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해를 구원하는 하얀 별(3)
“크하하하하!!!”
쿠웅!
갑자기 저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광오(狂傲)한 웃음소리에 비무대 주변에 있던 이들이 모두 귀를 막았다.
머리를 마구 뒤흔드는 성량도 문제였지만, 그보다 웃음소리 안에 담긴 중후한 내공을 버티지 못한 것이 더 컸다.
그 웃음소리에 영향을 받지 않는 이들은 단상 위에 자리한 초절정의 고수들과.
씨익.
“이제부터가 진짜인가.”
비무대 위에서 웃고 있는 나뿐이었다.
“네놈이 바로 그,”
그 사내는 갑자기 나타났다.
하늘에서 떨어진 것도, 땅에서 솟아난 것도 아닌데, 아무런 기척도, 기색도 없이 나타난 중년인.
새하얀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북해라 더욱 눈에 띄는 흑색의 무복을 입은 중년인은 나를 향해 눈을 번뜩이며 물었다.
“하얀 별의 자리에 도전하려는 자냐.”
이건 진짜다.
그저 눈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직감했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이가 내가 상대해본 사람 중 다섯 손가락 내에 들어가는 괴물이라는 사실을.
“···그렇소.”
여전히 광오한 미소를 짓고 있는 그를 바라보며 불파를 두른 양손에 힘을 줬다.
와류 한두 번으로는 절대 쓰러지지 않을 거대한 힘을 그의 안에서 느꼈기 때문이다.
“흐, 흑설표(黑雪豹)다!”
“검은 별의 자리를 둔 결투에서 패배하고 죽은 줄 알았는데···설마 여기에 나타날 줄이야!”
자야가 알려준 정보에는 없는 사람인 것 같더니, 그 때문이었나.
설마 죽은 사람이 나타날 줄은 그녀도 예상하지 못했겠지.
“꽤 유명한 사람인가 보오? 사람들이 이렇게 떠드는 걸 보면 말이지.”
“흐흐흐, 너 같은 아해는 상상도 못 할 수많은 업적을 이루어낸 분이지. 그리고,”
챙!
그가 양손을 가슴께까지 들어 손톱을 세우자, 마치 사나운 맹수와도 같은 기세가 그의 주변에서 휘몰아쳤다.
“거기에 감히 하얀 별에 도전하려 했던 어리석은 한인 하나의 목숨을 거둔 것도 더해질 예정이다.”
“그럴 일은 없을 거요. 그러려면 또 백 년은 기다려야 할 테니까.”
내가 입을 열며 전투태세를 취하자, 새하얗게 물들기 시작한 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다음 하얀 별을 막으려면 그만큼은 기다려야 하지 않겠소?”
“놈! 그 오만함을 고쳐주마!”
콰앙!
이미 대부분 무너져있던 비무대가 그의 발 구름에 산산이 조각나며 수백 개의 돌 파편이 하늘로 비상했다.
그와 동시에 그 파편들을 으스러뜨리며 나를 향해 일직선으로 치켜드는 흑색의 짐승.
아니, 짐승이라면 차라리 낫다.
그들이라면 눈앞의 사냥감을 물어 죽이는 것보다 자신의 생존을 더 중시할 테니까.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이 남자는 오직 나를 죽이겠다는 일념 하나로만 달려드는 괴물이었다.
그리고 그런 괴물을 맞상대하는 법은 딱 하나.
“흐아압!”
당당히 마주하는 것뿐!
쾅!
그의 손과 내 손이 서로 맞부딪히자, 그것을 중심으로 강력한 내공의 파문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우와앗!”
“뒤, 뒤로 물러서! 스쳐도 치명상이다!”
설사 절정에 이른 고수라도 견디기 힘든 엄청난 위력!
그리고 그것은 중심부에 있는 우리 두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크윽!’
어깨에서 느껴지는 시큰한 통증에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불파가 적용되는 범위는 손바닥부터 팔꿈치까지.
달리 말하자면 팔꿈치부터 어깨까지는 다른 무인들보다 조금 더 튼튼한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래도 지금까지 싸워온 상대들은 불파로도 충분히 공격을 상쇄할 수 있어서 상관이 없었는데, 지금 이 남자는 달랐다.
불파를 두른 부분은 아무렇지 않았지만, 그 외의 부분까지 충격이 전해지는 건 막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건 상대도 마찬가지.
“크으윽!”
아니, 오히려 불파라는 오의가 없는 만큼 상대가 받은 충격은 나보다도 극심했다.
첫수부터 방어와 회피는 도외시한 채 오직 공격에만 몰아넣었던 후유증이 지금 나타난 것이다.
“놈!”
하지만 역시 초절정 고수는 초절정 고수라는 것인가.
분명 작지 않은 내상까지 입었을 텐데도 그는 망설이지 않고 후속타를 이어나갔다.
양팔을 교차하여 휘두르고,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사선으로, 곡선으로, 직선으로 마구 손톱을 휘둘렀다.
상처 입은 짐승의 발버둥처럼 보이는 무모한 공격이었지만, 정작 상대하는 내 눈에는 전혀 다르게 보였다.
수십 명의 검의 고수가 서로 다른 무공으로 공격하는 듯한 압박감과 온갖 암기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고수가 내 몸에 있는 모든 요혈을 노리는 듯한 매서움이 그 공격에 담겨 있었으니.
이것이 바로 초절정의 고수.
상처 입은 상태에서도 최적의, 최고의 무공을 발휘한다!
그 사실에 나는 경탄하며.
쿵!
동시에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예우로.
“하아압!”
그의 공격을 당당히 맞상대한다!
쩡!
손과 손의 맞부딪힘이 아니라 검과 검이 맞부딪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까지 들게 만드는 소리가 한 번 들리더니.
쩌저저저정!!!
마치 쇠로 만든 판자 위에 폭우가 쏟아지듯, 뒤이어 들려오는 수십, 수백 개의 쇳소리.
서로의 손이 부딪힐 때마다 불똥까지 튀기는 상황에서도 우리는 오직 서로의 눈과 손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살이 찢어지고, 피가 튀기며, 뼈가 부서진다.
지금이라도 물러나서 비명을 내지르고 싶은 상황에서도 누구 하나 절대 물러서지 않는다.
물러서는 순간 패배.
패배하는 순간 사망.
그것을 우리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원한 싸움은 없다.
태양과 달의 싸움도 매일 한 번씩 패배하며 끝나 거늘, 한낱 인간의 싸움이 어찌 길게 이어질까.
툭.
쇳소리가 가득한 비무대 위에 울려 퍼지는 아주 자그마한 소리.
비무대 아래의 관객은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비무대 위에 있는 나와 그는 그 소리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파앙!
순식간에 거리를 벌리는 사내를 나는 굳이 따라가지 않았다.
이미 승부는 났으니까.
“네놈···.”
그는 날카로운 안광으로 나를 노려봤지만, 이미 패배한 짐승의 눈빛 따위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비무대 위에 떨어진 그것은 바로 사내의 약지(네 번째 손가락).
지법과 금나수를 사용하는 무인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열 개의 손가락 중 하나를 방금 그는 잃어버린 것이다.
아니, 정확히는 아홉 개의 손가락 중 하나.
“소지(새끼손가락)를 잃고도 그만한 무공이라···대단한 무공이었소.”
“왜 끝까지 추격하지 않았지? 네놈이 따라붙었다면 내 목숨도 가져갈 수 있었을 텐데!”
내 칭찬에도 오히려 분노하는 사내에게 나는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보이지 않고 대답했다.
“무인에게 제일 중요한 무기를 부쉈는데 이것이 어찌 목숨을 잃은 것에 비하겠소? 더한 것을 빼앗아놓고 다른 것까지 빼앗아갈 정도로 나는 악하지 못하오.”
“···크큭!”
내 대답에 그는 입가를 비틀이며 미소를 짓더니, 오른손을 감싸 쥐고 있던 왼손을 떼어냈다.
이미 지혈을 끝마친 듯 오른손의 상처에선 피 한 방울 떨어지지 않았다.
“검은 별에 하나를 잃었더니, 하얀 별에 또 하나를 잃는구나.”
그는 그 말을 끝으로 처음 나타났을 때처럼 홀연히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가 여기 있었음을 알 수 있는 흔적은 딱 하나.
비무대 위에 남아있는 말라비틀어진 손가락뿐이었다.
그가 패배를 인정하고 사라졌음이 확실해진 후에야 나는 안심하고 심호흡을 내쉬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회복되는 상처와 내공들.
아니, 그저 회복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이미 익숙하기 그지없던 이 갑자의 내공.
그것이 조금 더 성장하는 것이 느껴졌으니까.
[임무 하나 달성했네.]
위에서 우리 둘의 전투를 관망하던 화순의 목소리가 내 귀에 들어왔다.
[한층 더 성장한 기분이 어때?]
기분이 어떠냐고···당연한 거 아냐?
그리 말하며 나는 단상 위를 바라봤다.
얼굴을 딱딱하게 굳힌 채 나를 노려보고 있는 초절정의 고수들.
그들을 바라보며 혀로 입술을 훑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그들과 싸우고 싶다.
목숨을 걸고 싸우고, 싸우고, 또 싸워서, 강해지고 싶다.
마치 제일 좋아하는 음식을 눈앞에 둔 아이처럼 참을 수 없었다.
지금 내게 새롭게 생겨난 십 년의 내공은 그런 욕심이 저절로 일도록 만들어 줄 정도로 놀라웠다.
마치 아무것도 없는 몸에서 일 갑자의 내공을 얻었을 때처럼 온몸이 기쁨의 비명을 내지르는 걸 느낄 수 있었으니까.
“훌륭하군.”
한창 새롭게 얻은 힘을 만끽하고 있던 그때, 단상 위에서 누군가 말했다.
“그 고절한 무공도, 심후한 내공도, 응당 무인이라면 가지고 있어야 할 마음가짐까지.”
오직 빙궁주와 빙후만이 허락받은 단상의 최상층.
그 바로 아래를 차지하고 있는 네 명의 사내 중 하나.
“그 모두가 훌륭하기 그지없다.”
그중에서도 제일 왼쪽에 있는 황색의 사내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본디 초대 하얀 별께서는 한 명의 무명인을 상대하고, 그 이후 보라색 별을 제외한 다섯 별을 모두 쓰러뜨리셨다고 한다.”
챙!
그는 옆에 기대어 세워둔 세 자루의 검 중 하나를 뽑더니, 그대로 몸을 비무대로 날렸다.
마치 방금 활시위에서 쏘아진 화살처럼 엄청난 속도로 날아오는 황의의 사내.
쾅!
“그러나 다음 하얀 별부터는 그럴 수 없었지. 그랬다간 정말로 하얀 별이 다시는 나타나지 않을 테니까. 그 대신!”
비무대 정중앙에서 빳빳이 몸을 세운 사내는 나를 향해 검을 겨누며 말했다.
“맨 마지막 시련만큼은 여섯별 중 하나가 나서기로 약조했지.”
“그래서···당신이 마지막 시련입니까?”
“그렇다, 북해를 구원하는 하얀 별의 자리에 오르려는 젊은 무인이여.”
푸왁!
그의 말과 동시에 뿜어져 나오는 엄청난 기세.
조금 전 흑설표의 기운이 사나운 짐승의 그것이었다면, 지금 이 사내의 기운은 한 자루의 잘 벼려진 검이 연상되었다.
만약 둘 중 누구를 한 수 위로 치겠느냐 내게 묻는다면, 나는 두 번 고민하지 않고 이 남자를 택하리라.
지금 그가 뿜어내고 있는 기세는 그만큼 무시무시했다.
“나는 북해를 지탱하는 노란 별! 아무라칸!”
번쩍!
그가 쥐고 있던 검의 날이 마치 황금처럼 빛나기 시작했다.
“그대가 진정 북해를 구원하는 하얀 별에 어울리는 자인지 시험해보겠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무라칸이 나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눈조차 멀게 만들 것 같은 광채와 달리 고요한 일격.
하지만 그 안에는 설사 천 년 동안 쌓여온 얼음이라도 베어 넘길 수 있는 어마어마한 거력이 담겨 있었다.
‘기억하세요.’
바로 그때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자야의 조언.
‘현 사방장군은 무려 삼십 년을 넘게 일곱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북해 최강의 고수들이에요. 절대 허투루 상대할만한 자들이 아니죠.’
그의 검을 피하며 비무대 위에 박아놨던 두 자루의 창을 꽉 쥐었다.
‘하지만 약점이 없는 건 아닙니다.’
첫 번째 공격은 피했지만, 그것으로 그의 공격이 멈춘 건 절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그게 시작이라 말해야 옳은 말이리라.
면면부절(綿綿不節).
마치 빛에는 처음과 끝이 없듯이, 찬란하게 빛나는 그의 검도 끊임없이 나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그중 노란 별, 아무라칸은 특히 어려운 상대에요. 괜히 다른 세 별보다 한 수 위라는 평가를 받는 게 아니죠.’
피하고, 막고, 흘려보낸다.
무공을 익히는 자라면 반드시 배워야 할 방어법.
그 모든 것을 총동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공격은 상처를 입지 않는 것이나 겨우 가능할 정도였다.
그것조차도 지금 아무라칸이 공격에 사용하는 내공의 몇 배. 아니, 몇십 배는 사용해야 가능하였으니, 만약 내가 권능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지금 바로 패배를 시인했으리라.
그렇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불리해지는 건 저쪽이 아니라 내 쪽이다.
아무리 피하고, 막고, 흘려보낸다고 하지만 그 무수히 많은 방어 도중 실수는 있을 수밖에 없다.
나 역시 심상 수련으로 끊임없이 단련하고 있지만, 그는 수십 년을 수련한 초절정의 고수다.
누가 먼저 실수를 할지는 자명한 사실.
‘하지만.’
하지만.
‘약점이 없는 건 아니에요.’
내가 승리할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물론 당신이 이것을 해낼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요.’
그리고 그것은 무엇보다도 내가 잘하는 일.
‘그 방법이란.’
그 방법은.
쾅!
아무라칸이 오랜만에 강력한 공격을 사용한 그때를 놓치지 않고, 땅을 박차 비무장 반대편까지 도약했다.
무공을 익히지 않는 평범한 사람은 뛰어가는 것만으로도 숨이 찰 거리지만, 초절정 고수에게 두 걸음이면 도착할만한 거리.
실제로 아무라칸은 여전히 검을 휘두르며, 빠른 속도로 내게 다가왔다.
하지만 그 정도면 충분하다.
고오오오-!!!
그가 초절정의 고수이듯, 그를 상대하는 나 역시 초절정의 고수였으니.
그가 두 걸음을 뛰어와야 하는 그 찰나의 순간.
그것만으로도 나는 이미 다음 공격에 대한 준비를 끝마친 상태였다.
양손에 꽉 쥔 두 자루의 창에서 일어나는 와류.
하지만 거기에 일어나는 와류는 지금까지의 와류와는 전혀 다르다.
창끝에만 맺히던 회전은 창대까지 전부 감싸고 있었고, 지금껏 와류를 사용할 때 불어오던 산들바람은 낮고 둔중한 삭풍이 되었으며.
위력에 비해 큰 내공을 필요치 않았던 오의가 지금은 마치 구멍 뚫린 대야마냥 끊임없이 나의 내공을 갈구했다.
그 심상치 않은 기세에 아무라칸의 검격이 잠깐 멈췄으나, 그것은 정말로 잠깐일 뿐.
전보다 몇 배는 빠른 속도로 공격을 날리는 걸 보면 역시 고수는 고수인 듯했다.
하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자야가 내게 말해줬던 그를 상대하는 방법을 다시 한번 되새기며,
‘그를 쓰러뜨릴 방법은 딱 하나!’
나는 한 손에 쥐고 있던 폭풍우를 손에서 떼어 놓았다.
‘그의 검격조차 압도할 수 있는 거대한 힘뿐입니다!’
콰아아아아앙!!!!!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위력의 와류!
그저 와류로 감싸 창으로 찌르는 것에 불과했던 지금까지와는 달리, 진짜 폭풍우가 되어 그대로 아무라칸을 향해 쇄도했다.
챙! 챙챙챙!
황금빛으로 검격이 그 폭풍우를 어떻게든 막아보려 했지만, 아무리 절대 고수라 해도 한계가 있는 법이었다.
거기에 더군다나.
콰아아아아앙!!!!!
남은 하나의 와류까지 더한다!
두 개의 폭풍우가 하나로 합쳐지자 그것은 겨우 두 배가 아니라 몇 배의 위력을 가진 폭풍우로 변해 아무라칸을 덮쳤다.
하나조차 감당하기 힘든데, 거기에 몇 배는 되는 힘이 전달되자 아무라칸도 더는 버틸 수 없었다.
결국 한순간 늦춰지는 검격.
와류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끄아아악!!!”
아무리 인간이 강하더라도, 자연 앞에서는 무력하다는 걸 보여주기라도 하듯 아무라칸의 통렬한 비명과 함께 그의 검에서 반짝이던 황금빛이 사그라들었다.
잠시 뒤.
아무라칸의 몸 주변에서 휘몰아치던 폭풍우가 가라앉자, 그제야 그의 상태를 볼 수 있었다.
“억!”
“크윽···!”
비무대 아래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이 비통한 목소리를 낼 정도로 참혹한 광경.
황금빛으로 반짝이던 검은 두 쪽으로 나뉘어 날 부분이 비무대 한 편에서 구르고 있었고, 깔끔하게 차려입었던 황색의 무복은 전부 해져서 걸레짝이 되어 있었다.
거기에다가 그 사이사이에서 흐르는 붉은 피까지!
누가 봐도 죽었거나, 빈사상태에 이르렀다는 걸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오오오!”
“아아···!”
그는 그런 상황에서조차 일어섰다.
다리는 질질 끌리고, 한쪽 팔은 들어 올리지도 못해 다른 쪽으로만 반 토막 난 검을 쥔 채, 당당히 서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 공격···.”
그리고 그는 물었다.
“그 공격은 대체 무엇인가?”
“···나에게 이 무공을 알려준 이는 이리 말했소.”
내가 처음으로 와류를 사용했던 그때, 화순이 내 놀란 얼굴을 보고 피식 웃으며 말해줬지.
“진짜(眞) 폭풍(渦流)은 인간의 손으로 감히 담을 수 없는 것이라고.”
“허허, 그랬군. 진와류(眞渦流)라···. 참으로, 참으로 좋은 공격···.”
쿵!
내가 대답하자마자 바로 쓰러진 아무라칸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죽은 건···아니겠지?
혹시나 해서 귀를 기울이자, 다행히 조금 느리긴 하지만 심장은 확실히 뛰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와류를 이겨내려고 한계 이상으로 내공을 사용하려다가 쓰러진 모양이었다.
거, 참. 사람 놀라게 하고 있네, 이 사람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던 바로 그때,
“여섯 밤의 시련은 끝났다!”
단상 제일 위에서 누군가 큰소리로 외쳤다.
제일 처음 나타났을 때 말을 꺼낸 이후로 지금까지 쭉 침묵한 채 자리를 지키고 있던 바로 그 남자.
“명나라의 유현이여!”
빙궁주가 나를 손으로 가리키며 외쳤다.
“그대가 북해를 구원하는 하얀 별임을 인정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