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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능으로 무림최강-66화 (66/185)

남만으로(1)

“남만에 대해서 좀 아나?”

“아뇨, 남만에 대한 정보는 중원으로 잘 안 넘어오니까요. 그저 민간에서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만 조금 아는 정도입니다.”

이 말에 거짓은 없었다.

전생에 마교 정보부에서 십 년을 넘게 살아왔지만, 남만에 대한 정보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두 국가 사이에 전쟁을 벌이고 있던 북해는 어느 정도 사정이 좋았다.

서로를 가로막는 건 추위라는 보이지 않는 벽뿐이었고, 그것도 중원에 가까운 마을이나 부족은 조금 추운 겨울 정도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덕분에 어느 정도 민간 교류도 있었고, 빙궁에서 무림 문파 간의 교류라는 명목으로 무림맹을 오갔던 적도 있었다.

많은 부분이 비밀로 남아 있긴 했지만, 그래도 북해 정도면 세외 국가 중에선 그 이름이 잘 알려진 편이었다.

하지만 남만의 경우는 다르다.

남만과 중원의 경계에 있는 수백 리 길이의 남만우림(南蠻雨林).

중원에서 나지 않는 수천 종의 식물이 자생하고, 중원에서 살지 않는 수백 종의 동물이 살아가는 생명의 터전.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세상에서 가장 두꺼운 성벽.

이 남만우림 때문에 지금까지 중원에서 남만을 침략하거나, 역으로 남만이 중원으로 쳐들어온 적이 없었다.

물론 북해처럼 민간 교류가 일어나는 건 꿈도 꿀 수 없었다.

아무리 상인이라는 족속들이 한 푼의 돈이라면 구정물도 먹는 인간이라지만, 아무리 그래도 자기 목숨 소중한 줄은 알았다.

스치기만 해도 반 각 내에 목숨을 잃는 독이 있는 식물과, 집채만 한 호랑이도 잡아먹는다는 무시무시한 거미에 대한 소문을 듣는다면 돈에 미친 전귀라 하더라도 도망칠 수밖에 없으리라.

그래서 남만에서 넘어오는 물건은 그 가격은 둘째 치더라도 어마어마하게 귀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태양적석으로 만든 창. 진양(眞陽)도 황실에서 귀하게 모셔놓을 정도니 말이다.

“놀라운 일은 아니지. 나도 천기의 흐름을 읽고, 남만에 대해 알아보기 전까진 그곳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으니까.”

내 대답에 신승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신승의 말에도 내 표정은 좋아지지 않았다.

좋아질 수가 없었다.

“천기의 흐름을 본래대로 되돌리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아무런 준비도 없이 남만으로 가는 건 너무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화경의 경지에 오른 고수와 초절정의 경지에 이른 고수로 이루어진 일행.

중원 어디를 여행하더라도 위험할 일은 없는 무시무시한 조합이었지만, 그 목적지가 남만이라면 무엇 하나 확신할 수 없었다.

내 걱정 어린 목소리에 신승은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그리며 나를 달랬다.

“허허허. 그리 걱정하지 말게. 내 지금은 뒷방 늙은이 신세라지만, 젊은 시절엔 마당발이라 불렸을 만큼 많은 인연이 있었지.”

신승의 젊었을 때라면···설사 괴승(怪僧) 이라는 별호를 가졌던 그때를 말하는 건가?

지금은 신승이라 불리며 정파 무림의 칭송을 받는 그이지만, 그도 한때는 괴팍한 중놈, 괴이한 중놈이라며 괴승이라 불렸던 적이 있었다.

결국 소림의 이름이 더럽혀지는 걸 참지 못한 그의 스승. 선각 대사에게 잡혀간 이후, 징벌동에서 오 년 넘게 참회한 끝에 결국 지금의 그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때의 인연 중 남만과 교류를 이어가는 자가 있으니, 그에게 길잡이를 요청하면 그나마 안전히 남만으로 진입할 수 있을 것이야.”

신승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강호가 좁다며 날뛰던 그때 그 시절에 만난 인연이라면 남만에 대해서도 아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지.

“그렇다면 남만 안으로 들어가는 건 어느 정도 해결이 되겠군요.”

“그렇지. 물론 그걸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지만 말이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을 낙관적으로만 볼 순 없었다.

남만우림을 지나쳐 남만으로 도착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위험은 남아 있었으니까.

남만우림 너머의 땅에 대해서 우리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그들이 북해 이상으로 한인을 배타적으로 대하는 건 아닐까.

지금 천기의 흐름을 어지럽히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저들의 땅에서 우리가 원하는 걸 얻을 수 있을까.

무엇 하나 예상할 수 없었다.

“남만으로 떠나는 건 언제입니까?”

“얼마 전 그에게 연락을 보냈네. 그가 대답만 보내오면, 그때 바로 출발할 생각이야.”

“그러면 여기까지 발걸음을 옮기신 이유는···.”

“무엇 하나 확실히 말해줄 수 있는 건 없지만, 될 수 있는 한 대비를 해달라고 말해주려고 왔네.”

신승은 진지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봤다.

정파 무림의 거두이자, 모두에게 존경받는 어른으로서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천기의 흐름을 바로잡겠다는 굳은 결심이 서려 있는 눈빛.

“···알겠습니다.”

그 눈빛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 말고는 할 수 없었다.

“일단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는 준비를 해보겠습니다. 어르신의 인맥만큼은 아니더라도, 저도 어느 정도 연락을 취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니까요. 남만에 대해 아는 사람에게 최대한 정보를 얻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그렇게 해준다니 고맙구먼.”

이야기를 다 끝낸 신승은 남아 있던 차를 모두 마신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후에 연락하겠네.”

“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사락.

신승의 가사가 살짝 흔들리는가 싶더니, 그는 어느새 방금 있던 자리에서 사라졌다.

곤륜파의 운룡대팔식(雲龍大八式)과 함께 정파 제일의 신법이라 하는 금강부동신법(金剛不動身法)을 극성까지 익힌 신승이기에 보여줄 수 있는 기예였다.

그가 떠난 후, 나는 내 앞에 있던 찻잔에 손을 뻗었다.

이야기를 듣는 동안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던 차는 이미 다 식어서 향도 나지 않고, 떫은맛만 났지만 억지로 들이부었다.

이 답답한 속을 풀어낼 수만 있다면 무엇이라도 마실 수 있었다.

[진짜 남만으로 갈 거냐?]

옆에서 나를 걱정 어린 표정으로 바라보는 화순에게 툭 뱉어내듯 말했다.

“가야지. 지금 이 상황에서 안 갈 수 있냐?”

[하지만 남만은 곧···.]

“나도 알아.”

탁!

나는 다 비워낸 찻잔을 탁자 위로 내려놓았다.

감정이 실린 탓일까. 생각보다 큰 소리가 들렸지만, 거기로 시선을 돌리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꽉 깨문 이빨 사이로 낮게 읊조렸다.

“남만이 곧···사람이 살 수 없는 지옥이 되어버린다는 걸.”

내 전생. 즉, 미래에선 남만에 대한 정보를 얻을 방도가 더 이상 없었다.

내가 회귀하기 몇 년 전.

남만은 그 어떤 생물도 존재하지 않는, 완전히 죽어버린 땅이 되어버리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바로···.

[아무리 권능이 괴물 같은 회복력을 부여해준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너를 만독불침(萬毒不侵)으로 만들어주는 건 아냐. 더군다나 그 독은 나라 하나를 멸망시킨 독이라고!]

바로 독.

그것도 아주, 아주 지독한 독이었다.

사람은 물론, 사람보다 독에 훨씬 강한 저항력을 가지고 있는 식물부터 독 그 자체로 이루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독충, 독거미같이 독을 가진 벌레까지.

그 무엇 하나 가리지 않고 모두 목숨을 잃게 만드는 끔찍한 독이 남만 전역을 뒤덮은 것이다.

“남만을 뒤덮은 독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우림을 넘어 묘강까지 덮쳤지. 명나라에서는 어떻게든 독을 막아보려 했지만···.”

당시 명나라에는 그것을 막아낼 여력이 없었다.

황제를 독살하고, 일황자를 처형한 뒤 권력을 쥐게 된 이황자와 삼황자의 내전. 그리고 그 뒤로 이어진 북해의 침략까지.

국가의 존망까지 위태로운 상황에서 멀리 떨어진 묘강을 도울 방법은 없었다.

남만을 죽인 독은 명나라의 목도 죄어가고 있었다.

내가 신승의 입에서 남만의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얼굴을 굳혔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묘강의 정 반대편에 있어 제일 안전하다 할 수 있는 마교에서도 남만을 뒤덮은 독의 위험성은 알려져 있었으니까.

“···하지만 갈 수밖에 없어.”

그렇다고 발을 뺄 수도 없었다.

이제야 겨우 내 삶을 망쳤던 그들의 실체를 밝힐 기회가 찾아왔는데, 그것을 그냥 버린다고?

나는 할 수 없었다.

신승을 만난 것도 엄청난 천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 거기에 놈들을 찾는 데 그의 도움까지 받는다?

“이런 기회가 또 언제 오겠냐고.”

[·········.]

내 말에 화순은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했다.

그도 이런 기회가 다시 찾아올 리 없다는 걸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만약 이번 기회까지 놓친다면, 그때는 놈들의 정보는 영영 얻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이미 엄청난 권력을 지니고 있었고, 거기에 끔찍한 방법으로 긁어모은 자금까지 있었다.

만약 그들이 맹의 중심 세력으로 자리 잡는다면, 이제 내가 그들에게 복수할 방법은 전무.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그렇게 될 바에는.”

으드득.

“내 목숨을 태워서라도 놈들을 잡는 방법을 택하겠어.”

지금 이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이미 알고 있다.

미래에서는 생사조차 불분명한 신승.

그의 마지막 행보가 지금 이번 남만행이라는 걸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었다.

절대 고수조차 죽음을 면치 못하게 할 앞으로의 여행길.

하지만 나는 그것을 당당히 맞서기로 했다.

[···하, 젠장.]

내 말에 화순은 인상을 잔뜩 쓴 채 뒤통수를 벅벅 긁더니,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원하는 대로 해봐. 뭐, 네 몸뚱어리지, 내 몸뚱어리냐. 죽는 건 넌데 내가 뭐라 하겠냐.]

“···고맙다.”

불퉁한 기가 가득한 말투였지만, 그 속에 숨은 본심은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었다.

절대로 죽지 마라.

화순은 나를 향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이미 몇 년을 함께 살았는데, 그 정도도 못 읽을까.

[그럼 오늘부터 시작할 거냐?]

화순의 허락에 시시덕거리던 나는 뒤이어 이어진 화순의 말에 고개를 들고 그를 바라봤다.

“음? 뭘?”

[뭐긴 뭐야. 남만 말 안 배울 거야?]

“어···너 남만 말도 할 줄 알았어?”

[내가 몇 년을 살았는데, 북해 말만 할 줄 알겠냐? 천년 전쯤에는 남만우림이 그리 울창하지 않아서 이리저리 교류가 좀 있었거든. 그때 익혀놨지.]

진짜로?

전에 정보 수집 겸 묘강으로 갔을 때 남만우림을 실제로 봤던 나로선 도저히 믿기 힘들었다.

동료와 일 장만 떨어져도 볼 수 없는 그 울창한 숲이 천년 만에 만들어진 거라니.

[뭐, 믿고 안 믿고는 네 마음대로지만, 일단 남만어는 확실히 내 대가리 속에 있거든.]

톡톡. 자신의 머리를 두드리는 화순의 입가에는 흐릿한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아, 기억났다, 저 미소.

내가 북해의 말을 배울 때와 똑같은 미소.

[오늘부터 다시 한번 지옥의 언어 습득 서당. 시작해볼까?]

···혹시 남만으로 간다는 걸 순순히 받아들인 게 이것 때문은 아니지?

[자, 그럼 간단한 인사말부터 시작해볼까? 한어로 안녕은 남만어로···.]

젠장, 맞구만.

내 말을 싹 무시한 채 입을 여는 화순을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에는 또 얼마나 화순의 입이 멈추지 않고 이야기를 쏟아낼까.

걱정이 가득한 생각과는 달리, 귀와 정신은 화순의 말을 모두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미 떠나기 위한 준비는 시작되고 있었다.

*****

그로부터 한 달 뒤.

나는 표국주실에 앉아 화순의 앞에서 말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은 중원에서 흔히 사용하는 한어와는 거리가 멀었다.

어찌 들으면 노래처럼도 들리고, 또 어찌 들으면 그냥 횡설수설하는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그 안에는 있는 말에는 하나하나마다 모두 뜻과 의미가 담겨 있었다.

내가 한 달간, 그 누구와 대화도 나누지 못한 채

“···이 정도면 됐냐?”

남만어로 말하는 걸 멈추고 다시 한어로 화순에게 묻자, 그는 이마를 찌푸린 채 턱을 쓰다듬고 있었다.

제발, 제발, 이번에는 통과 좀 시켜줘!

[좋아, 그 정도면 되겠네.]

“으아! 이제야!!!”

화순이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이자, 나는 그제야 안도하며 긴장을 풀고 의자에 몸을 맡겼다.

“이제 말하는 건 완전히 멈추는 거지?”

[그래, 이젠 더 말할 필요도 없으니까.]

화순의 지옥 언어 습득은, 간단히 말해서 화순이 끊임없이 말하는 것이었다.

근육이 아플 일도, 목이 마를 일도, 체력이 떨어질 일도 없는 화순은 정말 마음만 먹으면 일 년 내내 나에게 말을 걸 수 있었다.

실제로 처음으로 사용자에게 말을 걸 수 있었던 초창기에는 끊임없이 말을 걸기도 했고 말이지.

지금 그러지 않는 이유는 딱 하나.

‘만약 그렇게 계속해서 말했다간 권능이고 뭐고 그냥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물에 빠져 죽겠다’라는 온건한(?) 합의에 덕분이었다.

하지만 몇몇 경우에는 그런 합의도 잠시 효력을 잃는데, 지금 같은 교육이 바로 그중 하나였다.

이번 한 달간. 화순은 하루 십이 시진 쉬지 않고 한어와 남만어를 내게 말했다.

말 그대로 내 머릿속으로 정보를 들러붙는 것이다.

나도 안다. 더럽게 무식하고, 힘들고, 귀찮은 방법이라는 걸.

하지만 실제로 익혀지는 걸 어쩌겠는가.

당장 내가 북해 사람들과 아무런 문제 없이 의사소통을 나눌 수 있는 것도 이 지옥···아니, 교육 덕분이었으니 말이다.

유일한 문제라면, 화순이 말하는 동안은 나도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누기가 극히 어렵다는 것 정도일까.

덕분에 한 달간 팔자에 없던 환자 노릇이나 할 수밖에 없었다.

목이 다쳤다고 하면 그래도 대화를 안 하더라도 수상하게 보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후우, 이제야 좀 기정이와도 대화를 나눌 수 있겠···.”

쾅!

“도련님!”

이 녀석도 양반은 못되네.

이름을 말하자마자 바로 문을 열고 표국주실로 들어오는 기정이를 향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이야, 마침 딱 잘 왔네. 나 금방 목 다 나았거든? 이제 말해도···.”

“그건 기쁘지만! 지금은 더 급한 게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내게 한 장의 서찰을 내미는 기정이.

뭐야, 이 서찰이 뭐길래 이렇게 호들갑을···.

팔락.

“···이런.”

반으로 접힌 서찰을 열어보고 나서야 나는 왜 그렇게 기정이가 호들갑을 떨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역시 도련님! 소림사의 신승과도 연락을 나누시는군요!”

눈을 반짝이며 나를 찬양하는 기정이에게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소림사의 낙인과 함께 신승의 별호가 적힌 그 서찰에는 딱 한 줄의 문장밖에 적혀있지 않았다.

[그를 찾았네. 곧 함께 가도록 하지.]

그 의미는 딱 하나.

이제 떠날 시간이 되었다는 소리였다.

“···기정아.”

“네?”

한창 나를 찬양하고 있던 기정이를 향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나는 말했다.

“호위 임무. 한탕 더 뛰고 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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