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권능으로 무림최강-54화 (54/185)

빙정(3)

[여긴 반드시 들어가야 해.]

내 옆에서 끊임없이 내가 들어가기를 종용하는 화순의 목소리를 잠깐 뒤로한 채, 나는 자야를 향해 물었다.

“당신은 대체 내게 무엇을 원하는 겁니까?”

나를 여기까지 끌고 온 장본인이자, 그 목적도, 이유도 도저히 짐작할 수 없는 그녀.

문 옆에서 나를 들어가라고 유혹하는 그녀의 진심을 들어야 했다.

“신이라 떠받들어지는 빙정을, 아무리 하얀 별의 이름을 받았다고는 하나, 나 같은 외인에게 공개하는 이유가 있을 것 아닙니까.”

“딱히 대단한 이유는 없어요. 그저 보고 싶을 뿐이죠.”

“보고 싶다···?”

“북해에서 빙정을 직접 접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시는 줄 아시나요?”

자야는 손가락을 들어 나를 한 번 가리키고.

“북해를 구원하는 하얀 별인 당신과.”

우리가 방금 떠나왔던 빙궁을 가리키며 말했다.

“북해를 떠받드는 푸른 별. 이렇게 둘 뿐이죠. 아니, 사실상 하얀 별이 외부인 중에서만 정해진다는 걸 생각하면, 북해인 중에선 오직 푸른 별밖에 빙정을 볼 수 없다는 말이나 마찬가지죠.”

자야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옆에 있는 문에 안기듯 손을 뻗어 감쌌다.

물론 문이 너무 컸던 탓에 그녀의 품 안에 들어가진 못했지만, 그녀에겐 그 정도로도 충분했던 모양이다.

그녀의 얼굴에 떠오른 만족한 표정만으로도 그것을 알 수 있었다.

“너무하다 생각하지 않나요?”

···눈 안에 번들거리는 광기만 없었으면, 좀 더 아름다워 보였겠지만 말이다.

“우리 북해를 이루는 근간이 바로 앞에 있는데도 푸른 별이 아니라는 이유로 평생 만나보지 못하는 다른 북해인이 너무나 불쌍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렇군요···안 됐다고 생각합니다.”

딱히 진심을 담은 대답은 아니다.

그냥 저런 사람을 대할 때, 부정적인 대답을 꺼내면 안 되는 걸 알기에 꺼낸 대답일 뿐이다.

어떻게 아냐고? ···마교에는 저런 놈들이 수두룩했거든.

물론.

“그렇죠?!”

···저렇게 진짜 제대로 미친 사람은 손에 꼽힐 정도밖에 없었지만.

내 대답에 눈을 반짝이며 달려오는 그녀를 보고도 뒤로 물러나지 않은 건 그 연장선에 있는 행동이었다.

여기서 물러서면 그땐 진짜 미쳐 날뛴다는 걸 알거든.

“그렇기에 하얀 별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뭐···설마 제가 안에 들어가서 빙정을 꺼내와라···이런 거 아니겠죠?”

그건 아무리 40년의 내공을 얻을 수 있는 임무라 해도 절대 들어줄 수 없는 부탁이다.

그녀의 말마따나 빙정이 정말 북해의 바탕이라 할 수 있는 물건이라면 이걸 들고 갔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거니와, 그것이 아니더라도 북해의 보물을 함부로 가지고 나온 나를 처벌하자는 말이 반드시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여기 온 기본 목적은 어디까지나 북해와 명의 평화협상이지, 빙정을 가지러 온 게 아니라고.

물론 내공이 아깝긴 하지만···대충 위치도 알아뒀으니, 나중에 시간이 있을 때 한 번 오면 된다.

시간 지났다고 있던 임무가 없어지는 일은 없으니까, 한 몇 년 지나서 북해와 명의 교류가 활발해지면 그때 조용히 와서 빙정 보고 가면 되겠지.

“아뇨, 당연히 저도 그건 바라지 않아요.”

“그건 그나마 희소식이군요.”

“물론 직접 보는 걸 원하긴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이해하지 못할 만큼 어리석지도 않거든요.”

이걸 그나마 이성이 남아 있다···라고 봐줘야 하는 건가?

모르겠다. 회귀 전 옆집 건씨 아저씨도 평상시엔 정상적이다가 천마 이름만 나오면 눈깔이 뒤집히던 사람이라.

이 아가씨도 그런 부류인지 누가 알아. 조심할 건 조심해야지.

“하지만 전설 속의 이야기를 직접 경험해 보는 건 가능하지 않겠어요?”

“무슨 전설입니까?”

“정당한 북해의 하얀 별이 빙정과 만나는 때, 빙정은 자신의 진정한 힘을 내보이리라.”

노래를 부르듯 이야기를 꺼낸 그녀는 나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제는 구전으로조차 알려지지 못한, 모두에게 잊힌 이야기일 뿐이지만요.”

“소주께선 용케 그것을 아시는군요.”

“역사에는 관심이 꽤 많거든요.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를 알고 싶으면, 서고 제일 안쪽으로 들어가면 많이 나와요. 다음에 한 번 도전해보세요.”

“기억해두겠습니다. ···그리고 소주께서는 제가 그 정당한 북해의 하얀 별이라고 생각하시는가 보군요.”

“물론이죠.”

정말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다는 듯, 내가 말을 꺼내자마자 숨도 쉬지 않고 대답하는 자야.

“만약 그리 생각하지 않았다면, 여기 당신을 데려오지도 않았을 거예요.”

“·········.”

“믿어주세요. 절대 명과 북해에 손해가 갈 이야기는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두 국가 모두에게 이득이 될만한 이야기죠.”

그게 여기로 온 원초 목적이긴 했지.

시간이 흐르면서 뭔가 많이 바뀐 것 간긴 하지만.

뭐···내게도 득이 될 이야기면 이야기지, 전혀 실이 될 이야기는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

그토록 길게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한마디 하지 않고 문만 응시하는 화순 때문에라도 들어가는 편이 좋아 보였다.

만약 내가 여기서 ‘나 안 들어갈래’라는 말을 꺼냈다간 진짜 무슨 욕을 들을지 상상도 하고 싶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결국 고민 끝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전설 속의 이야기에 나오는 주인공이 제가 맞는지, 한 번 알아보도록 하죠.”

“후후, 잘 선택하셨어요.”

스윽.

내 말에 자야는 웃으며 옆으로 비켜섰다.

드디어 아무런 방해물 없이 마주하게 된 문은 가까이서 보자 더욱 크고 웅장해 보였다.

마치 자신이 빙정을 지키는 마지막 수호신임을 만천하에 알리기라도 하듯 당당한 모습.

“하얀 별께서 손을 뻗으면 저절로 열릴 겁니다.”

잡고 열 손잡이도 없이 밋밋한 문의 형태에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내게 자야가 말을 건넸다.

그녀의 조언에 따라 손을 대자, 누군가 안에서 끌어당기기라도 하는 듯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 앞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완벽한 어둠.

“그럼 잘 다녀오세요.”

마당 앞으로 마실 나가는 아이를 마중하듯 손을 흔드는 그녀의 말과.

쿠구구구궁!

내가 들어서자마자 닫히는 문을 뒤로 한 채.

그 누구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듯 자신의 실체를 전혀 보여주지 않는 빙정의 땅으로 한 발자국 들어섰다.

*****

쿵!

번쩍!

“읏!”

문이 완전히 닫히자, 마치 태양이라도 뜬 듯 완연히 밝아지는 실내에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겨우 빛 때문에 눈이 아파질 경지는 아니지만, 지금 실내를 가득 채운 빛은 그런 눈조차도 한순간 멀게 할 만큼 찬란하고, 또 강력했다.

[저다.]

하지만 전혀 볼 수 없는 눈과 달리 귀는 옆에 있던 화순의 말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저기 빙정이 있어.]

화순의 말에 감았던 눈을 천천히 뜬다.

너무나 강렬한 광채에 아직 눈이 아릿했지만, 그래도 못 뜰 정도는 아니었거니와, 나 역시 빙정의 실체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이게 뭐야.”

내가 눈을 뜨고 본 광경은 내 예상을 아득히 넘어섰다.

“이 사람들···아니, 사람 맞지···? 사람이지?”

지평선이 보일 정도로 끝없이 광활한 지하 공간도 무척 놀라웠고, 그 중앙에서 공중에 둥둥 떠 있는 푸른색의 커다란 얼음도 한 번 본 적 없는 광경이었지만, 정작 나를 경악하게 만든 건 따로 있었다.

“전부···얼음 조각이 된 거야?”

수천? 수만? 아니, 어쩌면 그 이상?

중앙의 거대한 얼음(아마 빙정이겠지)을 중심으로 동심원을 이루고 있는 수많은 인간 형태의 얼음 조각들.

온몸을 둘러싸고 있는 얼음 때문에 본래의 색은 없이 모두 하얀색을 띠고 있었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본래 그것이 모두 인간이라는 사실을.

[범접할 수 없는 힘에 다가간 자들의 말로지.]

하지만 화순은 그것이 전혀 놀랍지 않았는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빙정은 허락되지 않은 자는 절대 받아들이지 않아. 아니, 허락된 자라고 해도 시험을 위해 자신의 힘을 끝없이 내뿜지. 힘의 범위 바깥에서 있는 인간들은 받아들여지지도 못한 거고, 그 내부에 있는 인간들은 시험을 견디지 못하고 얼어붙은 거야.]

“화순 너···너무 잘 아는 거 아냐? 정말로 여기 와 본 거야?”

[와 봤다···? 모르겠어. 나도 정말 와 본 걸까? 아니면 그저 누군가에게 들어본 걸 와봤다고 착각하는 걸까?]

설명은 잘만 나불거렸으면서 왜 정작 가장 중요한 곳에는 그렇게 헷갈리는 건데.

자신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던 화순은, 결국 그 모든 의문을 털어내 버리기라도 하듯 고개를 세차게 털고선 나를 바라봤다.

[그래서, 가까이 가 볼 거냐?]

“·········. ···젠장, 들어오기 전에는 당당히 그렇다고 대답했을 텐데.”

이런 광경을 보니 나도 확답을 내리지 못하겠다.

아니, 내 앞에서 얼어 죽어 있는 인간이 최소 수만은 되는데 어떻게 바로 고개를 끄덕이냐고.

슬쩍.

화순의 말에 대답하기 전, 뒤를 바라봤다.

자신은 열린 적 한번 없다는 듯, 굳건히 닫혀있는 거대한 문.

그래도 내가 손만 대면 아까처럼 저절로 열리긴 하겠지.

솔직히 마음 같아선 지금 당장 저 문을 열고 나가고 싶었지만···젠장.

나를 반짝이며 바라보는 화순의 눈길도 눈길이지만, 이유를 알 수 없는 불길함도 나를 막아서는 이유 중 하나였다.

지금 떠나면 다시는 도전할 기회 따윈 없다고 저기 중앙에 있는 빙정이, 내 주변을 떠도는 한기가 내게 알려주고 있었다.

한 번 도망친 자는 다시는 받아들이지 않겠다, 이리 말하고 있는 것 같다고 해야 하나.

괜히 북해에서 신으로 불리는 게 아니구만.

이성도, 지성도 없는 자연의 정화(精華)가 도망치려는 걸 막다니.

“야.”

[왜.]

“나는 괜찮은 거···맞겠지? 최소한 이 사람처럼 여기서 한 걸음 다가가자마자 얼어붙는 건 아니겠지?”

내 바로 앞에서 절망적인 표정으로 빙정을 향해 손을 뻗어 있는 얼음 조각···아니, 나와 비슷한 연배의 사내를 바라보며 화순에게 묻자, 녀석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답했다.

[그야 나도 모르지. 네가 그 인정인가 뭔가 받았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

“야, 이···말하는 본새 한 번 참 희망적이다, 이 자식아.”

[그래도 일단 문은 열어줬잖아? 그 정도면 인정했다는 거 아냐?]

그렇게 들어오자던 티를 내던 밖에서와는 달리 들어오자마자 입 싹 씻고 태도를 바꾸는 화순.

이걸 어떻게 욕을 해줘야 하나, 하고 고민하던 나를 향해 화순이 다시 입을 열었다.

[···솔직히 나도 딱 잘라 확답을 못 하겠어. 어딘가 흐릿하지만, 분명 이곳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있는 것 같아. 즉, 여기서 살아 돌아온 사람을 나는 안다는 거지.]

“문제는 그게 나한테도 적용되는 말인가, 모른다 이거지?”

[그렇지. ···사실 이건 나도 목숨을 건 거나 마찬가지야. 아니, 오히려 죽음으로 편해질 수 있는 너와 달리, 나는 이미 죽은 네 몸 근처에서 평생 이곳을 떠돌기만 하겠지. 백여 년에 한 번씩 들어오는 사람들이 죽어가는 꼴이나 보면서 말이야.]

화순의 말에 나는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여기서 내가 죽으면 나보다 화순이 더 고통스럽겠지.

권능을 가진 내가 여기서 얼어 죽어버리기라도 하면, 녀석은 평생 내 시체에 묶여 있을 거란 소리니까.

이 끝도 보이지 않는 감옥에 갇혀, 누구에게도 말을 걸지 못한 채로.

차라리 천마 옆에 있을 땐 세상 구경이라도 할 수 있었지, 지금은 그것보다 더한 상황이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난 죽으면 된다는 것처럼 말하는 건 좀 아니지 않냐.”

[말이 그렇다는 거지, 말이! 어쨌든 나도 목숨 걸고 하는 일이다, 이 말이잖아.]

“후우···그래, 알았다.”

스윽.

계속해서 나를 재촉하는 화순의 말에 결국 나는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갔다.

저벅.

문의 바로 앞에서 절망적인 표정을 짓고 있던 사내보다 좀 더 앞으로.

저벅.

검을 꺼내서 한기를 막아보려 했던 어리석은 여인보다 좀 더 앞으로.

저벅.

사람이 맞나, 하고 생각할 정도로 두꺼운 옷을 입고 있는 노인보다 앞으로.

한 사람, 한 사람 지나갈 때마다 점점 내 몸을 덮치는 한기의 강도는 강해졌지만, 몸을 움직이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당도한 빙정 앞.

목적지. 아니, 출발지에 겨우 도착했다.

내 목적은 빙정의 힘을 얻으러 온 거지, 빙정에 다가가려고 온 게 아니었으니까.

[자···.]

“간다···.”

꿀꺽. 살얼음이라도 낀 듯 쉽게 넘어가지 않는 마른 침을 삼키며, 빙정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쿠구구구궁!!!

와장창!

커다란 공동을 뒤흔드는 엄청난 충격과 함께 무너져내리는 인간으로 만든 얼음 조각들 사이로.

나는 보았다.

고오오오오!

압도적이며 거대한 빙정의 진짜 힘을.

*****

그리고 그 시각. 빙정의 땅 밖에선.

쿠구구구궁!!!

“드디어 시작했군요.”

문에 딱 붙어서 거기서 흘러나오고 있던 기운을 느끼던 자야는 천지를 뒤흔드는 진동에 미소를 그렸다.

빙궁주의 명령에 따라 자신의 어머니와 그녀의 원래 부족이 북해의 적이 되어 몰살당했던 이후로 한 번도 짓지 않았던 진심의 미소.

모든 일이 끝나기 전에는 다시는 짓지 않겠다 다짐했던 그 미소를 짓던 자야는.

쿵!

뒤에서 느껴지는 강대한 기운에 입가에 있던 웃음을 지우고 몸을 돌렸다.

온몸에서 뜨거운 열기가 깃든 새하얀 증기를 뿜어내고 있는 거대한 체구의 사내.

빙궁주를 보고 자야는 조금 전과 전혀 다른, 만들어진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어서 오세요. 북해의 푸른 별이시여.”

호흡조차 얼어붙는다는 북해의 겨울에 북해 최고의 고수가 땀까지 흘리며 자신에게 날아왔지만, 그녀는 너무나 침착했다.

아니, 아니다. 그녀는 침착한 게 아니다.

“역시 늦지 않으셨군요.”

그녀는 처음부터 예상했다.

천지를 뒤엎는 거대한 지진이 닥칠 것도, 그것을 느끼고 그가 날아오리라는 것도.

“무슨···무슨 짓을 한 거냐?”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벌린 채 자야의 옆에 있던 문을 바라보던 빙궁주의 질문에 자야는 다시 한번 웃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저 알리려는 것뿐이지요.”

“대체 무엇을! 무엇을 알리려고 이런 짓을 한 거냐!”

진심으로 즐겁다는 듯 입을 연 그녀의 모습은.

“빙정의, 그리고 북해의 진실을요.”

빙정이라는 이름의 신의 말씀을 퍼뜨리려는 교주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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