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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능으로 무림최강-57화 (57/185)

발전하는 표국(1)

이히힝~

“···너는 네 울음소리는 고쳐볼 생각 없냐? 다른 말들처럼 좀 우렁차게 히히힝! 이렇게 말이야.”

이히~

“···그래, 네 마음대로 해라.”

평상시보다 더 힘 빠지는 녀석의 울음소리에 절대 그럴 생각이 없다는 걸 알고 목이나 쓰다듬어줬다.

이놈, 은근히 사람 말을 알아듣는 것 같기도 한 것 같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묘하단 말이지.

[모르지. 사실은 엄청나게 대단한 말이거나 그럴 수도 있잖아?]

음···이 녀석이?

화순의 말에 목을 쓰다듬는 걸 멈추고 안장 위에서 녀석과 눈을 마주쳤다.

권능 덕분에 한숨도 쉬지 않고 강행군을 달릴 수 있는 나 때문에 이 녀석도 덩달아 함께 매일 쉬지 않고 나를 등에 업은 채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힘든 기색 하나 없이 열심히 달리고 있는 건 분명 대단한 일이 맞다.

맞긴···한데······.

이히힝~

···귀 기울여서 듣지 않으면 들리지도 않는 이 기괴한 울음소리를 듣다 보면 그런 생각도 싹 사라진다.

당장 이 녀석을 열심히 타고 다니는 나도 이 녀석이 그냥 들판에 널려 있는 놈 중 한 마리였다면 타고 다니지 않았을 것이다.

추운 북해의 겨울. 당시 총사령관이었던 대장군을 구하러 나왔던 그때, 그가 한 발자국도 더 걸을 수 없을 정도로 지쳤던 그때, 이 녀석이 홀연히 나타나지 않았다면 나도 대장군도 살아남지 못했겠지.

주인 쪽팔리게 만드는 짓은 다 하고 있는데도, 이 녀석을 살려놓고 타고 다니는 건 다 그런 이유가 있었다.

“···그러니까 제발 암말 좀 작작 임신시키라고, 이 자식아.”

이히힝~

내 말을 알아듣긴 한 건가, 이 녀석. 아니면 알아듣고도 싹 무시하는 건가.

함께 몇 년을 살아왔지만 여전히 속내를 읽을 수 없는 녀석의 갈기를 쓰다듬으며 발을 재촉했다.

*****

그 시각. 섬서성의 현정표국 본점은.

“어이! 그 표물은 삼 번 창고가 아니라 칠 번 창고에 넣어야 한다고!”

“이번 표행에는 쟁자수 다섯 명과 표사 한 명이면 충분할 듯합니다.”

“사천 제이 지부 건설 자재들은 어디에 둘까요?”

각자 맡은 일을 열심히 처리하고 있는 직원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처음 세울 때만 해도 둘밖에 없던 현정표국은 이제는 섬서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갈 만한 대형 표국으로 발전해 있었다.

그것은 신생 표국이라 믿기 어려울 만큼 튼실한 재정과 유가장과 깊은 관계에 있다는 이름값.

그리고 무엇보다.

“총관님. 여기 이번 구인 광고 완성본입니다. 한 번 확인해보시지요.”

“아, 고맙습니다.”

예상보다도 뛰어난 기정이의 사업 수완 덕분이었다.

팔락.

중년 사내가 건네준 종이를 위에서 아래로 찬찬히 살펴보던 기정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것을 다시 돌려줬다.

“괜찮군요. 이대로 활자소에 맡기도록 하세요.”

“예, 알겠습니다, 총관님.”

중년의 사내가 고개를 숙이고 떠나자, 기정이는 그가 들어오기 전까지 처리하고 있던 책상 위 서류에 다시 시선을 집중했다.

유현이 무림맹과 북해 때문에 고향에서 근 반년간 자리를 비운 사이 기정이는 유현이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표국을 잘 운영하고 있었다.

그것이 기정이 본래의 능력이 뛰어난 덕분인지, 아니면 섬서제일가라는 유가장의 총관이 삼 년간 밀착 교육한 덕분인지 알 수 없었지만, 어느 쪽이건 기정이가 놀라울 정도로 표국을 잘 이끌어가고 있는 건 사실이었다.

당장 표국을 세울 때만 해도 하나밖에 없던 창고도 열 개로 늘어나 있었고, 세울 계획도 없었던 지부까지 여섯 개까지 늘어나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유현에게 당당히 자랑할 만큼 표국을 튼실하게 키워온 기정이였지만, 지금 책상 위에 있는 서류를 보는 그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후우···이번 지부 건설은 조금 미뤄야 하려나.”

기정이가 지금 읽고 있는 서류는 바로 이번에 새롭게 건설할 사천 제이 지부 건설 관련 서류였다.

흔히 신생 상단이나 표국이 규모가 커졌다, 하고 자신하면 으레 지부를 세우는 성이 세 곳 있었다.

제일 첫 번째는 당연히 명의 수도이자 가장 발달한 도시인 북경성이고, 두 번째는 무림에서 가장 거대한 집단인 무림맹이 있는 도시인 하북성.

그리고 제일 마지막 성이 지금 기정이 두 번째 지부를 세우려 하는 사천성이었다.

중원에서 가장 넓은 땅이라는 지리적 이점과 다른 성과 비교해봐도 어마어마한 유동 인구. 그리고 오대세가 중 하나인 사천당문과 구파일방의 아미, 점창, 청성이 모여있기까지.

권력을 얻고 싶다면 북경으로, 명성을 얻고 싶다면 하북으로, 금을 얻고 싶다면 사천으로···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그 때문에 기정이도 다른 성에 지부를 더하는 것보다 두 번째 지부를 사천에 설치하기로 정했는데···.

갑자기 문제가 생겼다.

물론 자금이나 자재. 혹은 땅에 관한 문제는 아니었다.

돈은 유현이 벌어온 것도 아직 전부 소비를 못 했고, 자재도 창고에 가득 채워놨고, 지부를 건설할 땅도 이미 구해놨다.

지금 기정이가 고민하는 이유는 딱 하나.

“일할 사람이 없어, 사람이.”

바로 사람.

쟁자수는 물론이거니와 물건을 관리하는 서기와 창고지기. 그리고 무엇보다 표국에서 가장 중요한, 표행을 주도할 표사와 표두가 부족했다.

“지금 좀 쓸만하다 싶은 일꾼들은 모조리 다른 일을 하고 있으니···.”

근 닷새째 구인 때문에 고민하고 있던 기정의 입에서 한숨과 함께 한탄이 튀어나왔다.

잘나가던 표국 운영이 최근 구인 문제로 막히면서 생긴 버릇 중 하나였다.

성하 공주와 유현이 북해에서 동맹이라는 대성과를 이루어 낸 지도 벌써 두 달이란 시간이 흘렀다.

공주와 유현은 천천히 유랑하듯 빙궁에서 북경으로 넘어오느라 그간의 상황을 알 수 없었지만, 지금 중원은 이리저리 소란스러웠다.

갑자기 지금껏 중원을 외면하고 있던 북해에서 적극적으로 교류를 원하고 있는 것은 물론, 북방의 국경부대의 규모를 줄이는 동시에 전국에 있는 타 부대에서 일제히 모집령(募集令)을 내린 것이다.

직접 평화 협상이나 동맹이 이뤄졌다! 하고 조정에서 공문을 내린 건 아니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눈치 빠른 사람이라면 진작 알 수 있었다.

물론 거기에는 열심히 표국을 운영하던 기정이도 함께 끼어 있었고, 그 때문에 사천 제이 지부 설립을 예정보다 빠르게 진행한 것인데···.

“다른 상단이나 표국이랑 구인 전쟁을 하는 것도 벅찬데, 군이랑도 싸워야 할 지경이니 원.”

그나마 쟁자수는 단기적으로 일할 사람을 고용하는 방식을 쓸 수 있고, 서기나 창고지기는 글을 익힌 사람을 가르쳐 놓으면 쓸 수는 있다.

하지만 문제는 표사와 표두.

최근 대장군이 군의 실권을 잡으면서 높아진 병사들의 대우 때문에 군에 가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니다, 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괜찮은 실력을 지닌 무인들이 모두 군대 쪽으로 넘어가 버린 것이다.

북방국경부대의 규모가 줄어드는 만큼 거기서 일하던 사람들이 이쪽 업계로 넘어온다면 사정이 조금은 달라지겠지만, 그게 얼마나 걸릴지는 아무도 모르거니와, 범죄를 저지른 무인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소문이 있는 국경부대 출신 사람들을 쉬이 믿기도 힘들었다.

물론 지금처럼 쓸 사람 하나 없는 상황에선 그것조차 배부른 고민이었지만.

“곧 도련님이 오신다는 연락을 주신 만큼, 그 전에 일을 마무리하고 싶은데···.”

북해라는 먼 곳까지 표행을 다녀온 유현에게 오자마자 일을 떠넘기고 싶지는 않다는 기특한 마음가짐에서 나온 생각이었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역으로 본인이 마음고생을 하는 상황이었다.

쿵쿵쿵!

“총관님, 총관님!”

하아, 서류가 펄럭일 정도로 깊은 한숨을 내쉬고 있던 기정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안에 계십니까, 총관님! 긴급 사태입니다!”

“무슨 일인가요?”

“지, 지금 밖에 나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다급한 창고지기의 목소리에 기정이가 기이함을 느끼면서도 문을 열자, 새파랗게 질린 얼굴의 문지기가 그를 반겼다.

“총관님!”

“무, 무슨 일입니까?”

한 번도 본 적 없는 문지기의 표정에 기정의 목소리도 떨렸다.

지금 말을 꺼낸 문지기가 보통 사람이라면 기정이도 그리 놀라지 않았겠지만, 지금 그에게 말을 건넨 문지기는 그의 아버지와 비견될 만큼 유가장에서 오랫동안 일한 문지기였다.

그곳에서 온갖 사건은 다 겪어봤을 사람이 이렇게 덜덜 떨 만한 일이라면 대체 어떤 일이란 말인가?

“지금, 지금 밖에···.”

기정에게 보고하던 문지기가 제대로 말도 못 하고 입안에 가득 고인 침만 삼키자, 답답해하던 기정이 큰 목소리로 물었다.

“밖에 대체 무슨 일이 있길래 그러십니까!”

“백 명!”

기정의 재촉에 문지기는 마치 비명을 내지르듯 대답했다.

“백 명의 기마병이 표국 앞에 서서 표국주를 내놓으라 외치고 있습니다!”

*****

오랜만에 돌아온 고향은···바뀐 점 하나 없었다.

하긴, 삼 년 만에 돌아왔던 그때도 눈에 띄는 변화는 없었는데, 겨우 몇 개월 만에 변해봐야 얼마나 변했겠는가.

그래도 저번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북경의 의뢰 때문에 떠나야 해서 그런지, 떠난 기간에 비해 뭔가 감회가 새롭긴 했다.

[그리고 기정이한테 줄 선물도 이번에는 챙겨왔잖아.]

그래, 그것도 있지.

화순의 말에 품 안에 넣어 놨던 자그마한 상자를 꺼내 열자, 청량한 기운이 주변을 가득 메웠다.

그 안에 있는 것은 종이에 감싸진 자그마한 환 단 몇 알.

무당파나 화산파. 혹은 청성파 같은 도가 계열의 문파에서 만드는 환단 중 하나인 현청단(賢淸丹)이었다.

도가 계열에서 나오는 환단 하면 으레 태청단(太淸丹)을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그것은 만들기도 어렵거니와 재료도 너무 비싸 구경도 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현청단의 경우 그 안에 담긴 기운은 태청단보다 약할지언정 만들기도 쉽고, 재료의 가격도 저렴한지라 문파 내에서 자주 소비되는 건 물론, 종종 시장에 나오는 일도 있었다.

더군다나 무공을 익힌 사람이 아니면 그 기운을 소화하기 힘든 태청단과 달리, 현청단은 기정이도 쉽게 먹을 수 있었으니 더욱 좋았다.

“마음 같아선 무공이라도 가르쳐 주고 싶지만, 그건 불가능하니까.”

천마의 권능은 가히 만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지만, 그런 권능에도 불가능한 일은 있었고, 그중 하나가 남에게 무공을 가르치는 일이었다.

애초에 내 무공도 다른 사람 무공을 빼앗아 성장시키는 방식인데 누구를 가르치겠는가.

심지어 유일하게 가르칠만한 근력 단련 방법도 권능의 회복 능력이 없다면 제 살 깎아 먹는 행위에 불과했으니, 내가 남에게 가르칠 수 있는 건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래서 당대 천마의 제자들도 천마 본인에게서 무공을 배우는 일은 없다고 한다.

[애초에 권능은 오직 천마 본인에게만 힘을 주게 만들어진 거라고. 그 제자야 내가 알게 뭐람.]

내 생각을 읽은 화순이 불평하듯 말을 건넸다.

하긴, 이만한 기능을 갖춘 권능에게 남을 가르치는 능력까지 달라고 하면, 그게 바로 도둑놈 심보라는 거겠지.

딸칵.

나무 상자의 뚜껑을 다시 닫아 품 안으로 집어넣었다.

슬슬 표국에 도착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걸 선물했을 때 놀라는 얼굴을 보려면 내가 뭘 사 왔다는 티도 내지 말아야지.

내가 이걸 품 안에 꺼냈을 때 기정이 표정이 어떨까. 빨리 보고 싶···응?

내 선물에 놀라는 기정이 얼굴을 상상하고 있던 그때, 저 멀리 표국의 입구에서 보이는 어마어마한 인파.

아니, 사람은 얼마 안 된다. 많아 봐야 백 명이나 겨우 될까.

하지만 그들이 많아 보이는 이유가 있었으니···.

[지금 저것들 전부 말 타고 있는데?]

···그러게.

화순이 말한 대로 이들 모두가 말을 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중갑병 부럽지 않게 몸은 물론 말까지 전부 갑주를 입힌 채로 말이다.

···그런데 저거 불법 아냐? 관에서 안 잡아가나?

혹시 포쾌나 군병이 왔나 싶어 주변을 둘러보지만, 그들이 무서워서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 누구 하나 다가오는 기색은 없었다.

애초에 근처에 사람이 오지 않는다.

[아니, 당연하지! 저런 광경 보고 어떤 미친놈이 가까이 다가가겠냐고!]

하긴, 저런 거 볼 수 있는 건 전쟁터 말곤 없···어어?!

왠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그 광경에 화순이랑 대화나 하고 있던 내게 갑자기 몰려드는 백여 명의 중갑병.

뭐지? 설마 나를 위협으로 생각한 빙궁이나 황실에서 보낸 암살자들인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등에 메고 있던 두 자루의 창을 꺼내는 내게 선두의 중갑병이 외쳤다.

“대장님!”

···뭐?

내가 잘못 들었나? 아냐, 그런 것 치곤 이 목소리가 귀에 익은데···.

여기서 절대 들릴 리 없는 친숙한 목소리에 내가 고개를 일그러뜨리고 있는 사이, 어느새 내게 도착한 백여 명. 아니, 딱 백 명의 중갑병이 모두 말 아래에서 내려와 큰소리로 외쳤다.

“폭풍은!”

“영원하며!”

“폭풍단은!”

“불멸이다!”

단 한 번도 잊지 못한 폭풍단 특유의 경례를.

“너, 너희들!”

“약속하셨죠, 단장님?”

철컹. 제일 앞에 있던 두 사내가 얼굴을 가리고 있던 투구를 벗고 내게 말했다.

“일자리 준비해둘 테니, 할 일 없으면 오라고 말입니다.”

장일과 복삼.

내 군시절 최고의 전우이자 최고의 부하였던 두 사람이 웃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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