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교의 습격(2)
짐승 지옥이 끝난 지도 며칠이 지난 어느 날.
기정이에게 이번 달 업무 보고를 받던 나는 이야기 도중 튀어나온 단어에 인상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행방불명이라고?”
“네, 도련님.”
산골짜기에 있는 화전민 마을이나, 성도 바깥의 마을이라면 행방불명이 꽤 자주 일어난다.
산짐승이 잡아갈 수도 있고, 험한 산길을 돌아다니다 실족사할 수도 있고, 그런 경우는 적지만, 어디 흑도나 마교에서 납치를 해갈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관의 손길이 닿지 않는 영역의 이야기일 뿐.
밤낮 가리지 않고 사람이 다니는 성도 내에서 누군가 사라지는 일은 쉽지 않다.
산짐승은 말할 것도 없고, 객사를 당해도 금방 발견되니까.
납치라면 행방불명이 아니라 납치 때문에 시끄럽겠지.
“행방불명된 사람은 누구라더냐?”
“성문 근처에서 홀로 사는 나무꾼이라 합니다. 매일 새벽에 일을 나갔다가 해가 지면 돌아오는데, 친하게 지내던 성의 문지기가 매일 보던 사람이 오지 않는 걸 이상케 여겨 집으로 가보고 나서야 알았다고 합니다.”
“나무꾼이라···누구 원한 관계에 있는 사람은 없고?”
“그런 이야기는 소문에 없었습니다.”
“으음, 확실히 이상한데?”
나무꾼이라면 아까 말한 세 조건에 모두 적용되지 않는다.
매일 나무를 해오며 단련된 나무꾼을 누가 쉽게 납치할 수 있을 거이며, 어느 산짐승이 잡아갈 수 있겠는가.
호랑이 정도 되는 맹수라면 가능성은 있지만, 본디 호랑이라는 짐승은 영민한지라 먹을 것이 부족하지 않은 한 사람을 덮치는 일은 없었다.
하물며 도끼라는 훌륭한 무기까지 들고 있는 나무꾼이 그냥 당했을 리도 없다.
사고를 당했을 가능성도 없는 건 아니지만, 보통 나무꾼들은 서로 멀지 않은 장소에서 나무를 하기 마련이다.
만약 미아가 되거나 실족을 당했다면, 금방 다른 나무꾼에게 발견됐겠지.
“그런데 생각보다 이야기를 자세히 알고 있네? 아무래도 성도 쪽에서 이야기가 자주 나오나 봐?”
“사실 그것도 있긴 하지만···저희 사업에도 관련된 일이라 상황을 파악해놨습니다.”
“응?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설마 그 나무꾼이 우리 표국이랑 관련 있는 사람이야?”
“아뇨, 그건 아니지만, 그 사람이 행방불명된 위치가 문제입니다.”
“행방불명 된 위치라면 근처···아······.”
기정이의 말뜻을 알아듣고 나지막하게 탄식을 내뱉었다.
이 근처에 있는 산이라면 딱 하나.
“···우리 표행 나가는 길에 있는 그 산 말하는 것 맞지?”
“네, 그렇습니다. 도련님.”
내 말에 기정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나 했던 것이 사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왜 한참 사업 보고를 하던 중에 이런 소문을 이야기 하나 했더니, 다 이유가 있었구나.
아직 꺼내지 않고 가지고 있던 서류 중 하나를 꺼낸 기정이는 그것을 내 책상 위로 올려주고선 말했다.
“이번 사건 때문에 쟁자수들 사이에서 흉흉한 소문이 나돌고 있습니다. 마물이 돌아다니며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소문부터,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 마공을 익힌 마인이 있다는 소문까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온갖 헛소문이 성도에 나돌고 있는 판국입니다.”
표국 내에 상시 고용하는 쟁자수도 없는 건 아니지만, 보통은 표행을 나갈 때마다 임시직으로 고용하는 경우가 많다.
항시 일이 있는 직업이 아니거나, 농부처럼 한 계절을 통째로 놀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말이다.
하지만 이런 사건이 한 번 일어나면 골치가 아파진다.
“평상시보다 구인율이 얼마나 낮아졌지?”
“지금은 아직 일할 정도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사건의 여파가 가중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직 확인되지 않은 정보지만, 나무꾼 외에 화전민 마을의 약초꾼이나, 산에서 사는 사냥꾼도 행방불명 되었다는 소문도 떠돌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어디까지나 ‘잠깐 쉬는 사이에 놀기 뭐하니 돈이나 벌자’이런 생각으로 쟁자수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목숨까지 거는 경우가 많지 않다.
그래서 이런 안 좋은 소문이 돌기 시작하면, 혹시나 자신이 당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쟁자수 일을 하는 사람이 크게 줄어든다.
만약 보통 때였다면 일시적으로 표사의 비중을 높이고, 표국 내에 상시 고용 중인 쟁자수를 쓰는 식으로 메꿔보겠지만, 지금은 그것도 힘들었다.
“우리 이번 달도 표행 수가 많지?”
“네. 타 표국의 경우 안 그래도 구인난이 심각한데, 이번 일로 더욱 심해질 테니까요. 그래서 그나마 상황이 괜찮은 우리 표국으로 표행이 더욱 몰릴 듯합니다.”
지금 이 일대의 표행은 우리 표국이 꽉 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물밀 듯 의뢰가 들어오고 있었고, 지금은 정말 빠듯할 정도로 사람을 쓰고 있었다.
물론 폭풍단이 들어오고, 복삼이 총표두로 임명되면서 표사들의 전체적인 수준이 두, 세 단계 올라간 덕분에 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것도 쟁자수가 없다면 힘들다.
아무리 뛰어난 표사라 해도 혼자서 표행을 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표사의 옆에는 그들의 일을 보조해 줄 쟁자수가 반드시 필요했다.
“관에서는 어떻게 한다더냐.”
“일단 상황파악에는 나서고 있지만···쉽지 않은 듯합니다. 행방불명된 곳도 성 외부인 데다, 본디 이런 일을 조사해야 할 포교들도 먼저 나서는 이가 없다고 합니다.”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는 않다···이런 속셈이겠지.”
본디 포교들도 포졸에서 진급한 이들이 대다수인지라, 무공을 익힌 경우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래서 무인들의 싸움에도 무력으로 막기보단, 관원이라는 직위를 통해 막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그런 것도 기대할 수 없다.
지금 그들이 상대해야 할 존재가 그 직위로 막을 수 있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으니까.
그런 상황에서 관에서 조사를 끝내기를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고만 있었다간, 내가 먼저 망할 판국이었다.
···어쩔 수 없나.
조금 전까지 읽고 있던 종이를 한쪽으로 밀어 놓고 기정에게 말을 건넸다.
“기정아.”
“네, 도련님.”
“그 근처에 산적 채가 하나 있지 않았나? 이름이 뭐지?”
“그 근처라면···아마 미옥채라고 하나 있을 겁니다.”
근처에 있는 산적 채나 객잔은 모두 기억하고 있었던 건지, 기정이는 내가 묻자마자 거의 바로 대답을 꺼냈다.
“우리랑 계약한 곳은 아니지?”
“네. 채주까지 합쳐도 열 명 정도밖에 안 되는 작은 산채라, 규모가 작은 상단이나 표국만 계약합니다. 저희처럼 전국을 상대로 하는 표국은 애초에 건드리지도 않고요.”
“좋아, 그럼 괜찮겠네.”
기정이의 대답에 방 뒤쪽에 보관해 둔 무구. 진양을 꺼내 들었다.
원래라면 이놈의 옆에 철혼도 함께 있어야 하지만, 지금 철혼은 대장간에 맡겨둔 상태였다.
어디가 부서졌거나 한 건 아니고, 이번에 빙궁에서 받은 만년한철로 철혼을 보강할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내 생각대로만 만들어진다면, 지금 내가 들고 있는 진양에도 뒤지지 않는 명창이 될 것이 분명했다.
아니, 지금 내 무기 자랑이나 할 때가 아니지.
“도련님이 직접 가시려고요?”
내가 무기를 꺼내자, 무엇을 하려는 건지 알아챈 기정이가 놀란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앉아서 기다리고 있을 바엔 직접 상황을 좀 알아보려고 그런다.”
“괘, 괜찮으신가요? 지금은 그래도 관의 발표를 기다리는 편이 더 안전하지 않겠습니까?”
“그거 기다리다가 우리 표국이 먼저 망하겠다. 그리고 걱정하지 마.”
끼익, 표국주실의 문을 열면서 기정이를 안심시키려고 일부러 가벼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주인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쌔니까.”
*****
이히힝~
마왕이라는 위엄찬 이름으로 불리게 된 지금도 녀석의 힘 빠지는 울음소리는 그대로였다.
하긴, 이름 하나 바뀌었다고 울음소리가 바뀌는 것도 말이 안 되지만.
[으아! 오랜만에 외출하니까 좋네!]
그에 반해, 한동안 표국실에만 있던 나 때문에 똑같이 표국실 근처에만 갇혀 있어야 했던 화순의 목소리는 더할 나위 없이 우렁찼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오랫동안 한 곳에만 처박혀 있던 건 또 처음이었지.
[알면 좀 적당히 밖에 나가주라. 나 숨 막혀 죽는 꼴 보고 싶냐? 갇혀 지내는 건 마교의 연공실로 충분하다고!]
“그래, 그래. 이번 일만 끝나면 표행 좀 줄이고, 잠깐 휴식을 취하자.”
[좋아. 진작 그래야지.]
내게서 확답을 받아낸 화순이 기분 좋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한창 오랜만의 외출을 만끽하던(그러니까, 사방팔방 쏘다니던) 화순은 바깥 광경은 충분히 봤는지 다시 내게 다가와 입을 열었다.
[그건 그렇고 행방불명이라···세상 참 뒤숭숭 하구만. 마교와 다를 바 없어.]
“마교에 행방불명은 없긴 하지. 누가 누구한테 까불다 죽었다더라, 누구 마공이 폭주해서 누가 죽었다더라, 누가 혈기에 취해 칼을 휘둘러서 누가 죽었다더라. 모두 죽는 이야기밖에 없으니까.”
[뭐···그쪽이 더 좋지 않냐?]
“좋긴 개뿔이.”
정작 그 당사자가 될 뻔했던 사람 중 하나로써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끔찍한 기억이다.
마교가 넓긴 넓지만, 넘치는 교도 수에 비하면 좁았다.
하물며 고위층 놈들은 그 좁은 마교를 자기들은 넓게 쓰겠다고 한 사람당 수십 장은 되는 건물을 만들어서 지냈으니, 더욱 좁을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누구 하나 행방불명 되는 일은 거의 없었지만, 대신 길 가는데 부딪혔다고 화난 고수한테 하수들의 목이 잘려나갔다.
괜히 더운 한여름에도 내 방에만 콕 처박혀서 나가지 않았던 게 아니란 말이다.
[네 생각에 범인은 누구일 것 같냐? 역시 산짐승이려나?]
“혹시 모르지. 어디 대마밭이나 나라에서 인정받지 못한 불법 광산에서 부려먹으려고 납치해 간 걸 수도 있어.”
[어우···설마 그렇게까지 할까?]
나도 설마 그럴 리 없다, 하고 딱 잘라 말하고 싶지만···.
정보요원으로 살면서 봤던 세상의 어두운 부분은 그것보다 더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산적 채를 찾아가 보려는 것도 그것 때문이야. 자기 규모를 속이면서, 뒷구멍으로는 그런 짓을 벌이는 산적 놈들도 종종 있으니까.”
[만약에 아니면?]
“그래도 내가 찾을 수 있는 인간 중에 이 근처 상황을 가장 잘 아는 놈들이니까. 최소한 아무런 도움이 안 되진 않겠지. ···겸사겸사 산적 채 하나 날려버리는 것도 나쁘진 않고.”
[그거 괜찮네. 너도 빙정의 힘을 얻고 난 뒤로 싸운 적이 거의 없잖아? 이번에 한 번 힘 좀 써보라고.]
“그게 말이 되냐, 해봐야 삼류나 겨우 벗어난 산적들한테 힘은 무슨···읏!”
화순의 말에 대답하던 도중, 갑자기 뇌리를 찌르는 지독한 냄새에 코를 막았다.
피비린내보다 더욱 끈적하고, 음식 썩는 냄새보다 더욱 기분 더러운 냄새.
그리고 나는 이 냄새의 정체를 알고 있다.
그 옛날 전장에서 맡아봤던 가장 최악의 냄새.
해가 떠도 추위가 가시지 않는 북해의 전장에서 딱 한 번, 기이할 정도로 후텁지근하던 그때 벌려졌던 커다란 싸움.
서로가 깊은 상흔만 남았던 전쟁 이후, 누구도 그 흔적을 지울 생각을 하지 못했다.
두 진영 모두, 죽은 자를 신경 쓰기보단 살아서 고통받는 자를 구하는 걸 우선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름 뒤.
우리는 그 대가를 받아들여야 했다.
답답한 바람 속에 섞인 바로 그 냄새.
우리가 죽이고, 우리가 버렸던 그들의 원한이 담긴 냄새.
[시체 썩는 냄새군.]
과거의 기억에 고통스러워하는 나와 달리, 화순은 듣고 있던 내가 놀랄 정도로 담담한 목소리로 냄새의 정체를 입에 올렸다.
괜히 천마의 권능이 아니라는 걸까.
그 평범한 반응에 혼란스럽던 나까지 진정되는 느낌이었다.
“이랴!”
녀석의 옆구리를 박차 냄새의 진원지를 향해 속도를 높였다.
정상으로 다가갈수록 점점 심해지는 냄새에 인상을 찌푸렸지만, 속도는 전혀 늦추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산 정상.
“·········.”
[·········.]
그곳은 말 그대로 짐승의 놀이터.
마치 먹물에 손을 넣고 마구 휘저은 듯 사방에 묻은 피와, 놀다 질린 것처럼 던져놓은 사람의 팔다리.
그리고 그 산채의 중앙엔.
“사람이 한 짓···이겠지?”
[···아마도.]
썩어가는 시체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