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교의 습격(1)
“그럼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네, 빙궁주님에게도 인사 전해주십시오. 좋은 선물을 받았다고요.”
“알겠습니다. 빙궁주님도 더할 나위 없이 기뻐하실 겁니다.”
내게 만년한철을 선물한 후 빙궁 일행은 바로 북경으로 향했다.
얼굴만 보고 바로 선물 주자마자 떠나는 건 자기들도 조금 아쉽지만, 사실 북경으로 향하는 것도 많이 늦었다더라.
하긴, 예정에도 없던 말을 이만큼 끌고 왔는데 늦지 않으면 그게 더 말이 안 되지.
“도련님!”
빙궁 일행을 배웅하자마자 기정이도 표국으로 돌아왔다.
“그래, 일은 전부 다 처리했느냐?”
“네. 근처 객잔과 마방은 물론, 마구간을 보유하고 있는 장원에서도 흔쾌히 저희 요청을 들어주었습니다.”
“좋아. 보관료와 여물값은 확실히 책정해 주는 것 잊지 말고.”
“알겠습니다. 그리고 유가장에서도 얼마 정도 맡아주겠다고 했습니다. 곧 사람이 나와서 가능한 만큼 이끌고 갈 겁니다.”
“그거 다행이구나. 그 정도라면 이곳도 어느 정도 정리가 되겠지.”
아무리 많은 수라지만, 한 도시 내 모든 마구간에 나눠 보관하면 보관하지 못할 리가 없다.
물론 어느 정도 돈이 나가긴 하겠지만, 그래도 얻은 것에 비하면 미미한 정도다.
“연락을 보내는 건 어떻게 됐느냐?”
“원래 다른 곳과 계약되어 있던 전서응을 빌려서 보냈습니다. 위약금까지 포함하여 곱절의 돈이 들었지만, 그래도 며칠 후면 연락이 닿을 겁니다.”
“그래, 잘했다. 이런 상황에는 돈을 아끼면 안 되지.”
“도련님의 가르침 덕분입니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 돈 아낀답시고 전서구에 한 줄만 보냈던 일을 혼냈던 적이 있었지.
그래도 하나를 가르쳐 주면 그걸 잊지 않고 다음에 확실하게 적용할 줄 아니, 가르치는 보람이 있는 녀석이다.
“그럼 연락이 사흘 정도 뒤에 당도할 걸 생각하면···오실 때까지 한 달 정도는 걸리시겠군.”
기정이의 성장에 기뻐하는 한편으로도 내가 할 일은 잊지 않았다.
“지부장을 포함한 표국의 간부들에게 다음 달은 일정을 전부 비워두라고 전달해 두도록 해라. 그분의 대리인이 언제 오실지 모르니, 우리가 대기하고 있어야지.”
“네, 확실히 전해두겠습니다.”
히히힝~!
기정이의 대답과 동시에 저 멀리서 들려오는 우렁찬 울음소리.
앞으로 한 달은 저 울음소리에도 익숙해져야겠구만.
전혀 예상치 못한 이득과 그로 인해 고통받을 한 달을 생각하며, 다시 건물 안으로 돌아갔다.
*****
그로부터 한 달 뒤.
표국 회의실의 문을 열자, 나를 기다리고 있던 십수명의 사람들이 일어서서 나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오셨습니까, 표국주님!”
“그래, 모두 모여줘서 고맙네. 한 달간 모두 고생했어.”
내 말에 특히 많은 수의 말을 수용하고 있던 몇몇 지부의 지부장의 눈가가 촉촉해지는 것이 보였다.
하긴, 전장에서 말들이랑 누구보다 가까이서 굴렀던 나조차도 고생했는데, 말이랑 가까워 본 적 없던 지부장들이야 고통스럽기 그지없었겠지.
“저는 별로 힘들지 않았습니다.”
“그러게. 나도 마치 고향 온 것처럼 편안했는데 말이지.”
···나보다 계급은 낮을지언정 더 오랫동안 전장에서 구르고 있던 두 놈은 제외하고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표국 휘하 기병 부대 하나 창설해서 굴리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라고···.”
“크흠! 총표두의 말은 무시하게. 그냥 헛소리니까.”
복삼이 놈의 말에 얼굴이 파랗게 질리는 몇몇 본점 간부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바로 녀석의 말을 잘랐다.
“애초에 무림 문파도 그 정도 무력 가지면 척결 대상이 되는 판국에 지금 한낱 표국에서 기병 부대를 만들 생각은 전혀! 없으니 걱정할 필요 없네.”
“에이, 뭐 그 정도야 그분만 잘 설득하면···.”
“적당히 해라, 이 녀석아.”
“넵.”
점점 더 선을 넘으려는 복삼을 기파까지 보내며 멈췄다.
여기서 더 말하면 진짜 그만둘 사람 나올라.
그만큼 말 때문에 한 달간 고생한 사람이 많다. 물론, 나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하지만 그 고생도 오늘로 모두 끝일세. 이제 그걸 모두 구매해주실 분이 나왔으니까.”
“그, 그걸 모두 말입니까? 그게 가능합니까?”
본점 창고관리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질문을 던졌다.
물론 저 말을 다 보낼 수 있다는 말은 기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영 믿기 힘들다는 눈치였다.
직접 말을 꺼낸 이가 그였을 뿐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표정인 건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대충 누가 올지 알고 있는 장일과 복삼. 그리고 내 말이라면 콩 심은 곳에 팥이 나온다는 말도 믿을 기정이나 믿는다는 표정이었다.
뭐, 내 말을 믿지 못한다고 그들을 탓할 순 없었다.
말을 한두 마리도 아니고, 몇천 마리를 한 번에 구매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있다면 나도 ‘이 새끼가 나한테 사기를 치려는 구나.’하고 생각할 테니까.
하지만 그 사람이 어느 높으신 분이라면 어떨까?
그것도 명나라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권력자라면?
끼이익.
회의실의 입구가 열리자,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하자,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모두에게 소개하지. 이번에 우리 말을 구매해주시기로 한 고객분.”
문 너머에서 나타난 건 건장한 체격을 지닌 노년의 장군이었다.
허나 흔히 볼 수 있는 다른 장군들과는 조금 다르다.
흔히 자신의 권력을 자랑하기 위해 화려한 예장용 갑주를 입은 다른 이들과는 달리, 지금 그는 전장에서 흔히 사용하는 편안한 갑주를 입고 있었으니까.
다른 이들이 보면 ‘계급이 낮은 사람인가?’ 하고 생각하겠지만,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몸은 여기 있을지 몰라도, 마음만은 항상 전장에 있음을 잊지 않기 위해 저런 갑주를 입고 있음을.
“명나라의 대장군님일세.”
“허허, 모두 오랜만이구만. 그동안 잘 지냈나?”
내 대답에 충격을 받은 듯, 반응조차 하지 못하는 다른 이들과 달리, 얼굴을 보자마자 고객의 정체를 알아차린 장일과 복삼은 빠르게 고개를 숙였다.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대장군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허허, 이제 다 전역한 사람들이 뭐하러 그리 고개를 숙이나. 그냥 편히 있게나, 편히.”
오랜만에 두 사람의 얼굴을 본 것이 퍽 반가웠는지, 대장군의 입가에는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군에 있었던 거로 유명하던 두 사람의 반응에 반신반의하던 다른 간부들도 자세를 바로 했다.
지금 눈앞에 있는 노년의 장군이 진짜 대장군임을 안 것이다.
“먼 걸음을 하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오시는 길은 편안하셨습니까?”
“허허허, 아무리 길이 험해도 궁궐 안에 갇혀 있는 것만 더할까? 자네가 불러준 덕분에 바깥바람도 쐬고 좋았네. 고맙구만.”
“아닙니다. 이런 갑작스러운 요청에도 와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렇게 말하긴 했지만, 나도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대장군 본인이 직접 오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
당연히 대리인이나 부관이 와서 대충 말 상태보고, 이번에는 이 정도 사가고, 다음에는 몇 마리 사가고, 이렇게 할 줄 알았지.
설마 대장군이 직접 와서 ‘여기 있는 말 다 사가겠네.’ 이렇게 말할 줄 누가 알았겠냐고.
그래도 덕분에 본점은 물론 지부와 다른 곳에 맡겨놓은 것까지 모두 한 번에 팔 수 있게 됐으니, 잘 됐다면 잘된 일이었다.
“오면서 말의 상태는 모두 봤네. 짐말로도, 군마로도 사용할 수 있을 만큼 튼실한 말뿐이더군. 물론 어느 정도 훈련이 필요하겠지만 말일세.”
“모두 각 부족에서 나온 북해의 명마들이니까요. 실망하실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안 그래도 최근에 규모가 늘어난 부대에서 사람은 충분해도 말이 부족하다고 난리였는데, 자네 덕분에 걱정을 덜었어. 역시 내 걱정을 덜어내 주는 건 자네밖에 없어.”
“과찬이십니다.”
옛날 생각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대화를 끝낸 뒤, 나는 회의실에 모인 간부들에게 말했다.
“데리고 온 말은 대장군님과 함께 온 군사들에게 인계하도록 하게. 이미 밑에서 전부 말을 검사하고 있을 테니,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야.”
“예! 알겠습니다!”
평상시보다 더욱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한 간부들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 밖으로 향했다.
장일과 복삼은 대장군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지 조금 주저하는 듯했지만, 내가 손짓하자 아쉬워하면서도 명령을 먼저 따랐다.
나중에 회포를 풀 시간이야 얼마든지 있을 테니까.
“자네도 그렇지만 두 사람도 참 옛날 모습 그대로구만.”
“아무래도 대장군님 앞이라 그런지 더 그런 것 같습니다.”
“허허, 그런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짓던 대장군은 내 옆. 그러니까 기정이가 앉아있던 자리에 앉은 순간 표정을 싹 바꿨다.
“그리고 이건 일황자 전하의 전언일세.”
이것이 바로 이 먼 곳까지 그가 직접 찾아온 진짜 이유였다.
대장군이라는 직위가 그냥 옛 부하 얼굴을 보고 싶다는 이유로 막 움직일 수 있는 자리일 리가 없지 않은가.
“어떤 전언입니까?”
“일단 먼저 자네 덕분에 국가의 전력을 한층 더 상승시킬 수 있었음에 고맙다고 하시더군. 그리고 군납이라 해봐야 곡물 정도밖에 예상 못 했는데, 말이라는 주요 전략물자를 팔아준 것도 무척 놀라셨다고 하시더군.”
“예···저도 놀랐죠.”
사실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등 뒤로 식은땀이 올라온다.
지평선 너머까지 이어진 짐승(말)의 행군이란, 인간에게 숨어있던 공포심을 자극하는 무언가가 있었으니까.
···정말로 다시는 알고 싶지 않은 공포다.
“그래도 덕분에 군에의 골칫거리 중 하나를 해결한 것에 대해서는 일황자님은 물론, 나도 무척 감사히 여기고 있네.”
“아닙니다. 저에게도 저 말이 골칫거리인 건 마찬가지였으니까요.”
“그리고···이건 그에 대한 보답이네.”
대장군은 그리 말하며 자신의 품 안을 뒤져 무언가를 꺼내 내게 내밀었다.
동그라며, 반짝이고, 말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 무언가.
“···이건 웬 마패입니까?”
“뭐, 딱히 대단한 건 아니네. 어차피 한동안 역참에서 구할 수 있는 말은 거의 자네가 판 말일 테니, 그걸 쓰게 해준다는 일황자 전하의 예우일 뿐일세.”
···아닌데.
···분명히 뭔가 더 있는데.
무력이 강해지면서 한동안 작동하지 않았던 정보요원의 본능이 오랜만에 신호를 보내고 있었지만, 그 신호가 내게 무엇을 알리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내게 이득인가, 아니면 손해인가.
잠깐 고민하긴 했지만, 결국 나오는 답은 하나.
“감사히 받겠습니다.”
원래 주는 건 거절 안 하는 성격이다.
어떻게 써먹어야 할지 막막하던 삼천 마리의 말도 받아먹은 놈인데, 공짜로 주는 은 마패 하나도 못 받아들일까.
물론 저 녀석···아직도 믿기 힘들긴 하지만, 전설 속의 마왕이 있는 이상 다른 말은 필요가 없었지만, 일단 주는 건 받아두는 게 낫지 않겠는가.
물론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일황자가 내린 선물을 무시하기 조금 그렇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말이다.
내가 마패를 순순히 받아들이자, 대장군도 안심했다는 표정으로 손을 털었다.
“그래, 이걸로 내가 여기서 해야 할 일도 대충 끝났군. 그럼 이제···.”
씨익, 다시 아까의 진지한 표정을 지우고 사람 좋은 미소를 지은 그는 잔을 드는 시늉을 했다.
“오랜만에 자네들 만난 기념으로 회포나 풀어볼까?”
“저야 바라던 바죠. 좋은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허허! 좋구먼! 어디 한 번 그 유명한 주공자의 접대를 한 번 받아볼까!”
“하, 하하하. 알겠습니다···.”
이제는 내 기억 속에도 잊힌 지 오래인 옛 별명에 헛웃음을 지으며, 함께 회의실 밖을 나섰다.
아주 긴 밤이 될 것 같다는 기이한 예감과 함께.
*****
이곳은 어디인가.
···떠오르지 않는다.
나는 왜 이곳에 있는가.
···떠오르지 않는다.
나는 누구인가.
···떠오르지 않는다.
우드득, 우드득, 우드득.
나도 모르는 새 손에 잡힌···하얀···무언가를 입안에 마구 집어넣는다.
비릿한 향기가 온몸을 채울수록 점점 마음이 안정되는 것이 느껴지지만, 그것도 한순간뿐.
곧 다시 머릿속을 채우는 붉은 안개에 다시 정신을 잃는다.
조금이라도 더 큰 걸 먹다 보면 기억이 떠오를까?
···모른다. 조금 전 잡았던···노랗고, 검고, 큰 것···을 먹었지만, 여전히 떠오르는 건 없었다.
아냐, 떠오른다. 떠오르는 게 있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붉은 안개 속에서 떠오르는 누군가의 얼굴.
“너는···마의 무···수 있···.”
“대신···함께···놈···찾아···.”
그리고 목소리.
그는 대체 누구지? 그리고 내게 뭘 원하는 걸까?
하지만 그런 생각도 곧 점점 진해지는 붉은 안개에 가려 사라진다.
아아! 더! 더 필요해! 이런 것 따위가 아니라, 붉은 안개를 지울 수 있는 더욱더, 더욱더 큰 것이!
“꺄아아악!!!”
갑자기 내 눈앞에 나타나 울음소리를 내는···살구색의 무언가.
···저거라면
저거라면 이 안개를 모두 지울 수 있을까?
그래.
시도해볼 가치는 있다.
저것만 먹으면 이제 알 수 있다.
여기가 어딘지.
내가 왜 여기 있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누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