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교의 습격(5)
콰앙!
삼갑자의 내공이 실린 창이 놈의 주먹과 맞닿는 순간, 거기서 생성된 어마어마한 충격파가 서로를 덮쳤다.
“크윽!”
땅이 흔들리고, 산이 떨리는 공격에 인간의 육신이 어찌 버티랴.
충격의 발생지에서 십수 장은 튕겨 나가는 몸뚱어리.
마치 군에서 쓰는 대포의 포환을 직격으로 맞은 듯, 온몸이 부서지는 것 같은 충격이 온몸에서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그런 상황에서도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다른 무인이었다면 이 통증에 몸을 겨누지 못했겠지만, 나는 다르다.
내 몸 안에 깃든 천마의 권능은 그 주인을 말 그대로 불로영생(不老永生) 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그것은 싸울 때도 마찬가지.
설사 누군가의 공격에 목숨까지 위태로울 치명타를 당하더라도 나는 순식간에 회복하고 다시 전장으로 돌입할 수 있었다.
거기에다가 방금 느꼈던 충격은 예사 것이 아니다.
초절정의 경지에 오른 나조차도 천마의 권능이 없었다면 버틸 수 없을 만한 충격. 내가 이 정도라면, 저놈은 분명히···.
[정신 차리고 앞을 봐! 공격해온다!]
뭣?!
육체가 정상적으로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나는 화순의 말에 바로 고개를 들었다.
나와 똑같이 십 수장을 떨어져 나갔던 봉두난발의 괴인이 내게로 달려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눈, 코, 입. 귀를 제외한 얼굴의 오공(五孔)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달려오는 그 모습은, 그야말로 지옥의 악귀.
자신의 고통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그저 눈앞의 먹이를 향해 달려오는 괴물이었다.
“젠, 장!”
그렇게 되자 급해진 건 내 쪽이었다.
회복하면 바로 공격을 하려 했던 계획은 이미 머릿속에서 지워진 지 오래.
지금은 어떻게든 녀석의 공격을.
파앗!
피해야 한다!
내게 돌진하기 직전, 도움닫기를 한 녀석은 공중에 떠올라 나를 향해 양발로 찍어 내렸다.
화순 덕분에 간신히 피하긴 했지만, 놈의 공격으로 인한 충격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콰과과광!!!
마치 떨어진 접시처럼 산산이 조각나는 대지. 피하지 않았다면, 천마의 권능이고 뭐고 머리가 터져나갔을 공격에 간담이 서늘해졌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 공격은 내게 또 다른 기회를 만들어줬다.
이번 공격에 너무 큰 힘을 실었던 터라, 땅에 다리가 깊이 박힌 것이다.
공격을 날린 본인도 이건 예상 못 한 건지 당황한 기색으로 어떻게든 거기서 빠져나오려고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
힘은 강하더라도, 그걸 다루는 데는 서툴다는 증거였다.
[저놈, 설마···?]
놈의 기색을 살피던 화순이 인상을 쓰며 무어라 중얼거렸지만, 그것을 가만히 듣고 있을 겨를은 없었다.
땅에 떨어져 있던 진양을 쥐고, 아직도 땅에 박혀 있는 놈을 향해 다시 한번 찔러 넣는다.
그리고 물론 그 창의 끝에는.
고고고고고!!!
강력한 와류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죽어랏!”
이놈은 절대 살려둬선 안 될 녀석이다.
이미 산채에서 실감했던 사실이지만, 지금 다시 한번 깨달았다.
이놈은 인세에 있어선 안 될 최악의 마인이라는 사실을.
단전에서 손으로, 손에서 창으로 이어진 내공의 폭풍은 여전히 땅에 박혀 있는 놈의 몸으로 향했고, 그리고 순식간에 목숨을 거두···.
콰앙!
“뭇?!”
지 못했다!
내가 와류를 찔러넣는 순간, 놈도 똑같이 팔을 앞으로 뻗었다.
겨우 주먹 하나로 와류를 버티려는 심산이냐?
어리석은 놈의 행동에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던 나는 뒤이어 벌어진 현실에 한 줄기 비명을 내질렀다.
놈의 주먹이 와류를 두른 창을 막아낸 것이다.
현실이라 믿을 수 없는 그 광경에 나는 뻗은 창을 다시 거둘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봤다.
와류가 막혔다!
지금껏 ‘현실’에서는 한 번도 없던 일에 나는 충격에 휩싸였다.
그것은 믿음. 어쩌면, 신앙에 가까웠다.
천마의 무공은 무적이다!
한때 천마의 종교인 마교에 소속되어 있기 때문일까.
그런 굳건한 믿음이 내 마음속에는 자리 잡고 있었다.
지금껏 그러지 않았던 경우는 극소수.
그것도 신승과 같은 화경 이상의 절대 고수나, 혹은···.
[···역시.]
“아아아···역시.”
이빨을 악문 채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을 이겨내려던 내 귀로 화순과 녀석이 동시에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이놈.]
으득.
이를 갈던 화순은 나와 만난 이후, 처음으로 진심으로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천마의 무공을 익혔다.]
···뭐?
“너, 좋은 냄새가 나.”
내가 화순의 말에 무어라 반응하기도 전에, 놈도 뭐라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마치 내게 없는 것이 충족되는 듯한 이 냄새. 머릿속의 안개가 점점 지워지는 듯한 이 냄새.”
번뜩!
봉두난발의 머리카락 속에 숨어있던 놈의 눈이 붉은빛을 내뿜었다.
스친 것만으로도 절절히 느껴지는 지독한 살기와 광증. 그리고 피를 향한 갈증.
그것은 짐승도, 괴물도, 악마도 아니었다.
순수한 인간의 감정.
그렇기에 더욱 끔찍하고 참혹한 존재가 거기에 있었다.
“네 살, 네 피, 네 내공, 네 영혼.”
끼기기긱.
놈의 손과 내 창이 마주친 그곳에서 기괴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가 들려오는 것은 쇠인가, 아니면 뼈인가.
“그 모든 것이, 나를 완성시켜준다.”
*****
쩡!
나는 더 버티지 못하고 창을 거둔 뒤, 뒤로 몸을 날렸다.
아까의 충격을 회복할 시간이 필요했던 것도 이유지만, 그보다도 지금 들은 정보를 정리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냥 원하는 대로 싸우면서 정보를 정리하기엔, 눈앞의 사내는 절대로 약하지 않았다.
내가 전력을 다해야만 하는 상대.
지금 저 봉두난발의 괴인은 그 정도로 강력한 적이었다.
그는 다름 아닌, 천마의 무공을 익힌 적이었으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조금 달라.]
내 생각을 듣고 있던 화순이 내 옆에서 꼭 달라 붙은 채 말했다.
그 어떤 끔찍한 광경에도 커다란 감정의 변화를 보이지 않던 화순이 진심으로 혐오의 표정을 띠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천마의 무공은 권능의 도움 없이 보통의 방법으로는 경지에 오를 수 없어. 하물며 오의까지 얻는 건 더욱 불가능하지.]
“네 말이 사실이라면···저놈은 뭐지?”
나는 저 멀리서 땅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애쓰고 있는 놈을 바라보며 말했다.
예상보다도 깊게 박힌 것인지, 놈은 자력으로 빠져나오는 걸 멈추고 주변의 땅을 마구 헤집고 있었다.
주변의 땅을 뒤집어서 엎어서 나가겠다는 속셈인 듯했다.
만약 화순의 말대로라면, 이놈은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존재여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 보통이 아닌 경우. 즉, 선천진기(先天眞氣)를 사용한 경우야.]
선천진기!
나는 화순의 말에 눈을 크게 뜨며 놈을 바라봤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각자 몸에 진기를 지니고 있다.
우리 같은 무인이 단전에다가 찬찬히 쌓아 올리는 내공. 후천진기(後天眞氣)와는 다른, 인간이 본디 가지고 있는 기운.
강제로 대자연의 기를 강탈해 쌓아 올리는 후천진기와 달리, 선천진기는 인간이 본래 가지고 있는 기운인 만큼 그 힘은 강대.
마치 처음부터 그 혼자만을 위해 만들어진 무구처럼 엄청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선천진기를 사용하는 경우는 없었다.
그 사용법을 모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더 큰 이유는 선천진기를 사용하면 그 사용자의 수명이 대폭 깎여나가기 때문이다.
선천진기는 또 다른 말로 생명력. 말 그대로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기운이다.
그런 기운을 오직 싸우기 위해 사용한다는 것이야말로 무모한. 아니, 그것을 넘어서 광기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괜히 천마의 권능이 사용자에게 끝없는 내공을 부여하는 게 아니야. 그게 없다면 천마의 무공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지.]
“하지만 천마의 무공은 오직 권능만으로 익힐 수 있는 게 아니었어? 어떻게 다른 사람이 천마의 무공을 익히고 있지?”
내 말에 화순은 평상시보다 더욱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천마의 이름은 하루 이틀 이어진 게 아니야. 이 땅의 역사와 함께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지. 그동안 수많은 천재가···그리고 수많은 광인이 천마의 자리에 올랐고, 그중에는 천마의 무공을 체계화하고 싶다는 놈들도 있었지.]
화순은 그렇게 말하며 조용히 하늘을 바라봤다.아쉬움과 슬픔, 그리고 회한을 담은 표정이었다.
[나는 그놈들에게 경고하려 했지만, 그런 놈 중 내 말을 들을 수 있는 놈은 없었지. 결국 천마의 무공은 서책으로 만들어졌고, 수많은 마교의 무인들이 천마의 무공을 익혔다가···결국 이렇게 광인이 되어 버렸지.]
“내가 마교에 있을 때 누가 천마의 무공을 익혔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 없는 게 바로 그 때문이었구나.”
[최근에는 극히 일부만, 그것도 해가 되지 않는 수준에서만 익히는 추세였는데, 설마 옥천이 그놈이 다른 누군가에게 천마의 무공을 익히게 만들 줄이야···.]
“하지만 이 인간에게 천마의 무공을 익히게 만든 이유가 뭐지? 일부러 이 사람을 죽이겠다는 속셈이 아닌 이상, 천마의 무공을 가르칠 이유는 없잖아.”
이 남자의 무공은 확실히 대단했지만, 이런 정신 상태로는 그 무공이 무조건 장점이라 볼 수 없었다.
아니, 오히려 자신이 소속되어 있는 곳까지 파멸시킬 수 있는 최악의 존재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내 질문에 화순은 이마에 깊은 주름을 새기며 대답했다.
[이들이 익힌 건, 천마의 권능이 없는 반쪽짜리 천마의 무공이야. 그리고 그런 반쪽짜리들은 남은 반쪽을 평생 찾아다니고.]
“잠깐, 아니, 설마···.”
방금 들었던 화순의 설명과, 아까 놈이 내뱉었던 자신을 완성한다던 그 말.
이 두 가지로 인해 나오는 결론은 딱 하나.
[그 때문에 천마의 무공을 가진 이는 본능적으로 천마의 권능을 가진 이에게 끌리지. ···놈들은 이 인간을 너를 찾는 도구로 쓰기 위해 천마의 무공을 익히게 한 거야.]
···나는 이미 마교가 어떤 곳인지 아주 잘 알고 있다.
마교의 정보요원으로서 살아온 십오년간 볼꼴 못 볼 꼴 모두 보면서 살아왔으니까.
확실히 그곳은 무섭고, 두려운 곳이었다.
강자존, 약자멸.
강한 자는 존중받고, 약한 자는 멸시 받는다.
세상에서 그보다 이 두 가지를 잘 지키는 곳은 마교 외엔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들도 선행과 악행은 구분할 줄 알았다.
도를 넘어선 죄악을 처벌할 줄은 알았다.
다른 이들이 봤을 땐 불합리하고, 이상해 보일지 모를지라도, 그들 스스로가 만들어낸 선은 지킬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 이건···.
[지금의 마교는.]
이건 내가 알던 마교가 아니다.
[우리가 알던 마교가 아니야.]
눈앞에 있는 현 마교의 타락에 대한 ‘증거물’에 우리 두 사람은 동일한 결과를 도출해냈다.
“그럼 저 남자를 원래대로 되돌릴 방법은···.”
[없어.]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내뱉은 말을 화순이 단칼에 잘랐다.
[설사 그런 방법이 있다 해도, 이미 오의를 익힐 정도로 천마의 무공을 익힌 사람이야. 지금 그는 선천지기가 아니라 천마의 무공으로 목숨을 영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그렇다면···.”
[쉽지는 않겠지만···그를 죽여줘.]
화순은 씁쓸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교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천마의 무공.
그리고 자신이 그것을 전수해주는 존재라는 것에 무한한 자부심을 가진 화순이 봤을 때, 눈앞의 사내는 그가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결과물이리라.
천마의 무공. 아니, 마교가 뒤틀린 끝에 나온 괴물.
그것이 화순이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쾅!
화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까 내가 빠져나온 곳에서 엄청난 폭음이 들려왔다.
놈이 빠져나왔다는 신호였다.
[이미 한 번 본 이상, 저놈은 네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어! 이미 한 번 네 기운을 읽어냈으니까!]
“그럼 더 피할 수는 없다는 소리군.”
어차피 피할 생각도 없었다. 나는 화순의 말에 창을 꼬나 쥐며, 내가 빠져나온 숲을 바라봤다.
쾅! 쾅! 쾅!
거대한 울림과 진동이 터져 나올 때마다 숲에 몇백 년을 살아왔을 거목이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자신을 막아서는 모든 것을 산산이 부수며 달려오는 사내.
[아까 본 바로 놈이 익힌 천마의 무공은 두 가지야. 하나는 네 창을 막아선 천마권법(天魔拳法). 그 오의는 격공(隔空). 먼 거리에서도 적을 쳐죽일 수 있는 천마의 주먹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지금 열심히 사용하면서 달려오고 있는 천마보(天魔步). 그리고 그 오의는.]
쾅!!!
그가 숲에서 빠져나오는 순간, 그의 주변에 있던 돌과 나무가 공중으로 떠올라 폭발했다.
[군림(君臨)! 보보(步步)마다 모든 것을 파괴하는 천마의 발걸음!]
쾅!!!!!
그의 몸에서 마기로 변한 선천지기가 마치 용암처럼 뿜어져 나오자, 그에 맞서 나 역시 어마어마한 내공을 뿜어냈다.
[누가 진짜 천마의 권능을 지녔는지 똑똑히 보여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