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교의 습격(3)
꿀꺽.
입안에 잔뜩 고인 침을 억지로 삼켰다.
눈앞의 광경을 보며 끈적한 침을 억지로 삼키자 구역질이 나올 것 같았지만, 억지로 참아내고 시체로 만들어진 산에 가까이 다가갔다.
시체 중 정상적인 모습으로 남아있는 건 없었다.
사지가 온전히 남아있는 시체는 없었고, 그나마 팔이나 다리 중 두 개나 남아있으면 잘 남은 축에 속했다.
대부분이 사지 전부가 날아간 채 몸만 덩그러니 있었고, 더 심한 건 얼굴까지 없었다.
[알아볼 만한 사람은 있어?]
“아니. 모두 모르는 사람이야.”
시체는 남자만 있는 건 아니었다. 얼굴이 없는 탓에 처음에는 파악하기 힘들었지만, 몸을 보고 알 수 있었다.
“산적 채에 여자가 있었을 린 없고···근처 화전민 마을에서 납치된 사람인가? 한 번 알아봐야겠어.”
[산적들은 전부 몰살당한 건가?]
“쌓여 있는 시체의 숫자를 보아하니 그런 것 같아.”
화순의 말에 대답하며 주변을 바라봤다.
제대로 관리를 하지 못해 군데군데 녹이 슨 무기가 사방에 널려 있었다.
그중 그나마 깨끗한 도끼를 발견한 나는 거기로 다가갔다.
“나무꾼을 납치한 흉수도 같은 놈이 맞는 것 같네.”
[그거 나무꾼 건 맞아? 산적 놈 중 한 놈 거일 수도 있잖아?]
“다른 무기랑 비교해봐. 버려진 지 며칠은 지난 것 같은데도 아직 날이 살아있을 정도로 꾸준히 관리가 잘 된 물건이야. 도끼를 그냥 겁주기 요도로 쓴 게 아니라, 자기 도구로 착실히 사용했다는 뜻이야. 그리고 여길 봐.”
나는 그렇게 말하며 도끼의 위쪽, 대장간에서 낙인을 박아 넣는 위치를 가리켰다.
“성 내에서 유명한 대장간의 이름이야. 산적들이 구할 방법 없는 물건이란 소리지. ···나무꾼 얼굴이라도 좀 알아보고 올 걸 그랬나.”
산적들한테 알아보면 되겠지, 라는 어수룩한 생각으로 그냥 넘어온 게 후회됐다.
···이런 걸 예상하고 찾아온다는 게 더 말이 안 되긴 했지만.
“흉수는 아마···무공을 익힌 사람이겠지?”
[그렇겠지. 수준이 삼류를 넘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무공을 익힌 산적 열을 시체로 만드는 실력자야. 무공을 익히지 않았을 린 없지.]
“그리고 그 수준이 낮은 것도 아니야. 공격의 흔적이 남아있는 부분이나, 무기가 떨어진 위치를 봐. ···산채 입구에도 가지 못했어.”
[빠져나갈 새도 없이 모두 죽였다···라는 거군.]
혹시나 생존자가 있을 가능성이라도 있었다면 찾아보려 했지만, 이런 상황이라면 생존자가 있을 리도 없다.
“산채는 전멸이라 생각하는 게 맞을 것 같고···흉수가 다시 찾아올 때까지 여기서 기다려 볼까?”
[글쎄···그건 기대 안 하는 편이 좋을 것 같은데? 시체도 방치된 지 며칠은 된 것 같고, 그놈도 네가 온걸 이미 알아차렸을 수도 있으니까.]
혹시나 하는 생각에 꺼낸 질문은 예상대로 부정적인 대답으로 돌아왔다.
“하긴···다시 찾아올 가능성이 있었다고 해도 여기서 기다리고 싶진 않다.”
[일단 근처 화전민 마을을 돌아다녀 보는 건 어때? 혹시 놈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그러는 편이 낫겠다. 그리고 이 세 사람에 대해서도 알려드려야 할 것 같으니까.”
나는 산처럼 쌓인 시체 중에서도 특히 비쩍 마른 세 구의 시체를 바라보며 말했다.
“바로 출발하자. 여기 더 있고 싶지도 않으니까.”
시체 썩는 냄새에는 어느 정도 익숙했지만, 기분 나쁜 공기에는 도저히 익숙해질 수 없었다.
근처에 있던 나뭇가지 중 하나를 집어 들어 삼매진화(三昧眞火)를 일으켜 불을 붙인 뒤, 시체 더미로 던졌다.
활활 타오르는 시체를 향해 조용히 묵례를 취한 뒤, 바로 말을 타고 그곳에서 벗어났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기이한 열기를 뒤로 한 채, 다음 목적지를 향해 박차를 가했다.
*****
저놈은 누구지?
저놈은 대체 누구길래 내 식량을 모두 불태우고 떠난 것이지?
점점 괴상한 맛이 나고, 더는 머릿속 안개를 지워주지도 않아 버려두긴 했지만, 여전히 내 식량이었다.
하지만 저놈은 그걸 먹는 것도 아니고, 그냥 태워버렸다!
대체 왜? 어째서? 무엇 때문에?
으득!
딱딱한 걸 갉아먹느라 부서진 이빨을 갈자, 향긋한 피의 향기가 입안에 가득 차올랐다.
그러자 머릿속에 가득 찬 안개가 흐릿해지며 분노가 가라앉았다.
그래, 상관없어. 저놈이 누군지, 왜 내 식량을 태워버렸는진 모르지만, 상관없어. 식량은 다시 구하면 되니까.
그래도 이왕이면···.
할짝.
저놈을 먹고 싶은걸···.
*****
“잠깐! 멈추시오!”
산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화전민 마을의 입구에서 서너 명의 장정이 농기구를 든 채 그렇게 외치며 나를 막아섰다.
외부인을 들이지 않겠다는 생각인가? ···아니, 그건 아니다.
식은땀을 흘리고, 근육을 경직시킨 걸 보아하니 이건 분노보단···공포와 두려움에 좀 더 가깝다.
이미 이들도 놈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건가.
나는 등에 메고 있던 창도 꺼내지 않고, 공격의 의사가 없다는 걸 알리기 위해 양손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리고 말했다.
“나는 당신들의 적이 아니오.”
“다, 당신이 적이 아니고 뭐고 상관없어! 그냥 우리는 조용히 살고 싶다고!”
아까 말했던 사내가 아니라, 그 옆에 서 있던 왜소한 체구의 사내가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옆에 있던 친구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사내는 눈살을 찌푸렸지만, 그래도 여전히 내가 움직일 기세를 보이지 않자 안도하며 다시 말했다.
“···지금 어떠한 연유에서 대인이 찾아오신 지는 알 수 없으나, 여기는 보잘것없는 화전민 마을입니다. 원하시는 걸 얻으시긴 힘드실 겁니다.”
“걱정하지 마시오. 나는 식량이나 돈을 구하러 온 게 아니라, 정보를 얻으러 온 거니까. 혹시 이 근처의 화전민 마을이 더 있소?”
내 질문에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던 사내들은 별 상관없겠다 생각했는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알기론 없소.”
“그렇다면 혹시 최근 여기서 행방불명된 사람이 있소?”
움찔. 이번에는 아까 질문과 반응이 달랐다.
마구 흔들리는 눈동자와 꿀꺽꿀꺽 침 삼키는 소리. 그리고 어색하리만치 경직된 반응들까지.
이미 그들의 입이 열리기 전부터 대답을 알 수 있었다.
“그, 그게 당신과 무슨 상관이란 말이오!”
“맞아! 외부인이랑은 상관없어!”
“꺼져! 꺼져라!”
마치 정곡이라도 찔린 듯 목소리를 높이는 화전민들.
[이거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한 모양인데?]
그럴지도 모르겠어. 방어기제가 생각보다 심해.
정보요원으로 살다 보면 이런 상황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밝혀져선 안 되는 정보나, 알리고 싶지 않은 정보를 캐면 이렇게 반응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으니까.
보통 마교에서 이런 경우에는 무력을 자주 사용했지만, 좋은 소식 전해주려고 온 것도 아닌데 그건 역시 거부감이···.
“모두 그만해!”
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찰나, 가운데에 서 있던 사내가 주변의 다른 사내를 막아섰다.
아무래도 그 사내가 이들 중 중심적인 자리에 있는 듯했다.
“죄송합니다. 최근 모두의 신경이 곤두서있어서 대인의 질문에 과민반응했습니다.”
“아마 행방불명자 때문이겠지요?”
“본디 화전민 마을에는 행방불명자가 자주 나옵니다. 일은 어렵고, 얻을 수 있는 건 없으니까요. 하지만 대인께서 신경 쓰실 일은···.”
“혹시 그 행방불명된 사람이 여성 둘에, 남성 하나가 맞소?”
말하던 사내의 말을 중간에 끊고 말을 하자, 모두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 그걸 어떻게···.”
“그들에 대한 소식을 가져왔소. ···안에서 이야기할 수 있겠소? 이야기가 조금 길어질 것 같아서 말이오.”
내 말에 다른 사내들은 중앙에 선 사내만 응시했다. 아무래도 중요한 선택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이 사내의 선택에 따라 정해지는 듯 했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고민한 사내는,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따라오시오. 이장님과 만나게 해드리겠소.”
화전민 마을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네 사내는 마치 진을 짜듯 내 주변을 둘러쌌다. 아무래도 외부인을 그냥 들여보낼 수는 없었기에 취한 대책인 듯했다.
벗어나려면야 어렵지 않게 벗어날 수 있지만, 어차피 싸우러 온 것도 아닌 상황에서 그럴 이유가 뭐가 있으랴.
[아이들이 생각보다 많은데? 거의 다 비쩍 마른 애들뿐이긴 하지만.]
내 위에서 주변 전경을 살피던 화순이 입을 열었다. 갑작스러운 외부인의 등장에 경계하며 집 안으로 들어가는 어른들과 달리, 아이들은 눈을 반짝이며 나를 구경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지어진 지 오래된 마을 것 같아. 아이들도 아이들이지만, 집이 허름한 걸 넘어서 많이 낡았어.
[그럼 지기(地氣)도 슬슬 다 됐겠군.]
아마 그렇겠지.
화전이란 본디 나무를 태워 땅의 기운을 억지로 끌어올리는 농사법이다.
삼 년만 돼도 땅의 기운을 다 쓰는 탓에 보통 그 땅은 더는 작물을 키울 수 없는 땅이 되고, 그래서 화전민들은 한곳에 오래 머무르지 않고 여러 곳을 전전한다.
하지만 지금 보는 마을은 아무리 봐도 최소 오 년 이상. 근 십 년은 된 듯 했다.
떠날 수 없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건가?
“다 왔소.”
한창 생각을 이어나가던 도중, 앞의 사내의 말에 나는 다시 정신을 그로 돌렸다.
주변의 집보다 조금 커다란, 하지만 허름한 건 비슷한 집 앞에 선 사내가 내게 말했다.
“여기가 이장님의 거처요. 들어오시오.”
맨 앞의 사내가 나를 집 안으로 들이자, 다른 사내들은 밖에서 가만히 문을 지켰다.
예상대로 집 안은 쿰쿰한 냄새로 가득했다.
평상시였다면 이마를 찌푸렸겠지만, 이미 더 한 냄새를 맡고 온 탓인지 그리 신경 쓰이진 않았다.
“쿨럭, 쿨럭, 쿨럭!”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제일 먼저 나를 반긴 건 마른기침 소리였다.
기침의 주인은 길게 기른 수염이 하얗게 센 노인으로, 초점이 잘 맞지 않는 흐릿한 눈으로 집 안으로 들어온 나와 사내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성욱아, 이분은 누구더냐?”
“소담이에 관해서 아시는 분이랍니다.”
사내. 성욱의 말에 노인은 반개하고 있던 눈을 크게 뜨며 나를 바라봤다.
“소, 소담이에 대해 아시오?”
“·········.”
아무래도 친지거나, 아니면 무척 가까웠던 사이였던 걸까.
제발 내게 답을 알려달라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노인에게, 나는 마음속으로 짧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저 미옥산 산채에 모여있던 시체를 보았소.”
내 말에 조금 전까지만 해도 미약한 희망을 품고 있던 노인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갔다.
“그중 여인의 시체는 둘. ···여기서 행방불명된 여인의 시체도 둘이라 들었소. 맞소이까?”
“아, 아니야, 그럴 리가···.”
도저히 내 말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듯 몇 번이고 하던 말을 반복하는 노인.
“지금 행방불명됐다는 세 사람의 인상착의를 말해줄 수 있겠소? 혹시 내가 아까 봤던 시체와 똑같은···.”
“으허허헝! 소담아! 소담아! 아이고, 소담아!”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대성통곡을 하는 노인.
그 목소리에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내 세 사람도 집 안으로 들어왔다.
“이장 어르신!”
“무슨 일입니까!”
“호, 혹시 이 인간이 설마···!”
다시 서로 시끄럽게 떠들기 시작하는 사내들을 멈춘 성욱은 세 사람에게 말했다.
“소담이가···산채에서 시체로 발견됐다고 한다.”
“뭣?!”
“지금 이장님은 그 소식을 듣고 이러시는 거야. 너희가 옆에서 함께 있어 줘. 나는 이분에게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볼게.”
성욱의 말에 사내들은 뭐라 말하기 힘든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더니,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이장에게 다가갔다.
“나가시죠. 자세한 사정은 제가 직접 듣겠습니다.”
“알겠소.”
밖으로 나가자, 방금 안에서 들린 노인의 대성통곡 때문인지 많은 사람이 집 안에서 고개만 빼꼼 내민 채 우리를 보고 있었다.
성욱이 별일 아니라는 듯 손짓하자, 그제야 사람들은 다시 각자의 집안으로 되돌아갔다.
안과 밖에 좀 정리가 되자, 성욱은 이장의 집 옆에 있던 자신의 집으로 나를 안내했다.
자리에 앉은 내게 차 대신인 듯 냉수 한 바가지를 내민 성욱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조금 전 소란은 죄송합니다. 소담이는 이장님의 하나밖에 안 남은 혈육이자···.”
목이 막힌 듯 잠깐 말을 멈춘 그는, 깊은 한숨과 함께 대답을 꺼냈다.
“···제 정인이었습니다.”
“그랬구려.”
“그녀는···어떤 상태였습니까?”
나는 둘 중 누가 소담이라는 여인인지 물으려다 다시 입을 다물었다.
둘 다 사지도 남기지 못할 정도로 끔찍한 상태였던 걸 떠올렸기 때문이다.
이런 최후를 듣는 것보단 차라리···.
“···그리 큰 상해를 입진 않았소. 다만 죽은 지 오래된 듯하여, 몰살당한 산채의 산적들과 함께 태웠소이다.”
“그랬군요···그것을 알려주려 여기까지 찾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다행히 그는 내 거짓말을 믿는 듯한 눈치였다. 그나마 다행이라는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그에게 여기까지 찾아 온 이유를 꺼냈다.
“사실 여기까지 찾아 온 이유는 그것만 말씀드리기 위해서가 아니오.”
“그렇다면···?”
“사실 여기뿐만 아니라 성도에도 한 사람이 행방불명 되었소. 이쪽 산에서 나무를 하던 나무꾼으로, 오늘로 실종된 지 칠 일이 되는 날이었지. 그의 흔적도 아까 저기서 함께 발견했소.”
“혹시···대인은 관에서 나오신 분입니까?”
내가 행방불명된 사람들을 조사하러 나온 관의 사람인 줄 알았던 걸까.
그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건 아니오. 그저 내 일과 관련이 있어서 알아보려고 한 것뿐이지. ···설마 이렇게 일이 커지리라곤 상상도 못 했지만.”
“그, 그렇군요.”
“그래서 말인데, 혹시 행방불명되었다는 세 사람에 대해서 좀 물어봐도 되겠소?”
“네. 해결에 도움이 된다면, 뭐든 말씀드리겠습니다.”
성욱이란 사내는 예상보다도 내 질문에 착실히 대답해줬다. 세 사람이 행방불명된 일시부터.
“열흘 전부터 하루꼴로 행방불명 되었다는 거구려.”
“네. 처음에는 여인 두 사람이, 그 뒤로는 사내 한 명이 행방불명 되었습니다.”
상황.
“모두 외부로 나간 사이에 변을 당했소?”
“그렇습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모두 마을 안에서만 있지요.”
그리고 목격자까지.
“혹시 최근 이상한 것을 본 사람은 없소?”
“이상한 것이라면···경칠이가 최근 기이한 짐승을 봤다고 했습니다.”
“경칠이?”
“아···아까 대인이 보셨던 친구 중 제일 키가 작은 친구입니다.”
“그 말을 더듬던 사내 말이오?”
“네···원래 용감한 친구인데, 그 짐승을 본 이후로부터 잠을 설치고, 말을 더듬더군요.”
“그에게 자세한 사정을 들을 수 있겠소? 이번 사건에 대한 단서가 필요해서 그렇소.”
“지금 데리고 오겠습니다.”
성욱은 바로 밖에 나가, 바로 옆집에 있던 작은 사내를 데리고 왔다.
“이보시오.”
아까 여러 사람과 같이 있을 때와는 달리, 셋만 남자 겁이라도 먹은 듯 손톱을 마구 깨물며 주변을 살펴보던 경칠은 내가 말을 걸자 소스라치게 놀라며 대답했다.
“왜, 왜 그러십니까?”
전형적인 긴장 상태의 사내에게 과연 원하는 대답을 들을 수 있을까. 별 기대는 하지 않은 채, 나는 그에게 질문했다.
“당신이 이상한 짐승을 봤다고 하던데, 혹시 그에 관해서···.”
번뜩!
하지만 그의 반응은 내 예상을 아득히 초월했다.
조금 전 그 덜덜 떨던 사내가 맞나 싶을 정도로 강렬한 안광을 내뿜어낸 그가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놈은 마물이야! 마물!”
움찔. 그 갑작스러운 반응에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성욱이 몸을 흠칫 떨었다.
“마물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걷는 것만으로 지축이 울리고! 앞발을 뻗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죽이는 마물이라고!”
“이, 이봐, 경칠이!”
“우리는 모두 그놈에게 목숨을 잃고 말 거야! 아아아! 나는 이미 알고 있었어! 알고 있었다고!”
목이 쉴 정도로 꿱꿱 고함을 지르는 경칠. 갑작스러운 친구의 반응에 놀라는 성욱과 달리, 나는 그의 대답 안에 숨은 정보를 놓치지 않았다.
“걸을 때마다 지축을 울린다는 건 진각을 할 줄 아는 고수란 소리요, 앞발을 뻗을 때마다 사람이 죽었다는 건 격공으로 누군가를 죽일 수 있을 정도로 심후한 내공을 가졌다는 뜻.”
“네? 그, 그 말은?”
“범인은 무공의 고수요. 그것도 한 성에서도 손꼽힐만한 고수.”
나는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경칠에게 말을 건넸다.
“조금 더 자세한 정보가 필요하오. ···그 짐승에 대해서 내게 낱낱이 설명해보시오.”
그 참혹한 광경을 만들어낸 짐승과 같은 고수. 아니, 짐승 그 자체인 놈을 잡을 수 있다는 기쁨에서 나온 미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