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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능으로 무림최강-63화 (63/185)

마교의 습격(4)

사정 청취는 예상보다도 일찍 끝났다.

그의 말이 하도 횡설수설했기에 원하던 만큼의 정보를 얻을 순 없었지만, 그래도 다시 조사를 시작할 만큼의 정보는 얻을 수 있었다.

“그 정도면 된 것 같구려.”

한창 이야기를 이어나가던 경칠은 내가 이야기를 끊자 공포에 질린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마치 자신이 내뱉은 이야기를 듣고, 그 짐승이 자신을 덮치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모습이었다.

“그리 걱정할 필요 없소. 당신이 봤던 그 짐승은 지금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순 없을 테니까.”

“다, 당신이 어떻게 알아. 그놈은, 그놈은 괴물이라고! 지금 우리의 대화도,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다 알아낼 거라고!”

“그건 걱정하지 마시오.”

이미 짐승의 정체를 대충 예상하던 내겐 그의 공포조차 우스울 뿐이었지만.

“그 짐승의 목을 들고 와서 직접 보여드릴 테니.”

꿀꺽. 내 말에 경칠의 눈이 세차게 흔들렸다. 그것은 마교의 광신도 앞에서 천마를 욕보일 때 보이는 눈빛과도 비슷했다.

“유 소협! 잠시만요!”

내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우리 둘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성욱이 손을 뻗어 내 손을 잡았다.

“지금부터 그 짐승을 잡으러 갈 생각입니까?”

“그렇습니다. 놈의 정확한 정체는 아직 모르지만, 그래도 어디서 출몰하는지는 알았으니 거기부터 가봐야지요.”

경칠에게서 얻은 정보 중 그나마 쓸만한 정보가 그것이었다.

물론 간다고 해도 바로 짐승과 마주칠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최소한 다른 쓸만한 정보를 얻을 순 있겠지.

내 대답에 성욱은 인상을 쓴 채 뭔가를 고민하더니, 결심한 듯 나를 향해 물었다.

“그럼 혹시 저도 유 소협과 함께 갈 수 있겠소?”

“···어떤 마음인지는 알고 있으나, 방해만 될 뿐이오.”

정인의 복수를 원하는 그의 마음을 전혀 이해하지 못 하는 건 아니다.

나도 나와 내 사형제를 죽인 신창양가의 두 사람을 복수라는 이유로 죽였으니까.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힘이 있을 때의 이야기다.

당장 나도 회귀하자마자 나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마멸검을 단칼에라도 죽이고 싶었지만, 나 자신의 약함을 알고 삼 년이란 시간 동안 힘을 길렀고, 그 뒤에야 복수할 수 있었으니까.

“절대로 방해는 되지 않겠소.”

하지만 나의 만류에도 그는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자신의 쓸모를 뽐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당신도 경칠이 말한 곳이 정확히 어딘지는 모르지 않소? 내가 이곳의 지리는 자세히 파악하고 있으니, 헤매지 않고 바로 데려다줄 수 있소.”

“나는 그 짐승에게서 내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드오. 당신이 죽을 위기에 처해도 살려줄 수 없다는 소리요. 그래도 괜찮소?”

그의 목숨까지 입에 올렸지만, 그는 여전히 결심을 바꾸지 않은 채 열정으로 번뜩이는 눈으로 내게 말했다.

“이미 결심했습니다. 그녀의 복수만 이뤄낼 수 있다면···.”

아니면, 분노와 증오로 번뜩이는 눈이거나.

“···내 목숨 따윈, 어떻게 돼도 상관없습니다.”

그 눈을 본 화순이 인상을 쓰며 나를 바라봤다.

[어이···이 인간···.]

그래, 알고 있어.

화전민들은 이미 모든 것을 잃은 사람들이다.

자신의 집도, 땅도, 심지어 한 나라의 백성으로서 국가에 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보호조차 없는 이들.

하지만 그런 이들이었기에 무엇보다 중요히 여기는 것이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자신의 목숨이오, 또 다른 하나는 자신의 가족.

···그리고 눈앞의 사내는 이미 하나를 잃었고, 그것에 대한 복수를 위해 또 다른 하나조차 버리려 하고 있다.

여기에 이젠 힘의 유무 따윈 중요치 않았다.

마치 양옆을 눈가리개로 막아 놓은 짐말처럼 앞만 보고 달려나갈 뿐.

아마 내가 여기서 또 한 번 거절하고 떠난다 해도, 자기 혼자서라도 거기로 가겠지.

그리고 먼저 도착하는 건 아무래도 이곳의 지리를 잘 아는 이 사람 일터.

이제 와서 누군가 죽는 거로 눈 하나 깜짝할 정도로 간이 작진 않지만, 그래도 살릴 수 있는 사람을 그냥 버리고 갈 냉혈인도 아니다.

어쩔 수 없네.

“···길잡이만 하고 바로 떠나시오. 지금부터 당신과 내가 갈 곳은.”

내 말에 성욱의 목울대가 꿈틀거렸다.

오직 복수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내게 그리 말을 하긴 했지만, 아직 두려움이 있다는 증거였다.

“당신이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 없을 지옥 같은 광경이 펼쳐질 테니까.”

*****

“여기오? 그 ‘약초밭’이.”

“그렇습니다. 저희 마을의 의방같은 곳이죠.”

성욱이 나를 안내한 곳은 수많은 약초가 자생하고 있는, 이른바 약초밭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화전민은 농사일을 쉬는 동안에는 다른 할 일이 없었기에, 각자 산에서 할 수 있는 부업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중에서 경칠이 하는 일은 약초꾼.

마을에서 꼭 필요한 수량을 제외한 잉여 생산분을 성도의 의원에게 파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그리고 그가 ‘짐승’을 목격한 것도 바로 이곳이었다.

“처음에는 헛것을 본 줄 알았지만, 아니었어! 그건 현실이었어! 일 장을 넘는 호랑이를 쳐 죽이는 그것! 그것은 진짜 괴물이었다고!”

갑작스레 나타난 호랑이의 등장에 덜덜 떨며 숨어있던 그가 본 광경은, 말 그대로 지옥의 그것과 다를 바 없었다.

일보에 땅이 울리고, 일수에 호랑이가 피를 토한다.

그것도 모자라 산군의 위엄도 버리고 도망치던 호랑이를, 먼 거리에서 죽이는 기괴한 기술까지.

내가 그 짐승을 인간. 그것도 고절한 경지에 오른 무인으로 생각한 이유도 바로 그 발언 때문이었다.

“놈은 아마 격공술(隔攻術)을 익혔을 것이오.”

“격공술? 그건 무엇이오?”

“간단히 말해서 손이나 발. 혹은 무기에서 화살이 날아간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오. 맨손에서 나갔다는 거로 보아 아마 장풍, 혹은 지풍. 혹은 권풍이겠지. 어느 쪽이건 살아있는 생물을, 그것도 생명력이 강한 맹수를 죽였다는 건 그의 경지가 고절함을 말해주오.”

“그 말은···그가 무공의 고수라는 말입니까?”

“내가 세상 모든 동물을 아는 건 아니나, 사람만 한 크기의 짐승 중 손에서 뭔가를 날려 산짐승을 죽이는 생물은 없소. 딱 하나.”

스윽.

나는 약초밭의 바깥. 경칠이 호랑이가 죽었다고 묘사했던 곳으로 움직였다.

“인간을 제외하곤 말이오.”

“무엇을 살피는 것입니까?”

“사체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지만, 그 흔적을 숨길 순 없소.”

나는 그리 말하며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작고 새하얀 백자.

그것의 입구를 막은 종이를 제거하자, 마치 뭔가가 썩는 듯한 기분 나쁜 냄새가 그 안에서부터 풍겨왔다.

“웃!”

내 옆에 있다가 그것의 냄새를 맡은 성욱이 뒤로 몇 발자국 물러섰다.

이것의 냄새를 처음 맡으면 흔히 보이는 반응이었다.

회귀 전의 나도 이런 반응을 내보였다가 교관한테 뺨을 한 대 맞았지.

물론 나는 그의 뺨을 후려칠 생각은 없었다.

“이, 이것은 뭐요? 대체 뭐길래 이런 냄새가···.”

“현장에 뿌려진 피를 찾을 수 있는 약품이오. 관이나 역사가 깊은 문파에서 사용하는 물건이지.”

혹시나 나무꾼을 찾을 때 쓸 일이 있을까, 하고 가벼운 생각으로 가져온 물건이었다.

설마 이렇게 쓰이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지만 말이다.

“피···라니, 여기에 피 같은 건 어디에도···.”

“지금은 없지만, 열흘도 전엔 있지 않았겠소?”

주르륵.

땅 위로 약품을 쏟아내자, 병 안에 있던 것보다 몇 배는 증폭된 냄새와 함께 자욱한 흰 연기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그걸 견디지 못한 성욱은 뒤로 나가떨어졌지만, 나는 거기서 꼼짝도 하지 않고 어떤 반응이 일어나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연기가 가신 뒤 나타난 그것을 보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나왔군.”

붉은색 흔적.

여기서 놈에게 당했던 호랑이의 흔적이었다.

마치 붉은색의 웅덩이처럼 이루어진 호랑이의. 정확히는 놈이 흘린 피의 흔적과, 거기서부터 이어진 붉은색 길.

그것이 숲속 깊은 곳으로 이어진 걸 확인한 후, 다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놈의 흔적을 찾았소. 다시 움직입시다.”

“아, 네!”

숲 안에서도 붉은 길은 이어져 있었다.

한 번 뿌리면 주변의 피에도 모두 반응해 붉게 물들이는 약품 덕분이었다.

“세상에 이런 기물이 존재할 줄이야···.”

“내가 속한 문파의 비전이오. 대신 흔적이 남는 시간이 반 시진 정도밖에 안 되지만, 그 정도면 놈의 흔적을 찾는 데는 충분하지.”

“허어, 아무리 그렇다 해도 그것을 쓰는 건 쉽지 않지요. 대단하십니다.”

내 뒤에서 성욱이 끊임없이 나를 치켜세워줬지만, 나는 그의 말을 거의 다 흘려듣고 있었다.

정확히는 그와 이야기를 할 겨를이 없다, 라는 게 좀 더 맞겠지만.

[풀벌레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숲이라···꼭 신승 때 같구만.]

이변을 알아챈 화순이 내 위에서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래, 신승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지. 숲이 아니라 풀밭이었지만, 그때도 이러했지.

하지만 다르다.

신승이 어떤 것도 죽이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벌레들을 잠깐 쫓아낸 거라면, 지금의 상황은 벌레 스스로가 도망친 것이니까.

생존 본능.

오직 살겠다는 일념 하나로 숲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명이 숲에서 벗어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지금부터 일어날 기괴한 일의 시작에 지나지 않았다.

우뚝.

한창 흔적을 쫓아가던 우리 두 사람은 발걸음을 멈췄다.

“이 냄새···설마?!”

“그렇소”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물은 성욱에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피 냄새···그것도 오래된 것이 아니라, 신선한 것이오.”

···설마 피 냄새에 신선하다는 수식어를 붙일 줄이야.

하지만 그 진득한 썩은 내를 맡다가 이런 냄새를 맡으니,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이 근처가 놈의 서식지···혹은 그에 준하는 장소란 소리겠지.”

꿀꺽.

성욱의 침 삼키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왔다. 곧 자신이 맞닥뜨릴 존재에 대해서 떠올리며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거겠지.

하지만 지금 내게 그의 공포를 진정시켜 줄 겨를은 없었다.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이 감정을 누그러뜨리는 데도 온 힘을 다하고 있었으니까.

공포나 두려움. 혹은 절망과도 같은 부정적인 감정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

지금 당장이라도 놈을 쓰러뜨리고 싶다는 격렬한 투쟁심과 전의.

그리고 그 두 가지의 감정을 합친 것을 아득히 초월하는 분노까지.

마치 일생의 숙적. 아니, 그것조차 넘어서는 뭔가를 눈앞에 마주한 것 같은 이 감정을 나도 어찌해야 할지 몰랐으니까.

도대체 이 앞에 무엇이 있길래 내 가슴을 이토록 떨리게 만드는가.

이런 감정, 천마의 권능을 얻었을 때조차도 느껴본 적 없는 것인데!

떨리는 가슴을 진정하며, 우리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잠시 뒤.

“여기군.”

예상대로 놈의 근거지는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것은 마치 짐승의 굴. 아니, 그 자체.

굴 주변과 깊은 곳에서부터 느껴지는 지독한 피비린내가 아니었다면, 그저 지나쳤을 만큼 원시적인 동굴이었다.

본래의 주인은 호랑이인가, 아니면 곰인가. 본래의 주인은 이미 목숨을 잃었겠지.

“···무시무시하군요.”

성욱이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마치 붉은 인주를 사방에 칠한 듯, 동굴 전체에서 일렁이는 붉은 흔적.

어디 한 군데 본래의 색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빼곡한 붉은 흔적은 여기서 얼마나 수많은 피가 흩뿌려졌는지 알려주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눈에 보이는 그런 흔적이 아닌 좀 더 추상적인 것을 느꼈다.

아니, 좀 더 직접적이라 말해야 하나.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그렇네.]

아까부터 인상을 쓰면서 주변을 둘러보던 화순이 조용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도 나와 똑같은 것을 감지한 것이다.

[이 지독한 살기 이면에 숨은 것은 바로 마기.]

씩.

웃음인지, 아니면 불쾌함인지 모를 감정을 담아 입을 비트는 화순.

[그것도 끔찍하리만치 뒤틀린 마기다.]

그의 말 대로였다.

그것의 본질은 분명히 마기.

그것도 내 무공의 근간, 천마신공과 똑같은 기운이었다.

하지만 다르다. 완전히 다르다.

마치 똑같은 약초로 사람을 살리는 약과 사람을 죽이는 독을 만들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쿵!

“유, 유 소협!”

대지를 울리는 충격과 함께 목이 찢어지라 나를 부르는 성욱의 목소리.

하지만 그가 말하기 전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

놈이 이 근처에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놈이.

“맛있는 냄새가 나.”

나와 똑같은 감정을 품고 있음을.

“네놈은···무슨 맛이지?”

“알고 싶나?”

나를 향해 미소를 보이는 봉두난발의 괴인을 향해 나는 등에 메고 있던 창을 손에 쥐며 대답했다.

“그럼 한 번 먹어봐. 물론, 네놈이 쓰러뜨린 뒤에 말이야.”

“안 그래도···.”

두우웅.

그가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서자, 마치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땅이 거세게 흔들렸다.

“그렇게 할 생각이었다!”

그와 동시에 뻗어지는 곧은 주먹.

그리고 거기에 맞서는 진양.

내 창과 그의 손이 마주하는 그 순간.

고고고고!

산 전체가 울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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