 의자에 앉아 있을 때는 나와 비슷한 연배로 보였다.
관리의 흔적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는 머리와 수염 때문에 그것도 확실치는 않았지만 말이다.
“내 예상이지만···.”
그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신승은 내 질문에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무래도 그의 손자···아니면 아들인 듯하구나. 나도 확신할 순 없지만, 아까 말도 그런 내용인 듯했고 말이야.”
“그 횡설수설을 용케도 알아들으셨습니다.”
“나이가 들면 생기는 능력 중 하나지.”
그것참 하나도 부럽지 않은 능력이네요.
“일단 깨워보겠습니다. 지금 상태로는 뭘 하려고 해도 할 수 없을 것 같으니까요.”
“음, 자네에게 맡기겠네.”
신승의 허락에 나는 그의 얼굴을 향해 손을 뻗으려다 바로 손을 돌렸다.
지금 이 상태로는 깨울 수도 없거니와, 깨워도 대화 같은 건 힘들 걸 직감했기 때문이다.
···뭣보다 이미 자기 토사물 덩어리가 된 사람을 만지고 싶지 않고.
“후우···.”
혹시나 주변을 둘러봤지만, 객잔 주인. 혹은 점소이로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아마 여기 쓰러져 있는 인간 중 하나가 주인이겠지.
어차피 보는 막는 사람도 없겠다. 바로 주방 안으로 들어갔다.
예상대로 주방은 불을 때지 않은 지 몇 년이 된 것처럼 온기 하나 없었다. 녹이 잔뜩 슬어버린 주방 용기 사이로 커다란 항아리를 발견하고 그 안을 바라봤다.
[그래도 물은 잔뜩 채워놨네.]
“술에다가 섞어서 팔려고 쟁여둔 거겠지. 마침 잘됐네.”
근처에 있던 바가지에 물을 잔뜩 푼 뒤, 내공을 운용했다.
지금까지 사용하던 마기와는 다른, 싸늘하고 차가운 기운.
북해에서 얻은 빙정의 기운이었다.
웬만한 빙공의 고수와도 비견될만한 차가운 내공이 바가지를 감싸자, 안에 있던 물은 살얼음이 낄 정도로 차갑게 식었다.
그렇게 꽁꽁 얼기 직전의 물을 밖으로 들고 온 나는.
푸왁!
그대로 남자의 머리 위로 뿌렸다.
“으아아악! 어푸, 이건 대체 뭐야!”
갑자기 차가운 물벼락을 맞은 사내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야, 이거 재밌네. 이래서 그 천호 객잔 주인도 나한테 물을 뿌렸나?
“켁, 켁, 아 젠장. 물이 코에도 들어갔잖아···.”
물을 맞으면서 술도 다 깼는지, 아까와 같이 혀가 배배 꼬인 목소리는 아니었다.
얼굴에 붙어 있던 토사물까지 싹 다 씻겨진 사내는 옷소매로 얼굴에 남은 물을 닦은 뒤 고개를 들었다.
“젠장, 누가 물을 뿌린 거야?!”
“나요.”
“이런 씹. 나요라고 하면 네가 누군 줄 알고···.”
잔뜩 악이 받친 얼굴로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린 사내는 나와 그 옆에 있던 신승을 보고 얼굴을 딱딱하게 굳혔다.
“다, 당신들···.”
“흘흘, 그래, 내 서신은 잘 받았더냐?”
“·········.”
신승의 질문에 사내는 아무런 대답 없이 얼굴만 잔뜩 일그러뜨렸다.
“신승 어르신···맞습니까?”
“자네가 받은 서찰 그대로네.”
“···젠장.”
설마 진짜 올 줄은 몰랐다는 듯, 뒷머리를 벅벅 긁던 사내는 자리에서 일어나 신승을 바라보았다.
“정말로···남만에 가고 싶으십니까?”
“가고 싶다가 아닐세.”
사내의 질문에 신승은 진지한 표정으로 그를 직시하며 대답했다.
“꼭 가야만 하는 걸세.”
“···일단 들어오시죠. 밖에서 할 이야기는 아닌 듯하군요.”
그는 흠뻑 젖은 몸을 일으킨 뒤 다시 객잔 안으로 우리를 이끌었다.
“유난!”
“네, 주인님.”
사내가 누군가의 이름? 같은 단어를 말하자, 저 멀리서 술을 홀짝이고 있던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중요한 손님이 왔으니 나는 잠깐 이 층에 올라간다. 너는 아래층에서 손님을 받도록.”
“네, 주인님.”
어눌한 한어로 대답한 유난은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가 술을 홀짝였다.
과연 저런 상태로 손님을 받을 수 있을까.
우리 일행을 받아들 때도 아무런 반응도 없었던 걸 생각하면···기대하지 않는 게 좋겠지.
이 층도 일 층과 사람이 없는 것만 빼면 다를 건 없었다.
끈적한 바닥과 먼지 쌓인 탁자. 그리고 사람이 앉았던 흔적이라곤 찾을 수 없는 의자까지.
“자, 앉으시지요.”
그나마 먼지가 덜 쌓인 자리에 우리를 이끈 사내의 말에, 나와 신승은 순순히 자리에 앉았다.
더러움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어차피 다른 걸 바랄 처지는 아니었으니 말이다.
“자네는 누군가? 그리고 현철이는 어디 갔지?”
제일 먼저 입을 연 건 신승이었다. 그의 질문에 사내는 짧은 한숨과 함께 대답을 꺼냈다.
“제 이름은 현옥이라 합니다. 신승께서 말씀하신 현철은 저희 아버지이시지요. 그리고 저희 아버지는···.”
사내. 아니, 현옥은 쉽사리 입을 열지 못하고 말끝을 흐리더니, 조용히 대답했다.
“···십 년 전. 불온한 사고로 인해 목숨을 잃으셨습니다.”
“허어···.”
사내의 대답에 신승은 탄식의 한숨을 내뱉었다.
“그게 사실이더냐?”
“네. 우기에 무리하게 남만 행을 시도하다가 늪에 그만···.”
“됐네. 더 말할 필요 없네.”
신승은 더 이야기를 꺼내려던 현옥의 입을 막았다.
“안 좋은 기억을 억지로 떠올리게 하여 미안하네.”
“아니요, 괜찮습니다. 벌써 오래전 일이니까요.”
현철은 그리 말하며 씁쓸한 미소를 입가에 그렸다. 이미 과거에 흘려보냈지만, 마음 한구석에 여전히 남아 있는 고통을 삭이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런데 이분은···?”
더 슬픈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는 듯 현옥은 이야기의 주제를 내 쪽으로 돌렸다.
그의 물음에 신승은 내 어깨를 두드리며 답했다.
“내 일행이네. 제자는 아니지만, 그만큼 아끼는 친구지.”
신승의 대답에 현옥이 감탄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신승 같은 절대 고수에게 인정받는 사내라니···이런 생각을 하는 표정이었다.
제자처럼 아끼는 사람이라···뭐, 제자 부럽지 않게 부려 먹히긴 했지.
이번 일에서 마부이자 물주의 역할을 맡고 있던 나는 신승의 말을 담담히 받아들였다.
“그건 그렇고, 여기 오신 이유는 역시···.”
“그래, 서찰에 적어 보낸 그대로···그리고 자네가 예상하는 그대로네.”
“후우···.”
제발 그 말은 나오질 않길 빌었던 것마냥 현옥은 신승의 대답에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정말로 가셔야겠습니까?”
한참을 주저하던 현옥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남만우림은 여러분이 아는 평범한 길이 아닙니다. 죽음으로 향하는 구렁텅이지요. 그것도 아주 느리고, 길고 긴 죽음.”
그리 말하는 현옥의 눈에는 짙은 증오와 두려움이 엿보였다.
으득. 그런 공포를 이겨내려는 듯, 현옥은 이를 악물며 말을 이어나갔다.
“남만우림에 대해 중원에서 첫째가라면 서러울 아버지도 단 한 번의 착오로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수많은 상품. 자신을 믿고 따르던 가신들. 그리고···당신의 목숨까지.”
“아버지께선 상행 중에 변고를 당하신 겁니까?”
“가문의 사활을 걸 정도로 어마어마한 상행이었지요. 만약 성공만 한다면 전국에서도 손꼽힐 상단이 될 만큼 대 상행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결말은 직접 말하지 않았지만, 이미 그 이후에 벌어진 일은 모두 알고 있었다.
“···이제 저에게 남은 건 여기 이 낡아빠진 객잔 하나뿐입니다.”
상행의 실패는 그저 거기 있는 물건을 모두 잃는 거로 끝나지 않는다.
거기서 목숨을 잃은 일꾼들에 대해 보상도 해야 하고, 상품에 대한 위약금도 물어야 한다.
상단의 사활을 걸었다는 건 그 만큼 대형 상행이라는 뜻.
이미 상행 실패로 큰 충격을 받은 상단에서 그만한 보상은, 곧 목숨을 끊는 마지막 일격과 다를 바 없었다.
“하물며 지금은 우기입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창문 너머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아무리 고개를 들어도 그 끝을 알 수 없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먹구름이 남만우림 위에 떡 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저희 아버지가 상행을 나가셨던 때도 딱 저만한 크기의 먹구름이 끼어 있었지요.”
“그 우기는 얼마쯤 이어지지요?”
내 질문에 그는 다시 고개를 우리 쪽으로 돌렸다.
“이제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하니 최소 두 달. 길게는 넉 달까지 이어집니다. 우기에 들어가면 반 시진마다 폭우가 쏟아지고 그치기를 반복하죠. 전만 해도 평평한 땅이 끈적한 늪이 되고, 깊은 호수가 되며, 흐르는 강이 됩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피해 옆으로, 옆으로 계속해서 빠지다 보면···미아가 되는 것이지요. 끝없는 숲에 가려져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지옥의 미아가요.”
이야, 확실히 여기 사는 사람이라 그런지, 섬서에서 듣던 것보다 훨씬 생생하게 들리네.
[야, 그래도 나 정도면 이야기 잘하는 편 아니냐?]
내게 우림에 관해 이야기를 전해줬던 화순이 뾰로통한 얼굴로 내게 말했지만, 나는 그걸 싹 다 무시한 채 그를 바라보았다.
“이야기는 잘 알겠네.”
첫 질문 이후로 입을 열지 않던 신승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허나 그런 상황이더라도 우리는 남만행을 포기할 순 없네.”
뭐, 예상했던 대답이다.
신승 또한 절대 물러날 수 없는 이유가 있었으니 말이다.
“이미 남만의 천기가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네. 두 달을 넋 놓고 기다릴 순 없네.”
신승은 예언자나 점쟁이나 아니다.
그가 천기가 흔들렸다고 하는 그만큼 큰 사건이 진행되기 직전이나, 아니면 이미 터진 이후란 소리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아무 의미 없이 두 달을 가만히 있겠다?
만약 그럴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이렇게 직접 찾아올 리도 없었다.
신승의 단호한 말에 현옥은 인상을 쓴 채 무언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침묵 속에서 긴 시간을 고민하던 그는 품 안에서 한 장의 종이를 꺼냈다.
그가 보내왔던 서찰과는 비교할 수 없는 튼튼하고 고급스러운 재질의 종이는 몇 번을 접힌 상태에서도 그의 몸통만큼이나 커다랬다.
펄럭, 펄럭.
마치 대붕의 날갯짓 소리처럼 커다란 종이 펴지는 소리. 펼치면 펼칠수록 두 배씩 커지던 종이는 탁자가 모자라 바닥에 두어야 할 정도였고, 끝까지 폈을 땐 탁자 네 개보다도 더 넓을 지경이었다.
“이건···?”
“남만우림 전체 지도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이십 년은 넘은 거지만요.”
알아볼 수 없는 온갖 해괴한 기호가 가득하다 했더니 역시 지도였나?
황실의 법도를 따지자면, 관의 허락 없이 지도를 제작하고 배포하는 건 본디 금지되어 있다.
그 이유는 바로 국가 방위.
병법의 기본이 지리를 아는 것이라는 걸 생각하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정식 기호’를 사용한 지도에만 한할 뿐. 자신들만 알아볼 수 있는 기호를 사용하는 지도는 딱히 잡지 않았다.
물론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꼬락서니였지만, 중원 전체로 물류를 운송하는 상단에서 지도 없이 움직이는 건 불가능했으니 어쩔 수 없었다.
그 때문에 상단에서 보유한 지도 같은 건 자신들만 알아볼 수 있도록 독특한 기호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정보 요원으로서 지도 읽는 방법 정도야 알고 있던 나도 이것이 지도인지 알아볼 수 없었다.
“아마 지금은 많은 부분이 변해 있을 거고, 거기에 우기라서 안전한 땅도 맞는지 아닌지 모르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단 괜찮을 겁니다.”
“이런 귀한 걸 그냥 주신다는 말씀입니까?”
“먼 길을 오신 손님을 어찌 맨손으로 떠나보내겠습니까? 그리고 아무리 보물이라지만 사용할 수 없는 사람에겐 그저 쓰레기일 뿐이지요.”
피식, 그는 잠깐 말을 끊고 이빨 사이로 웃음을 내뱉었다.
“지금의 저처럼 말입니다.”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수염을 비쩍 마른 팔로 쓰다듬던 현옥이 씁쓸한 목소리로 말했다.
“알아보기 힘든 기호는 제가 알려드리겠습니다. 어려운 건 없으니 사흘 정도면 모두 익히실 수 있을 겁니다.”
“그 정도라면 괜찮네. 우리가 타고 온 말이 생각보다 빨라서 예상했던 것보다 며칠은 일찍 왔으니 말이야.”
“알겠습니다. 그럼 오늘부터 바로 교육에 들어가죠.”
지금까지와는 달리 좀 더 쾌활한 목소리로 입을 연 현옥은 다시 지도를 접어 품 안에 넣은 뒤, 아래로 내려갔다.
그런 그의 뒷모습에서 나는 시선을 뗄 수 없었다.
그 모습은 마치 옛날의 나.
회귀 전, 모든 걸 포기한 채 마교의 정보부에서 썩어가던 나와 똑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그토록 빌고 빌었다.
딱 한 번.
단 한 번이라도 내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혹시 지금 저 사내도 그것을 바라고 있는 게 아닐까?
자신과 그 삶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만약 정말로 그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 기회.
내가 한 번 줘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