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빙궁의 소주(2) - 무료 마지막 화 >
“그럼 이 두 분은 내가 안내하도록 할게. 괜찮지?”
“예, 그럼 그렇게 알겠습니다.”
자야의 말에 시종은 마치 당연한 일인 마냥 고개를 숙이고 발걸음도 내지 않고 조용히 복도 너머로 사라졌다.
이건 주인의 말을 잘 따르는 시종, 이라기보단···그냥 귀찮은 일이 있을 것 같아서 도망친 것 같은데?
대체 진실이 뭐냐고 시종에게 물어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이미 떠난 사람을 붙잡을 수 없을뿐더러.
“자! 그럼 출발하시죠!”
힘차게 위아래로 팔을 흔들며 앞서나가는 자야와 인상을 쓰면서 그녀를 따라가는 공주를 버리고 갈 순 없었다.
원래 목적인 호위에 충실하면서도 최대한 둘 사이의 대화에 집중했다.
“두 분이 생각보다 일찍 오셔서 깜짝 놀랐어요. 저는 적어도 열흘은 더 있어야 오실 줄 알았거든요.”
“상황이 상황인지라, 어쩔 수 없이 일찍 오게 되었습니다. 불편하셨다면 사죄드리겠습니다.”
“아뇨, 전혀요. 오히려 기뻐요.”
아까와 같이 티끌 한 점 없는 미소를 지으며 자야는 공주의 말에 대답했다.
“오면서 투할 님에게 들으셨겠지만, 온건파의 인원은 무척 적거든요. 그나마 북해빙궁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은 저와 투할 님 정도밖에 없어요.”
“그 정도로 상황이 안 좋나요?”
“우리의 해묵은 원한이 황제나 그 측근의 한 마디로 사라질 건 아니라는 건 명나라에서도 잘 알고 있지 않나요?”
자야의 말에 나도, 공주도 반박하지 못했다.
그녀가 말하는 ‘우리’라는 것이 북해빙궁과 명나라, 이 두 ‘나라’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북해와 중원.
대륙의 중앙에 있는 땅과 북쪽에 있는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 간의 치열한 대립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서로 국가와 부족이 흥망성쇠하며 그 이름과 구성원은 달라졌을지 몰라도, 여전히 두 땅은 서로를 증오하죠. 이 케케묵은 원한이 사라지기 위해선 결국 한 번 싸울 수밖에 없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북해에는 많다는 거지요.”
“만약 저희 쪽에서 먼저 손을 뻗는다고 해도 말입니까?”
“아마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을 거예요.”
단호한 자야의 말에 공주는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상황이 좋지 않다는 의미였다.
기껏 정체불명의 집단이 습격하는 것까지 감수하며 북해빙궁까지 왔는데, 오히려 여기가 더 위험한 곳인 것 같은 이유는 왜일까.
공주의 반응을 알아차린 걸까, 자야는 ‘아, 그래도.’ 라는 말과 함께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게 절망하지 마세요. 희망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니까요.”
“···네, 그렇죠.”
하지만 오히려 순식간에 본래의 신색으로 돌아온 공주의 모습에 이번에는 자야 쪽에서 묘한 표정을 지었다.
“저도 북해에 관해서 아무런 조사도 없이 무작정 찾아온 것이 아닙니다. 북해의 9할. 아니, 그 설사 단 한 사람을 제외한 모두가 찬성하더라도 그분이 반대하면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찾아온 거죠.”
“···그래서 북해까지 찾아오신 건가요? 그분을 설득하기 위해서?”
“과격파가 그토록 많은데도 북해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이유는 그것 말곤 설명할 수 없으니까요.”
공주의 당당한 발언에 자야는 아까보다도 더욱 진한 미소를 입가에 그렸다.
공주의 반응이 기분 좋았던 것일까? 아니면 믿음직한 전우가 생겼다는 기쁨인가?
보통이라면 이 둘 중 한 가지 이유로 생각하겠지만, 기이하게도 내 감은 둘 다 틀렸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대체 이 여자가 이렇게 웃는 이유는 뭘까.
그리고 온건파로 들어온 목적은?
“그럼 저도 최선을 다해 도와드릴게요. 저도 북해가 명나라와 싸우는 건 바라지 않거든요.”
두 사람 간의 대화에서 좀 더 이유를 찾아내 보려 했지만, 자야 쪽에서 대화를 끝내려는 기색을 보이자 이번에는 내가 움직였다.
다른 일을 하러 가는 시종이 옆을 스쳐 지나가자마자 바로 질문을 던졌다.
“그러고 보니 소주님이 온건파로 오신 이유는 뭡니까?”
“네? 저 말인가요?”
이런. 설마 건드리면 안 되는 부분이었나?
내 질문에 눈에 띄게 얼굴이 굳는 자야를 보며 어떤 변명을 꺼내야 할지 망설이는 사이, 그녀가 입을 열었다.
“후후, 딱히 대단한 이유는 아니에요.”
금세 아까와 같은 표정으로 돌아온 자야.
“저는 딱히 부릴 수 있는 사람이 없거든요. 어머니도 이미 돌아가셨고, 어머니의 부족도 이미 멸망한 상태라서요. 저 혼자 아무리 강해 봐야 뭘 할 수 있겠어요? 결국 전쟁이라는 건 힘과 힘의 대립이 아니라 수와 수의 대립인걸요.”
싱긋.
그녀는 마치 내게 ‘이 정도면 대답이 되었냐’라는 듯 미소를 지어 보였다.
대답을 꺼내기 전까진 쭉 나를 지켜보겠다는 심산인지, 웃는 얼굴로 전혀 고개를 돌리지 않는 그녀의 모습에 결국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이상한 걸 여쭤봐서.”
“아뇨, 괜찮아요. 누구나 궁금해할 만한 일인걸요. 그리고 당신이라면 물어볼 만한 자격이 되죠.”
“예? 제가 왜···”
“그리고 공주님. 오늘 저녁에···.”
“아, 네, 소주님···.”
내가 질문을 채 입 밖으로 꺼내기도 전에 바로 대화 상대를 공주로 바꾸는 자야.
대화는 이걸로 끝인가.
궁금했던 것 중 하나는 해결했지만, 대신 다른 하나가 더 생겨 버렸다.
과연 이것이 이득인지 손해인지를 생각하고 있던 그때.
“여기가 두 분이 북해에 계시는 동안 묵으실 숙소예요. 왼쪽이 공주님 방, 오른쪽이 호위분 방이에요.”
자야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어 올리자, 어느새 우리 세 사람은 목적지에 도착해 있었다.
“그리고 오늘 저녁 연회에는 두 분 다 참여해주세요. 사람은 얼마 없지만, 그래도 분명히 재밌을 거예요.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손을 흔들며 떠나는 그녀에게 나는 그저 고개만 꾸벅 숙였다.
도저히 종잡을 수 없는 여인이 떠나고 나서야 나는 옆에서 나와 비슷한 표정···그러니까, 완전히 질린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공주에게 말을 걸었다.
“조금 전 무슨 이야기를 하셨습니까?”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에요. 그저 오늘 열릴 연회를 초대해주셨을 뿐이죠.”
“그럼 잘된 일···아닙니까?”
나는 기쁜 표정으로 대답하다가 공주의 표정을 보고 바로 말끝을 흐렸다.
지금 한 사람이라도 인맥을 만드는 게 중요할 때, 많은 사람이 모이는 연회라면 당연히 기뻐해야 할 일인데도 공주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이번 연회는 아마 온건파끼리의 연회가 될 것이라 하더군요. 다만 투할 장군은 바쁜 일이 있어서 참석이 힘들다고 하고요.”
“그럼···빙궁주께선?”
내 말에 바로 좌우로 고개를 흔드는 그녀.
···물으나 마나인 질문이었나.
“지금 북해에서 저희의 가치는 딱 그만큼밖에 되지 않는다, 이런 뜻이겠죠.”
공주는 씁쓸한 표정으로 이미 자야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봤다.
그 모습이 내게는 전혀 종잡을 수 없는 인물이 지금 우리에겐 유일한 구명줄이라는 사실을 다시 상기하는 것처럼 보였다.
“저희도 이만 돌아가서 쉬도록 하죠. 그럼 저녁에 봬요.”
“네, 알겠습니다.”
왼쪽 방으로 공주가 안전히 들어가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나는 오른쪽 방으로 들어갔다.
숙소는 그리 좋지도, 그렇다고 딱히 나쁘지도 않았다.
딱 북해가 우리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보여주는 것처럼.
*****
‘드디어.’
다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는 자야의 눈이 번쩍였다.
‘드디어 시작됐어.’
그녀의 옆으로 시종이나 시녀. 종종 북해의 고수까지 지나쳤지만, 그중에서 그녀의 눈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녀가 고개를 내리깔고 걸었기 때문이지만,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으리라.
‘우리의 구원이.’
걷잡을 수 없이 타오르는 분노와 계속해서 샘솟아 나는 광기를 단 일순이라도 직시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으니까.
그렇게 누구도 알 수 없는 계획을 지닌 채, 그녀는 조용히 복도를 가로질렀다.
우르릉.
그녀의 계획에 두려움을 느낀 듯, 북해빙궁이 조용히 몸을 떨었다.
그 진동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딱 두 사람.
인세에 존재할 수 없는 미소를 띠고 있는 그녀와.
“·········.”
북해빙궁 제일 심처.
오직 한 사람만이 앉는 것을 허락받은 옥좌에 앉은 커다란 체구의 노인.
북해빙궁주 뿐이었다.
*****
똑똑.
침상에 누워 얼마쯤 휴식을 취했을까.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몸을 일으켰다.
“실례합니다, 손님.”
“무슨 일이오?”
“곧 저녁 연회가 열린다고 자야 소주님께서 두 분을 모셔오라 하셨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녁에 연회···라고 하기엔 뭐한 저녁 약속이 있었지.
“알겠소. 곧바로 나가지.”
“네, 알겠습니다.”
시종의 대답을 듣고 옷을 갖춰 입고 방을 나서자, 얼마 지나지 않아 공주도 밖으로 나왔다.
“자, 가지요.”
공주의 말에 시종은 고개를 한 번 숙이더니 바로 우리 둘을 연회장으로 이끌었다.
우리 외엔 오가는 사람 하나 없는 텅 빈 복도.
인기척도, 소리도 들리지 않는 그 침묵의 공간에서 공주의 질문이 아련히 울려 퍼졌다.
“원래 빙궁에는 이토록 사람이 없습니까?”
“아뇨, 지금 다른 곳에서 연회를 열고 있습니다.”
“···연회요?”
“네, 여섯 개의 별이 북해빙궁에 모두 모이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아, 다 모이면 거의 무조건 연회를 열곤 합니다.”
그래서 투할이 온건파의 연회에 참석하지 않았던 건가.
같은 길을 걷는 온건파조차 저쪽의 연회를 더 중히 여기다니.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건지 시종의 대답을 들은 공주의 얼굴도 역시 어두워졌다.
···아니, 좋게 생각하자. 안 그래도 좋지 않은 상황에서 그렇게 절망적으로 생각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아마 투할 장군은 저쪽에서 자신이 할 일을 하고 있겠죠. 우리도 우리가 할 일을 하도록 합시다.”
“···네, 그렇게 하죠.”
내 말에 공주는 억지로나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연회장에 도착하자, 문을 여는 것으로 안내를 끝낸 시종은 고개를 꾸벅 숙인 후 순식간에 사라졌다.
“어서 오세요! 다행이네요, 늦진 않았어요. 음식들이 전부 방금 나왔거든요.”
연회장 안에는 이미 자야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수십 명은 앉을 수 있을 듯한 기다란 식탁 위엔 그들 모두가 배불리 먹을 수 있을 만큼 음식이 차려져 있었지만, 거기에 있는 사람은 딱 세 사람.
나와 공주. 그리고 자야 뿐이었다.
“자, 얼른 이리 와서 앉으세요. 연회를 시작해야죠.”
차려진 음식은 수십인 분인데 먹는 사람은 오직 세 사람밖에 없는 연회라···.
“연회를 여러 번 해본 건 아니지만, 이런 연회는 또 처음이군요.”
“일이 좋은 식으로 끝나면, 이것도···언젠간 좋은 추억으로 생각할 수 있겠죠.”
···부디 그랬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자야가 안내해 준 자리에 앉은 공주를 따라 그 맞은편에 나도 자리를 잡았다.
“자, 차린 게 많으니까 마음껏 드세요. 원하시면 더 시켜도 돼요. 어차피 저쪽에서도 연회 중이라 음식은 잔뜩 만들어지고 있으니까요.”
지금 이런 자리가 어색하기 그지없는 우리 둘과는 달리, 자야는 마치 원래부터 이렇게 살아왔던 것처럼 젓가락을 들어 식사를 시작했다.
그래, 먹는 게 남는 거라는 옛말도 있는데, 지금은 일단 먹자.
권능을 얻으면서 하루나 이틀 정도야 굶어도 크게 상관없는 육신을 가지게 되었지만, 여전히 음식을 먹는 행위 자체에는 기쁨을 느끼고 있었다.
더군다나 지금 눈앞에 널린 음식은 중원에선 쉬이 먹기도 힘든 북해의 특산물들뿐.
안 그래도 심란한데 이렇게 먹을 것으로라도 마음을 풀어야지.
그런 생각으로 오랜만의 해산물에 젓가락을 뻗는 그때.
쿵!
“끄억, 여기도 연회를 하고 있었나? 응?”
저놈은 또 뭐야.
어디서 술을 마시고 왔는지 거나하게 취한 사내 하나가 연회장의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들고 있던 술병을 입에 대고 몇 모금 들이킨 사내는 입가에 흐르는 술을 소매로 닦고 소리쳤다.
“너희 한인이 대체 왜 여기에 있느냐? 응? 누가 감히 북해빙궁에 한인을 초대했지?!”
“접니다, 타무리 소주.”
움찔.
상석에서 들려온 자야의 목소리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달랐다.
마치 모든 것을 얼어붙게 하는 듯한 차가운 목소리.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예상외의 거력까지.
이 정도라면 최소 일류의 끝자락이거나, 절정 초입은 확실했다.
자야의 기운에 타무리라 불린 사내도 놀랐는지 눈을 껌뻑이다 크흠, 하고 헛기침을 내뱉으며 말했다.
“네가 초대했다면···이 여인이 명나라의 공주라는 소리냐?”
“네, 맞아요. 그리고 이분은 공주님의 호위고요. 두 분을 환영할 겸 연회를 열고 있었습니다.”
아, 다시 돌아왔다.
조금 전의 그 얼음장 같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자야의 신색에 놀라는 것도 잠시, 뒤이어 들려오는 타무리의 목소리에 나는 바로 그쪽을 향해 돌아봤다.
“흥! 곧 전쟁이 벌어지면 멸망할 나라의 공주에게 연회는 무슨. 아, 차라리 이건 어떤가?”
마치 길가의 왈패처럼 실실 웃으며, 벌겋게 물든 얼굴로 입을 여는 타무리.
“네가 내 아내가 되면 특별히 네 가족은 살려주마. 이 타무리, 북해에서도 셋째가 라면 서러울 부족의 일원이자, 다음 대 빙궁주로서의 순위도 높으니, 내 말을 무시할 사람은 이 빙궁 내에서도 없다!”
···이 새끼가 지금 뭐라고 말한 거지?
놈의 말을 선뜻 이해할 수 없었던 건 공주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인지, 멍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가 정면에 있는 나와 눈을 마주쳤다.
마치 ‘저게 북해인의 평균입니까?’라고 물어보는 듯한 눈빛에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최소한 내가 만나봤던 가장 쓰레기 같은 북해인이라도 저런 망발은 지껄이지 않았다.
하물며 정당하게 초대받은 다른 나라의 황족에게 저런 말을 마구 지껄인다고?
아연하다 못해 어처구니없는 그의 태도에 순간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고민하던 사이, 그가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네 번째 아내가 한인의 황족이라는 것도 나쁘진 않지.”
아, 이젠 알겠다.
저런 인간한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알겠어.
분노다.
그것도 저따위 놈이 감히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격렬한 분노.
고오오.
점점 끓어오르는 감정에 따라 단전 안의 내공이 내 주변을 잠식해간다.
초절정의 무인이 내뿜는 기운은 설사 마구잡이로 휘몰아치는 상황에서도 강력한 무기가 된다.
그런 기운이 단 한 사람만을 노리면 어떻게 될까.
그 자체만으로도 한 자루의 날카로운 검이 되고, 뾰족한 창이 되며, 무거운 둔기가 된다.
그렇게 정제된 기운을 놈에게 살포하려는 순간.
“말을 조금 더 조심하는 건 어떨까요, 타무리 소주님.”
“···뭐라?”
“당신의 눈앞에 있는 이분이.”
탁.
그녀가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전신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전신? 전신이라면 분명···.”
자야의 말에 타무리는 뭔가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눈을 커다랗게 뜨며 나를 바라봤다.
설마, 혹시, 아니, 그래도···불신을 포함한 여러 가지 감정이 그의 눈에 스쳐 지나가더니, 그의 얼굴에 어려있던 붉은 기운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내공을 사용해 몸 안의 취기를 모두 몰아냈다는 의미였다.
“어, 어흠. 그, 저, 전신이란 말이지?”
···뭐지?
자야의 말이 나오고, 나를 바라보자마자 눈에 띄게 당황하는 타무리.
조금 전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당당하면서도 뻔뻔한 모습은 완전히 사라졌다.
마치 있어선 안 될 곳에 있는 것처럼 안절부절못하던 그는.
“아! 나, 나를 찾고 있는 사람이 한둘이 아닌데, 지금 여기서 시간 낭비하고 있을 때가 아니지. 그, 그럼 세 분은 여러분만의 연회를 즐기시오.”
라는 말과 함께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연회장을 빠져나갔다.
“그럼 연회를 계속 진행할까요?”
그리고 그것이 마치 당연한 일인 양 조금의 어색함도 없이 내려놨던 젓가락을 다시 들어 올리는 자야.
이 상황을 조금도 이해할 수 없던 나는 결국 입을 열었다.
“조금 전 그 이야기는 대체 뭡니까?”
웬만하면 세 사람이 있을 때 먼저 입을 열지 않지만, 지금은 달랐다.
명나라의 공주라는 말에도 뻔뻔하게 굴던 인간이 내 옛 이명이 나오자 눈에 띄게 흔들리며 도망쳤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나는 그 이유를 모른다.
정보요원의 본능과 내 생존 본능이 모두 그 이유를 당장 알아내라며 내 머리를 마구 뒤흔들고 있었다.
하지만 자야는 그런 상황에서도 젓가락을 뻗어 자신 앞에 있던 생선을 집을 뿐, 대답은 없었다.
“자야 소주님!”
“내일.”
자연스럽게 생선을 입에 넣고 삼킨 자야가 나를 향해 싱긋 웃으며 말했다.
“내일 모두 말씀드리죠. 왜 타무리가 당신의 이명을 듣고 그렇게 놀랐고, 도망쳤는지. 그리고 당신이 이곳 북해에서 어떤 존재인지 모두 말씀드리겠어요. 그러니까.”
쪼르륵.
그녀가 술병을 들더니 내 앞에 있는 잔에 술을 가득 따랐다.
독한 술을 좋아하는 북해답게 지금껏 한 번도 맡아본 적 없는 지독한 주향이 내 코를 찔렀다.
“지금은 연회를 즐기죠.”
“···꼭 설명해주셔야 합니다.”
“네, 약속드리죠.”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나도 그제야 다시 자리에 앉아 식사를 계속했다.
물론 그녀가 따라준 술은 조금도 건드리지 않은 채로 말이다.
< 빙궁의 소주(2) - 무료 마지막 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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